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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상대로 한 행정심판에서 이겼습니다

2010.02.22

하승수(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작년 4월달에 서울시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일부 비공개결정을 받았습니다.  비공개된 정보는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에 국내 언론매체에 집행한 광고비 세부내역(건별 광고게재 언론사 명칭, 광고금액, 광고내용 등)’이었습니다. 

비공개 사유는 ‘해당 언론사의 경영.영업상 비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사에 광고비를 얼마나 줬는지가 그 언론사의 ‘영업상 비밀’이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어차피 지방자치단체가 쓰는 광고비라는 것은 시민의 세금으로 쓰는 것이므로 오히려 광고비를 집행했으면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법제처도 이전에 ‘정부광고의 매체사별 계약단가는 비공개대상정보가 아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 7월 13일날 행정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행정심판 재결서를 받았습니다.  서울시의 비공개결정이 위법.부당한 것이므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문이었습니다.  

이유를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광고비 지출정보는 ‘그 성격이 기밀성을 띤 것이라 볼 수 없고,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점, 정보가 공개되더라도 이를 수령한 언론사의 경영 및 영업상 비밀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에 서울시의 정보비공개처분은 위법.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결정문을 받고 서울시 홍보담당관실의 담당공무원과 통화를 해서 언제쯤 정보를 공개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검토하는데에 시간이 걸리므로 좀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번주 중에 다시 통화를 해 보겠지만, 빠른 시일내에 서울시가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세훈 시장 취임이후의 광고비 세부집행내역을 왜 공개안한 것인지는지금도 납득할 수 없지만, 행정심판 결정서를 받은 이상 조속한 시일내에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공개되어야 하는 정보는 68개 국내언론매체에 서울시가 2006. 7. 1. 이후에 집행한 광고비 건별 집행내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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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레땅뿌르국처럼 돌아가는 대한민국 정부

2010.02.22


정부의 기록관리 규제개혁, 전문성 포기가 규제개혁인가?

개그프로그램인 ‘뿌레땅 뿌르국’에서나 나올 법한 병원을 상상해보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선 환자들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병원에서 어느 날 ‘규제개혁’을 하겠다고 병원장이 나섰다. 이에 그 ‘규제개혁’의 내용이 뭔가 하고 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늘어나는 환자들을 위해 의사들을 더 채용하기는커녕 병원 경영의 효율을 위하여 간호사부터 직원까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의사가 되기 위한 학력제한이 ‘규제’이므로 간호사와 직원들이 간단한 교육과정만 마치면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 ‘개혁’이란다. ‘나는 이 병원의 직원이자, 간호사이자, 의사요.’라는 병원에서 과연 환자들의 생명은 어찌될까?

사진 : KBS 개그콘서트 “뿌레땅 뿌르국”


문제는 이렇게 개그 소재로 삼을 만한 이야기들이 ‘선진화’를 꿈꾸는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전문요원 자격을 ‘기록관리학 석사’에서 ‘학사 학위 소지자’로 낮추고, 일반공무원도 간단한 교육과정을 마치면 자격이 가능하도록 완화하려는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의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즉, 공공기관의 기록관리가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성이 필요 없는 ‘규제’이므로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록관리법)에서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석사학위 소지자‘로 규정한 이유는 기록관리가 단순히 문서를 처리하는 행정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기록관리 전문요원을 통해 공공기관의 업무과정과 결과를 기록에 잘 표현되도록 하며, 이러한 기록을 국민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공기관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중요한 가치가 있는 기록을 선별하여 풍부한 역사자료를 남기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을 ‘석사 학위’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의 윤리강령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아키비스트(기록관리 전문가) 윤리 강령’을 제정하여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더욱 의심을 하게 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있다. 그것은 ‘보존연한 5년’ 이하의 기록물을 외부 전문가의 심의 없이 폐기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비공개 기록물’들의 공개여부를 5년마다 검토하는 절차를 삭제하려는 것이다. 보존연한 5년 이하의 기록물을 외부 전문가들이 심의함으로써 중요한 기록이 잘못 책정된 보존연한에 의하여 폐기되는 것을 방지하고, 비공개 기록물의 공개여부를 5년마다 검토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것이 현재 공공기록관리법의 목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절차들을 ‘규제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삭제하려는 것은 기록물의 폐기를 쉽게 하여 정부행정의 증거들을 쉽게 폐기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러한 ‘규제개혁’에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절차도 밟지 않았다. 지난 10년 간 학계에서는 증대되는 기록관리의 중요성에 발맞추어  20여 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설립하고 매년 수십 명의 기록관리 전문가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배출한 기록관리 전문가들은 ‘계약직’, ‘시간제 계약직’을 마다하지 않으며 공공기관의 전문적이고 중립적인 기록관리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지만,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은 이러한 학계의 열성적인 노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화성성역의궤 등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기록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군사독재로 인하여 우수한 기록문화 전통이 단절되어 왔고 그나마 지난 10년 간 학계와 정부의 노력으로 다시 복원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선진화’의 과정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규제개혁’이 다시 기록관리의 암흑시대로 돌아가게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대한민국이 ‘뿌레땅 뿌르국’처럼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시 재고하여 주길 바란다.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문찬일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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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정보공개 개척자들을 소개합니다.

2010.02.17
하승수(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2월달에 지방을 돌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역을 돌면서 보석같은 분들을 많이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광주광역시에는 ‘시민이 만드는 밝은 세상’이라는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의 이상석 사무처장님은 정보공개청구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첫째가는 분입니다. 본인이 직접 정보비공개에 대해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건만 10여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상석 사무처장님

사무실에 가 보니 웬만한 변호사는 저리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사무실 게시판에는 진행중인 정보공개 사건 관련 현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시민이 만드는 밝은세상 게시판

이상석 사무처장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시민이 만드는 밝은 세상’이라는 단체는 광주광역시장의 업무추진비 지출 관련 서류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아 분석해서 선거법 위반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그리고 검찰에 고발하여 광주광역시장과 전남도지사는 얼마전에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전라북도 부안군에 강의가 있어서 갔었습니다. 부안아카데미라는 모임이었는데요. 이 모임에서 몇몇 분들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에 대해 공부도 하시고 정보공개청구도 하고 계셨습니다. 최근에는 군의회 업무추진비와 해외여행 관련 서류를 공개받기도 했습니다.

그날 부안군 정보목록의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부안읍내에서 약국을 운영하시는 김재성 약사님이셨는데요. 부안군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작성.공개하게 되어 있는 정보목록을 부실하게 작성.공개하고 있다는 것을 분석해서 지적하셨습니다. 전라북도 다른 시.군까지도 조사해서 비교를 하여 이야기를 하니 부안군청에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지역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설명하고 계시는 김재성 약사님

사실 지역에서는 정보공개청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온갖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해서 ‘왜 정보공개청구하느냐’, ‘쓸데없는 일을 왜 하느냐’는 이야기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지역이 희망이 있으려면 지방자치가 투명해져야 합니다. 정보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정보가 공개되어야 주민들이 참여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분들이 이렇게 훌륭한 활동들을 하시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보석같은 분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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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독재를 가속시키는 지방자치 ‘소선거구제 논란’

2010.02.17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2월 19일 예비후보자 등록을 코 앞에 두고도 지방선거제도의 기본 틀이 흔들리고 있다. 기초의원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려는 국회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16일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소선거구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또다시 언급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지금 국회에는 2월 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이 제안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 개정안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이번에 도입된 여성후보자 의무공천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내용과 일부 지역의 시도의원 선거구역을 조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 등 34인이 발의한 수정안이 제안되어 있다. 이 수정안은 현재 1선거구당 2~4인을 뽑도록 되어 있는 기초의원 선거구제(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즉 읍·면·동별로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하고, 그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만 기초의원으로 뽑자는 것이다.

 이것은 중선거구제를 유지하기로 한 기존의 여·야 합의를 뒤집는 내용이다. 또한 일당독식의 부작용을 막고 다양한 정치세력간의 경쟁을 보장하려고 한 중선거구제 도입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은 26일 경남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나라당의 선거구 획정안 조정’을 비난했다.
ⓒ 장성국

 


국회의원들의 공천편의 때문에 흔들리는 선거구제

 소선거구제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은 ▲중선거구제에서는 선거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 ▲중선거구제가 시행되면서 소지역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 ▲지역주민과 의원들간의 직접 접촉 부재로 주민들의 무관심이 증대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선거구제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1위 득표자에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만약 2명의 후보자가 나와서 51%와 49%를 얻었을 때에 51%를 얻어 1위를 한 사람만 당선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즉, 설령 49%를 얻은 2위 득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 소선거구제인 것이다.

 사실 소선거구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득표율 1위 정당이 그 지역 지방의회를 싹쓸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선거구제를 실시하고 있는 광역의회(시·도의회)에서는 그런 싹쓸이 현상이 발생해 왔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소선거구제를 실시한 광역의회(시·도의회)에서는 득표율 1위를 한 한나라당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지역구 의석을 100% 싹쓸이 했다. 다른 정당은 지역구에서 단 1명의 광역의원도 내지 못했다. 단지 비례대표만을 소수 당선시켰을 뿐이다. 

 반면에 중선거구제를 실시한 기초의원의 경우에는 한나라당 아닌 다른 정당들도 기초의원 당선자를 상당수 냈다.

 한편 기초의원 선거구를 소선거구제로 하자는 측에서는, 2002년 지방선거때까지는 기초의원 선거구가 소선거구제였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2002년 지방선거 이전과 지금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2002년 지방선거까지는 기초의원은 정당공천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추첨에 의해 기호를 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상황이다. 따라서 ‘정당공천제 + 소선거구제’의 결합은 기초지역정치를 파탄시킬 것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기초지방의회를 싹쓸이 하는 결과들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호남에서는 민주당 아닌 정당들이나 시민사회 후보들은 발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소선거구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유투표로 가게 되면 소선거구제 개정안은 통과될 지도 모른다.

 국회의원들이 소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읍·면·동별로 자기 지역구 관리를 할 사람을 기초의원으로 공천하면 간단한데, 중선거구제를 하면서 여기에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읍·면·동을 1개의 선거구로 하면서 공천권을 행사하기가 복잡해진 것이다. 또한 중선거구제를 하면 군소정당이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기득권 정당들이 소선거구제를 선호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구제가 국회의원들의 공천편의나 지역구 관리의 편의 때문에 결정되면 곤란하다.

▲ 2월 5일 광주시의회 행자위 회의에 앞서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등 군소정당 당원 등 20여명은 행자위 회의실 주변에서 선거구 분할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 시민의소리 강성관

 

민주당은 진정성을 보여라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도 선거구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19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는데, 선거구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의 모호한 태도도 문제이다. 민주당은 중선거구제 유지를 당론으로 주장해 왔지만, 자신들의 텃밭인 광주에서는 중선거구제의 취지에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왔다.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경쟁을 보장하려는 중선거구제의 취지에 따라 광주광역시 선거구획정위원회는 4인 선거구 6곳이 포함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제안했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회에서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내일(17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민주당이 진정성이 있는 정당이라면, 우선 자신들의 텃밭인 광주에서부터 중선거구제의 취지에 맞게 4인 선거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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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도, 알 권리도 없는 행정규제개혁. 아키비스트 사태!

2010.02.11
 

정보공개센터 자원활동가 이보람
(한국외대 기록관리대학원 입학)

 

기록관리 학계는 요즈음 깨나 어수선한 때를 보내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논의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완화’ 때문이다. 기록물폐기 절차간소화, 비공개기록 5년마다 재분류 현행절차 삭제 등을 기록관리 프로세스 현실화 ․ 기록관리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기록물 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한다. 기록관리 자체가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아직 학부 졸업장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2010년 전기 기록관리학 석사과정입학을 앞두고 있는 예비 기록인으로서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완화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 세계일보-기록이 없는 나라>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아키비스트(archivist)로 현행 시행령에는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을 기록관리학 및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학부로 낮추고 자격증을 따거나 단기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을 얻도록 하향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록관리의 전문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미 기록관리 석사를 소지하고 현장에 진출한 전문요원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다. 논의의 시작부터 뭔가 석연치 않다.

 

먼저 이것은 분명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도전이다. 기록을 기반한 행정의 효율성과 공직 업무의 투명성에 위배되는 것이다. 공공업무 추진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을 자체적으로 폐기하고 비공개기록의 5년 주기 재분류 절차를 삭제한다면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의 업무에는 당장 편의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록에 대한 중요성이나 이해가 없이 편의주의적으로 기록을 폐기한다면, 앞으로 행정기록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을 보면 참여정부와 함께 민주화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록관리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존폐위기에 당면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정부가 기록과 정보를 권력으로 인식하고 독점하고자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럴수록 더욱 기록관리를 통해 국가운영성에 대한 알 권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고 정권에 일희일비하는 기록관리학을 온전한 학문으로 정립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주장을 했다. 기록관리 대학원을 졸업하기 까지 약 3000만원이 학비로 낭비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대학원이 기록관리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인가? 기록관리 전문요원을 배출하는 공무원양성소인가? 정부가 기록관리를 바라보는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의․약학, 법학 등의 전문대학원은 왜 있는 것인가. 의․약학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법학은 법률의 원리를 사회에 객관적이고 의롭게 적용하는 학문이므로 또한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데 필요한 기록전반을 관리하는데 이용되는 기록관리학에서 다루는 분야는 인체도 법도 아니므로 대학원에 진학하면서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기록에 대한 인식이 다시 한 번 여실히 드러난다.

 

이렇듯 정부는 기록관리 전문요원에 의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 아키비스트 사태를 기록관리 학계의 밥그릇 지키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사관의 정신을 이어 받아 기록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정보공개와 기록관리로서 실현하겠다는 거창하고 고상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키비스트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이기적인 고집도 아니다. 정부가 진정 국가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국민을 위해 일한다면 기록관리의 전문성에 대해 상식적인 차원에서 나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당색을 초월하여 기록관리학문 자체의 목적과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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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록연구사’ 자격 완화인가?

2010.02.10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승휘 공동대표

최근 행정안전부국무총리실은 ‘규제 개혁’ 차원에서 ‘기록연구사의 자격기준 완화’ ‘기록관리 절차의 간소화’라는 명분으로 기록물 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한다. 현 시행령에는 기록연구사의 자격을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의 소지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제정 후 전국적으로 20여개의 대학에 대학원 과정이 신설되어, 배출된 인원만도 400~500명에 이르며, 현재 100명 이상이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법령으로 많은 이해관계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개정을 추진하다니 참으로 무책임하다.

개정의 방향은 현 정부의 ‘선진화정책’에 반기를 드는 담대함도 느껴진다. 국가기록원은 현 정부의 국정방향에 조응하여 ‘생산단계부터 철저한 기록관리체계의 마련’, ‘국가기록관리 전문인력 양성 및 전문성 강화로 인적 인프라 구축’ 등을 목표로 정하였다. 그러나 자격요건의 완화는 전문성 강화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며, 절차의 간소화는, ‘생산단계부터 철저한 기록관리’를 무력화시키는 셈이다. 또 2006년 행자부(현 행안부)는 교육부(현 교과부)에 기록관리학 대학원과정을 많이 신설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교과부는 전문대학원까지 설립해주었다. 그런데 교과부와 상의도 없이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문제는 있는 것인가. 정부수립 이후 2005년까지 60여년 동안 국가기록원이 행정부처로부터 이관 받은 기록물의 양은 125만권인 반면, 기록연구사가 배치된 후 2008년까지 3년 동안 73만권을 이관 받았다. 대통령기록물의 경우는 60여년간 22만권이던 것이, 무려 200만권을 이관 받았다. 한국의 행정 역사상 보기드문 성과는 바로 기록연구사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규제완화를 위해 개정하겠다는 것인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개정 배경에는, 기존 행정공무원을 기록연구사로 전직시키기 위해 자격완화가 필요하다는 행정관료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개정의 핵심은 행정관료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상황은 국가의 기록관리를 총괄하는 국가기록원에서도 발생했다. 얼마 전 팀장을 과장으로 바꾼다는 명분 아래 전문직 출신의 팀장을 모두 강등시키고 과장의 대부분을 행정안전부의 행정관료들이 독차지해버렸다.

국가의 기록관리는 단순한 행정사무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틀이다. 이 기본틀이 단순히 ‘행정관료의 편익’을 위해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뒤틀어진다면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물려받고, 승정원일기를 물려받은 우리는 후세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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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기록민주주의마저 후퇴시키려는가

2010.02.09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잊혀 질 수도 있는 당시의 기억을 채집하여 후대까지 전해지는 역사로 만들어 주는 것이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하길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록하길 꺼려하기도 한다. 역사 앞에 떳떳한 사람은 기록을 남기려 할 테고, 그렇지 않은 자는 있는 기록마저도 없애려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움직임을 보니 역사 앞에 떳떳하지는 않은가보다. 아니면 4대강 사업과 같은 ‘중요한’ 일들이 많다보니 기록관리의 중요성은 안중에 없는 것 일수도 있겠다.

정부는 지금 “행정규제 개선”과 “기록관리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기록관리의 근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니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을 개정해 기록관리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선진화일 뿐, 실상은 기록관리 후진화를 위해 기록물폐기법으로 바꾸려 한다는 게 관련 학계와 시민사회의 일치된 목소리다.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록물 폐기절차를 간소화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행법상으로는 기관자체에서는 마음대로 기록폐기를 결정할 수 없게 되어있다. 기관 외부 전문가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하찮은 기록이라 할지라도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차를 간소화 해서 내부에서 기록을 폐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니, 이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행정의 투명성 제고” 라는 기록관리 정신 자체에 역행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비공개 기록을 5년마다 재분류하여 공개여부를 검토하는 현재의 절차를 삭제하겠다고  한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행정기관 또는 공무원 중심의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불리는 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 이거나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기록물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다른 연구직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제한적인 임용규정을 두는 이유는 기록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사료로서의 기록을 토대로 전개될 역사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자격증제도를 따거나, 단기 교육을 이수하면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향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록관리전문요원은 대한민국의 사관이다. 사진은 지난 2002년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정보공개”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최한수 참여연대 간사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간혹 조선시대의 사관(史官)에 비유되곤 한다.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함으로써 역사를 서술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사관은 그 기록을 통해 현실정치를 가감 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학자로서의 학문능력뿐 아니라, 폭넓은 역사 지식, 현실을 직시하며 시비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는 능력 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책무의식과 소명의식은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소양이었다. 그런데 현대판 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요원의 자격을 낮추겠다니… 기록관리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기술과 기능 업무라고 여기는 정부의 시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올바른 공공기록의 관리는 공적 행위의 설명책임을 지는 정부의 주요 의무이자, 효과적으로 행정을 통제하여 투명행정과 책임행정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다. 기록관리가 제대로 된다면 ‘민주주의’를 실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을 보면 이 정부가 과연 ‘기록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신뢰받는 정부를 위한 가장 기본요소인 기록관리를 훼손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야 겨우 정착되어 가고 있는 기록관리 문화가 이대로 퇴보해버린다면, 앞으로 기록될 대한민국의 역사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훼손된 역사 앞에 결코 떳떳해 질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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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전자파일복제 비용이 540만원?

2010.02.08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김영수 변호사

이미 만들어진 전자파일을 복제하고 전달하는데 드는 비용이 540만원이라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정부가 생산한 공공기관의 정보를 공개하는데 드는 비용이라면. 그런데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기록정보의 대중화를 통한 국민의 알권리를 실현하고 사회전반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여갈 것을 목적으로 공공 및 민간기관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캠페인, 정보공개제도를 통한 언론사의 탐사보도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최근 이 단체 활동을 통해 공개된 공공정보들의 내용을 몇 가지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대통령 업무보고 한번에 2천200만원, 쇠고기 허위표시 업소 명단공개, 국내 국립공원 내 포장도로가 442Km, 4대강 유역 지정문화재 94곳 공개, 지하철 모유수유실의 실태, 셋방살이 중앙부처 월세로 새는 돈 340억, 전직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영상 공개…. 간단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알려진 내용들인데, 정부는 껄끄럽겠지만 시민들로서는 참 재미있고 알찬 정보들이다.

그런데 근래 이 단체가 국가기록원에 대하여 1945년부터 1978년까지 35개 생산기관별 비공개기록물 재분류 공개목록을 엑셀파일형태로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는데, 국가기록원은 공개결정을 하면서 공개수수료 540여 만 원을 부과한 것이다.  

헌법 제21조 언론출판의 자유를 통해 보장되는 ‘알권리’의 핵심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즉 국민의 정부에 대한 일반적 정보공개를 구할 권리라 할 수 있다. 충분한 정보에의 접근, 정보의 자유로운 수용을 통해 비로소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과 표명이 가능하고, 이는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알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 역시 모든 국민에게 정보공개청구권이 있음을 천명함과 아울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정보공개를 구하는데 드는 비용이 적절한 정도를 넘어 과다하다면 사실상 비공개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며 이는 알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게 된다. 그래서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비용을 ‘실비’로 제한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보공개법 시행규칙은 수수료를 정하고 있다. 위 시행규칙은 전자문서를 전자파일로 공개하는 경우에도 원본을 열람하여 사본이나 복제물의 형태로 공개청구를 하는 경우와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은 것이다.  

국가 역할의 확대, 정보기술의 발달은 공공정보의 생산, 관리, 공개과정에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비용부담 역시 최소화하고 있다(실제 앞서 정보공개센터가 공개청구한 공공정보는 일반문서 기준으로는 27만330매에 달하나, 전자파일로는 96건에 정도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공유가 보편화되고 행정청 방문 없이도 사이버공간을 통한 행정결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자파일의 복제, 전자우편을 통한 정보공개에 드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정보공개비용만은 일반문서를 손수 복사하여 사본을 교부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복사용지, 출력비용 등이 소요되는 일반문서와 전자우편이나 전자파일의 복제본과 같은 방법을 이용한 정보공개의 경우의 정보공개방법은 분명 다르고 그 특성에 맞게 비용 역시 각각 책정되어야 한다.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법 시행규칙상의 수수료 규정이 국민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여 위헌이라 판단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하였고 현재 심리 중에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앞서 정부가 먼저 정보공개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보는 것을 어떨까. 지나친 기대일까? 

* 이 글은 김영수 변호사님이 시민사회신문에 기고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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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PD 수첩, 재판보도 하면 안된다고?

2010.02.08

                                                                       하승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지난 1월20일 <문화방송>(MBC) ‘피디(PD)수첩’의 미국쇠고기 관련 보도에 대한 1심 무죄판결 선고가 있었다. 그 직후인 1월26일 피디수첩은 ‘형사소송 1심 피디수첩 무죄’라는 제목으로 약 8분가량의 후속보도를 했다.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된 부분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판결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그 후속보도가 다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도마에 올라가 있다.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문제가 되고 있는 방송심의규정 11조는 “재판이 계속중인 사건을 다룰 때에는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되며, 이와 관련된 심층취재는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피디수첩의 후속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보도 내용이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방송통신심의위가 심의를 하게 되겠지만,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1심 재판의 판결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앞으로 재판에 관한 언론 보도의 폭은 매우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디수첩의 후속보도 내용은 방송심의규정 11조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본다.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사소송 절차상 2심 재판부가 정해지면 1심 재판의 기록을 검토하고 1심 판결문에 대해서도 검토를 하게 된다. 필요하면 2심에서 증거조사를 하고 양측의 주장을 듣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2심 판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의 내용을 정리한 방송을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법관들이나 재판 절차를 너무 무시하는 주장이다.

또한 피디수첩의 후속보도가 방송심의규정 11조를 위반한 것이라면, 다른 사건에서도 1심 판결에 대해서는 보도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억지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1심이든 2심, 3심이든 법원의 판결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사실 그동안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사건에 대해서는 수많은 예측보도들이 있었고, 1심 판결이 내려지면 그에 관한 보도들도 있어 왔다. 삼성 일가 관련 재판,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미디어법 관련 헌법재판 당시의 언론 보도들을 상기해 보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에서, 그리고 재판 후에 수많은 언론 보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보도들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한편 피디수첩의 후속보도가 전파를 사유화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자사 보도 내용을 변명하기 위해 무죄 홍보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 내용을 보면,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편 것이라기보다는 쟁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 내용을 소개한 측면이 강하다.

어차피 피디수첩의 애초 보도 내용이 허위였는지, 그리고 고의적인 조작이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아직 2심, 3심 재판을 거쳐야 확정이 될 것이다.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후의 재판 과정도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특히 방송심의규정의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면서까지 언론 보도에 대해 족쇄를 채우려는 것은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므로, 이해관계의 유불리를 떠나서 보장되어야 한다.

 * 본 컬럼은 2월 8일자 한겨레 기고 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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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한참 엇나가고 있는 총리실의 규제개혁

2010.02.05
 

조영삼 한신대 초빙교수(기록학)

그동안 국무총리실은 행정 내부 규제를 없애기 위해 논의를 수차례 진행해왔다고 한다. 여기에는 기록관리 분야도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국가기록관리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매우 우려된다. 그것은 5년 이하의 보존기간인 기록을 외부 전문가의 심의없이 폐기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기관의 기록관으로 이관된 기록 중 비공개 대상 기록의 공개 여부 검토 조항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또 각급 기관에 배치될 ‘기록관리 전문요원(아키비스트·Archivist)’의 자격을 석사학위에서 학사학위 소지자로 낮추는 것도 포함돼 있다.

기록 폐기를 신중히 하자는 것이 규제라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기록의 폐기는 언제나 신중해야 하고 공개 활성화를 위한 재검토 절차가 결코 규제가 될 수 없다. 업무가 과중하다고해서 국가재산의 처분을 신중하게 하지 않거나,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지방의 어느 기록관을 방문해 그곳 전문요원에게 기록관리 실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보존기간이 5년으로 책정되어 해당 부서에서 폐기의견을 낸 기록을 검토해보니 역사적 가치가 높아 장기적 보존이 필요한 대통령의 방문 기록이었다고 한다. 업무담당자가 더 이상 보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을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역사적 안목으로 보존을 결정한 것이다.

이 정도는 학부 졸업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기록관리는 문서수발 같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문서 하나가 아닌 업무행위의 맥락과 연원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록을 잘 관리하여 국민에게 온전히 돌려주기 위하여 노력하는 전문가이다.

기록관리를 잘하는 선진국에서는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가를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록관리는 행정의 한 부분으로 학부 수준의 전문성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또 유사한 학예연구직과 편사연구직도 석사의 자격을 정해 놓지 않았다고 하여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학예연구직과 편사연구직에 학부 졸업생을 임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 연구직은 수십년 동안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성이 아니면 해당 연구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지만 기록관리는 그렇지 않다. 공공기록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록관리 전문가가 필요없다고 여긴다. 이렇듯 낮은 인식 때문에 굳이 법령에 석사학위 소지자로 정해 놓은 것이다.

한편 현재의 기록관리 규제 개선 논의는 절차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록관리 정책은 국가기록관리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한 법률 규정을 무시했고, 규제 개선 과제의 선정도 총리실의 주장을 대변할 수 있는 기관들만 불러 모았다. 애초에 반대 의견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이제라도 전문가에 의한 과학적이고 합리적 기록관리를 통한 투명행정, 책임행정,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규제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글로벌화시키겠다”고 약속한 ‘기록관리 선진화 전략’을 꼭 지켜 7개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한 ‘국격’에 걸맞은 수준의 기록관리가 되도록 매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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