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기록관리 전문성 포기가 정부가 말하는 규제개혁인가

2010.02.03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선조들의 기록을 보면, 먼저는 방대한 양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기록화와 철저한 기록관리 문화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기록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혹은 남겨져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풍성한 역사문화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물려주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대한민국의 기록관리 문화가 후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기록관리학 전공 주임교수 협의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기록관리 전문가포럼 ▴기록관리전공 학생연합 등 학계와 시민단체, 현직 기록연구사 등 각계각층의 단체에서는 2월 2일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밤이 늦도록 발디딜 틈이 없었다.

현재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악 움직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모았던 이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행정규제 개혁”과 “기록관리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이 실제로는 공공기관 기록관리의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이는 정부가 다시 “기록이 없는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이라고 상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었다.

최근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기록물관리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기록물 보존 및 관리절차를 정비하겠다고 한다. 언뜻 보면 업무 효율을 위해 복잡한 관리절차를 개선하자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록물 폐기절차를 간소화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과거와 같이 행정기관 내에서 자의에 따라 임의로 기록을 폐기할 명분을 주게 될 뿐이다. 뿐만 아니다. 현재 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비공개로 되어있는 기록은 5년마다 재분류하여 공개여부를 검토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절차마저도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 “기록을 기반으로 한 행정의 투명성 제고” 라는 기록관리 정신 자체에 역행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의 자격조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 이거나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기록물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기록물의 생산, 분류, 이관, 수집, 평가, 폐기, 공개, 활용 등 기록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자격증제도를 따거나, 단기 교육을 이수면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향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록관리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아니라 기술과 기능 업무라고 여기는 정부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토론회를 통해 기록관리 현안 대책위원회(http://archivist.tistory.com)가 구성되었으며 기록관리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현재 진행중인 정부의 기록물관리법 개악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의지를 천명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자격 완화 ▴행정편의주의적인 기록 폐기 및 비공개기록 공개재분류 절차 폐지 계획 철회 ▴’국가기록관리 선진화방안’ 이행 ▴정부의 일방적 법 개정이 아닌 기록학계 및 시민사회, 이해당사자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논의 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 정부의 기록관리 법령 개악 관련 성명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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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 앞에 칼날을 드리우는 자 누구인가

2010.01.28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국민알권리의 기본이자, 국가운영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록관리가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참여정부 때부터 어렵사리 시작된 기록관리 혁신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공공업무 과정의 철저한 기록화와 체계적인 기록관리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국민으로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 혁신의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 기록관리 전문가인 기록관리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이 배치되었고, 제도와 함께 기록관리 프로세스가 재정비 되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혁신내용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22일과 1월 6일, 행정안전부는 기록관리 프로세스 현실화 ▴전문요원 자격요건 완화 및 배치 유예를 주제로 ‘행정내부규제개선 회의’를 열었다. 국무총리실에서도 불과 며칠 전 ‘선진화 과제 발굴회의’로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기준완화 및 지자체 배치 시기 연기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기록물 폐기 및 비공개 기록물의 공개재분류 등 기록관리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현재 전문 교육과정을 이수한 석사이상으로 되어있는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자는 내용이 회의의 주된 골자다.

하지만 정부의 ‘선진화’와 ‘규제개선’을 앞세운 이 논의의 실상은 기록관리 후진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게 자명하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대한민국의 기록이 “관리” 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준 높은 기록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등을 남겨준 선조들의 이야기일 뿐.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기록문화 수준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2005년 공공기관에 전문요원이 배치되고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이 개정되기 전의 상황을 보면 국가기록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은 그 이름과 권위가 무색하게도 남겨져있는 기록물건수가 단출하기 그지없으며, 공공기관의 기록도 곰팡이가 슬고 찢어지는 등 창고 같은 서고에서 방치되어있었던 것이다.

과거 모 중앙부처의 문서고. 기록물과 비품이 함께 어지럽게 널려있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기록의 생산부터 폐기되기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기록관리 프로세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록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기니, 기록의 양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과거 생산하고도 등록하지 않아 은폐되었던 기록들이 수면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록을 통한 투명한 행정으로 신뢰 있는 국가를 만들자는 정부의 자기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오래가지 않았다. 참여정부에서 추진하고 일궈놓은 기록관리 문화가 난도질당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대통령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으로 청와대와 봉하마을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현 정부의 전자기록에 대한 무지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MB정부로부터 대통령기록을 유출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하는 사태까지 갔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공직자들이 부당 수령한 쌀 직불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권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어있던 관련기록을 끝내 열어버리고 말았다. 대통령기록이 남겨질 수 있도록 하는 마지막 장치인 대통령 지정기록물제도를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몇 차례에 걸쳐 난도질당한 기록관리가 이번에 또다시 칼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번 칼날의 타깃은 바로 기록관리의 주체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다.

현재 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 이거나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기록물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기록물의 생산, 분류, 이관, 수집, 평가, 폐기, 공개, 활용 등 기록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학사학위로 하향조정하겠다고 한다. 기록을 관리하는 데에는 실무경험이 중요한 것이지, 특별히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록관리 현상만 바라본 채, 본질은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발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학위와 학벌만으로 자격을 가르자는 것이 아니다. 전문요원의 밥그릇 지키기를 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기록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문요원이 행정직이 아닌, 연구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불리는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의 본질은 기관 업무 및 기능을 조직하는 코디네이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내용’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 즉 조직의 의사결정 및 활동과정 상의 ‘맥락’을 복원시키고 진본성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이 전문요원의 본원적 임무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키비스트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대학원과정에서의 연구와 교육,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국제 기록관리 흐름을 선도한다고 할 수 있는 북미에서도 기록관리학을 대학원 과정에서 개설해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아키비스트협회인 SAA(The Society of American Archivist)는 기록관리학 대학원 과정에서 전문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으로 다뤄야 하는 전공과목을 지정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의 기록관리 전공 커리큘럼

정부의 전문요원 자격완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치되어야 하는 전문요원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격을 완화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기록이 제대로 관리되든 말든 사람부터 채우고 보자는 막가파식 발상이다. 마지막 이유는 수험생들의 과도한 비용부담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원을 졸업하려면 학비로 3000만원이 들어가는데, 이를 막자는 것이다.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지못할만큼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다. 정부는 기록관리학 대학원 자체를 공무원 양성 학원쯤으로밖에 생각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정부가 기록관리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예라고 할수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관장해야하는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기록관리를 ‘행정내부규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선진화 발굴과제’라며 내놓은 사안들은 또 어떤가. 정부의 논의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국민의 알권리가 무너지고, 그와 함께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파탄 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기록관리 실무를 책임지는 국가기록원마저도 이런 사태를 관망한 채 정권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데 정신이 없다. 또한 전문요원의 배치를 유예 해달라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는 스스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올바른 공공기록의 관리는 공적 행위의 설명책임을 지는 정부의 주요 의무이자, 효과적으로 행정을 통제하여 투명행정과 책임행정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과 기록물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의 수수방관 태도는 학계와 시민사회 어느 누구의 동의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기록민주주의가 이대로 퇴보해버린다면, 앞으로 기록될 대한민국의 역사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훼손된 역사 앞에 결코 떳떳해 질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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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민주주의 후퇴시키는 정부의 기록관리선진화 반대한다.

2010.01.28

 

[ 성  명  서 ]


기록민주주의 후퇴시키는 정부의 기록관리선진화 반대한다.

1.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국민알권리의 기본이자, 국가운영의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록관리가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지난 2009년 12월 22일과 1월 6일, 행정안전부는 기록관리 프로세스 현실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 자격요건 완화 및 배치 유예를 주제로 ‘행정내부규제개선 회의’를 열었다. 국무총리실에서도 1월 19일 ‘선진화 과제 발굴회의’로 기록관리 전문요원의 자격기준완화 및 지자체 배치 시기 연기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기록물 폐기 및 비공개 기록물의 공개재분류 등 기록관리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록물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자는 내용이 회의의 주된 골자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관장해야 할 행정안전부가 기록관리를 ‘행정내부규제’ 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도 믿을 수 없지만, 그 내용들 조차 경악스러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국민의 알권리는 무너질 것이며, 그와 함께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책임성도 파탄 날 것이 자명하다.

2. 국무 총리실이 준비하고 소위 말하는 ‘선진화 발굴 과제’ 안 중 가장 큰 문제는 ‘전문요원’의 자격완화 논의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광복 이후 50년 가까이 기록관리의 사각지대에 살아왔다. 공공기관에서 기록을 생산하지도, 관리하지도, 공개하지도 않으려는 구시대적 관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2005년부터 ‘기록관리대학원’ 등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전문요원들이 공공기관에 배치되어 무너져 있던 기록관리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런데 국무총리실에서는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기록관리대학원 졸업자수가 수요에 비해서 크게 부족해, 학사 등으로 기준을 낮추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이는 사실을 매우 왜곡하고 있는 것이며, 최근 지방자치단체에 기록전문요원을 채용하는 데도 엄청난 경쟁력을 기록하고 있는 점에서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국무총리실은 무슨 의도로 이런 것을 추진하는 지 그 배후가 매우 의심스럽다. 또한 기록관리전문요원 배치를 유예 해달라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요구는 스스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3. 또한 총리실 논의 사항 중 5년마다 비공개 기록을 공개할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판단하도록 한 공개재분류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록물 폐기절차를 일률적으로 진행하도록 해 업무부담을 줄이자는 논의 자체도 매우 우려스럽다. 우선 비공개기록을 5년마다 재분류 하자는 법률조항은 이제 생긴지 4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제대로 시행조차 하지 않고,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원 한다는 이유로 이 법률을 변경하자는 것은, 이번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기록 은폐의 빌미를 제공 할 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비밀과 비공개주의를 강화시킬 뿐이다.

4. 공직사회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기록관리혁신을 정부혁신의 과제로 세운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공공업무 과정의 철저한 기록화와 체계적인 기록관리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에 전문요원이 배치되었고, 제도와 함께 기록관리 프로세스가 재정비되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기록관리혁신 과정을 전면 부정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기록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선도해야 할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논의하고 있는 기록관리 선진화 방안은 오히려 선진화에 역행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공공기록관리는 공적 행위의 설명책임을 지는 정부의 주요 의무이자, 효과적으로 행정을 통제하여 투명행정과 책임행정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있는 기록관리법 개정 움직임과 기록물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의 수수방관 태도는 학계와 시민사회 어느 누구의 동의도 받지 못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정부에 역사인식이 있는 공직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이 안을 철회시키고, 기록관리 개혁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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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심판 재결을 조롱하는 화천군청

2010.01.18

                                                     

도류스님(화천 불도암 주지. 정보공개센터 이사)

 

2009년 7월 27일. 화천군수업무추진비에 대한 3개월여에 걸친 정보공개청구와 이의신청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받아낸 내부결재 자료의 사본이 공개된 날이다. 정보공개센터에서 공개하는 것을 필두로 화천군수의 업무추진비 부당지출 사례가 언론을 통해 방송과 신문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이 뉴스는 화천군 지역 사회에도 크게 알려져 현재의 자치단체 행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명백하게 그 과오가 드러났음에도 수개월이 지나도록 그 어떤 행정적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도 시정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만일 그 모든 것이 그처럼 정당한 업무처리였다면 이를 잘못됐다고 발표한 사람과 언론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은가? 아무런 반응도 대응도 없이 그 사건은 과거의 시간 속에 파묻혀 버렸다.

  이후, 2009년 08월 8일. 나는 또 하나의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몇몇 지역사람들로부터 그 사회단체 보조금의 사용처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내용을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제보한 내용들이 증거에 의해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한 어떤 추측에 의한 의혹이나 비난성 발언은 할 수 없는 것이므로, 나는 역시 정공법으로 행정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것이다.

 

『2008년 화천군에서 지급한 사회단체보조금 내역과 그 사회단체에서 지출한 내역을 증빙영수증과 함께 공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률에 정한 공개시한 10일을 한차례 연기한 뒤, 20일 만에 공개한 내용은 A4용지 한 장이 전부였다. 2008년도에 지원해 주었다는 22개 사회단체명과 지원총액의 리스트뿐이었다. 이 한 장의 리스트를 공개하는 데에 20일의 시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단, 그 리스트를 토대로 그 가운데 일곱 개 단체를 지목해서 그 단체들의 활동비지출 상세내역과 지출영수증 사본을 공개해달라는 두 번째 정보공개청구를 08월 14일 접수시켰다. 굳이 모든 사회단체를 상대로 청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차적인 몇 개의 사회단체에 대한 공개청구에 의해 보조금지급 내역이 상세하게 공개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모든 사회단체를 대상으로 공개 받으면 될 것이다.

 
이 청구에 대해 화천군청은 역시나 불성실한 자세로 일관했다. 법률로 정한 공개결정 연기 시한 10일을 2일이나 초과한 8월 26일 회신내용은 9월 07일까지 공개여부 결정기간이 연장되었다는 통지서였다.

 
2008년도 자료들은 이미 모두 정리가 완료되어 보관되고 있을 터인데, 특별히 공개여부 결정기간을 연장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 전격적으로 그 모든 내용을 공개하려고 준비하는 것일까? 그러나,그 결정기한 연기 이유는 기한 최종일인 9월 07일 분명하게 확인이 되었다.


내용인 즉,

<귀하께서 청구하신 내용을 관련 단체에 고지하였는데 이는 정보공개법 제21조(제3자의 비공개요청 등), 이에 관련단체 들은 다음과 같은 사유로 비공개 요청하였습니다.

비공개사유
첫째, 법인(단체)의 자유로운 사업활동의 저해.

둘째, 사회단체로서의 정당한 기본권 침해(인사 노무관리 경리 등)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군은 관련단체의 비공개요청 사유가 타당하다고 사료되어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비공개대상정보) 제1항 제7호의 규정에 근거 비공개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였다.

 

<사진출처:화천군청 홈페이지>

2008년도에 모든 관련 자료의 정리가 완료된 사안을 구태여 각 단체들에게 공개해도 좋겠느냐며 의견을 구하느라고 20일의 연장기한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이의신청을 통해 재청구를 해보았자 시간낭비일 뿐이다. 행정의 정보공개는 민주정부의 기본적인 규범이며 책무다. 더구나 사회단체보조금은 그 공공성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사회일반의 도덕성과 질서가 더욱 건강하고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즉각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청구서를 접수시켰다. 그 청구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사회단체보조금의 지급내역과 지출증빙자료를 요구하는 청구인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므로 화천군은 비공개결정을 취소하고 공개하도록 재결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으로서, 물론 청구내용 속에는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해석 적용 내용과 함께, 과거 전주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유사사건의 행정소송에 대한 판례까지 덧붙여 청구인의 정당한 요구를 주장하는 내용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행정심판청구를 접수한 뒤 1개월이 지나고 2개월이 지날 무렵이 되어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아무런 회신이 오지 않았다. 법률로 정한 행정심판위원회에 청구된 사건처리 시한일자는 30일이다. 부득이한 경우 3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궁금해진 나는 2009년 10월 31일. 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행정심판 청구에 따른 청구사건의 심리기일을 30일 이상 연기한 구체적 이유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사건번호:2009-124. 청구인:안정호. 피청구인:화천군수>

 
이에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회신이 도착한 것은 11월 2일이었다.


내용인 즉, <귀하께서 제기한 행정심판 청구사건을 「행정심판법」제34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60일 이내(2009. 11. 15)에 재결하여야 하지만, 귀하보다 먼저 제기된 행정심판 청구사건의 재결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위 법령에 근거하여 부득이하게 30일 연장하였습니다. 아울러, 귀하께서 제기하신 행정심판 청구사건에 대하여 심리기일이 확정되면 기일통지서를 송부하여 드리겠습니다.>

 
또다시 기다리는 과정에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등기우편물이 송달되어 왔는데, 그 제목은 <피청구인 답변서>였다. 화천군청에서 나의 행정심판청구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답변내용인 것이다.


답변서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답변취지: (화천군청은) “청구인(안정호)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재결을 구함.

답변이유: 청구인은 비공개해야할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제외한 해당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같은 내용이 공개될 경우 법인 ‧ 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 ‧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이므로 청구인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함.

 
위와 같은 답변서와 더불어 화천군청에서는 각 사회단체의 <비공개요청서>를 제3자 의견서 목록으로 취합하여 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 하였는데, 그것은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법률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와 투명사회구현의 법정신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의 <비공개요청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단체는 “강원지역 00000활성화를 위한 2008년 00상황 종합평가”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9 지방000실천지자체”로 선정된 단체이며, 우리 단체의 사무국 직원 또한 “0000년 000장관 표창”을 수상한 바 있는 사회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단체로서 개인이나 제 단체에 대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는 열린 구조를 갖고 있다. 정보공개 청구자는 우리 단체의 활동비 지출 세부내역 및 지출영수증 사본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함으로서 세부적인 정황을 모르는 일반인이 보았을 때 무언가 문제가 있는 단체가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함으로서 우리 단체의 명예를 훼손 하였으며, 협의회장 이하 사무국 직원의 명예감을 현저히 침해하였다.


그러므로, 2009. 08. 14(금) 안정호씨로부터 청구된 우리단체의 활동비 지출 세부내역 및 지출영수증 사본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는 공개시 우리단체의 자유로운 사업 활동을 현저히 저해하고, 사업상의 불이익, 사회적 평가의 저하, 적정한 내부관리 등 법인단체로서 기존의 정당한 이익이 현저히 침해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비공개를 요청함.』이다.

 
그저럼 모범적이고 정당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라면 이처럼 국가 공금으로 지급받은 그 활동내용을 검증하겠다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더욱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단체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모범적인 활동내역을 알려서 사회적인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해야 옳지 않은가?

 
내가 청구한 관련 사회단체들 모두 위와 비슷한 취지로 비공개요청 답변서를 첨부하여 행정심판위원회에 접수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답변서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추가 의견을 보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강원도행정심판위원회에서 행정심판 판결결과에 대한 재결서가 12월 7일 송부되어 왔는데, 최초 정보공개청구를 시작한 8월 8일 이후 4개월여 만에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흥분된 마음으로 재결서 봉투를 열어 확인해 보니 그 판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주문: 피청구인은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등을 제외하고 상호를 000식당 등으로 표기한 후 정보를 공개하라.


청구취지: 피청구인이 2009.9.7 청구인에 대하여 한 정보비공개결정은 이를 취소한다.>였다.


이 판결을 감격스럽게 확인하면서, 아직 우리 사회의 근간은 정의와 민주정신의 강력한 기둥과 대들보가 변함없이 그 역할을 지탱하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공개하라는 판결 이후 20일이 지난 12월 22일 무렵. 그때까지도 화천군청으로부터 사회단체보조금 지급내역과 증빙영수증을 언제까지 공개하겠다는 회신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기에 내가 직접 공개 시일을 전화로 물어 보았다. 민원담당자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12월 28일까지 공개하겠다고 답변했다. 답변이 못미덥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강원도행정심판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 김00간사와 통화를 했다. 행정심판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김00간사는 직접 화천군청에 확인한 뒤 답변을 주었는데 2010년 1월 8일까지 공개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조금 전 내가 통화할 때 했던 날짜보다 더 늦어졌다. 그 이유는 관련 자료 영수증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답변하더라는 것이다.


기가 막힌다. 내가 청구한 관련자료 영수증은 2008년도 자료인데, 모든 관련 영수증은 2008년 12월말 경이나 2009년 초에 이미 관리가 완료되었을 터인데, 2010년에 이른 지금 그 영수증을 모으고 있다니, 지금에 와서 영수증을 가짜로 만들고 있다는 말입니까? 김00간사도 할 말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현재 이 내용을 작성중에 있는 2010년 1월 17일 오후. 행정심판위원회 김00간사와 약속했던 공개시한을 벌써 10일이상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화천군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나는 이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에 부패신고민원으로 접수시켰다.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사항에 대해서까지 화천군청의 이같이 불성실하고 책무를 태만히 하는 관련공직자를 즉시 징계조치해주기 바라며,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사항을 화천군청에서 즉시 이행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어 국민의 정당한 알권리를 보장하고 투명한 행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내용이다. 국가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국민적인 신뢰를 확고히 하는 정부가 되도록 하겠다는 신임 이재오위원장의 결연한 의지와 행보가 연일 메스콤의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는 현정권의 실세 기구인 만큼 그 결과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며 국가 자치단체는 그 국민의 소명을 받아 일체의 행정업무를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보고하는 종복의 위치라고 나는 알고 있다. 국민의 주권을 조롱하는 그 같은 행위는 결코 묵과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곧 그간의 모든 과정의 결과가 곧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 결과에 따른 변화과정도 이곳 정보공개센터의 지면을 통해 머지않은 시일에 낱낱이 공개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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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존경스런 여성 구의원은 결국 ‘물 먹었다’

2010.01.11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서울에서 시민운동하는 사람이나 학자들을 만나면 이분들은 ‘큰 정치’만 이야기한다. 입을 열면 여의도 정치에 관한 이야기이고, 올해 지방선거 관련해서도 서울시장 같은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주된 관심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을 보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활동에라도 참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지역의 기초의회(구의회나 시·군의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으며, 자기 지역의 정치지형이 어떤지도 잘 모를 것이다.

 이렇게 바닥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정치이야기는 늘 ‘붕 뜨기’ 마련이다. 현실과 밀착되어 있지 못하고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매번 ‘붕 뜨는’ 정치이야기

 그러나 바닥을 모르고서는 우리나라 정치를 진짜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정치를 보려면 기초지방의회(시·군·구의회)를 보아야 한다. ‘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는 곳’이고, 왜 ‘한국 정치가 기득권정치인지를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왜 기초지방의원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지는 기득권 정당에 소속된 기초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초지방의원들은 선거 때면 선거운동의 일선에 선다. 평소에 중앙정치인들을 위해 지역구 관리를 한다. 그래서 한국 정치가 ‘지금 이대로’ 가도록 하는 밑바탕이 된다.

 그 대가로 지방의원이라는 자리를 얻는다. 그리고 그 자리가 주는 여러 혜택을 누린다. 공식적으로는 의정비를 받고 목에 힘을 줄 수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여러 이권에 개입할 수 있다. 건설업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왜 기초지방의원이 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답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역의 어려운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관심이 있을까? 지역 환경이 가진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 할까? 지역주민들의 복지정책을 위해 연구하고 대안을 개발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보여준다.

 한국 정치가 왜 바뀌지 않고 희망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정치의 밑바닥이 이 모양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의 밑바닥이 ‘보수 기득권 일색’인데 정치의 위가 바뀌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지난 정권 때에 소위 개혁적이라고 하는 386 국회의원에게 관변단체에 대한 특혜를 없애라고 했더니, 그러면 ‘다음번 선거 때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정치의 밑바닥이 ‘보수 기득권’이다 보니,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는 정치인도 유권자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보수 기득권’ 세력 눈치를 보는 것이다. 선거 때면 여당·야당을 불문하고 난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썩은 곳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변화의 새로운 힘도 기초지역정치부터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그리고 전국의 지역 곳곳에서 그런 희망을 가지고 풀뿌리에서부터, 기초지역정치부터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풀뿌리 좋은 정치네트워크’가 만들어진 이유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 선거후보자의 연설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이종호

작년 12월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라는 모임을 꾸렸다.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밑바닥 정치’부터 바꿔보자고 만든 모임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세금부터 제대로 써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보자고, 지역의 환경을 지키고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보자고, 가난하거나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진 모임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지역의 정치부터 바꿔보자는 것이다.

 지금 강원도 속초, 서울의 마포구·도봉구·노원구·관악구·동작구, 경기도 부천·군포·과천, 대구, 경북 구미, 대전, 광주, 전남 여수 등에 있는 모임이나 개인이 참여하고 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움직임들이 연결된 것이다. 그냥 모임이나 개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풀뿌리운동·시민운동을 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주로 기초지방의원선거에서 ‘풀뿌리 좋은 후보’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중에서는 당장 올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 어려운 지역도 있다. 그런 지역은 다음번 지방선거에라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서 나갈 후보는 지역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내는 ‘풀뿌리 좋은 후보’이다.

 소위 중앙의 명망가들은 기초지방의원 선거를 준비한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뭐가 바뀌겠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초지방의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치는 기득권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다가 기초지역정치가 잘 되면, 정치를 통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형식적인 복지정책을 내실있게 바꾸고, 환경을 위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실천부터 해 나가고, 지역에서부터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실현되고, 시민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경험을 하려면 기초지역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그 경험은 유권자들이 ‘정치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더 큰 변화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기득권 정치에 파열구를 내자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단독주택가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했다.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구의원으로 활동하던 분이 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설립하고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였다. 저녁 8시인데, 몇 분의 여성이 모여 미술 치료하는 아이들 사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토론을 하면 2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또는 가족의 상황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들 한명 한명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그만큼 걸리는 것이다.

 이 지역아동센터의 설립·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분(여성 구의원 출신)은 지역토호들 중심의 남성의원들 사이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2006년 지방선거 때 기초의원 선거까지 정당공천제가 도입되면서 낙선했다. 무소속 후보였기 때문이다.

 의정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기득권 정당의 벽을 넘을 수 없었노라고 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참 존경스러운 분이다. 다시 구의원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면, 지금 아이들 만나는 일이 더 좋다고 한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고 말한다. 지방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그 일들을 다 못해 본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에 대해 구청이나 구의회에서 관심이 많으냐고 물어보니까,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이런 분들이 대표자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스럽다. 우리나라의 지역정치는 보수-진보도 아니고 기득권세력-시민의 구도이다. 여의도 정치에서는 보수-진보가 있을지 몰라도 지역에서는 대다수의 기득권 세력과 소수의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역주민들의 생활의 문제를 정치를 통해 풀고 싶고, 더불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사람들은 기득권 정당들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이런 기득권 정치의 벽에 파열구를 내 보자. 기초지방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보자.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사진출처:세계일보>

‘풀뿌리 좋은 후보’ 선거운동을 돕겠다

 

마지막으로 전국 각지의 뜻있는 유권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수동적으로 투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풀뿌리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이들을 의회로 보내는 운동을 하자. 기득권 정당들이 지금 지역정치에서 하고 있는 행태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정치 변화를 바란다면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나는 올해 지방선거 때에 기초지역정치의 변화를 위해 신나게 발품을 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역량이야 보잘것없지만, 나는 발품을 팔아 ‘풀뿌리 좋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도울 것이다. 소위 명망가라는 사람들이 발품을 팔지 않고 점잖은 척하면서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나는 내 발바닥과 내가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역의 풀뿌리활동가와 건강한 유권자들을 믿는다. 자신이 꿈꾸는 변화를 위해, 그리고 자신이 믿는 사람들과 함께 발로 뛰며 거리를 누비는 것이야말로 신나는 축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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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2,100억” 교회건축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10.01.07

      – 사랑의 교회 조감도 –

                                                                                                       전진한 사무국장

강남역 근처에 가면 사랑의 교회 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옥한흠 목사로 상징되는 곳인데 70년대 목사들에게 집중 되어 있던, 한국 교회현실을 타파하고 평신도 교육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다.

세계관은 보수적이지만 소탈하고, 자기 욕심이 없는 목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필자도 대학시절 옥한흠 목사 책을 많이 탐독하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옥한흠 목사님은 자신의 정년을 5년이나 일찍 땡겨서, 후임 목사인 오정현 목사에게 당회장 직으 물려주었다.

이런 명성으로 지방사람들이 서울로 상경할 때 가장 많이 가는 교회로도 사랑의 교회는 유명하고, 강남역 근처라는 입지적 조건으로 인해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재직교인만 8만명, 출석교회만 4만 5천명이라고 하니, 큰 종합대학 2개를 합친 것 보다 더 큰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예배당이 좁아서, 건축을 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법조 타운으로 유명한 서초역 근처에  2천279평을  1천174억원에 매입하기로 결정했고, 건물비까지 까지 합쳐 2,100억원이다.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웬만한 대기업 본사 건물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쪽에서는 지금 사랑의 교회 건물이 너무 좁아 예배 드리기가 불편하고, 실질적으로 수용할 수도 없어서 건축을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고, 또 한쪽은 왜 그렇게 비싼 건물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이런 논의 자체에 본질이 빠져 있다.

과연 교회의 역할은 사회에서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교회는 왜 세금을 면제받고,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 도대체 지역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따져 물어야 한다.

우선 사랑의 교회는 8만명 재직교인을 자랑하고 있는데, 8만명 짜리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인가? 과연 8만명이 한 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이 근본적인 고민에 대해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 숫자가 감당이 안되면 교회 자체를 분리독립 시키면 안되는 것인가? 

 사랑의 1교회, 2교회, 3교회 쭈욱 나눠서 좀 더 어렵고 힘든 이웃이 있는 곳으로 찾아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감싸고, 그들의 지친 영혼을 감싸는 것이 바로 교회의 역할이다.

무엇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노른 자위 땅에서 사랑의 교회가 필요한 것인가? 이런 물음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 2100억이라는 이 엄청난 금액(하기사 요즘 하도 공공기관 청사도 억억 하니까 감이 무뎌진다)을 예배 드리는 비용으로 사용해야 하는가?

2100억짜리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이 논의에는 사랑의 교회의 편의성과 안락만 고민하고 있지 지역사회를 위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저 돈 중 반만이라도 장학재단을 만들거나, 노숙인들을 위한 자활센터를 만들던가? 아니면 해외에 지원을 한다던가? 외롭게 사시는 어른신들 연탄이라도 들여놓는다는지, 취업을 못해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사랑의 교회는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목사님 월급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어려운 교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70-80대만 다니는 시골교회에서 외롭고 힘들게 목회하는 훌륭한 목사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노숙자들을 위해, 장애인들을 위해, 청소년들을 위해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다.

덩치가 커진다고 대형교회가 아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기독교 전체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교회의 대형화를 넘어 재벌화가 되어 가고 있는 이시대, 매우 위험하고 엄중해 보인다.

사랑의 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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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보수언론, 유엔도 좌파라고 우길텐가?

2009.12.29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 (변호사)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내용은 국제조약의 구체화일 뿐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 논란이 뜨겁다. 일부 보수언론은 ‘좌파’, ‘좌편향’ 같은 용어를 써가며 조례에 대해 색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좌편향이라고 한다면, 유엔이 좌파이다. 왜 그런지는 아래에서 소상하게 밝힐 것이다.

한편 필자가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도 밝혀야 할 것 같다. 필자는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 작성을 위한 연구용역(2009년 10월~12월초순까지 진행)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연구용역팀이 제출했던 조례 초안과 이번에 발표된 조례 초안에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틀이나 핵심내용은 유사하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부당한 비난을 보면서, 필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논쟁에 참여하고자 한다.

암울한 학생인권현실과 학생인권조례

참고로 필자는 ‘좌파’라서 연구용역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일찍부터 학생인권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법률가라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의심스러운 분은 필자가 쓴 책(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9년에 출판된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사계절 펴냄)을 찾아보기 바란다.

10년 전에도 그리고 그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학생인권 현실은 암울했기 때문에 1999년에  <교사의 권리, 학생의 인권>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던 것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책을 쓸 당시의 기본전제는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인권’이 상호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책을 쓴 이후에 우리의 학생인권 현실은 더욱 암울해진 느낌이다. 학생들은 행복하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고 비합리적인 규율에 눌리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학생도 국민인 것은 분명한데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10년 이상 동안 법률가로서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한다기에 환영했었고, 연구용역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전에 광주광역시에서도 추진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무렵에는 경기도 부천시, 군포시에서 ‘아동(청소년)인권조례’ 제정이 추진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조례 제정이 추진된 것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는 국제조약에 우리나라가 1991년에 이미 가입했는데도 이 국제조약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어른들과 아동들에게 조약의 내용을 널리 알리도록 하고 있는데, 정작 이런 조약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 그래서 조례제정을 통해 어른과 아동·청소년 모두가 이 조약의 내용에 대해 알고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례 제정은 장벽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고, 이번에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면서 다시 조례제정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에 대해 색깔론을 펴는 것은 반인권적·반문명적


그런데 이번에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 논의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의견차이가 있어서 논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인권이란 대의에 공감하더라도, 세부적 쟁점으로 들어가면 충분한 토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언론과 세력들이 색깔론으로 몰고가는 것에 있다.

학생인권, 나아가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에 대해서까지 이념이나 색깔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고 요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고, 세계 191개국이 가입한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 of the Child)’에 따라 설치된 기구인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의장(성균관대 이양희 교수가 현재 의장을 맡고 있다)이 속해있는 국가이다.

그런데 이런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학생인권의 문제에 대해 좌-우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논란을 일으킨다면 정말 일부 보수언론과 단체들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반국가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표현까지 사용하느냐 하면,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은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에 관한 협약’에 기초한 것이고, 그 내용들 중 상당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해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좌파적인 것이라면 유엔이 좌파이고 한국인 교수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기구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좌파인 셈이 된다. 이런 어거지가 어디 있는가?

쟁점별로 살펴봐도 별 문제가 없는 조례 초안

그러면 좀더 차근차근 문제를 짚어 보자. 일부 보수언론에서 특히 문제를 삼고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16조에서 “학생은 사상·양심의 자유를 가지며, 특히 자신의 사상·양심에 반하는 내용의 반성문, 서약서 등 진술을 강요당해서는 안된다”라는 부분을 문제삼고 있다(동아일보 12월 19일자 사설).

이 조항의 앞 부분, 즉 “학생은 사상,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유엔아동권리에 관한 협약’ 제13조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은 학생이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나 스스로 반성하도록 지도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반성도 하지 않는데 반성문만 쓰게 하는 식으로 지도를 하는 것에 있다. 그것은 교육적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양심의 자유와도 상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요’만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둘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17조에서 “수업시간 외에는 평화로운 집회를 개최하거나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다만 학교의 장은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한 조건을 부가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본다면, 이 조항도 지극히 당연한 내용을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5조에서도 아동에게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의 장이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에는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집회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서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학생은 국민도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셋째, 일부 보수언론은 조례 초안 제20조 제1항에서 “학생은 학교운영 및 교육청의 교육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것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것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부분을 문제삼고 있는데, 조례 초안에서는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강제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사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을 강제하는 것은 교육적이지도 못하다. 형식적으로 동의서를 받으면서 실질적으로는 ‘동의’가 아니라 ‘강제’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일을 보면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출발점은 학생도 성인처럼 인권의 주체라는 것


그 외에도 일부 보수언론이나 단체들이 여러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따져보면 납득할 수 없는 주장들이 많다. 체벌금지만 하더라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계속 권고해 온 내용이다.

그리고 아직도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는 일부 보수언론의 시각은 문명화된 국가에서 발전해 온 아동인권의 흐름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가입한 국제조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일부 보수언론이나 단체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이번 기회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우리나라에 권고한 내용부터 충분히 읽어보기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가 보면, 한글로 번역된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마지막으로 경기도 교육청도 일관성을 지키라고 말하고 싶다. 조례 초안이 공격받으니까 교권보호헌장을 제정한다고 하는데, 교권과 학생인권을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학생인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교사의 교육권을 위협하는 것은 교육청의 관료적인 행정, 불필요한 공문, 교육부의 비합리적인 교육정책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교권보호를 말하는 것은 논점만 흩트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논쟁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수십 년 전의 인권현실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곳은 학교밖에 없는 것같다. 그리고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을 하는 것은 교육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사람에게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10대에 모든 참여의 기회를 봉쇄해 놓고, 20대에 갑자기 ‘책임있는 민주시민’이 되라고 할 수 있는가? 따라서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교육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 그 사회의 미래, 아동·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비록 그 길이 낯설다고 해서 피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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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식당, 상호명 공개못하겠다는 버티는 농림부?

2009.12.04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작년 11월쯤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시작된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공포가 커져가고 있었다. 특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심했다. 이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뿐만 아니라 쇠고기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퍼져 나갔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 농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될 것이며, 업체에서도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큰 문제점으로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쇠고기 원산지를 철저히 단속해 국민들을 안심시키겠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시민들이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미표시 하는 업소 등을 엄정하게 단속하고, 위반한 업소명단과 위반 양태를 공개해야 해야 한다. 업소 명단을 공개한다면 식당들도 허위표시 및 미표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 이며 소비자 알권리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 당시 식약청 홈페이지에서는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미표시한 업소 명단을 공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유독 서울시만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지역은 있는데, 서울시만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식당이 없을 리 만무했다.    
                                       <사진출처:SBS>

 
이런 이유로 필자가 일하고 있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표시 한 식당 명을 공개하고 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이후 필자는 서울시 원산지 관리추진반에 ‘2008년 1월 1일 – 2008년 – 11월 3일 현재 쇠고기 원산지 위반 식당 단속현황(위반 식당 명, 위반양태, 위반 후 사후 조치)’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접수했다.

  그런데 재밌는 결과가 통보되었다. 서울시는 위반양태는 공개했는데, 식당명은 가린 채 공개한 것이다. 위반한 식당들은 많으나 식당명은 공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비공개 이유도 재미있었다. 서울시는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와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결정 처분을 내렸다.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니까 또 재밌는 답변이 나왔다. 서울시는 정보공개센터 이의신청에 대해 “해당업소가 정보공개로 인하여 과도한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의견을 달아서 공개결정을 내렸다. 다른데는 공개하지 말고 정보공개센터만 보라는 것이다.

  당시 이런 사실을 정리해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공개했다. 당연히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서울시를 질타하는 내용들이 쏟아졌다. 당시 이 기사로 특종상을 받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 보도를 접하고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업소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서울시, 경기도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은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거나 미표시하고 있는 업체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얼마 전 대학식당이 쇠고기 원산지를 허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외 기관이 있었다. 농림부 산하에 있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이다. 농산물 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쇠고기 원산지를 위반하거나 미표시한 업소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농관원은 식당 명을 공개해달라고 하는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청구에 식당명 공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비공개 대상정보),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처리정보의 이용 및 제공의 제한) 등 관련법률 규정에 근거하여 귀하의 정보공개 청구사항 중 부분정보만 공개하는 점에 대하여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비상식적인 답변만 내놓은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보공개법 9조에는 8개에 비공개대상정보가 있음에도 구체적으로 적시도 하지 않은 채 비공개결정을 내렸으며, 식당 명은 개인정보라는 해괴한 해석까지 덧붙여 비공개한 것이다. 식당명이 개인정보면 간판은 왜 붙이는 것이며, 포털에는 왜 수많은 식당 등을 공개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공공기관에서 이런 한심한 법해석으로 답변서를 작성하는 것을 보면 공무원들의 법률교육은 더욱 더 필요해 보인다.

  이런 답변서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정보공개청구에도 똑같이 내놓았다. 결국 민변은 서울시 행정법원에 식당 명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지난 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이진만 부장판사)는 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이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산으로 허위 표시한 음식점의 명단을 공개하라”며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결이다. 이미 지방자치단체들은 공개하고 있는데, 공개를 독려해야 할 중앙행정기관이 비공개하고 있는 실태가 사법부가 보기에도 비상식적인 것이다. 정부가 법을 어기고, 원산지 표시의무를 위반한 업체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도대체 국민들의 불안감은 안중에도 없고, 업체들의 권익만 보호하려고 하는 농림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사진출처: 국민일보>

결론적으로 농림부는 패소가 확실한 이번 소송에서 항소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당연한 판결에 대해서 계속 항소를 한다면 그 자체가 공권력 남용이자 예산낭비가 될 것이다. 농림부는 이번 판결로 쇠고기 문제로 국민들이 왜 불안 해 하고 있고, 그 불안을 씻어주는 것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괜히 불법을 저지른 식당이나 감싸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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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스케이트장도 필요 없다. 광장을 시민에게

2009.12.02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사무국장

몇 년 전 독일과 체코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두 나라를 방문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역시 맥주였다. 너무나 시원하고 쌉쌀한 맥주 맛에 체류기간 내내 줄기차게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바로 광장 문화였다. 작은 도시 마을이든 큰 도시든 시가지에는 광장이 있었다. 광장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악기를 연주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사람, 사랑을 속삭이며 포옹을 하고 있는 연인들,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화가, 누워 있는 노숙자, 그리고 무엇인가 항의를 하면서 집회를 하고 있는 무리들.

다 각자의 방법대로 광장을 즐기고 있었다. 광장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매우 즐겁고 유쾌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꽃밭도 없었고, 화려한 장식물도 없었으며, 하늘 높이 올라가는 분수도 없었다. 유럽의 광장은 소박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얘기하고, 즐기는 곳 이었다. 유럽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광장이라는 공간이 도시에서 왜 중요한지 몰랐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시에도 광장 바람이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이었을 때 서울광장을 만들었고,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다. 특히 광화문 광장을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차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던 광화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을 일인가?
서울시 가장 중심부에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유럽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벌어진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을 일이었다.

                                                                                       <사진출처:노컷뉴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이 완공되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우선 광장을 가려면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양쪽으로 차가 달리고 있고, 광화문 광장은 그 안에 포위되어 있는 것이다. 광장을 가기 위해서 한참을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건너야 광장을 들어갈 수 있다. 이 어색한 장면이 서울시 한 중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세계적으로 양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광장이 존재 하는 지 궁금하다. 문제는 그 뿐만 아니다.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경찰들이 곳곳에서 삼엄한 감시를 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두 명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지만 광화문 광장처럼 삼엄하게 경찰들이 서 있는 광장은 본적이 없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시민단체에서 광장 조례 개정 촉구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활동가들이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그들은 그 어떤 위협적인 행동도 한 적이 없고, 자신들의 정당한 주장을 시민들에게 얘기했을 뿐인데 유치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하는 행사에는 광화문 광장은 매우 인색하다.

하지만 사람 주체가 아닌 구경거리를 만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분수는 계속 올라가고 있고, 계절마다 억 단위를 돈을 들여 꽃을 갈아 치운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꽃도 없애고, 겨울철을 맞이해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있다. 광장에 전시회는 왜 그리 많은지, 월마다 전시회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시설 위주로 만들다 보니 관리비가 많이 지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광화문 광장 한달 관리비용이 2억 6천만원 정도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상당수가 인건비와 수도광열비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곳에 정규직 직원이 18명이나 있다는 것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광화문 광장 뿐만 아니라 서울광장도 문제투성이다. 광화문 광장처럼 온갖 시설로 채워져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곳은 사람들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관 중심의 큰 공연이나 행사들은 허가가 잘 나지만 조금이라도 시위나 집회 냄새가 나면 바로 허가가 나지 않는다.

그곳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공연을 하거나, 토론을 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 곳은 광장이 아니라 잔디로 채워져 있는 빈 공터일 뿐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 한 것처럼 서울을 대표하고 있는 두 광장은 철저히 사람이 배제되어 있다. 대신 그 자리에 각종 시설과 볼거리와 행사로 채워져 있다. 광화문 광장은 흡사 도심 속 놀이공원 같기도 하고, 전시회 공간 같기도 하며, 가끔은 거대한 중앙분리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서울시 광장은 마치 비어있는 축구 경기장을 보는 듯하다. 유럽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광장 문화를 서울에 있는 광장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에는 아고라(agora)라고 하는 광장이 있었다. 이 낱말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아고라는 도시의 중심부나 항구 옆에 있었는데, 나중에는 시장(市場)을 뜻하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포룸(forum)도 아고라같이 시민의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는 광장이었다. 이 광장은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사법광장, 상업광장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와 같이 광장은 철저히 사람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곳이다. 광장은 구경거리가 있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지친 도시생활인들의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 광장 문화는 모든 것을 다시 바꾸어야 한다. 광장은 도시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현재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에서는 서울시 광장 조례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광장사용조례에 따르면 서울 과장은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은 행사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광장은 서울시의 관제행사장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서울광장은 헌법으로 보장된 모든 종류의 행사가 가능하도록 허가제를 신고제로 조례를 바꾸자는 주장이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은 허가제일 뿐 아니라 교통 혼잡이 예상되는 경우 경찰에도 허가를 받도록 되어있다.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허가 대상이라는 뜻이다. 이 말도 안되는 조례를 개정해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가 왔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이 문제는 논의되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언제쯤이면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을 사람이 중심 되는 공간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이 물음에 진지한 토론과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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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세금으로 흥청망청하는 폐습, 바꾸자

2009.11.27

[시론]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11월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에게 연말은 한 해를 정리하고 그 다음해를 계획하는 때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에게도 연말은 중요한 때이다. 그 다음 해에 사용할 예산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예산심의도,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심의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뿐만 아니라, 잊을 만하면 바꾸는 동네 보도블럭 예산까지 지금 결정될 시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밥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예산 같은 데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예산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돈 벌어서 내 삶을 가꾸는 것 못지않게, 공동체의 돈으로 내 삶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그렇게 돼야만,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불안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를 포함한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 조선일보 11월25일자 3면


 
사실 상식적인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타당성도 검증되지 않은 4대강 사업에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고, 매년 관례적으로 도로 닦는 데 예산을 쓰는 것만 중단되면 많이 좋아질 것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내세운 핵심 방향이 토건국가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쓸모없는 도로와 댐을 건설하던 예산을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데 돌리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그런 방향전환이 이루어질 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예산을 볼 때에 염두에 둘 핵심 포인트는 결국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흥청망청 낭비되는 문제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밥 먹고 선물 돌릴 정부예산은 줄지 않는 게 현실이다. 왜 국민이 낸 세금으로 1인당 몇 만원이 넘는 비싼 밥을 먹고, 명절 때면 자기 돈이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선물을 사서 돌리는 지 의문이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 그런 일들은 늘 벌어지고 있다.
이런 ‘눈먼 돈’들을 잘 찾아 먹는 사람들도 있다. 각종 단체에 지급되는 보조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 관변단체들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서 회관을 마련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대학교수들 중에는 매년 정부에서 용역 받는 것이 또 하나의 수입원으로 된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저렇게 관공서의 예산은 줄줄 새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도 ‘사는 게 바빠서’ 정부가 하는 일에는 신경 쓰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들이야말로 바보인 셈이다. 
두 번째는 졸속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큰 건물 지었다가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방치하는 경우들을 흔히 본다. 최근 논란이 된 성남시의 3천억 원짜리 청사처럼 과시성, 전시성으로 사용되는 예산들도 많다.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사업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경우들도 많다. 이런 졸속 대형 사업들에 수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물론 가장 나쁜 것은 예산심의도 하기 전에 미리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그런 예이다.
정부가 세금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이 이런 사실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를 속속들이 안다면 아마도 정부가 지금처럼 예산을 낭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과 관련된 정보는 최대한 감추기에 바쁘다. 중앙정부의 예산서를 찾으려고 중앙부처 홈페이지를 뒤지다보면, 찾다가 지치기가 일쑤이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예산안이 지방의회를 통과한 후에 홈페이지에 예산서를 공개하기는 한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은 시민들이 예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우선 자기가 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부터 관심을 가져 보면 좋겠다. 내년에 지방선거도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떻게 시민의 세금을 써 왔는지, 지방의원들은 어떻게 예산심의를 했는지부터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나 지방의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정보공개청구를 해 보면 된다. 그게 아니면 자기가 사는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금으로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나쁜 폐습을 근절할 수 있는 주체는 ‘깨어있는 시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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