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세금으로 만든 기록에 재산권 주장하는 나라!

2009.11.18
투명사회를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저작권이란 생산자가 독창성 있는 표현이 담긴 저작물로부터 발생한 이익을 얻을 권리와 이러한 표현물에 대한 공공의 이용을 통제할 권리를 말한다. 복제, 전송 등 일단의 방식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데 대한 통제권을 저작자에게 부여함으로써 창작에 대한 영리적 대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저작권은 공공기록에 적용하는데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기록은 창작에 대한 대가를 부여하지 않아도 업무의 과정 중에 당연히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7월,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청구한 비공개기록물 재분류 공개목록에 대해 국가기록원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라는 내용의 결정통지를 한 바 있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보호의 대상이 되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성이 없는 사실 그 자체의 나열에만 불구한 공문서나 창작성이 없는 대장, 카드 등은 저작물로 보기가 어렵다. 이에 따르면 정보공개센터가 청구한 위 정보는 국가기록원이 보유하고 있는 비공개 목록의 공개재분류업무를 위해 목록화 시켜놓은 것으로 별도의 창작성이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물로 인정될 수 없다.

국가기록원의 정보공개 결정통지서

  또한 공공기록의 경우에는 창작에 대한 대가 역시 세금으로 지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공공기록의 개념은 ‘정부가 세금으로 생산하고 생산’했다는 데에 핵심이 있다. 이는 공공기록이 어떤 한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명지대학교 기록과학전문대학원에서는 수업실습의 과정으로 역대 대통령사진을 공개청구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공개받은 바 있다. 그리고 이후 이 사진을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 올려 시민들과 공유하였고 수차례의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에도 국가기록원은 사진의 저작권을 이야기하며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의 저작권이 국가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업무의 과정 중에 국민의 세금으로 생산되었고, 현재까지도 세금으로 관리되고 있다. 

  이 사진이 국가기록원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국가의 기록이며 공적 목적으로 생산되었다는 의미이다. 공공기록이 국민들의 세금으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그 소유권은 국민 전체에게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에서 업무의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하는 이러한 행위는 공공의 정보를 사유화 하려는 의도일 뿐만 아니라 기록의 활발한 활용을 제한해 정보공개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전직대통령 사진 일부

  마지막으로 공공기록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목적자체가 활용에 있기 때문에 이용의 통제장치인 저작권은 오히려 기록의 활용 목적에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서도 국가기록물은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공공기록 이용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은 기록 활용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정책연구정보서비스 시스템인 프리즘(www.prism.go.kr)은 중앙부처에서 수행하는 정책연구용역 과정을 관리하고 연구용역 결과물에 대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연구용역에 대한 검색뿐만 아니라 보고서의 원문열람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정보공표 시스템중의 하나인 것이다. 2009년 4월 정보공개센터에서는 프리즘에 등록되어있는 『국군장병의 국어능력 실태조사』보고서를 센터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이미 공개로 설정되어 원문의 다운로드가 가능하고 연구 자료이기는 하나 국립국어원이 발주한 연구용역으로 국가예산이 투입된 사업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적 활용이 가능한 자료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분에서 제동이 걸려왔다. 이 용역과제의 연구협력기관인 국방부가 자료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연구가 종결된 이후 이 보고서 전문을 프리즘에 올렸고,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국방부는 정보공개센터가 이 내용을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언론보도가 나온 뒤 ‘보안성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며 정보공개센터에 ‘유출’한 자료를 회수해달라고 국립국어원에 요구하였다. 그리고 ‘저작권법 위반’을 근거로 들어 파일삭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정보공개센터에 발송했다.
 
국방부가 주장한 국가안보와 사기저하라는 모호한 자료삭제 근거에 국립국어원이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는 타당하지도 않은 근거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행정투명성 확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하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정보공개에 대한 민감한 대응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권력기관이 정보의 확산에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공공정보의 이용에 대한 요구는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필자는 그것이 거세되어 가고 있는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이 선출한 관료들이 자기가 낸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국정운영 내용에 대해 당연히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정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와 공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정보공개청구가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실현해 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공개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 비로소 시행하는 ‘공개’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정보를 알려내는 ‘공표’로, 더 나아가 우리사회 구성원 공동의 자산으로 인식하는 ‘공유’로 정보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화해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이 당연한 권리를 국민들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공공정보의 공개와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고는 하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인터넷 사용이 확대되면서 정보에 대한 접근과 이용은 곧 저작권의 문제와 맞닿아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공공기록에 대한 저작권 규정 자체가 매우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 정부의 정책이 공공기록의 이용확대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공기록은 비밀과 비공개를 제외하고는 시민들에게 공개되어 정책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성을 지닌 기록에 저작권을 부여하면 이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저작권을 가지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국가’라고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본래 저작권이란 창작자의 재산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기록이 자기의 것이라며 재산권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공공기록의 활용에 대해서는 저작권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 추세다. 기록 자체가 이미 사회 공동이 대가를 지불한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기록의 이용과 활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와 시민이 공공기록의 활용과 공유라는 화두로 고민해봐야하는 시점이다. 앞으로 민과 관의 지속적인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어 더욱 성숙한 기록 공유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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