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간사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잊혀 질 수도 있는 당시의 기억을 채집하여 후대까지 전해지는 역사로 만들어 주는 것이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하길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록하길 꺼려하기도 한다. 역사 앞에 떳떳한 사람은 기록을 남기려 할 테고, 그렇지 않은 자는 있는 기록마저도 없애려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움직임을 보니 역사 앞에 떳떳하지는 않은가보다. 아니면 4대강 사업과 같은 ‘중요한’ 일들이 많다보니 기록관리의 중요성은 안중에 없는 것 일수도 있겠다.
정부는 지금 “행정규제 개선”과 “기록관리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기록관리의 근간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을 보니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을 개정해 기록관리의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만 선진화일 뿐, 실상은 기록관리 후진화를 위해 기록물폐기법으로 바꾸려 한다는 게 관련 학계와 시민사회의 일치된 목소리다.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의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록물 폐기절차를 간소화해 기록물을 쉽게 폐기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행법상으로는 기관자체에서는 마음대로 기록폐기를 결정할 수 없게 되어있다. 기관 외부 전문가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하찮은 기록이라 할지라도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절차를 간소화 해서 내부에서 기록을 폐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니, 이는 “기록을 기반으로 한 행정의 투명성 제고” 라는 기록관리 정신 자체에 역행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비공개 기록을 5년마다 재분류하여 공개여부를 검토하는 현재의 절차를 삭제하겠다고 한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행정기관 또는 공무원 중심의 행정편의주의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하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불리는 전문요원은 기록물관리법에 의해 기록관리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 이거나 역사학, 문헌정보학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자로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하는 기록물관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만이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다른 연구직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제한적인 임용규정을 두는 이유는 기록물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훗날 사료로서의 기록을 토대로 전개될 역사연구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문요원의 자격요건을 자격증제도를 따거나, 단기 교육을 이수하면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하향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록관리전문요원은 대한민국의 사관이다. 사진은 지난 2002년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 정보공개”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최한수 참여연대 간사
기록관리 전문요원은 간혹 조선시대의 사관(史官)에 비유되곤 한다. 기록을 수집하고 관리함으로써 역사를 서술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사관은 그 기록을 통해 현실정치를 가감 없이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유학자로서의 학문능력뿐 아니라, 폭넓은 역사 지식, 현실을 직시하며 시비를 공정하게 가릴 수 있는 능력 등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책무의식과 소명의식은 당연히 갖춰야할 기본소양이었다. 그런데 현대판 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요원의 자격을 낮추겠다니… 기록관리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라 기술과 기능 업무라고 여기는 정부의 시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올바른 공공기록의 관리는 공적 행위의 설명책임을 지는 정부의 주요 의무이자, 효과적으로 행정을 통제하여 투명행정과 책임행정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다. 기록관리가 제대로 된다면 ‘민주주의’를 실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행정안전부와 국무총리실에서 주도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 개정 움직임을 보면 이 정부가 과연 ‘기록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신뢰받는 정부를 위한 가장 기본요소인 기록관리를 훼손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야 겨우 정착되어 가고 있는 기록관리 문화가 이대로 퇴보해버린다면, 앞으로 기록될 대한민국의 역사 역시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훼손된 역사 앞에 결코 떳떳해 질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