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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3만 명씩 다치는데… 기업 이름 알릴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2023.10.26

▲ 안전보건공단이 제작한 통계로 보는 2022년 산업재해 인포그래픽 ⓒ 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를 당한 재해자의 수는 모두 13만 348명에 달합니다. 한국의 취업자 수가 대략 2800만 명이니, 일하는 사람 200명 중 한 명은 지난해에 산업재해를 경험한 셈입니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74명, 산재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349명입니다. 모두 222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해당 통계가 산재 보상이 승인된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숫자로 집계되지 않은 죽음 역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산업재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기업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왜 산업재해가 일어나서 사상자가 생겼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산업재해가 일어난 기업이 어디인지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의 공표’,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실 공표’라는 이름으로 일부 정보를 공개하지만, 공표 항목도 부실하고 자료를 확인하기 위한 접근성도 매우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재판이 다 끝난 이후에야 명단을 공개하다 보니 늦장 공개가 심각합니다. 2018년 12월 발생한 고 김용균씨 사고의 내용은 3년이 지난 2021년 12월에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되었습니다. 사고에 대한 관심이 지나간 후에야 뒷북을 치는 셈입니다. 시민들에게 산업재해가 일어난 기업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2022년 12월 28일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2022년 산업재해 발생건수 등 공표’ 자료 3페이지. 2017년에 발생한 사망사고가 재판이 계류되면서 2022년 12월에야 뒷북 공개되었다. ⓒ 고용노동부



정부가 중대재해 기업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센터는 지난해 12월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https://www.nosanjae.kr/)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2017년 1월부터 2021년 5월까지 5년 동안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 데이터를 공유하고, 어느 기업에서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나 몇 명이나 사망자가 발생했는지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입니다.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들의 순위도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 대우건설, DL대림산업(DL이앤씨), GS건설 등이 5년간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한 위험기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관련 기사 : 5년간 노동자가 가장 많이 죽은 기업 공개합니다https://omn.kr/2220y)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특히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노동건강연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민주노총, 매일노동뉴스 등과 함께 산재사망대책마련공동캠페인단을 꾸리고, 2006년부터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었습니다.


국회의원실을 통해 고용노동부의 산재사고 사망자료를 받아 이를 분석하여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고 발표해 왔습니다. 노동건강연대가 그동안 모아온 자료를 기꺼이 공유해 주었기에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기업 이름 감추는 고용노동부

▲ 지난 4월 27일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17년 동안 발표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이 올해는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의 정보를 국회의원에게도 알려 줄 수 없다고 자물쇠를 굳게 채웠기 때문입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대통령님, ‘특별상’ 드린 이유 아시나요?https://omn.kr/23uvg)

이러한 사실이 기사화되자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내 “법 위반이 확정되지 않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기업명, 개인정보 등을 공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피의사실 공표, 개인정보 보호법 등에 위배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22년에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에도 비공개로 일관했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의 중대재해 기업 데이터 업데이트를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이름이 ‘수사 및 재판에 관한 정보’이며 ‘공개될 경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당연히 수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수사 중인 사안이 되었다고 해서 관련한 모든 정보를 비공개하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정보공개법은 분명 “수사 등의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이름은 법적인 의무 위반 여부를 따지는 수사나 재판 과정과는 무관하게,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정보에 불과합니다. 어느 기업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진다고 해서, 근로감독관의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거나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비공개 이유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어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황당합니다. 이제까지 피의사실공표로 처벌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어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라는 사실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피의사실공표죄는 공소 제기 이전까지는 수사 대상인 사건정보를 공표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수사 과정에 있지 않거나, 이미 기소가 이뤄진 사건에 대해서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수사가 끝났거나, 기소가 이뤄진 사고에 대한 정보는 공개해야 할 텐데, 고용노동부는 국회의원실의 자료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무작정 감추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앞장서야 할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가지는 공익적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재해 줄이기 위해 정보공개 확대해야

▲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공개하고 있는 2023년 5월 25일 오하이오 주 갬비어에서 발생한 크레인 전복사고에 대한 정보. 과태료 부과 내역 링크로 들어가면 무슨 법조항을 어겨서 어떤 사고가 벌어졌는지 등의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 OSHA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일터에서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6개월 이내에 과태료 부과 여부를 결정하고, 과태료가 부과된 사건에 대해 기업명, 주소, 사고 내용, 법 위반 및 과태료 부과 내역 등을 포함한 정보를 공개합니다.

사고 조사가 완료되면 ‘사망 및 재난 조사요약’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언제,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사고의 원인과 결과, 조사 내용 등을 웹사이트만 접속하면 누구나 쉽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 역시 보건안전법을 위반한 기업의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합니다. 기업의 이름, 주소, 업종, 사업 내용 등과 더불어 법 위반 일자, 적용 법조항, 구형 내역, 해당 기업의 법 위반 이력 등의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산업안전 당국이 이렇게 정보공개에 적극적인 이유는 어느 기업에서 무슨 법을 위반했는지,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의 원인과 내용, 처벌 내역 등을 알리는 것이 반면교사로 작용하여 산업재해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책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웃한 사업장에서 안전 보건 의무를 위반해 발생한 사고의 내용이 알려지면, 우리 사업장에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안전 개선 요구가 뒤따르게 됩니다.


기업 역시 이를 참고하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나서게 됩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시하는 투자자들이 기업에 철저한 안전관리를 주문하게 되고,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나 지역사회, 언론의 감시 역시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효과에 대해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을 이끌었던 데이비드 마이클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기업의 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보도자료 하나는 210회의 근로감독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6일 정보공개센터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2022년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중대산업재해가 어느 기업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보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산업재해가 없는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할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정보공개제도는 정치적 주권자로서 시민의 국정 참여와 투명성 확대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여 누구나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이기도 합니다.


이번 정보공개 소송을 통해 중대재해와 관련한 정보는 모든 시민이 알아야 하고,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보공개제도의 기본임을 확인받고자 합니다. 그뿐 아니라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정보를 숨기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정보를 알리는 공공기관이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역시 확인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by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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