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국회의원의 수상한 법안… 뭘 더 감추려 하십니까

2024.02.07

정보공개 청구를 제한하려는 위험한 움직임들

 

 

몇 달 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디브레인(dBrain,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상의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국고계좌 입출금내역, 업무추진비 카드승인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3년여의 소송 끝에 검찰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자료들을 공개했지만 예산유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정보들은 판례를 무시한 채 지우고 공개하거나, 자료가 폐기되었다며 공개하지 않거나, 기간이 오래되어 영수증이 휘발되었다며 백지에 가까운 수준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23일 검찰이 공개한 업무추진비 집행 증빙 영수증 사본

 


디브레인에 들어있는 정보는 데이터 형태로 존재하니 세월에 삭아 글자가 휘발될 일 없고, 시스템에 차곡차곡 쌓여 잘못해서 잃어버리거나 할 일이 없으니 우리가 받은 불완전한 종이 더미 자료들과 비교 대조해 맞춰보면 검찰 예산집행을 좀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대검과 중앙지검은 기대했던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는 ‘정보부존재’, ‘기관이 보유 및 작성 관리하지 않는 정보’라는 이유다. 정부가 쓰는 디브레인을 본 적이 없다 보니 정보공개청구를 정확히 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꼼꼼하게 공부한 후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대검과 중앙지검은 공개하지 않았던 특활비와 업무추진비 자료를 공개하게 될까.

 

디브레인에 대해 공부하고 다시 청구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답변조차 받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동일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요청하는 악성 민원인이라며 바로 정보공개청구를 종결시켜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 대표발의로 정보공개법 개정안(의안번호 : 2126286)이 발의되었다. 핵심 내용은 “정보공개 제도의 취지를 벗어난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악의적인 반복/중복 청구 등 오남용 사례로 인하여 공공기관 업무 담당자의 고충 및 행정력 낭비가 심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에 “정보공개 청구인의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를 금지하고 이러한 정보공개 청구는 종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공개 청구권자는 “공공기관에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무를 가지게 되고,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청구가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해당 청구를 종결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가 무엇인가

 

지금도 어떤 정보공개청구는 기관에 의해 종결되기도 한다. 다만 민원으로 처리된 것을 다시 청구하거나, 이미 공개 여부가 결정된 것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적으로 청구할 때 등으로 제한적이다. 그런데 개정안은 이 두 가지에 더해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일 경우에도 정보공개 처리를 하지 않고 종결해 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정보공개청구를 10건 하는 건 괜찮지만 11건부터는 과도한 것인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군수님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는 괜찮지만 대통령님이나 검찰총장님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는 부당한 것인가.

 

그 어떤 것도 과도하거나 부당하지 않다. 아직 우리 사회는 무엇이 부당한 것인지,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정보공개 청구권은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에서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본권인 알권리와 직결된다.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정보공개청구를 제한하는 것은 시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법 개정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일부 공공기관에서는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의 연정선으로 시민의 알권리를 위축시키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문제다.

 

지난 2일 KBS 뉴스는 <“해도 너무해”… 정보공개청구 하루에 75건>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6개월여 동안 557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한 시민을 춘천시가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보도했다. “매일같이 2~3건씩 정보공개를 요구한 셈”이라는 것이다.

 

정보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로써 국가와 공공기관에는 정보공개의 의무를, 모든 국민에게는 정보공개청구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정보공개와 알권리는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위한 표현의자유(헌법 21조), 각 개인의 지식의 연마와 인격도야에 가급적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헌법 10조) 및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34조)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기본권적 속성으로 인해 정보공개법에는 청구인들에 대한 제한사항이 많지 않다. 공공기관이 예외적으로 비공개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들을 명시해 놓았을 뿐이다. 정보공개청구를 많이 한다고 해도 제한이나 제약 또한 없다. 정보공개청구는 2006년 온라인 시스템이 생겨나며 늘어났고 2014년 정부가 결재문서원문공개를 시작하면서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었다. 모두 정부가 추진한 정책의 결과다.

 

춘천시는 이 시민의 정보공개청구가 업무방해라고 했지만, 업무방해 성격이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세계태권도 문화축제 예비비 사용 문서, 자원봉사자 모집 협조요청 문서, 임차 및 계약심사 요청 문서 등 하루에 청구한 문서 제목만 75개’라며 처리에 ‘건당 평균 6일씩’ 소요된다고 하지만, 이 시민이 청구한 것은 춘천시 업무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진 문서로 공개여부 판단까지 마친 것들이기 때문에 공개를 위한 준비에 별도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시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이는 법이 정한 공공기관의 의무 사항으로 업무의 일부이지, 업무를 방해한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위 KBS 보도에도 “단순히 과다 청구로만 처벌을 하기는 어렵다”는 경찰의 발언이 담겼다. 

 

 

민주주의와 알권리를 위협한다

 


이렇듯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쟁점 사안에 대해 행정이 업무방해 운운하며 시민을 상대로 수사 의뢰를 한 것은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권리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정보공개청구가 “부당하거나 사회통념 상 과도한 요구”인지를 판단하는 일차적 주체는 공공기관의 담당 공무원이다. 결국 공무원 마음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종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자칫 법에서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려다 경찰 수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일부 공공기관의 사례가 확산되고, 법마저 개정된다면 시민의 정보공개 청구를 공무원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일부 정보공개청구인이 민원성 청구, 증명할 수 있는 정도의 악의적 청구를 남발하면서 공무원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정보공개 청구 시 수수료 납부 후 청구 처리를 수행하도록 하고,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공개 업무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대다수 정보공개 업무 담당자들이 민원 업무 등 여러 보직을 겸임하는 상황을 인력 충원 및 전문성 강화 등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정보공개는 시민의 참여를 높이고 정부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국회와 공공기관의 움직임은 민주주의와 알권리를 위협한다. 시민의 정보공개청구를 일방적으로 업무방해로 단정하거나 악성 민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협의의 장이 시급하다.

by
    정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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