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에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2021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여 약 110개국 정부가 참여하는 국제회의로, 전세계에 걸쳐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에 대응한다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초청국 가운데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등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는 국가들이 포함된 바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초청국에서 배제하면서 ‘냉전’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번 제3차 정상회의의 주최국을 맡았다.
정상회의의 정치적 목적과는 별개로, 이번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대주제로 디지털 혁명과 AI 등 신기술이 민주사회에 야기하는 도전을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약 300여명의 정부, 국제기구, 학계, 시민사회 인사가 한국에 방문하여 미래세대를 위해 앞으로 바꿔야 할 정책, 개선해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하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나선 윤석열 정부에 대해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윤 정부 취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급격하게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의 현장에서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의 퇴행을 규탄하고 있고, 시민들의 알권리와 정보접근권 역시 현저하게 침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실 및 주요 권력기관의 비공개 심화와 알권리의 퇴행
사상 또는 의견의 자유로운 표명은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을 전제로 하며, 자유로운 의사의 형성은 정보에의 접근이 충분히 보장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때문에 한국의 지난 정권들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는 각국의 정부들은 정보공개를 더 폭넓게 효율적으로 수행해,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현 윤석열 정부에서는 집권 직후부터 대통령실 및 주요 권력기관의 정보 은폐와 비공개가 심화하였다. 정부의 비밀주의 강화는 권력에 대한 대중의 감시를 방해하고 약화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정보 접근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모든 공공기관이 공개하고 있는 직원 명단과 수의계약 현황 등 기본적인 정보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2022년 정보공개센터, 참여연대, 뉴스타파 등 여러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대통령실 공무원의 이름⋅소속부서⋅직위⋅직급⋅소관 세부업무 및 조직도를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정부는 직원의 업무 배치가 국가 안보 정보 및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비공개하였다. 1심 소송에서 법원이 정보를 공개하도록 판결했지만 2023년 9월 6일, 대통령실이 항소하면서 아직도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 정부는 대통령실의 역할 및 직무를 서술한 내부규정과 지침마저도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데, 특히 유례 없는 인재로 기록된 2023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재난 컨트롤 타워인 대통령 국가안보실은 사회⋅재난 안전 분야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대해 ‘국가안보 사항’이라는 포괄적인 이유로 전문을 비공개 했다. 이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의 대응 체계와 매뉴얼이 무엇인지 밝히는 최소한의 설명책임조차 회피한 것이며, 참사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정보접근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더불어 대통령의 비리 의혹 등 부정적인 여론이 있을 때마다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볼 수 있었던 공공정보도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삭제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집무실 이전을 추진하였는데, 당시 실적이 부실한 특정 건설업체와 부적절하게 수의계약을 체결한 정황으로 논란이 불거지자 조달청 공공계약 검색 서비스를 중단시켜 정보 접근을 차단했으며, 이후에도 거의 모든 대통령실의 계약 내용을 조회할 수 없도록 비공개로 전환했다.
한편 지난 2023년 4월, 기소의 권한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던 검찰의 특수활동비 예산 사용 내역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정보공개 소송이 3년간의 쟁송 끝에 대법원의 공개 판결로 마무리되었다. 해당 소송 과정에서 검찰은 수천 쪽 이상의 예산 집행 자료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위 주장이 담긴 서면을 법원에 제출하여 정보를 은폐하려 시도했다. 공교롭게도 법원에서 ‘정보부존재’라는 허위 주장을 하기 시작할 시점의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으며, 당시 검찰총장은 직접 예산 집행에 대한 대면 결제를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 자료들은 집행처와 주소, 사용 시각이 훼손되어 식별할 수 없는 채로 공개되었다. 충격적이게도, 대법원의 공개 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최근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을 또 다시 비공개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권력의 비밀주의와 탄압이 특히 시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방송 및 통신사의 운영 구조를 결정하고,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023년 11월 29일 전체회의 방청을 위해 회의장에 참석한 뉴스타파 취재진을 회의 개회 5분 전에 쫓아냈다. 그동안 방송통신위원회의 회의는 관련법에 따라 누구나 방청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에 비판적인 탐사보도를 지속해온 언론을 특정해 공개회의를 방청하지 못하도록 노골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해당 회의는 통신사 YTN의 최대주주를 민간기업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다룰 예정이었는데, 방송통신위원회는 “민감한 안건을 다루기 때문에 등록된 ‘출입 매체’로 방청 자격을 제한했고, 앞으로도 위원장의 재량으로 방청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안에 따라, 언론사에 따라 위원회 회의의 방청권을 제한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언론 생태계는 물론이고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다.
정부여당의 정보공개법 개악 시도
권력기관의 비밀주의와 비공개 관행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여당 주도로 정보공개법(FOIA)을 개악하려 하고 있다. 2024년 1월 15일,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의안번호: 2126286)은 정보공개청구 오남용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막기 위해 “청구인의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를 금지”하고 이러한 정보공개 청구는 기관에서 자체 종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개정 내용은 시민의 참여를 높이고 정부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정보공개 제도의 취지와 완전히 배치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기본권인 알 권리를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를 훼손할 위험이 매우 크다.
지난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각고의 혁신과 연대를 통해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면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윤석열 정부는 한국 사회가 수십년 동안의 투쟁과 합의를 거치며 확대해 온 정보접근권과 공공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현저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지난 7일 공개한 연례 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한국 민주주의 순위를 17위에서 47위로 조정하고,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곳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독재 국가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당장 해야할 일은 구색을 맞춰 민주주의정상회의를 여는 것이 아니라, 공공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고, 언론에 대한 탄압을 당장 멈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