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불법 계엄 직후 발표된 계엄사 포고령 제1호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헌적 조치였다. 국회는 이에 신속히 대응하여 계엄 해제를 결의하고, 대통령 탄핵 소추와 불법 계엄에 대한 진상 규명 등의 의정활동을 이어왔다. 마찬가지로 ‘활동 금지’ 대상에 오른 각 정당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활동하고 있는지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불법 계엄령에 대한 전국 지방의회와 지방의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침묵’이었고, 다른 하나는 ‘옹호’였다.
‘지방의회 활동금지’에도 침묵하는 지방의회들
계엄법은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령관의 지휘ㆍ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계엄사령관의 지휘 하에 들어갈 행정기관도 아니며, 헌법 제118조에 규정된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설령 정당한 사유에 따라 계엄이 선포되었더라도 그 활동이 금지될 이유가 전무하다. 따라서 계엄 포고령에서 직접적으로 “지방의회의 활동을 금한다”고 명시한 것은 헌법기관을 부정하고 주민자치를 억누른 위헌적 작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다수 지방의회는 불법계엄과, 그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된 지 111일이 지난 3월 25일 현재, 국회지방의회의정포털을 통해 확인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국 243개(17개 광역, 226개 기초) 지방의회 중 단 27개 의회만이 불법 계엄을 규탄하고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는 전체 지방의회의 11.1%에 불과한 수치다.

총 31건의 결의안이 발의되었고, 이 중 가결은 24건, 부결은 5건, 계류는 2건, 철회는 1건이다. 17개 광역의회 중에서는 6개 의회(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전라남도의회, 경기도의회,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충청남도의회)만이 관련 결의안을 상정했다.
결의안을 채택한 지방의회는 다음과 같다:
광역의회: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전라남도의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세종특별자치시의회
기초의회:
전라북도: 남원시의회, 군산시의회, 완주군의회, 익산시의회
전라남도: 구례군의회, 목포시의회, 영광군의회, 순천시의회, 고흥군의회
경기도: 부천시의회, 화성시의회, 안양시의회, 수원시의회, 파주시의회
대전광역시: 서구의회
울산광역시: 북구의회
지역적으로는 전라북도(남원시, 군산시, 익산시, 완주군 등), 전라남도(구례군, 목포시, 영광군, 순천시, 고흥군 등), 경기도(부천시, 화성시, 안양시, 수원시, 파주시, 성남시 등) 지역의 지방의회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결의안을 발의했다. 특히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는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모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울산광역시에서는 광역의회 차원의 결의안은 없었지만, 기초의회(북구, 중구, 남구, 울주군) 단위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2025년 3월에 들어서도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결의안 발의가 꾸준히 이어졌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인천광역시, 광주광역시,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의 지방의회들에서는 계엄 관련 결의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계엄 옹호에 적극 나선 지방의원들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상황인데, 일부 지방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불법 계엄을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충남 서산시의회 이정수 국민의힘 시의원은 지난 3월 12일, 서산시의회 임시회 5분 발언에서 “대통령의 계엄령 발포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윤석열 탄핵 과정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에 끝까지 대통령을 지키고 싸우겠다”라고 주장했다. 지방의회의 공식적인 의정 발언으로 ‘지방의회 정치활동 금지’를 명령한 계엄을 옹호한 것이다.
경남도의회 정쌍학 의원은 창원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유대한민국 수호, 반국가세력 척결, 부정선거 의혹 수사 이것이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계몽령’ 발언이나 ‘부정선거 의혹’ 주장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조차도 대부분 사용하지 않는 극우적 표현이다.

이러한 행태는 의원 개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지방의회의 대표자들까지도 ‘윤석열 지키기’에 나섰다. 경북도의회 박성만 의장은 지난 1월 한남동 관저 앞에서 체포 저지를 외치는 보수단체 집회를 방문해 “대통령을 지키자”라고 발언했고, 김천시의회 나영민 의장은 ‘윤석열 탄핵 반대 삭발식’을 열기도 했다.
이렇게 계엄을 옹호하는 의원들의 행태는 명백한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자신들이 옹호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은 “지방의회 활동 금지”를 명령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즉각 의정활동을 중단하고 사퇴하지 않는 것인가? 왜 계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려고 하필 계엄이 금지한 의회 연단에 서는 것인가? “계엄은 정당하다”고 외치는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계엄이 정당하다면 지방의회는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의원 타이틀을 지키며 의정수당을 챙기는 이러한 이중성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지방의회, 이래도 괜찮은가?
일부에서는 지방의회가 계엄에 대한 입장을 내는 것 자체가 중앙정치에 개입하여 ‘정쟁화’되는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계엄 포고령이 직접적으로 “지방의회의 활동을 금한다”고 명시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중앙정치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 지방의회 스스로의 존립을 위한 당연한 행동이다.
계엄령은 단순히 ‘중앙’ 이슈가 아니라, 지방의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심각한 헌법적 위기 상황이었다. 지방의회가 ‘지역 현안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방의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위헌적 조치 앞에서는 전혀 설득력을 잃는다. 결국 지역 현안을 다룰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지방의회가 헌법적으로 보장된 기관으로서 존립하는 것이다. 그 전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침묵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는 지방의회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는 4월 2일, 계엄 이후 처음으로 선거가 열린다. 4.2 재보궐 선거는 부산교육감과 5개 지자체장뿐 아니라, 8개 광역의회 의원과 9개 기초의회 의원을 다시 뽑는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계엄 이후의 첫 선거에 지방의원을 하겠다고 나선 46명의 후보자가 있다. 과연 지방의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불법 계엄에 대해, 지방의원을 하겠다는 후보자들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헌법기관을 수호할 의지가 없는 이에게 헌법기관의 구성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이제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