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는 2019년부터 ‘종교단체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종교계 주최 시민참여 행사 지원사업’으로, 2025년에는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 지원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한 이 사업, 정확히 무슨 행사를 지원하는 걸까요? 공고문에 따르면 ‘서울시의 주요 정책 목표 홍보’에 기여할 수 있는 행사나, ‘계승·발전이 필요한 종교계 문화예술 행사’를 지원하는 행사인데요. 뉴스를 찾아보니 올해도 봉은사에서 주최하는 ‘불교 차 문화 축제’나 CCM교회에서 주최하는 ‘다문화 공동체와 함께하는 가을밤 콘서트: 사랑의 하모니’ 같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간 어떤 단체에서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었나 궁금해져 2019년부터 2024년까지의 공고문, 심사결과 보고서, 결과보고서를 서울시에 정보공개청구하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받아본 문서들, 공고문만큼은 원본 그대로였지만, 심사결과 보고서와 결과보고서는 군데군데 내용이 홀연히 사라진 채였습니다.


서울시는 심사위원 및 심사관련 정보는 ‘추후 심사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 그리고 사업비와 정산내역은 ‘단체 생산기술상의 노하우, 경영·영업상의 정보로 공개될 경우 단체의 정당한 이익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보공개법 9조 1항 5호에 따라 의사결정과 내부검토 과정 중에 있는 사항은 비공개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적용되지 않습니다. 청구한 정보들은 이미 의사결정과 내부검토가 종료된 사안인데다, 사업비에는 서울시 예산이 포함되는 바 예산 운용의 투명성과 시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마땅히 공개해야할 내용이죠. 이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선정 결과가 공개되면 종교 갈등 유발?
올해 2월달에 청구한 행정심판은 일정이 계속 미루어져 8월이 되어서야 재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결과는? 어이없게도 ‘일부인용’. 결과보고서의 사업비 및 정산내역에 대한 부분만 공개해도 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어떤 단체가 선정되었는지, 어떤 행사를 했는지는 비공개해도 된다는 판단을 내린 건데요, 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선정 결과가 공개되면, 종교단체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보공개센터의 행정심판청구에 서울특별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하였습니다.
공모사업 선정 결과의 경우, (중략) 보조금 교부에 관한 정보공개로 인해 종교별, 종교간 지원단체 및 지원금액의 차등규모 등으로 인하여 장래 보조금 심사사무 등에 현저한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고 종교 간 갈등 우려에 따라 비공개 결정하였습니다.
상기 우려로 인하여 보조사업 공고 당시에도 심사결과는 개별통보하도록 사전 공지하였는 바, 지원단체들도 단체명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지하고 있기에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였습니다.
이에 종교단체들의 접수 현황 및 종교단체들의 선정 결과 등은 종교단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개 시 발생할 수 있는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 및 갈등의 심화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헌법 제20조 제1항, 제2항,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의해 비공개 결정하였습니다.
말인즉슨, 선정된 단체가 어디어디인지, 지원해준 금액이 얼마씩이었는지 알려지면 선정 결과가 편향적이라며 종교단체들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그러면 앞으로의 지원사업 진행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심판위원회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알권리 보장보다 지원 선정 단체 비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사결과 중 종교별, 단체별 지원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될 경우 종교단체 사이의 갈등 유발 및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향후 피청구인의 종교단체 재원사업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 심사결과 중 종교별, 단체별 지원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공개에 따른 청구인의 알권리 보장 및 권익구제 등의 이익이 비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피청구인의 종교단체 지원사업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의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중략) 등을 종합하면 위 정보가 정보공개법 제9조제1항제5호의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피청구인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행정심판 재결 중 일부〉
이렇게 받게 된 결과보고서 사업내용에는 주관 단체명도, 행사 일시와 장소도, 하물며 행사명도 없이 “국악공연, 영산재, 명상 교실, 다문화 장기자랑, 대중음악 공연 등”과 “기획전시, 문화 프로그램, 클래식 공연, 그림그리기대회, 무용경연 등”으로 뭉뚱그려져 있었습니다.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사업비 정산 항목은 어땠을까요? 행사별 구분, 인건비, 행사운영비, 홍보비 등 예산항목 구분도 없이 ‘지원금, 집행액, 집행잔액’이 전부였습니다. 종교별 차등지원을 우려하는 것치고 표를 구성한 방식도 이상한데요, 각 행사별로 사업비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종교별로 구분해두었습니다.
편의상 A, B, C, D교로 구분하자면 A교는 평균적으로 약 2,085만 원, B교는 약 2,821만 원, C교는 약 2,256만 원, D교는 약 2,900만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받았네요. D교와 A교 평균 보조금 사이에는 815만 원의 차이가 있는 걸 이 표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164개 보조사업자 모두 공개하는데, 종교 단체만 비공개?
이번엔 서울시 결산공시를 찾아보았습니다. 지자체들은 지방보조금 집행내역을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3년 집행내역을 확인해보니, 보조금을 지원받는 보조사업자는 ‘신일교회 외 64건’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명단을 확인해보기 위해 다시 한번, 지방보조금이 집행된 민간행사 보조사업자 명단을 정보공개청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공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소관부서들로부터 보조사업자 명단을 취합하였는데, 문화정책과에서 종교 관련 지원 사업은 보조사업자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27개 사업의 164개 보조사업자가 모두 공개되는 와중에도, 종교 관련 사업 5개의 지원을 받은 총 82개 보조사업자는 이렇게 숨겨졌습니다.

공모 공고문을 보면 이 지원사업은 시민 문화 향유를 확대하고, 서울시의 주요 정책 목표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으로서는 지금까지 어느 단체의, 무엇을 하는 행사가 열렸던 건지, 그 행사들에 시비가 얼마나 쓰였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지원 단체의 이름을 숨기는 것이 얼마나 실익이 있는지, 형평성이 있는지도 아리송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신문사, 신일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한국교회총연합은 알려져도 분란이 없을 단체라 대표로 공개되어 있는 걸까요? 인터넷에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 지원사업’을 검색해보면 각종 홍보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취합하면 지원 단체들을 알 수 있겠지요. 기사를 뒤질 것도 없이, 서울정보소통광장의 결재문서의 수신자들만 모아보아도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업무 지장이 생길까봐 선정 결과도 공표할 수 없는 공모라면, 대외적인 홍보도 막아야하지 않을까요? 결재문서를 보고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안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반면에 사업의 시작과 끝을 투명히 공개할 이유는 뚜렷합니다. 널리 공개해 모집하는 ‘공모’ 방식으로 지원 단체를 선정하는 사업이니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행사니까,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행사니까, 보조금을 받아 행사를 치른 다른 모든 단체는 공개되니까 말이죠.
행정심판, 시민 알권리에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주길
작년 11월, 서울 시청 광장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전기세가 얼마나 들까?’하는 사소한 궁금증을 발단으로 알게 된 종교계 지원사업(※트리는 ‘대한민국 성탄축제’ 사업 소관). 8월말이 되어서야 간신히 개략적인 사업비 항목만 공개받을 수 있었는데요. 간편하고 신속한 권리구제 제도라는 행정심판, 재결을 받는 데만 5개월이 걸렸습니다🥵 3개월 뒤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게 될 걸 생각하니, 정말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공개받지 못했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입니다. 버젓이 찾아볼 수 있는 이름들, 종교 갈등 ‘우려’만으로 감추어 득을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7년째 어떤 곳이, 언제 어디서 어떤 행사를, 얼마만큼의 예산을 들여 치르고 있는지,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시민들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지자체 문화행사에 종교 단체가 정체를 감추고 참여하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를 불렀죠. 겉으로는 공연, 문화체험 등의 행사를 진행하지만, 실상 포교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본 뒤로는, 지자체 행사를 어디서 주최·주관하는지 더 자세하게 살피게 되었는데요.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도 시민들이 안심하고 유익하게 즐길 수 있도록, 진행 단체가 어디인지, 행사명은 무엇인지, 예산이 얼마나 들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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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2024년도 공고문, 심사결과
- 2023년도 결과보고
- 행정심판 피청구인(서울시) 답변서, 재결서
- 2023회계연도 민간행사 사업보조 집행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