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제18대 국회의원 당시 지역구인 서울 서초구에서 개발 논의가 한창이던 센트럴시티 대표였던 신달순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았다는 한국일보 기사를 보았다. 국회의원 고액 기부자 명단 데이터를 살펴보니 실제 2009년 7월에 5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이 확인된다. 맥락상 이해충돌 여부를 살펴볼 만한 사안이지만,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기부자의 직업이 ‘회사원’으로만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강선우 국회의원과 김경 서울시의원 사이의 공천헌금 논란 이후 일부 지방의원들이 같은 지역구 등 이해관계성이 보이는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내역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취재 등을 통해 문제가 드러나기도 하지만, 살펴볼수록 정치후원금 공개제도가 여전히 민주주의의 취약한 지점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회의원에게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해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기부자의 이름, 직업, 생년월일, 주소, 기부 금액은 공개된다. 이는 선출직 공직자에게 향하는 돈의 흐름을 드러내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현재의 공개 방식은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부실하다. 기부자와 정치인 사이의 이해충돌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정보인 ‘직업’ 공개 방식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자금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가장 손쉽게 권력과 이해관계가 뒤엉킬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치자금법은 후원금의 수입과 지출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공개가 실제로 이해충돌을 감시할 수 있을 만큼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선출직 공직자의 돈과 이력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공직감시를 돕는 데이터사이트 오픈와치(https://www.openwatch.kr)에 공개된 국회의원 고액 후원자 데이터를 통해서도 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새날 서울시의원(국민의힘 강남1선거구: 신사/논현1/압구정/청담)은 같은 지역구 내의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에게 2022년에 400만 원, 2023년에 4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했다. 그는 지방의원이지만, 선관위에 제출한 자료에는 직업이 ‘기타’라고 표시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민옥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성동3선거구: 마장/사근/송정/용답) 역시 같은 지역구 내의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국회의원에게 2022년 5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했고, 직업에는 ‘기타’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방의원’ 혹은 ‘정치인’이라는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는 직업명이 아닌 것이다.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간의 위계와 이해충돌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직업명인데, ‘기타’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이를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부자의 직업을 자의적으로 작성하고 있다는 사례는 아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2020년, 2021년 각 500만 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2020년~2023년 각 500만 원), 시대전환/국민의힘 조정훈 의원(2020년, 2021년, 2023년 각 500만 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2023년 500만 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2023년 500만 원)에게 기부한 이재웅은 선관위에 제출된 고액 기부자 명단에는 ‘사업가’, ‘회사원’, ‘기타’로 표시되어 있다. 일치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공개한 것이다.
2009년~2011년 사이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허태열, 박근혜, 송광호 의원에게 기부한 가갑손의 경우, 2009년과 2011년에 각각 500만 원을 기부받은 허태열 의원은 가갑손의 직업을 ‘메트로패밀리 사장’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반면 2010년에 500만 원 기부받은 박근혜 의원은 직업을 ‘무직’으로, 같은 해 500만 원을 기부받은 송광호 의원은 직업을 ‘현대백화점’이라고 표시했다. 주소와 생년월일, 성명이 같은 동일인인데도 기부받은 의원에 따라 직업 표시의 내용과 수준이 모두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직업이 사실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해당 인물이 어떤 조직이나 산업, 어떤 이해관계를 대표하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직업 정보의 혼란과 불일치는 정치후원금 공개 제도가 이해관계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라는 본래 목적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름과 금액만으로는 그 돈이 어떤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는지 판단할 수 없다. 직업 정보가 이렇게 자의적이고 부실한 상태라면, 공개는 존재하지만 투명성은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공개된 데이터(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IuCGHXN3hYHcy5PZ_bxrAOfGoBmmruw48TmCCyNDsbE/edit)에서 확인된 문제는 단지 일부 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당수 고액 기부자의 직업란이 ‘기타’로만 기록돼 있고, 동일 인물이 여러 의원실에 후원할 때마다 서로 다른 직업을 적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불일치는 단순한 관리상의 문제를 넘어, 시민과 언론이 정치권력과 이해관계의 연결고리를 추적하고 평가하는 데 근본적인 장애가 된다.
정치후원금 공개 제도의 목적은 단순히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어떤 이해관계에서 나왔는지, 정책과 의정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시민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 정보가 이처럼 부실하면 공개는 형식만 남고 기능은 사라진다.
정치후원금 고액 기부의 경우, 직업 정보는 최소한 소속 기관, 직위, 업종 수준까지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또한 동일 인물의 정보가 의원실마다 다르게 기록되지 않도록 관리돼야 한다. 단순히 ‘회사원’이나 ‘사업가’라는 표현으로는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누가 어느 기업에 소속돼 있고, 어떤 산업 이해관계에 연결돼 있는지가 드러나야 정치자금 공개가 제 기능을 한다. 정치후원금 공개는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떠받치는 중요 장치이지만 지금의 제도로는 이를 담보할 수가 없다. 정보는 공개되지만, 시민은 그 정보를 통해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이해충돌을 막기 위한 제도라면,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부터 제대로 공개해야 한다. 정치후원금 공개의 실질적 개혁이 지금 필요한 이유다.
- 이 글은 민중의소리 <공개사유>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