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초등학교 전일 돌봄인 ‘늘봄교실’이 지난 3월 3일부터 전국 214개 학교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이 늘봄학교 내용의 골자는 초등학교가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최대 13시간 돌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수요에 비해 부족한 기존 돌봄을 확대한다는 취지가 있음에도 이 늘봄학교는 주 69시간 노동제, 학교 교사 및 비정규직 노동 조건 및 처우 문제와 복잡하게 맞물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기존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의 주축 인력인 돌봄전담사들이 포함된 학교비정규직노조는 현재 인력 체계와 저임금 구조하에서 준비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늘봄학교를 운영할 수 없다며 오는 3월 31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한 상태다.
대체 윤석열표 초등학교 돌봄인 늘봄학교의 핵심 내용은 무엇이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 정보가 알고 싶다>가 정리해 봤다.
‘늘봄학교’ 왜 갑자기 등장했나
늘봄학교의 시작은 지난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23일 열린 ‘국민공약 언박싱 데이’ 행사에서 늘봄학교의 원형이 되는 공약 정책이 처음 등장했다.
이 행사에서 ‘석열씨의 심쿵약속’ 생활밀착형 공약 18번째 시리즈가 발표되었는데 여기에 ‘초등학생 아침밥·방학 점심밥 급식 지원 및 돌봄교실 확대’ 공약이 나왔다.
이 공약은 약 한 달 뒤인 2월 24일에 발간된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에도 수록되었는데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 전원에게 전일제 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좀 더 적극적인 돌봄 정책으로 구체화 되었다.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의 해당 ‘초등 전일제 교육’ 공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은 기존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사교육과 비교해 경쟁력이 없어 사교육에 대한 의존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방과후 학교와 초등 돌봄의 이용률이 낮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기본 돌봄이 아닌 학교교육 복습, 예체능, 어학, 과학 등 교육형 돌봄인 ‘에듀케어’ 형태로 운영하려는 것이 최초 계획이었다.
또 늘봄학교 시행으로 업무가 늘어날 경우 발생하게 될 교사들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교사는 운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다.
이 공약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빠르게 정책화가 진행되었다. 지난해 7월에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가 임기 동안 주력할 정책을 선정한 ‘12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초등 돌봄교실 운영 시간을 20시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초등 전일제 학교’를 운영한다는 정책안이 포함되었다.
그리고 올해 1월 교육부는 초등 전일제 학교의 정책 명을 ‘늘봄학교’로 변경하고 ‘늘봄학교 추진 방안’을 발 빠르게 발표했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남짓 후인 3월 3일부터 전국 214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을 개시했다.
어떻게 운영되나
윤석열 정부는 ‘전일제 초등 돌봄’, ‘에듀케어’ 등의 개념을 가져와 혁신적인 교육 정책인 듯 말하고 있지만 사실 늘봄학교는 그다지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늘봄학교의 기본 개념은 현재 학교마다 각자 상황에 맞춰 이뤄지고 있는 방과후학교와 초등돌봄교실을 합친 개념에 불과하다.
다만 늘봄학교의 경우에는 정규수업과 방과후학교 수업 사이, 방과후학교 수업과 돌봄교실 사이 1~2시간씩 발생하는 틈새 돌봄을 제공하고 현재 최대 19시까지 운영되는 방과후 초등돌봄교실이 20시까지 한 시간 연장되는 것이 가장 뚜렷한 변화이다.
또한 방과후학교와 돌봄의 경우 과밀지역 학교에서는 경쟁률이 높고, 수요가 적은 학교에서는 아예 운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늘봄학교의 경우 필요로 하는 누구나 원하는 때 돌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늘봄학교는 국가 단위 교육·돌봄 정책이지만 지역적 특징과 교육 여건들이 다르고 교육 정책의 세부적인 실행 또한 교육청마다 개별적인 사업으로 이뤄지고 있으므로 전일제 교육과 돌봄이라는 핵심적인 정책 내용만 공유할 뿐 세부적인 프로그램은 각 교육청과 학교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3월 3일부터 현재까지 인천(30), 대전(20), 경기도(80), 전라남도(43), 경상북도(41) 교육청 예하 214개 초등학교들이 각각의 계획을 세워 늘봄학교를 시범운영 중이다.
정부의 정책 계획에 따르면 향후 늘봄학교는 2025년까지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돼 운영될 예정이며 늘봄학교를 수용할 인프라 시설로 수영장과 도서관, 교실과 체육공간 등을 포함하는 학교복합시설을 2027년까지 전국 229개 기초단체에 1개 이상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은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분명 환영해야 할 정책임에도 정작 늘봄학교는 이해 관계자들에게 크게 비판받고 있다. 우선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추진되어 당장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공약에서는 늘봄사업을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주체가 되어 운영한다고 했지만 시범운영 중인 현 상황에서는 모든 업무와 책임이 일선 학교로 넘겨져 교사와 돌봄전담사들이 도맡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양대 교원노조가 먼저 늘봄학교를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2월 21일 늘봄학교에 대해 “당장 늘봄학교 공문은 누가 접수‧처리할지, 수요조사와 프로그램 개설, 전담사‧강사 채용‧관리, 학생 선정, 안전 관리 등을 누가 맡을지 현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며 “교육청 중심 운영체제를 구축한다고 했으면 먼저 어떤 지원체계를 갖춰, 어떤 인력을 통해, 어떤 업무를 덜어줄지 분명히 제시부터 하고 시범운영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며 늘봄학교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2월 27일 성명을 통해 “학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늘봄학교 추진 방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며 “교육부의 늘봄학교 시범운영 방안에는 여러 우려를 해소할 대책이 필요하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시범운영학교를 모집하는데 교육부가 공모를 내고 교육청과 학교의 신청을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고 주장했지만 일선 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시범운영학교 선정 과정에서 교사들과 협의 없이 교장 등이 단독으로 결정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기교사노동조합은 경기도교육청 늘봄학교 시범운영학교 조합원 대상 실태조사에서 “33.7%가 협의 없이 관리자 단독 결정, 31.1% 신청 과정 모름, 5.8%가 반대하였으나 관리자 단독 결정 등 약 70%는 학교 구성원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각 교육청이 예하 학교장들에게 시범운영 참여를 요구하고 학교장들은 학교 구성원들과의 협의 과정 없이 늘봄학교 참여를 독단적으로 결정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사실상 강제성이 컸을 수 있다.
교사 중심의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로 구성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도 3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늘봄학교를 두고 “대통령 치적을 위해 확대하는 땜질식 돌봄”이라고 평했다. 연대회의는 “시도교육청 시범모델에서 제시하는 돌봄교실 인력 확충 계획은 매우 부실해 학부모, 자원봉사자, 퇴직교원 등 임시 불안정 인력으로 때우려” 해 그 부담이 돌봄전담사와 교사에게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늘봄학교에 대한 교육 현장 구성원들의 반대가 이 정도라면 사실 교육부는 늘봄학교 운영에 충분한 인력 충원이나 인프라 확보도 없이 청사진 하나 들고 당장 일선 학교와 교사, 학교 노동자들에게 돌봄 프로그램 기획부터 실행까지 일련의 업무를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준비 없는 갑작스러운 정책이 달가울 리도, 성공할 리도 없는 것이다.
또한 돌봄이 필요한 모든 초등학생에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원래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을 대상으로 3월 17일까지 ‘입학 초기 적응 기간 에듀케어’를 운영한 뒤 1학기 동안 늘봄학교 에듀케어를 진행하는데 요일별로 20명씩만 추첨해 운영한다는 계획을 공지했다.
이럴 경우 요일별로 돌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생과 가정이 추첨으로 매일 달라져 애초에 기대했던 돌봄이 필요한 학생과 가정에 전일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로서는 돌봄 인력의 충원이나 적절한 돌봄 공간의 확충 없이 늘봄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추첨을 통한 선별적 돌봄 운영이 부득이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학부모로서는 요일별 추첨의 행운을 바라느니 학원 등 사교육이 제공하는 편의와 안정감을 택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육아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늘봄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모들의 노동 시간을 줄여 가정의 돌봄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초등학교 저학년을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돌봐주는 정책에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결국은 노동시간 연장?
늘봄학교와 관련해 일찌감치 논란이 된 동영상이 한 편 있다. 바로 정부의 늘봄학교 홍보 영상이다. 이 영상은 조선시대 임금이 스티브 잡스를 패러디한 외모의 신하에게 하루 만에 스마트폰을 개발하라고 지시하지만 신하는 5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이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밤 8시까지 초등학생들을 돌볼 수 있게 하라는 지시를 내려 모든 마을이 행복해졌다는 단순한 이야기로 이뤄졌다.
별생각 없이 해당 영상을 보면 단순한 정부 정책 홍보물일 수 있지만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아 입장을 선회한 고용노동부의 주 69시간 노동시간 연장안과 늘봄학교 정책을 연결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아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밤늦도록 돌볼 테니 늦게까지 아이 걱정 없이 일하라며 노동 시간 연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부의 국정 철학에서 나온 돌봄정책이기 때문이다. 늘봄학교가 교육이나 돌봄정책이 아닌 우경화 중인 노동정책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늘봄학교가 대선 공약에서부터 출발해 성급하게 정책화 되고 준비 없이 시행되며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살펴봤다. 늘봄학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초등 돌봄의 범위와 시간에 대한 수요 조사부터 시작해 그에 따른 적절한 인력과 시설 확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노동 정책과 교육 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