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신입생들의 출신 지역·연령·대학·전공 등을 대해부한 <한겨레21> 749호 표지이야기 ‘그들만의 로스쿨’은 정보공개 청구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보도였다. 공공기관은 △비밀로 지정된 정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 정보공개법상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를 모두 공개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대학들로부터 로스쿨 신입생 관련 자료를 모으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학들은 때로는 기발하고 때로는 황당한 이유를 대며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배째라’형 인하대
“모든 사람이 요청하면 다 줘야 하나요? 좌우지간 저희는 그 질의에 답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불만이 있으면 절차를 밟으시든지, 알아서 하세요.”
지난 2월10일 인하대 입학처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불만 섞인 목소리로 로스쿨 신입생 관련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공개하라는) 판결문을 보낸 것도 아니잖냐”고 말했다.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10일 안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 통보해야 하며, 열흘 이내에 공개 시점 연장이 가능하지만 그때도 즉시 연장 사실을 청구인에게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인하대는 1월12일 기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뒤 20일이 넘도록 아무런 결정도 통보하지 않았고, 결국 2월10일 직접 전화를 건 뒤에야 “질의에 답을 안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2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결정이 없으면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공개 결정에 대해선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의신청을 낸 뒤 며칠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응하지 않기로 한 애초 결정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비공개 결정을 내렸으면 통보는 해줘야 하지 않냐. 이유라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기자의 물음에 입학처 관계자는 “우리에게 그런 의무가 있냐? 일단 검토는 해보겠다”고 답했고, 결국 2월19일 비공개 결정 통지서를 보내왔다. 결국 인하대는 25개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비공개를 끝까지 고수했다.
‘무데뽀’형 서울시립대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사흘째 되던 1월15일, 서울시립대 법대의 한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 잠시만요, 전화 바꿔드릴게요.” 어떤 남성이 수화기를 들더니 질문을 쏟아냈다. “이거 뭐하러 청구했나? 어디에 참고하려고 청구한 것인가? 정보공개는 구체적인 권리·의무 관계가 없으면 청구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고소·고발 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렸을 때 검찰에 불기소이유 고지를 요청할 수 있지만, 아무나 요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고소·고발인만 요청할 수 있다. 정보공개 청구도 이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에는 청구인 자격을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누구나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설명하며 “법조문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고 말했으나, 그는 완강했다.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법조문은 그쪽이나 찾아보라.” 그는 “지금 전화 주신 분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런 것에 답할 의무는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서울시립대는 2월9일 갑자기 공개 결정을 통보해왔다. 서울시립대 법대 담당 직원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할 수 있다고 판단된 것에 대해 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니, (전에 있었던 일은)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전화를 걸어 큰 소리로 항의하셨던 교수님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직 교수님인 것은 맞지만, 어떤 분인지는 알려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뺀질이’형 서울대
25개 로스쿨 가운데 가장 많은 정원을 할당받은 서울대의 행태도 유난스러웠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 20일이 지나서야 공개하겠다고 통보했는데, 그에 딸린 내용이 황당했다. 응시생의 성별 비율, 응시생 가운데 자교 출신·법학 전공자 비율, 합격생 나이·주소지 분포, 면접 반영률 등의 정보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 자료”라고 밝힌 것이다.
이같은 회신을 한 정상조 교무부학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시생이 몇 명인지, 면접 반영률 비율이 몇%인지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묻자 “할 말이 있으면 정식 공문을 보내라”고 말했다. 결국 같은 취지의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보냈고, 며칠 뒤 답변이 도착했다. “정보공개법상 공개 대상이 되는 정보는 기존에 작성 또는 취득하여 관리하고 있는 정보만을 의미하고, 새로운 정보를 가공하여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중략) 이의신청한 내용에 관하여 생산·보유하고 있는 통계자료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부존재를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린 것이며, 다만 등록생의 나이 분포와 관련하여 작성·관리하고 있는 아래 자료를 제출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공해서 줄 의무는 없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면접 반영률 등이 존재하지 않는 정보라는 설명은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에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게다가 추가로 보내온 나이 분포는 ‘△26~28살 ○명 △29~31살 ○명’식으로 돼 있어, 20대와 30대 비율조차도 가릴 수 없는 자료였다.
이같은 상황을 설명하고자 정 부학장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할 수 없었다. 담당 직원은 “메모는 전해드렸는데 교수님께서 별 말씀이 없으시더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보공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대표적인 유형들을 나열해봤지만, 상당수 다른 학교들도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부산대는 12월5일치 1차 합격자 발표 때 출신대학 분포는 공개했지만, 실제 신입생들의 출신대학별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고 나왔다. 같은 내용을 두고 시점에 따라 오락가락한 이유를 묻기 위해 해당 업무를 담당했다는 강대섭 부학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런 질문이라면) 전화 끊겠습니다”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건국대는 애초 1월28일 1차 최종 합격자를 기준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가 1명의 미등록자가 발생하자 “지금 추가 입학생을 뽑는 전형 중인 만큼 완전한 정보가 아니면 줄 수 없다. 우리랑 협의해서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도 아니잖냐”(최윤희 법대 학장)는 이유로 답변을 늦추더니 기사 마감 시점까지 아무런 자료도 보내오지 않았다.
<한겨레21>은 완전한 자료를 내놓지 않은 일부 대학을 상대로 조만간 정보공개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로스쿨 신입생은 그동안 대학이 알아서 뽑아온 일반적인 대학원생과는 달리 사실상 예비 변호사 신분이며, 사실상 ‘변호사 선발권’이라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권한을 넘겨받은 대학들은 그에 걸맞은 투명하고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더욱이 이번 기사를 통해 신입생 선발에서 우려스러울 정도의 ‘편향’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로스쿨 신입생 전형 결과 공개와 그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정보공개센터 이순혁 회원(한겨레 21 기자)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