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박근혜 대통령은 ‘왜’ 유가족들을 외면했을까?

2014.10.30

지난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 국회 본청을 떠나고 있다(사진: 오마이뉴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간사

지난 10월 2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헌데 부쩍 추워진 10월 끝자락 날씨 속에서도 박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전 날 밤부터 국회에서 노숙까지 하며 밤을 지새워 박 대통령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대통령 국회 방문 전날인 10월 28일 저녁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 까지 열었다. 언제나처럼 유가족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그리고 또한 사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았다. 철저한 진상규면과 수색작업. 그리고 특검추천에서 유가족의 참여. 단 세 가지였다. 유가족들은 따로 대통령의 시간을 할애해 면담을 요청했던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이 국회 본청에 입장하는 길에 잠깐이라도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유가족이 원한 전부였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이 가족대책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청와대 쪽이 먼저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대통령 오실 때만이라도 비켜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화를 쏟아내어야 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는 적반하장의 상황.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을 외면하고 국회 본청으로 입장하자 유가족들은 절망감에 결국 눈물을 보였다(사진: 미디어오늘)

이윽고 29일 아침이 되었고 9시 40분경 삼엄한 경비 속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섰다. 경찰과 경호원들이 유가족과 박 대통령 사이의 경계를 유지했고 유가족은 박 대통령이 지나갈 때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절규했다. 이 때 박 대통령은 단 한 번의 시선조차 유가족을 향하지 않고 국회로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중에서도 세월호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국회 일정을 마친 뒤 국회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유가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유가족의 절실함과 박 대통령의 냉정함. 국회 본청 앞 두 개의 마음이 엇갈렸다. 유가족과 박 대통령의 세 번째 만남이었고 청와대 면담이 있은 뒤 약 5개월이 흐른 뒤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튿날인 4월 15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수색·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사진: 청와대)

유가족의 절박한 심정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박 대통령의 태도가 이내 마음에 걸린다. 여기서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박 대통령 태도의 변화이다. 첫 번째 만남.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튿날인 4월 17일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구조에 있어 정부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철저한 조사와 원인인을 규명할 것”이며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면담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의 제안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특별법과 진상조사위원회에 관해서 유가족과 다른 입장임을 밝혔고, 면담 후 유가족은 기자회견을 통해 박 대통령이 즉답을 피하고 두루뭉술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명했다(사진: 청와대)

두 번째 만남. 유가족들의 길고 절실한 요청 뒤인 5월 16일 유가족들은 청와대에서 1시간가량 대통령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이 면담자리에서 유가족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지를 박 대통령에게 제안했지만 박 대통령은 법의 제정은 국회의 소관이라 답했다. 또한 진상조사 위원회에 민간인 참여에 대해서도 검찰이 열심히 수사하고 수사과정을 유가족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답했다. 유가족은 이 면담에 대해 아쉽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3일 뒤, 그리고 지방선거 15일 전인 5월 19일에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은 유가족과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사과했고 대책으로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가 안전처를 신설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어떤 의미인지 모를)눈물도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34일째이자 유가족과 면담 3일 뒤인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해양경찰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골자로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사진: 프레시안)

그리고 마지막 만남. 여기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 철저하게 무시했다. 짧게 몇 초 만이라도 발길을 돌려서 다만 노력하겠다, 힘내시라 정도의 형식적인 대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는 이미 끝난 사건이다.

물론 박 대통령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심이야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전후 맥락을 감안해 유가족을 외면한 이유를 추측할 수는 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을 첫 번째 만났던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최대한 구조에 대한 지원을 할 것이며 책임자를 엄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과 두 번째 만남이었던 청와대 면담에서는 세월호 특별법과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해 유가족과 뜻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박 대통령은 그 나름대로 이미 유가족에게 확실하게 선을 그었던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세월호 선원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준석 선장에 사형을, 나마지 선원들은 최소 징역 15년 부터 무기징역까지 법정최고형과 중형을 구형했다(사진: 오마이 뉴스)

이런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책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상황들을 보면 우리는 박 대통령의 태도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선 정부는 해양경찰청 해체하고 국가 안전처 신설을 진행 중이다. 악의 축처럼 여겨졌던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은 이미 사망했다. 또한 적극적인 구조와 퇴선유도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123정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탈출해 생존해 공분을 샀던 세월호 선원들의 경우에는 이준석 선장의 경우에는 사형, 1, 2등 항해사와 기관장에게는 무기징역, 나머지 선원들은 최소 징역 15년에서 30년이 각각 구형되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상규명? 검찰은 지난 10월 6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세월호는 급격한 조타-복원력 상실로 인해 침몰한 것으로 규정했다. 즉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규명되었고 책임질 사람들이 엄벌에 처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말했던 모든 약속들은 결국 오롯이 지켜졌다. 물론 일방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따라서 추측컨대 박 대통령에게 이미 세월호 참사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다. 최소한 거의 다 이긴 게임이며 끝마친 숙제이다. 박 대통령의 진심은 알 수 없지만 국회 본관에서 유가족을 철저하게 외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에 어떠한 것도 기대하는 것은 더 없이 무모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가능했다면 벌써 특별법이 제정되었어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남은 진실에 대한 숙제들은 오롯이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은, 진실을 원하는 시민들의 것이 되었다. 10월 29일. 참사 발생 103일 만에 실종자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아직도 바다 속에 9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


– 이 칼럼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2014년 10월 30일자 413호 솟을터)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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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추진 활동비 비공개한 광주광역시 대법원에서 패소

2014.10.22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제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요, 국제대회의 개최가 그 지역의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국제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쓰이는 유치추진 활동비는 공개되어야 하는 정보일까요?, 아니면 비공개 정보일까요? 유치활동역시 공공기관이 수행한 업무이고 국민의 세금이 유치추진을 위한 활동비로 쓰였기 때문에 당연히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내년에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는 광주광역시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결국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정보공개에 관한 소송에 소송이 거듭되다 유치추진 활동비를 공개하라는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와 오히려 악의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주광역시는 그 해 1월 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유치위원회를 설치(하지만 201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는 러시아 카잔에서 개최)하고 유치추진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이에 광주지역 시민단체인 “시민이 만드는 밝은 세상”(이하 밝은 세상)은 광주광역시에 2013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치추진 활동 관련 예산을 정보공개청구 했습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는 비공개를 통지해 왔습니다. 이에 밝은 세상은 행정소송을 재기했고 재판부는 밝은 세상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맑은 세상은 예산사용 세부내역과 증빙서류를 추가로 청구했고 광주광역시는 집행된 예산의 총괄내역만 공개하고 세부내역과 증빙서류는 다시 비공개했습니다. 밝은 세상은 또 다시 행정소송으로 대응했고 역시 승소했습니다.

그런데 광주광역시는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를 재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듬에 이 항소는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결국 광주광역시는 재처분을 통해 시비보조금 중 인건비(수당),여비(국내외), 일반운영비, 자산취득비, 연구개발비 세부내역 및 증빙서류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유독 유치활동지원비의 내역만은 비공개했습니다.

결국 밝은 세상은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밝은 세상은 2012년 2월 정보공개거부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또 다시 법원은 광주광역시에 유치활동지원비도 공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는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다가 기각처분을, 상고까지 진행하지만 최종적으로 패소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광주광역시의 상고에 대해 “유치활동비 정보는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비공개하는 것이 비위 사실이 있었다는 반증이라며 오히려 그로 인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할 수 있다”며 지난 15일 1심과 2심을 확정했습니다. 6년간 세 번의 소송, 6번의 판결까지 밝은 세상과 광주광역시의 기나긴 법정싸움은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대규모 국제대회 유치활동비에 관한 정보는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 국가신인도에 관한 사항이 아닌 ‘공익’을 위하여 공개하여야 하는 정보라는 판례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 시민들의 행정감시를 피하기 위해 마땅히 공개해야 하는 정보를 임의적으로 비공개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사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건경과-


2008.8.1 유니버시아드 관련 최초 정보공개청구

정보공개청구내용- 2013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치 추진 관련 서류목록(유치활동내역 등) 및 예산사용 내역, 소요 예산 집행 정산 감사원 감사 결과

2008.8.7 광주시 비공개 결정통지

2008.9.25 행정소송 제기(1차 소송)

2009.9.24 원고 일부 승-예산 사용 내역 중 시비 집행 부분 공개판결

2010.1.27 정보공개청구-시비 집행 세부내역, 증빙 서류

(영수증, 지출결의서 사본 등)

2010.2.5 광주시 집행 총괄내역 공개, 그 외 집행 증빙 서류 등 비공개

2010.4.6 행정소송 제기(2차 소송)

2010.12.9 원고 승소-공개거부처분 취소

2010.12.27 광주시 항소제기

2011.9.26 항소기각 판결

2011.12.14 광주시 재처분(항소심 판결 취지 의거)

시비보조금 중 인건비(수당),여비(국내외), 일반운영비, 자산취득비, 연구개발비 세부내역 및 증빙서류 공개, 유치활동지원비 비공개

2012.2.14 행정소송제기(유치활동지원비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3차 소송

2012.12.27 원고승소-유치활동지원비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2013.1.17 광주시 항소제기

2014.5.14 항소기각 판결

2014.6.2 광주시 상고

2014.10.15 상고 기각 판결


시민이 만드는 밝은세상 홈페이지: http://gsfh.or.kr/


20141021시민이만드는밝은세상보도자료(유대회판결-대법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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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결정 권한은 국민에게 있다

2014.10.07




이상미

경복대 복지행정과 교수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


우리나라는 행정권이 입법, 사법에 비해 월등히 큰 전형적 개발도상국형 현대행정국가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안전행정부 장관은 ‘세월호특별법’과 관련지어 국회선진화법을 비난하면서 “내각제였다면 국회를 해산해야 할 상황”이라며 국회 자진해산을 촉구했다. 이런 발언을 보면 관료제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를 얼마나 무시하며 국민을 얕잡아 보는지 알 수 있다.


관료는 원래 정책 결정의 주된 참여자가 아니었으나 행정 활동이 전문화·복잡화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사회 발전에 따라 입법활동이 기술적으로 복잡해져 행정수반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법률 규정의 모호성과 비정밀성이 공무원들에게 재량적 결정권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한이 너무 비대해진 관료제는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으므로 정책의 민주화를 위해 관료의 결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입법, 사법, 행정을 불문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 부를 만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대통령의 지배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런데 현 시점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사회문제이자 정책 형성 과정에 있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대해 최고 정책 결정자인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대통령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며 입법부가 처리하라고 했다. 가장 강력한 정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 스스로 중대한 그 권한을 포기한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부는 헌법상 국가의 최고 정책기관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입법부는 정책 의제 형성에 대한 민의 반영, 법률 혹은 예산 형태로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 정책 집행에 대한 통제와 감시, 결산을 통한 정책 평가 기능 등을 수행한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행정국가화 현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이 과정에서 입법부의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사법부는 법률심사권, 법령해석권 등을 통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사법부의 정책 참여는 선진국의 경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행정권이 지나치게 큰 개발도상국에서는 사법부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거의 제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지나치게 비대해진 행정수반과 관료제 권한의 확대로 인해 입법부·사법부의 작동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편리할 때만 삼권분립의 원칙을 주장하며 책임회피와 독재에 나서고 있고, 국회는 국민의 입과 발이 되지 못하고 정권 획득에만 관심 있는 듯하고, 사법부는 탄압이 두려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판결만 내리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정보차단 명령을 내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열 등 개인정보조차 위협하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총체적인 무능과 부실, 독재가 세월호와 같은 사고와 사건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병들어 있다. 원인 분석과 대처 방안,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이 모든 총체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만약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흐지부지 묻혀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중대한 기회를 잃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가장 강력한 정책 결정 권한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대통령과 관료, 입법부, 사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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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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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발전 노동은 차별의 상징이다.

2014.08.29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언주

핵 발전이 만들어 내는 문제를 하나하나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핵사고와 같은 거대한 재난의 상황을 만들기도 하지만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수많은 문제들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 핵마피아, 비정규노동, 핵폐기물의 문제는 꼭 핵발전소의 사고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이 만들어 내는 반평화적이고 반인권적인 상황들이 삶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우리는 이미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안전하게 관리만 한다면 핵발전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핵발전이 만드는 차별. 그 중에서도 핵발전 노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일회용 노동자.


현재 일본의 핵발전 노동자의 피폭허용한도는 연간50m㏜, 5년간 100mSv입니다. 그런데 2011년 3월 후쿠시마핵발전소사고 이후 2014년 1월까지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일한 노동자 3만2034명 중 누적으로 방사능에 50m㏜이상 피폭된 사람이 1751명, 5m㏜초과는 1만5363명이라고 합니다. 현재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는 하루 약 3000명이 노동을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3년간 산재기준 이상 피폭노동자가 절반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피폭한도를 넘지 않은 저선량 피폭이라고 하더라도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핵발전소수습 작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임금은 가장 낮은 경우 일당 8천엔(약 11만원)이라고 합니다. 위험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원인은 중층 하청구조와 위장 청부 등의 위법적 노동 행태 때문입니다. 사고 이전에도 하청구조가 있어 왔지만 사고 후 하청구조는 10차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도쿄전력은 노동자 한 사람당의 임금을 하루 7만-10만엔으로 책정해 1차 하청업체에 지급하지만 실제 노동자가 받는 금액은 10분의 1 정도~ 10분의 7 수준이라고 합니다. 도쿄전력이 이미 하청업체의 중간수수료를 감안해 하청구조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많이 벌 수 있고 다른 조건들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방사능피폭의 위험이 있더라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이 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적 피폭허용한도가 넘으면 일할 수 없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는          <일본 핵발전노동자의 문제를 알리 

유로 피폭량을 속이기도 하는 노동자들이 있기도  합니다.         기 위한 퍼포먼스-2014년 젠코대회>

 ‘피폭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의 활동가 나스비씨는 현재 일본 핵발전노동의 실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모로 원전은 명백하게 빈곤과 차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어디에 가나 원전은 차별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원청은 하청 구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도쿄전력이 인정하는 것은 3차까지이다. 노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에 3차 하청직원으로 원전 현장에 들어간다. 고용관계가 위장되는 것이다. 누가 고용주인지도 모르는 애매한 하청구조는 전력회사에게만 좋은 것이다. 노동자는 피폭되면 일하지 못한다. 일회용 노동자이니까. 도쿄전력 직원들은 콘트롤룸 등 안전한 장소에서 일하고, 전력 회사들은 국민에게 원전 안의 깨끗한 실내만 보여준다. 원전은 깨끗하지 않은데, 깨끗하고 좋은 직장이라고 선전한다.”

한국, 핵발전 노동은 안전한가. 

그렇다면 한국의 핵 발전 노동의 현실은 어떨까요?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이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수원 출입 외주·하청업체 방사선 종사자 9,594명의 총 피폭량은 1만1427mSv로 1인당 평균 약 0.62mSv이라고 합니다. 반면 한수원 정규직 종사자 5,109명의 총 피폭량은 710mSv로 1인당 평균 0.13mSv입니다. 외주·하청업체 종사자의 피폭량이 한수원 정규직 종사자의 4.7배정도 높은 것이죠. 이중 원자로를 주기적으로 정비하는 두산중공업 노동자 414명은 1인당 피폭량이 2.78로 한수원 정규직 종사자 1인당 피폭량과 비교하면 무려 21배입니다. 이 차이는 2012년과 비교해서 더 늘어난 것입니다. (2012년 월성 1호기 압력관 교체를 맡았던 AECL(캐나다원자력공사) 노동자들의 평균 피폭량 2.65mSv과 한수원 노동자 평균 피폭량 0.14mSv은 18.9배였음.)


▲ <2013년 한수원 출입 외주 하청업체 노동자 방사능피폭량>

즉,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방사능 위험에 대한 문제는 가시적으로 있었지만 실제 핵발전소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피폭문제, 안전한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원자력안전법에 규정된 연간 피폭량 허용치는 일반인의 경우 1mSv, 방사선 작업 노동자들은 20mSv입니다. 법적 기준치 이상으로 피폭되지는 않았더라도 저선량 방사능 피폭도 분명 건강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피폭량 수치가 보여주는 것은 핵발전 노동이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건강권의 차별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방사선작업종사자에 대한 피폭선량 관리는 하고 있지만 핵발전소 외주·하청구조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비파괴검사 업체 등 피폭노동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는 거의 되고 있지 않아 핵발전 노동자 전체의 방사능피폭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으로는 핵발전소 안전 책임질 수 없다. 

얼마 전 영광핵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경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앞에서 몇일 동안 농성을 했습니다. 방사선안전관리를 담당하던 보건물리원 노동자 6명이 집단 해고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영광 제3발전소에서 방사선안관리를 하는 노동자 39명중 24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이들 중 찬반토론을 해 13명의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되었습니다. 지난 10년 이상의 노동기간동안 하는 업무는 바꾸지 않았지만 소속된 용역업체는 다섯 차례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한수원이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이른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고용이 승계된 것입니다. 원청사인 한수원 노동자들과 같은 업무를 하거나 심지어 훨씬 위험한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수원 노동자들의 전반이하이고 복지수준도 아주 낮습니다. 그들의 고용형태는 말할 것도 없이 불안하구요. 이 노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발전소에 출입하는 작업원들의 방사선피폭관리, 작업과정관리, 발전소에서 사용되는 물품관리이고 이외에도 방사선안전관리와 관련한 전반의 업무를 합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배테랑 노동자들입니다. 얼마 전 만났던 영광발전소의 노동자는 핵발전소는 많은 부품이 사용되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고 한 번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숙련성은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숙련노동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상태에서 노동구조는 결국 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있다구요. 이렇듯 핵발전 노동은 차별의 상징이자 우리가 반드시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사회적 문제입니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 노동환경의 개선, 차별적인 구조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9월 23일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 ‘포스트 후쿠시마, 핵발전 노동자의 삶’을 진행합니다. 핵 발전 노동자를 탐사취재해온 사진작가 히구치켄지, 피폭노동자를 생각하는 네트워크 활동가 나스비,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일했고 현재는 태양광발전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니이쯔마히데아키씨를 초청해 일본 핵 발전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합니다. 더불어 한국의 핵 발전 노동구조와 노동환경의 문제를 진단하고자 합니다. 핵발전 노동자들의 피폭문제, 노동의 차별적인 구조를 진단하지 않고서는 탈핵을 이뤄낼 수 없습니다. 핵없는 세상을 위해서 핵발전 노동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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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일본 시민사회, 세월호 참사를 주목하다

2014.08.07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


일본 비밀보호법 제정, 후쿠시마 사태, 강정마을, 세월호 참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일 시민사회가 각 나라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고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비밀보호법의 원조는 2007~2009년까지 제정 시도를 했던 한국 정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용과 형식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당시 반대운동을 벌였던 필자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시민사회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한국의 고리 핵발전소를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고장과 비리 중심에 있는 고리 핵발전소는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이기도 했다. 사고가 나는 순간 당사자인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닮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국의 움직임은 일본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오사카 젠코(ZENKO) 대회에 정보공개센터뿐만 아니라 청년유니온,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젠코 대회는 일본 MDS(Movement of Democratic Socialism)에서 1970년부터 꾸준히 열고 있는 행사로 ‘평화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전국 교류회’가 정식 명칭이며, 올해로 44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젠코 대회는 아베 정권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핵 발전 반대 등을 외치면서 한국과 이라크, 미국의 활동상황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활동가들을 초대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1년6개월 동안 복역했던 ‘전쟁 없는 세상’ 길수씨는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었다. 행사참가자 중 한 명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남북이 나누어져 병영국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나왔다며 한국사회에 사과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탈핵 행사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후쿠시마 근처에서 목장을 하다가, 자식 같은 소들을 두고 탈출해야 하는 후쿠시마 농민의 심정을 듣는 자리에서는 대회장이 다같이 슬퍼했다. 알권리 운동을 하고 있는 정보공개센터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 알권리 운동으로 전환했다는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지지를 표현했다. 정보공개센터는 방사능의 부작용을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그림표를 나눠 주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필자가 ‘세월호 참사와 알권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참가자들은 이 문제가 단순히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공감했다. 전 사회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하토리는 세월호 사태와 관련해 세월호특별법의 쟁점을 상세히 질문했고 일본 비밀보호법 제정 이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나면 투명한 정보공개를 방해할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재일동포 한 분은 일본 정부는 한국의 후진적 상황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했다며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핵 발전 관계자들의 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대회 첫째 날은 젠코 대회에 참가했던 전 세계 활동가들이 오사카 시내에서 아베 정권 반대를 외치면서 거리행진을 했다. 이 자리를 준비하던 중 일본 극우파와 마주쳐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당하기도 했다. 헤이트 스피치란 국적, 인종, 종교, 성 정체성, 정치적 견해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이다. 심지어 일본 극우파들은 재일교포 3·4세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에 와서도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있어, 수많은 학생들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시민사회는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 다같이 손잡고 춤추면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연대의 길을 가자는 결의를 했다. 그동안 참석한 어떤 행사보다 뜨거웠고,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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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주4일제 해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2014.07.30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내가 일하는 단체는 한달에 한번 꼴로 ‘당직’을 서야 하는 날이 있다. 그것도 금요일에.

오지 않는 전화와 손님을 기다리며 텅 빈 사무실을 홀로 지키는 기분이란….(사실 밀린 일 하는데 이만큼 최적의 조건은 없다) 

사람들에게 ‘당직’ 이야기를 하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야근수당 따위는 못받을 게 분명한 시민단체에서 당직까지 서야 한다니….게다가 불금에!” 하지만 이내 그 눈빛은 측은함에서 부러움으로 바뀐다. 우리 단체의 당직 시간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거든. 

올해 초 부터 우리단체는 금요일 2시 퇴근제를 시작했다. 그래서 금요일이면 오후2시에 당직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한다. ‘충전’을 위해서.

활동가라는 직업이 퇴근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퇴근 이후에 온전히 개인적인 생활을 하는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저녁시간을 회원과의 만남이나 회의 등으로 보내고, 주말에는 다음주에 할 일들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 진행, 끊이지 않는 집회일정 등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할 시간은………… 또르르………

쏟아내야 할 것은 많은데 채워지는 건 없어서 ‘새로운 발상’ ‘대안’ ‘창의성’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왔던 것’ ‘안전빵’ 위주로 일들을 기획하게 된다.

‘다른 삶’을 이야기 하면서 정작 ‘다르지 않은 삶’ 을 사는 게 활동가의 삶이다. 

그래서 결정했다. 금요일 2시 퇴근제. 

사실 2시에 퇴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삶이 짜잔 하고 열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고작 4시간 일찍 퇴근하는 건데도 다른 삶에 대한 ‘여지’가 생긴다. 삶의 질도 확 높아진다. 

사람 드문 극장에서 예매 없이 영화를 보는 것, 목적지 없이 골목을 누비는 것, 한적한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 이것이 얼마나 많은 만족감을 주는지. 우리는 모두 안다. 한번쯤은 상상해본 시간, 동경하는 삶이었으니까. 

소박하지만 상상했던 삶을 실현한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대로 사용하는 잉여시간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생각했던 것 보다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금요일 오후 2시 퇴근제를 시행하면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지? 활동가가 놀궁리만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나태해지면 어쩌지? 등등등…. 하지만 우려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일의 차질은 생기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퇴근 이후 야근(?!)을 해도 된다. 그리고 사실…. 반드시 금요일 오후에 해야 하는 일이 그렇게 많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업무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까지 줄어드는 건 아니기 때문에 두시에 퇴근 한 다음에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 근처 카페에 앉아 일을 하는 웃픈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ㅠㅠ

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거나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등 문화생활을 하기도 하고, 교육을 듣기도 하면서 예전이었다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활동에 접목시키는 일도 생겼다. 

나태는….. 사무실 밖에서 원하는대로 노는 것 보다, 사무실에 앉아서 오늘 저녁에는 뭘 하지? 뭘 먹지? 고민하며 맛집을 검색하거나, 페북 타임라인에서 댓글달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더 나태한 것 아닐까?

반년 정도 금요일 오후 2시 퇴근제를 시행한 결과 우리 단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만족해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단체들에도 ‘너희도 이거 해라’ 전도(를 빙자한 자랑)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좀 더 나아가 주4일 업무제를 실시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일단 9월부터는 금요일 격주 업무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금은 두시에 퇴근하고 돌아가서 당직을 섰다면 이제부터는 한달에 두 주는 아예 금요일에는 출근을 하지 않고, 출근할때는 10 to 6로 일을 하는 거다. 이렇게 금요일 업무 스케쥴을 조정해 가면서 내년부터는 금요일에는 아예 출근을 하지 않고 알아서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사실 활동가의 업무라는 게 출퇴근이 명확한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무실에 출근해야만 되는 일인것도 아니고, 공과 사의 업무 구분이 똑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들.. 동의 하시죠?)

그런데 우리는 왜 기성의 주5일 업무, 9시 출근- 6시 퇴근, 잔업과 야근을 떨치지 못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걸 고수하고 있는 걸까? 

일하다 죽을것도 아닌데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간을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노동시간 단축해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노동시간이 단축된 삶을 살아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낮에 퇴근해도,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해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체도 별탈 없고, 활동도 별탈 없다.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해 보니까 그렇다. 

업무시간 단축. 겁내지 말고 해봤으면 좋겠다. 시민단체들이 먼저 해봤으면 좋겠다.

딱 까놓고 말해서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충전도 일인데.. 충전은 없이 너무 일만 하고 있다. 

노동강도 높은 기업들 비판만 하지 말고, 업무 환경 좋다는 제니퍼소프트 같은 회사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가 해보자. 우리는 다른 삶을 이야기 하는 시민단체들 아닌가. 

후회 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한다. 


* 이 글은 시민운동 플랜B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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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삼평리, 밀양, 세월호의 기록작업

2014.07.25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사무국장
7월 23일 오늘, 경북 청도 삼평리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고 있는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삼평리에 평화를 – 송전탑과 맞짱뜨는 할매들 이야기 (한티재)> 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대구경북지역 언론사인 뉴스민과 청도 대책위 활동가들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11명의 할매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풀어 기록하고. 삼평리 싸움에 대한 투쟁일지를 정리했다. 기록을 통해 이 싸움이 기억되고,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서였다. 

“그러므로 이 싸움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시간이 흐르더라도 기억되어야 할 보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삼평1리의 투쟁과 주민들의 삶. 특히 할매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 <삼평리에 평화를> 서문 중에서. 천용길 –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을 10여 년간 해왔던 밀양에서도 삼평리에 앞서 책을 냈다. <밀양을 살다 –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오월의 봄)>. <삼평리에 평화를>과 마찬가지로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에 대한 15편의 구술기록이다. 
이 책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의 목소리, 밀양과 맺은 삶의 역사가 더 풍성하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투쟁에 대한 기록 뿐 아니라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개인의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송전탑 투쟁을 넘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더 많은 것들을 전하고 있다. 또한 구술기록을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를 아카이브로 남기자는 취지로 영상 작업도 함께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밀양, 반가운 손님> 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밀양 구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기억해야 할 이유가 분명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12월 쯤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공사를 막아내는 싸움이 조금 힘겨워지고, 밀양희망버스가 수천 명의 희망을 싣고 밀양에 다녀온 즈음, 밀양에서 전해오는 소식 너머에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더 있다, 그걸 전해야겠다는 마음들이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밀양을 사는 그/녀들의 울음과 웃음이 궁금했다. 그/녀들이 투사로만 등장할 때의 거리감이 그/녀들에게는 고립감이 되기도 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과, 그/녀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질 때 연대의 힘도 그만큼 살아 움직이게 될 거라는 절박한 기대를 품었을 뿐이다.”

– <밀양을 산다> 서문 중에서. 미류-
6월 11일 송전탑 공사 행정대집행 이후로도 밀양은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팀과 함께 밀양 송전탑 투쟁 자료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투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송전탑 투쟁뿐만 아니라 7월 24일로 사고 발생 100일째를 맞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록 작업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http://sewolho-archives.org)>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정리하는 시민기록단’이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모여 활동하는 이 모임은 ‘우리 사회가 세월호 사고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도록 세월호 사고의 기억과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하며 공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건의 공통점은, 변방(지리적 의미만이 아닌)에서 일어난 일이고, 권력과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당사자이고, 공권력을 통해 파괴되고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 사건과 당사자의 기억들이 크고 작게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기록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록은 싸움 혹은 사건의 전달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체 사회와 공유하고, 이후로도 미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집단적 기억은 그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기록을 통해 그 상황이 드러나게 되고, 그로 인해 당시의 상황과 현재가 소통이 가능해진다. 또한 금세 희미해지고 마는 이들 기억이 활자화되고 보존됨으로써 기억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언제나 ‘잊지 말자, 기억하자, 함께하자’ 하지만 너무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큰 싸움 뒤에는 더 큰 싸움이 터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끝까지 기억하고 그것을 시간을 관통해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단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서 정리한다고 해서, 추모리본 몇 개와 사진 몇 장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끝나는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국가가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과 작업들을 거쳐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삼평리에서, 밀양에서, 그리고 세월호의 기억이 기록이 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이 기록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기억이 되고, 그들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억과 기록의 공유가 필요하다. 기록을 넘어서 역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이 이제 그 기억을 공유하게 된 우리에게 남겨졌다. 
사실.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자. 
출판된 책 두 권<삼평리에 평화를>과 <밀양을 살다>를 구입하는 것과. 내가 가지고 있는 세월호 관련 사진들을 기증하는 작업부터. 

* 이 글은 인권오름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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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정부3.0. 제 점수는요.

2014.07.21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웬 뜬금없는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세월호 사고’ 얘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고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정부3.0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투명한 정부, 유능한 정부, 서비스 정부’를 내세웠다. 그 일환으로 정부3.0 정책들도 추진되었다. ‘정보공개청구가 들어오기 전에 원문을 공개하겠다. 부처간 칸막이 없이 통합적으로 업무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땠는가. 


세월호 사고 발생 이후 각 부처마다 구조 결과 같은 중요한 내용조차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다른 브리핑을 내놨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언론보도만 무성했다. 공문서들 역시 세월호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비공개로 하거나, 검색조차 되지 않게 조치해 버렸다. 정부가 제 능력을 발휘해야 할 위기 상황 앞에서 ‘소통’이나 ‘칸막이 없는 부처’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3.0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간혹 듣는다. 위엣 내용만 보고도 짐작했겠지만 내가 본 정부의 정부3.0 정책은 0점 수준이다. (단지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공공기관이 내가 요청한 정보공개청구들에 제대로 답변을 안해줬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밝힌다)


물론 잘한 것도 있다. 원문정보공개를 시행해서 이전에는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수수료를 내가며 받아봐야 했던 정보들을 정보공개포털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개정보가 PDF로 자동변환되지 않아 EXEL도, HWP도 공개한 형태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정부가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보공유에 관심이 많은 한사람의 시민이 체감하는 정부3.0의 혜택은 이것 말고는 없다. 이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환영했던 공개정보를 원파일 형태 그대로 받기 위해서 나는 어림잡아도 100통이 넘는 전화를 정보공개시스템에 걸어야 했다. 


애초 2014년 3월 3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원문공개 서비스는 개인정보 누출과 시스템 자체 문제 때문에 서비스가 한 달 여 뒤로 미뤄졌다. 범위도 전면 즉시 공개에서 국장급 이상 결재문서로 좁혀졌다. 정부가 양적 확대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정보제공 방법과 절차를 간과한 결과였다. 



청와대는 비공개문서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원문공개 대상 기관에서 제외되었다. 원문공개율 역시 저조하다. 안전행정부는 애초 공개율을 30%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원문서비스 시행 한달 뒤 조사에 의하면 국장급 이상 결재문서 중 95%가 비공개 처리해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일부 기관은 원문이 공개된 결재문서가 한건도 없거나, 목록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공공정보 전면개방을 외쳤지만 일부 기관에만 적용되는 반쪽짜리 정책이었다. 

그럼 정부가 정부3.0을 추진하면서 잘못 한 것, 혹은 아직 안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한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3.0 비전 선포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모든 정보를 폐쇄적,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투명하지 않게 결정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민 행복을 만들어 가기도 힘들 것입니다. 

국민을 중심에 두고 개방과 공유의 정부 운영을 펼쳐나갈 때, 깨끗하고 효율적인 그런 국정 운영이 가능하고,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동력도 더 커질 것입니다“

– 2013년 6월 19일 정부 3.0 비전 선포식, 박근혜 대통령 축사 중-

정부가 모든 정보를 폐쇄적, 독점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것. 투명하지 않게 결정하는 기존의 방식. 이것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정부는 국가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일부 권력기관을 제외한 채 정부3.0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결재문서라는 결과만 공개될 뿐, 업무의 과정은 여전히 불투명할 뿐이다. 중요한 의제,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국민의 진입장벽은 높기만 하다. 

국민을 중심에 둔 개방과 공유의 국정운영이라고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역시 여전히 요원하다. 알권리는 정보공개를 통해 보장된다. 정보에의 접근이 보장되어야만 알권리도, 자유로운 의사 형성도,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정보에의 접근과 수집과 처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것의 컨트롤을 정부가 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판단이 내려진 후의 정보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가 접하게 되는 정보 이면에는 통제되고 은폐되는 정보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알권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 알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수준인 것이다. 개방과 공유의 국정운영이 국민 중심이 아니라 권력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보니 권력이 문제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지 않고, 정부에 있게 되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공개할 것이 아닌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을 염두에 두다보니 정부3.0이 틀어진다. 공개정보의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려다 보니 정책이 삐걱거린다. 어떻게 해야 개선될까를 생각해보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변화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행정적인 측면에서의 교육 말고 정보인권 접근으로의 교육을 늘려야 한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3.0 경진대회 열어 성과를 나열하려 하지 말고, 정부3.0 설계부터 차근차근 해야 한다. 정부3.0의 기반인 정보공개부터 제대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 정보공개와 기록관리를 담당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고 한숨 쉬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보권력이 정부에서 국민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일선 현장에서의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나같은 상습적 정보공개청구인과 상대하랴, 정부3.0을 실현해 나가랴 고군분투하고 계신 현장의 분들의 건투를 빌며(진심으로!!!) 글을 마친다. 


* 이 글은 한국기록전문가협회 기관지 <KARM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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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없는 도서관은 창고일 뿐이다

2014.07.03










 


양리리 이사

(신촌홍익문고지키기주민모임 대표)

며칠 전 공공도서관 특강에 감동한 주민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집에 있는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셨다. 읽지 않거나 혹은 이미 읽은 책들을 집에 두고 혼자 보느니, 여러 사람과 함께 보고 도서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하셨다. 이런 마음이 모여 6월19일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 열린 도서관을 표방하는 ‘지혜의 숲’이 개관하였다.


서가에는 개인과 출판사들이 기증한 헌책 50만권 중 우선 20만권 정도가 1구역은 개인기증자별로, 2·3구역은 출판사별로 책을 꽂아 놓았다.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대출은 안 된다. 게다가 ‘지혜의 숲’은 사서 대신 책과 독서를 권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권독사’를 통해 자원봉사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도서관의 4대 요소는 책, 사서, 시설, 이용자이다. 그러나 열린 도서관이라 표방한 ‘지혜의 숲’에는 사서가 없다.


▲ 사진출처 : 뉴시스


책을 많이 배열해 놓았다 해서 도서관이 될 수는 없다.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정확히 제공할 수 있는 ‘정보조직’(분류 목록 작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쌓여만 있다면 그것은 책더미 혹은 종이집합장과 마찬가지이다. 도서관 사서는 한정된 예산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수서(收書) 업무를 통해 매우 신중히 책을 선정한다. 이때 사서는 책이 담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이용자와 사회에 필요한 것이며, 나아가 인류문명과 역사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것인지 치밀한 고민을 한다. 보통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기가 쉽지 않기에 추천도서목록과 베스트셀러 중심의 편중된 독서를 하는 것이 우리 독서문화의 현실이다. 사서는 도서관법에 따라 자격증이 발급되는 전문직종이다. 그러나 출판도시문화재단 권독사의 자격요건은 경력·학력·나이·성별에 제한이 없으며,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는 분이라고 되어 있다. 역할은 ‘지혜의 숲’ 관리와 수장도서의 내용을 파악하여 방문객들에게 안내하고 독서를 권유하는 것이다.


‘지혜의 숲’에는 검색용 피시가 없다. ‘정보조직’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권독사가 좋은 책을 추천하더라도 그 책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정보화시대 가장 기본적인 검색조차 할 수 없고, 책과 시민을 연결시켜줄 사서도 없는 그곳을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를 수 없다.


‘지혜의 숲’에 이미 7억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국고가 지원되었고, 추가로 5억원이 더 지원될 예정이라고 한다. 예산 낭비이다. ‘지혜의 숲’이 진정 도서관이 되고자 한다면, 책을 기증이 아닌 구입을 통해서 구비하고 사서를 배치하여 운영해야 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도서관계에 ‘지혜의 숲’의 잘못된 행보가 기형적인 도서관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까 우려된다.


도서관과 책을 아끼는 시민들은 지속적인 공공도서관의 개관과 예산 증액, 그리고 예산이 올바르게 집행되었는지 감시해야 한다. 사서가 모든 도서관에 배치되도록 요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서관은 아름답게 보이는 전시성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도서관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왜냐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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