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특수활동비 논쟁, 본질을 생각하면 명확하다

2015.09.09


국회에서 여·야간 특수활동비 개선 여부를 두고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립이 얼마나 첨예한지 국회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산재해 있고, 당장 며칠 뒤부터는 국정감사가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는 그 업무마저 정지되었을 정도다. 특수활동비는 지금처럼 정치영역에서 논쟁 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민사회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이어져 왔다. 잘 알려졌다시피 특수활동비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또한 최근에는 특수활동비와 관련된 고위공직자들의 부정사용 의혹과 비리가 연달아 발견되어 왔기 때문이다.

위 사진:(출처: 국민TV)


특수활동비가 뭐길래 


특수활동비 개선을 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특수활동비 공개와 개선에 반대하고 있다. 그 명분은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 감사원, 국회, 헌법재판소 등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헌법기관에 편성되는 특수활동비가 세세하게 공개되고 그로 인해 사용이 제한될 경우에는 국가안보가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행정 및 의정 효율성을 위해 고위 공직자들이 드러나지 않게 행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그간 공직자들의 특수활동비 유용 의혹으로 특수활동비 사용의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전면 점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공기관 전체 약 8800억 원의 특수활동비 예산 중 절반이 넘는 약 4700억 원을 지출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가 적절하게 쓰이는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특수활동비에 관한 입장 차이 같지만, 이 문제는 사실 그리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이 논쟁이 안보와 행정 및 의정 효율성이 알 권리와 충돌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결국, 가치의 문제라고 할 때 이들 가치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해보고자 한다. 논의가 혼탁할 때는 결국,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 최소한 명확함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와 효율성 VS 알 권리?

우선 국가안보는 국가 안전보장(安全保障, national security)을 줄인 흔히 쓰이는 개념이다. 국가가 외부의 위협과 불안에 대해 안녕이 보장되고 대응이 준비된 상태를 말한다. 근대국민국가가 들어서고 국경이 존재한 이래, 모든 국가들에 외부의 위협은 항시적인 것이었다. 결국, 안보는 달성 가능한 완료상태나 객관적 도달지점이 아닌 항시적으로 지속되는 정부의 행위이며 주관적인 상태이다. 따라서 국가안보의 범위나 행위 또한 역사적으로, 시기적으로, 또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냉전이 해체되면서 전 세계, 특히 북미와 서유럽에 위치한 선진국들의 안보 조건은 완전히 변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이 진행 중으로 한국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이 두 국가 각각의 북쪽과 남쪽 국경은 휴전선이다. 또한 한국의 산업기밀을 외국(특히 중국)으로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들의 활동 또한 지속적인 안보문제로 대두된다. 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부가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활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며 이런 중요한 기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증빙 없는 예산의 지출도 가능하다. 단, 조건은 이런 안보활동이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한 원칙으로 두고 내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국민들이 정보기관을 신뢰하는 한에서 그렇다.

다음으로 고도의 정치 행위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되고 있는 행정 및 의정의 효율성(效率性, efficiency)이란 것은 경제적 개념이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과 효과를 얻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말은 곧잘 생산성(生產性, productivity), 경제성(經濟性, economic efficiency)과 같은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경찰과 검찰, 감사원 같은 치안과 수사의 기능을 수행하는 공직자의 경우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사과정에 긴급하게 필요한 지출을 증빙하지 않도록 하는데, 이런 증빙이 필요할 경우 증빙 절차에 따른 행정력과 시간이 등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또한 관련 정보가 공개될 경우에는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경우 특수활동비가 국회의장, 부의장, 교섭단체장, 각 상임위장을 맡는 의원들에게 지급된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특수활동비의 명목은 분명 의정활동의 효율성일 것이다. 국회 내의 치열하고 분분한 쟁점들을 원활하게 조율하고 협상을 진행하고 국회 외부의 자원으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의 일을 정해진 회기와 멀게는 임기 내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찰부터 국회의원에 이르는 공직자들에게는 이런 효율성이 중요하다. 단, 조건은 이런 특수활동비가 공직자들의 당연한 특권으로 머물거나 개인적인 편의, 유흥, 또는 어떤 형태의 경제적 이득으로 유용되지 않는 한에서 그렇다.

반면 앞서 설명한 가치들과 대립하고 있는 알 권리(right to know)는 (정치적)표현의 자유와 상보 관계를 이루는 인권 개념이다. 알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상보 관계를 이루는 인권 개념인 까닭은 시민으로서 개인이 정부의 정보에 대한 접근이 금지된다면 자유로운 옹호와 반대, 비판, 대안제시 등의 의견개진과 함께 넓게는 이런 정치적인 결단에 따른 결사 또한 금지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알 권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특수활동비는 국가구성원 각 개인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회가 안보와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라는 합의에 의해 알 권리라는 보편적 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권을 제한하는 것의 정당성이란 것은 앞서 이야기한 가치에 달라붙어 있는 조건들을 충족하는 것에 있다.

특수활동비, 알 권리를 요구하자

하지만 이런 안보와 효율성이 용인되는 조건으로서 정당성들은 일찍이 무너졌다는 걸 국민 모두 알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2012년 대선개입과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내국인 사찰의혹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명하지 못해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난 2011년 김준규 검찰총장은 검찰 간부들에게 나름의 보너스를 지급했고, 올해 홍준표 경남도지사, 신계륜 의원 등 공직자들의 특수활동비 유용 정황이 드러나면서 특수활동비가 공직자 개인에게 부여되는 당연한 특권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드러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최소한 특수활동비 제도 정비를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특수활동비에 대한 우리의 알 권리를 다시 요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강성국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


*이 칼럼은 2015년 9월 2일자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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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록관리, 공공성 강화가 답이다

2015.09.09

민영화의 그림자가 공공기록관리의 영역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2014년 12월 공공기관의 종이기록을 폐기하고 전자기록으로 보관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 ‘규제기요틴 과제’의 하나로 선정되더니, 올 3월 보존기간 10년 이하인 기록에 이를 수용하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급기야 지난 7월5일, 일부 공공기관의 전자기록 보존업무를 위한 민간기록물관리시설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정법률안이 행정자치부에 의해 입법예고됐다. 오는 9월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예정돼 있다는 이 개정법률안의 적용대상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을 제외한 850여개 ‘기타 공공기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공공기관의 전자기록관리를 위한 일련의 제도 변화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일부개정법률안은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 효율성 제고”를 제안 이유로 들고 있다. 공공기록물관리를 위해서라고 한다. 알쏭달쏭하다. 저간의 사정을 보면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로부터 요청받은 규제개혁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를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7월10일자 정부 보도자료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공공기록물 관리법상 공기업 등 공공기관은 기록물 보존을 위해 기록물 관리기관을 설치·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전자문서법상 공인전자문서센터 활용이 불가해 기록물 보관 관련 신규 투자 수요”를 저해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국가 및 지자체를 제외한 기타 공공기관이 ‘민간기록물 관리시설’(기록원장 지정·고시)을 활용해 전자기록물을 보존·활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이다. 신규 투자수요라는 기업과 시장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공공성의 논리로 시작된 일이 아니다.

이번 개정법률안의 적용대상인 기타공공기관들이 전자기록관리에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마디로 전자기록관리의 사각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찾은 해법이 민간기록물 관리시설의 허용이라 한다면 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다른 대안과 처방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일이다. 일방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민간영역의 공공기록관리를 고민하기 전에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를 강화할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할 일이다. 유엔 전자정부평가 세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의 저력과 자신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는 그 정책에 누가 웃고, 누가 울고 있는지로 가늠할 수 있다. 한국전자문서산업협회는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있고, 대다수의 기록관리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의견을 내고 있다. 왜 이리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에서부터 공공기록관리 주권의 포기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온다. 보안의 문제가 대두되는가 하면,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간 위탁이든, 민영화든, 그 근저에는 공공의 영역보다 민간의 영역이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뛰어나다는 전제가 있다. 

이번 개정법률안이 가져올 제도의 변화가 많은 우려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만큼 준비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록관리의 공익적 가치를 일부 양보할 만큼의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우리나라, 아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민간 위탁과 민영화 사례들의 끝자락에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민간기업에 공공기록관리 문제의 해법은 없다. 공공기록관리 문제는 공공성 강화가 답이다.


김유승 |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소장·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이 칼럼은 2015년 8월 18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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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스스로 구원하라 : 정부의 비정상적 대응과 정보은폐 관한 단상

2015.07.02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활동가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 사태가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24일을 기점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의 증가 폭이 뚜렷하게 감소했으며 6월 27일과 28일에는 아예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6월 29일 현재까지 182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으며 비통하게도 32명이 이 감염병을 통해 세상을 떠났지만 1달 여 만에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상황이 진정되어 감에 따라 우리는 이번 사태와 정부의 대응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되돌아보고 평가함으로써 정부에게 안전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대응과 국가 이미지

우선 메르스 사태 전반을 통해 드러난 정부 대응에 관한 일반적 평가는 ‘무능’이었다. 최초 발병자에 대한 통제부터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고 역학조사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자체 및 병원 등 현장과의 협력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또한 학교들 집단적 휴교 문제를 두고 학교당국 및 교육부와 사태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등 보건복지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로써 정확한 대응을 통해 상황을 통제했다기보다 오히려 상황에 끌려 다니는 대응을 해왔다. 신(神)이 무능이라는 악덕을 정부조직으로 만들었다면 그건 아마 보건복지부였을 거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보건복지부가 단순히 무능하다는 결론으로 평가를 마무리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면 보건복지부의 메르스 대응은 무능을 넘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2013년_보건복지부_감염병위기대응훈련_상황설정(20130507)

보건복지부의 대응이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첫 번째 이유는 우선 보건복지부가 메르스에 관한 두 번의 감염병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는 2013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위기대응훈련 내역을 정보공개청구 했는데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2014년을 제외한 2013년과 2015년에 감염병 위기대응 훈련을 했다고 공개해 왔다. 그런데 자세한 훈련 내용을 살펴보니 2013년과 올해, 총 2회에 걸쳐 메르스에 대한 위기대응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훈련의 내용은 2013년과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지난 5월 20일에 이루어진 두 번의 훈련이 모두 동일하게 메르스에 대한 특징과 감염성, 현장 대응능력 점검과 같은 현실적인 내용이 결여된 2시간 안팎의 짧은 시간동안 기존의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을 점검하고 대응방식을 확인하는 토론식 훈련이 전부였다. 훈련시간과 내용이 부족했던 것과 훈련방식이 형식적이었던 사실은 정부가 무능하다는 평가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대응이 비정상적인 부분은 훈련한 대로 대응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위 사진:2015년 안전한국 훈련 감염병 분야(20150520)

특히 지난 5월 20일 진행된 감염병 위기대응 훈련에서는 첫 환자가 확진되고 환자 가족 및 의료진에게 유사증상이 확인 되는 등 유사환자집단이 총 4명 발생할 경우 위기단계를 “경계” 단계로, 또한 총 5개 시도에 39명 환자가 발생하고 환자 접촉자 700명을 모니터링 하는 경우 위기단계를 “심각” 단계로 설정하고 메르스 대응 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제 대응은 전혀 다르다. 첫 환자가 발생한 5월 20일 부터 6월 29일 현재 누적 확진자가 182명, 사망자가 32명으로 늘어날 때까지 보건복지부는 위기 단계를 오직 “주의”로 유지하고 있다. 매뉴얼 상에서 위기단계별로 정부 대응에 대한 주문이 상이한데도 그렇다. 주의 단계에서는 단지 ‘방역 대응 태세 및 인프라 재정비’를 주문하고 있고 경계 단계에서는 ‘방역 대응태세 및 인프라 적극 가동’을 주문하고 있다. 왜 정부는 훈련했던 대로, 그리고 매뉴얼대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난 6월 8일 국회에서 열렸던 메르스 관련 긴급 현안질문에 출석한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문 장관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국가적 이미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즉 훈련한 내용과 매뉴얼 상으로는 이미 “심각” 단계의 대응을 실시했어야 함에도 국가의 체면 때문에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감염병을 제압하기 위한 매뉴얼과 대응 훈련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전혀 생뚱맞은 명령이 갑자기 등장한 상황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현장에서 이뤄져야 하는 실질적 대응과 정부가 지시한 대응 수준의 괴리가 생긴다. 그리고 당연히 다음의 질문들이 이어져야만 한다. 국가의 이미지라는 명령은 과연 누가 한 것인가. 그리고 확진자와 사망자를 단 1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정말로 필요했던 대응의 단계는 무엇이었는가.

정보은폐와 산업으로써 의료

위 사진:[출처] 참세상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가장 명확한 방법. 바이러스와 감염 가능한 신체와의 완전한 격리. 이번 메르스 사태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다행인 점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병원 밖으로 광범위하게 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려진 대부분의 감염의 경로는 병원이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사태 초반부터 원칙적으로 메르스 발병 병원과 지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시민들은 SNS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메르스 발생 병원들을 공개하고 공유하기 시작했고 6월 4일 익명의 개발자는 메르스가 발생한 지역과 병원을 지도위에 표시해 주는 “메르스 지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공개했다. 정부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제 기능을 거부하자 시민들이 직접 서로의 정보를 공유해 위기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메르스가 발생한 병원 목록의 공개를 사태 발생 약 2주가 경과한 6월 6일에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삼성서울병원을 통해 특히 많은 3차 감염이 발생한 뒤였다.

보건복지부에서 제작한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는 이미 주의 단계에서부터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을 통해 불필요한 불안감 해소”를 보건복지부의 임무 및 역할로 지정하고 있고. 무엇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제2항은 “국민은 감염병 발생 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명시해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의료인, 시민단체, 언론 대부분이 보건복지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보건복지부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과연 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것에 대한 답 역시 문 장관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문 장관은 지난 6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질의응답을 가졌는데 여기서 병원 목록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메르스 전파력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병원 비공개 방침을 정했다 … 병원 이름을 공개하면 병원에 안 찾아가고, 병원이 피해를 입게 된다 … 이를 우려해 병원이 신고를 하지 않거나, 환자를 거부를 하는 현상이 일어나 사태가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짧은 말을 통해 공중보건과 의료에 대한 문 장관의 관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문 장관의 관점에서는 전파력이 불확실한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병원의 경제적 손실을 방지하는 것이 시민 일반의 감염 위험보다 우선한다는 것 이다. 의료가 산업으로써 작동할 때 공중보건은 때때로 고려되어야 하는 하위의 가치가 된다.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 잠언 6장 5절

따라서 한 달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메르스 사태 동안 보건복지부가 보인 대응의 문제점의 본질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시민의 생명 보다 국가 권위와 산업의 이익이 정부의 판단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산업의 이익을 이유로 시행한 규제 완화는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고 국가의 권위가 작용하며 진상조사의 시작은 요원해지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1년하고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세월호는 바다 밑에서 “스스로 구원하라”는 조난신호를 여전히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어쩌면 메르스 사태가 이 정도 피해에 그치고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시민들이 더 이상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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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대응 잘하던 한국, 메르스엔 왜 속수무책?

2015.06.03

[기고] 중국이 본받던 한국, 왜 이렇게 됐을까


전진한 알권리 연구소 소장 (정보공개센터 정책위원)


중동에서 발병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에서 크게 유행할 조짐을 보인다. 수많은 시민이 메르스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부의 부실하고 무원칙한 대응에 분노하고 있다. 서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이곳이 대한민국 수도가 맞는지 답답하기까지 하다.

지난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廣東) 성에서 발생, 홍콩을 거쳐 세계로 퍼진 전염병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응해 한국 정부가 보여줬던 기민한 모습과는 정반대다. 당시 한국 정부는 사스 발병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는 사스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세계 보건기구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모범적인 전염병 방역 국가였다.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사스의 발생지로 지목받았던 중국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필자는 2010년 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학교 ‘공공참여 연구와 지지센터'(공공참여센터)의 초청으로 베이징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인민의 알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정보공개청구제도(정보공개법)를 도입했는데, 필자에게 이 법의 운영과정 전반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그때 공공참여센터 담당자들과 중국의 정보공개제도 도입 과정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놀라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중국 공산당과 인민은 2003년 당시 중국 관료들이 사스 대응 과정에서 보인 무능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스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대책 하나를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 관료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것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참고 대상이 한국 정부였다. 사스 발발 당시 한국 관료들의 신속하고 전문적인 대응을 보면서, 중국 관료와 한국 관료의 차이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 바로 정보공개법의 도입 여부였다.  

한국은 지난 1998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관료들이 생산한 정보가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시민이 정보공개 청구권을 가짐에 따라 공공기관의 투명한 행정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공무원은 시민과의 접촉면이 늘어났고, 인민 위에서 군림하려고 했던 중국 관료들과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공공참여센터 담당자들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중국도 원자바오 총리를 중심으로 정보공개법의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정보공개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정보공개제도 선진국 사례들을 꾸준히 모으고 조언을 받으면서 중국은 정보공개제도 도입을 결국 이루어냈다. 

이로써 2008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거의 모든 공공기관의 재정, 예산, 결산 등 통계자료와 행정사업, 공공위생과 식·의약품 안전 등에 관한 긴급사항, 토지 개발, 환경 규제 등의 정보가 공개 대상이 되었다. 또한, 중국 인민과 기관이 관련 정보를 청구하면 행정기관은 15일 이내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필자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어떤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는지, 그 청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담당자들은 정보공개제도로 인한 한국의 변화상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한국에서 일어난 정보공개운동을 중국에서도 펼쳐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 결과 2015년 현재까지 중국의 정보공개제도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사스 발발 후 약 10여 년, 그 사이에 유능한 방역 정부는 왜 무능한 집단이 되었을까? ⓒ연합뉴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메르스 관찰 대상자만 1000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각종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학교는 휴교에 들어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12년 전과 비교하면 무엇이 어떻게 변했기에 한국 관료들이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바뀐 것인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관료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세월호 사건 이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국민안전처의 담당자가 “300만 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어야 비상상황”이라고 발언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국가에 큰 사태가 발생할수록 대통령과 정치권은 책임지는 리더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시스템이 잘 굴러갈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예산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 정부의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12년 전 사스 사태를 겪고 철저히 내부에서 개혁을 추진해왔음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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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2015.04.06

숨겨진 정보, 전문적인 정보에 햇볕을 허하라.–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을 왜 시작했는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책위원

전진한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온몸을 감싸면서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아직도 느껴진다. 당시 주변에 많은 활동가들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고, 모이기만 하면 스멀스멀 용솟음 치고 있는 방사능 걱정으로 한숨 짓기 바빴다.

반면 일반 친구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미국 쪽으로 갈 것이라며 우리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웃던 친구가 있었다. 너무 기가차서 각종 수산물과 공산품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물으니,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또 한 친구는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흉측한 괴 생명체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도 이렇게 되냐며 나에게 묻곤 했다.

당시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우리 활동가들이 벌이고 있는 각종 운동의 과정과 결과물들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핵발전소 및 방사능의 각종 어려운 용어는 이를 더욱 가로막고 있었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그토록 위험한 핵발전소와 방사능의 위험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후 우리가 직접 이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쓰면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2013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핵발전소 문제 및 방사능 문제를 인포 그래픽으로 정리한 ‘방사능 와치(http://www.nukeknock.net)’ 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인포그래픽은 디자인 전문가들과 홍익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도움을 얻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환경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용어는 되도록 쉽게 풀어 썼다. 사이트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 사이트의 개설과 동시에 트래픽량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페이지뷰가 800만이 훌쩍 넘어갔다. 이 경험은 참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었다.


▲ 방사능와치에 올라와있는 인포그래픽

그러나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들은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다. 당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들에게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자고 했다. 자료를 찾을수록 엄청난 비밀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통계청 사이트에는 선박들의 연령을 20년에서 25년으로 늘려주었던 2009년부터 해양사고가 속출했다는 통계를 볼 수 있었다. 프리즘이라는 사이트에서는 2010년 당시 국토해양부가 생산한 보고서에 해양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운항 일정이 바빠 시스템을 유지할 시간이 부족하고, 안전관리매뉴얼의 분량이 많으며, 심지어 선원의 나이가 많고 선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버젓이 공개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4년이나 방치해 둔 것이다.

해양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목표여객터미널에 12척의 배를 2시간 20분 동안 점검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있었다. 한 척당 13분이다. 자전거 한 대도 제대로 검사하지 못할 시간으로 선박을 검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기가 막힌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자신들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 매뉴얼에는 컨트롤 타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매뉴얼에는 큰 재난사고가 나면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만들어 시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총체적인 부실에 의해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언론의 경쟁적 취재로 실시간으로 보도되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자료를 미리 발견해 시민들과 소통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이런 자료들은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기도, 해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자료들,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이 사건 이후 향후 시민운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우선 기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있는 정보들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딱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컨텐츠를 살펴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결과물들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근 웹툰으로 제작된 미생, 송곳 등은 한국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뼈아프게 느껴야 할 지점이다.

또 다른 결론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보다는 일어날 사고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용역서, 학계 논문, 통계, 빅데이터 등을 찾으면서 위험성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핵발전소 등의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고 지역주민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 대한 위험 예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정보는 넘쳐나지만 시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미지출처 : The Library by Zhu, on Flickr)

 

중학교 2학년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 이라는 단체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단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을 인포그래픽, 웹툰, 카드뉴스, 동영상 등으로 가공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각종 자료들을 찾아서 공개할 예정이다. ‘바꿈’은 스스로 몸집을 키우지 않고,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하는 데 최대한 집중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 복지공동체, 안전사회, 지속가능한 미래, 한반도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이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최대한 쉽게 가공해 시민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컨텐츠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이 중에서 우리사회의 부패하고 썩은 곳을 지적하는 내용은 잘 찾을 수 없다. 온갖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반면에 구석구석 시민들을 위해 훌륭한 컨텐츠를 만드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있지만 내용의 전문성과 딱딱함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 ‘바꿈’의 최대 목표가 될 것이다. 향후 ‘바꿈’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창립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나조차도 기대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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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사립대학 정보공개청구 체험기] 정보공개청구가 ‘업무방해’라니요

2015.02.09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자원활동가 이수현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투명한 행정운영을 위해 제정된 정보공개법은 교육기관의 정보에 관한 특례법을 별도로 설치해 학교·교육행정기관 및 교육연구기관 역시 정보공개 청구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립대학교 역시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정보공개 대상에 속한다. 이는 관련 판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본바, 정보공개에 성실히 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립대학교들 대다수는 관련 법률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 사립대학, 홈페이지에 정보공개청구 안내 없어

 늘 미뤄왔던 정보공개청구를 드디어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고 청구 계획을 세웠다. 처음이라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차근차근 관련 자료를 모아 청구서를 작성했다. 청구대상을 등록금 상위 10위 서울 소재 사립대학교로 정한 뒤 이들에게 ‘최근 3년 동안 진행된 외부 강사 초청 강연 내역’을 요구했다.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강사 초청 특별강연이 학교본부의 성향, 취향에 따라 편향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사소한 의문에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이토록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립대학들은 정보공개와 관련해 놀라울 정도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국공립대학의 경우 정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청구 포탈을 통해 접수가 가능하지만, 사립대학은 각 대학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를 해야 한다.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정보공개청구서를 접수하기도 전에 기관 담당자들과 수차례 전화통화를 해야만 했다. 어디로 정보공개청구를 해야할 지 알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청구대상이었던 열 곳의 사립대학 중 절반은 홈페이지에 정보공개청구 관련 안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안내되어있던 나머지 중 한 곳도 안내만 되어있을 뿐 정작 청구서를 접수할 이메일은 적어두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각 대학의 대표번호 혹은 교무처로 전화를 걸어 직접 문의했다. 이것조차도 황당했지만 다음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이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정보공개청구 관련해서 문의하려고 하는데요.”

“네?”

“정보공개청구요”

“네?정보공개청구요?

… 그게 뭐에요?”

<홈페이지에 정보공개청구 안내가 있는 대학의 홈페이지 캡쳐>

 “정보공개청구가 뭐죠?”

 많은 학교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을 보였다. 정보공개청구가 뭐냐며 되려 나에게 되묻는 것이 아닌가. 어떤 곳은 대학알리미의 주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순간 머리가 새햐얘졌다. 모르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너무 당당해서 또 당황스러웠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제가 아는 건 정보공개법에 따라 누구나 교육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가 있고, 사립대학도 그 대상기관에 포함된다는 거에요. 담당자가 누군지는 학교가 저한테 알려주셔야죠.”

 전화를 받은 한 교직원은 난감하다는 반응을 계속 내비치더니 그게 뭔지를 몰라 어떻게 해야할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아무렴 나만큼 난감할까. 정보공개를 청구할 테니 안내를 해달라는 ‘나’와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교직원’,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정보공개청구 내용을 전화로 설명한 후 이 같은 내용이면 어디로 접수하면 되겠느냐고 물으니 이제는 “그런 자료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정리된 자료가 없다면 관련 자료를 취합해 공개해야 할 것이고, 취합할 자료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보공개처리 절차에 따라 부존재 처리를 내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정보를 알아보려는 어떤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런 자료는 없다’는 교직원의 태도가 너무나 황당했다. 통화 내내 예상치 못한 전개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겁도 나 그냥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런 식의 태도라면 어느 누가 쉽게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을까.

 결국 교직원은 담당자를 알아본 뒤 내일 오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물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정보 공개할 의지가 있긴 한가요?

 설령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정말 처음 듣는다 할지라도, 청구인을 대하는 교직원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어야 했다.

1. 내부적으로 수소문한 후 정보공개 담당자 찾아 연결해준다.

2. 전화를 받은 교직원이 청구서를 접수한 후, 담당 부서로 이송 조치한다. (실제 정보공개청구 포탈은 접수된 청구서가 잘못된 곳에 청구된 경우 담당 부처로 이송 처리한다)

 청구인의 의무는 정보공개청구서를 형식에 맞게 작성해 담당 기관에 전송하는 것이다. 그 외, 청구서를 접수하고 처리하는 일은 전적으로 기관의 몫이다. 청구 과정 중에 실제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한 대학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심지어는 한 대학교 교직원은 나의 이 같은 행위가 “업무방해”라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청구서를 이메일로 전송한 지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교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이건 기간(3년)이 너무 방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건 완전 업무방해다. 정보공개법은 읽어보고 청구하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정보공개 이행의 의무를 지닌 사립대학이 정보공개청구 업무를 자신들의 업무로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기간이 방대하다’는 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청구인이 고려해야할 사항이 아니다. 

 실랑이 끝에 나는 “정보공개법에 맞게 처리해주시면 된다”고 말했고 이 교직원은 “네, 알겠어요. 이건 제가 비공개처리를 할 겁니다. 법에 맞게 하겠습니다.”라며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청구한 지 2분 만에 구두로 비공개처리를 내렸다. 대한민국 정보공개역사상 최단기간 결정통지가 아닐까. 이 대학에선 청구접수 열흘을 넘긴 현재까지 아직 공식적인 결정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또 한 대학은 처음엔 정보공개청구가 뭐냐며 우왕좌왕하더니 나중에는 담당자가 출장을 간 관계로 다음 주에나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정보공개청구 접수도 올스탑이라는 놀라운 논리였다. 정보공개의 의지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사립대학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2014년 연세대 학생대표와 참여연대는 연세대학교의 정보비공개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청구하는지가 중요한가요?

 정보공개청구 과정에서 “정보공개청구가 뭐냐”는 질문과 함께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청구한 이유가 뭐냐”이다.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이유에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때문에 나는 있는 그대로, 나는 ‘시민’이고 ‘알고 싶어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고 답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그 이상의 구체적인 대답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왜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는 받고자하는 정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또 간혹 본교 학생인지를 묻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어느 대학생이 자유롭게 자신이 재학 중인 대학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을까. 행여 이로 인해 학교생활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대학의 정보공개는 갈 길이 먼 것 같다. 대학 스스로 자신들이 정보공개 대상 기관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으니 말이다. 대학의 정보공개는 대학 행정 감시라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 사립대학들 스스로 정보공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대학생들부터 스스로 권리를 마음껏 행사했으면 한다. 이는 올바른 정보공개 제도 확립에 큰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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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정부, 신뢰를 얻으려면?

2015.01.26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장


우리나라에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 이 있다. 한국은 무려 세계에서 열세 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정보공개법을 가진 나라다. 전 세계에서는 50여개의 나라가 정보공개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국가정보의 공개는 시민의 권리중 하나다. 민주사회에서 권력의 올바른 분할과 활용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듯이, 시민으로부터 시작되고, 시민의 세금으로 완성되는 공공정보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점차 커져가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알권리는 국가가 국가정보에 대한 접근을 시민들에게 개방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정보공개와 개방은 당연한 국가의 의무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공개를 통해 정부의 행정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정부의 활용성 높은 도구라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다만 정부가 신뢰회복을 위해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 법무부참여연대의 항소심 판결은 정부가 신뢰회복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 당연히 공개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마땅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참여연대는 법무부를 상대로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 회의록 및 회의자료>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변호사시험제도가 2012년에 처음 시행된 이후로 로스쿨 및 변호사 시험제도와 관련해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과 의견대립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증명이다.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시험제도가 운영되는지 정보공개로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이래서 그렇다, 저래서 그렇다 해명을 하려고 하면 논란만 증폭될 뿐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가장 쉬운 방법인 증명을 선택하지 않았다. 공정한 업무수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법 915호를 근거로 비공개 한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소송을 진행했고, 당연히 해당 내용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회의록 공개 여부에 대해 회의록을 비공개함으로써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 결정 과정을 비밀에 부치는 것은 이해당사자와 국민으로 하여금 밀실행정에 대한 불신 속에서 소모적 의견 대립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매우 큰 반면, 변호사시험 합격자 결정 기준에 이르는 과정이 공개된다면 이해당사자 및 국민 사이의 상호 이해 및 발전적인 의견 교환 등이 가능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결정 기준의 수립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다. ‘회의록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변호사시험 및 로스쿨 제도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키울 가능성이 있고, 공개를 하지 않는 것이 위원들의 논의를 도우며, 기존의 자료만으로도 충분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이유다. 소모적 논쟁이 발생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기 때문이고, 그것을 법무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을 두고 공개가 되었을 때 소모적 논쟁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비공개라니. 이런 억지도 없다.


정부가 공정한 업무수행운운하면서 주요 심의에 대한 내용을 비공개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법무부가 개인정보 보호와 공정한 업무수행을 이유로 비공개 했던 사면심사위원회 명단 및 약력에 대한 건은 대법원까지 가서야 공개 판결을 받았다. MB정부 당시 “4대강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던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해당 사업이 종료된 5개월이 지난 후에도 해당 사업 예산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업무, 공정한 업무수행 지장을 이유로 비공개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정보비공개를 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고, 엄연한 공적업무 수행과 관련한 정보에 대한 공개가 공정한 업무수행을 해치지 않는다며 공개하라고 난 소송 판례 역시 상당하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판례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선 공공기관 처리부서에서는 정보공개법 915호 사유의 비공개가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2013년부터 는 의사결정 과정이 종료되면 청구인에게 통지를 해야 한다고 법 조항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와 법률개정 내용을 알고 있는 기관은 얼마나 될까.

정보공개는 중요하다. 어쩌면 시민들보다 정부에게 더 중요한 제도일지도 모르겠다. 정보공개는 정부 행정에 대한 신뢰를 생성하고, 정부 행정의 정당성을 증진시키고, 효과적인 정부행정을 촉진하고, 부패를 감소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정보공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귀찮아서인지, 숨길게 많아서인지, 청구를 하는 사람들이 두려워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정부가 비공개를 하면 할수록 위에서 나열한 많은 장점들을 정부가 제 발로 차버리게 되는 꼴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공적신뢰도는 OECD 국가 중 31위로 꼴찌 수준이다. 공적신뢰는 정부를 신임하는지, 사법시스템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거주지역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등을 토대로 평가한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정부가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속살까지 다 보이도록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억지 비공개는 말아야 하지 않겠나. 신뢰는 내 것을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이 글은 참여연대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소송에 관한 칼럼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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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청와대의 유체이탈 정보공개

2015.01.08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그녀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임자의 자리에서 보내는 그녀는 문제가 발생할때에는 책임자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관찰자나 심판자로, 심지어는 피해자로 둔갑해 인의 책임을 타자화 시킨다.

그녀의 유체이탈 능력은 말 이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발휘된다. 그 중 하나가 정보공개다. 그녀는 야심차게 내 걸었던 첫 번째 공약인 “정보공개 강화”에서도 유체이탈을 일상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본인뿐 아니라 청와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유체이탈 능력자가 되고 있는 우스운 현실. 그 현실로 인해 나타나는 소위 “빡치는” 상황들.

#1 숨바꼭질.

박근혜 정부는 사전정보공표를 강화겠다고 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지 않아도 정보를 알아서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 이게 바로 사전정보공표다. 거의 모든 사전공개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 다양한 정보들을 시기에 맞춰 올려놓고, 그 정보들을 시민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링크를 연결한다던가, 효과적인 검색도구를 구비한다던가 해야 한다. 하지만 유독 사전공표정보를 찾기 어려운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청와대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오는 대통령비서실 공표대상 행정정보는 총 10가지다. 하지만 이중 정보의 소재가 구체적으로 명시되거나 링크설정이 되어있는 항목은 한 개도 없다. 심지어 사전공표정보목록에는 나와있는 ‘대통령기록물 생산현황’은  아예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다. 청와대는 국민들과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못찾겠다 꾀꼬리”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사전공표목록 공개 현황과 위치>

#2 정보공개 질. MB때보다 후퇴

박근혜정부의 정보공개정책인 정부3.0의 핵심은 정보의 “활용”이다. 질 좋은 공공정보를 산업에 활용하고, 창업도 하면 창조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뭐 이런 거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있다. “질 좋은” 정보가 있어야 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얼마 전 청와대에 대통령이 받은 선물 목록을 청구했고 공개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선물 목록>

국가 및 기관명

선물 목록

가봉교황청그리스나이지리아네덜란드뉴질랜드대만덴마크독일,라오스러시아리비아리투아니아말리멕시코모잠비크몽골미국미얀마,바티칸시국베트남벨기에볼리비아브루나이,사우디세계은행그룹스위스스페인싱가포르,아라비아아제르바이잔,영국우간다우즈베키스탄이스라엘인도인도네시아일본중국체코,카자흐스탄캐나다코스타리카쿠웨이트키르기즈타지키스탄태국터키,투르크메니스탄튀니지,파라과이,

파키스탄페루포르투갈,폴란드프랑스필리핀호주,

UNESCO, IMF, NATO, OCA,UAE, UN 

공자가어홍루몽전집(16), CD, DVD 2, G20 기념품, UAE 전통 목선 모형가스터빈 날개 모형가죽 파우치각배간디어록이 담긴 족자간디 흉상감사패곰 동상교황청 기념메달그릇 3그릇세트그림 3그림 사진액자그림액자기념 컵기념비석기념액자,기념우표기념주화기념패길드홀 은궤, 꽃모양 장식 수납함꽃병 2다기세트대리석 금박 항아리세트대리석북극곰조각상대리석 장식품대리석 테이블세트대통령 초상화 2데스크 용품도덕경 책자도자기 3도자기 인형도자기 찻잔 세트동판 기념품,따오기 공예품도록 2말 조각상머틀 화환메달목각목걸이목걸이와 팔찌 세트목재 보석함,목재 조각목재 조각상 2목재보석함몽골 전통 주전자미국 성조기, 미니어처 도자 제품미니어처 자동차미술 작품 2미술 작품 사진 액자바틱방울목걸이 액자배지백랍 접시백랍장식품뱃지모음범선 모형법량화병베닌 왕족 조각상보리수,보석함 2보자기 작품부인회 화보부채, 브란덴부르크문 자기모형브로치,사진 액자 9사진집서예 액자 2, 서예 작품 3서예족자서적 29서한(액자), 서화 작품석재조각상(), 성경책손목시계손수건수묵화 작품수정수직 레이스스카프 10실크로드 조형물아오자이아이패드 미니액자 10연꽃무늬 채색 도자기영문 서적옻칠 찻잔 세트와양 조각품와인병와인잔 2원형 기념패유리 공예품유리 조각상,유리 찻잔 세트유리 공예품유리조각품유엔헌장유화은 보석함은 장신구 세트은 쟁반 2,은소재 화병은제 발우은제 아마다 접시은제 화병은제 컵은 주전자인도네시아 전통인형인장세트자기 접시자수 공예품장식 시계장식용 쟁반장식용 화병장식함장신구 세트 2전각 도장 2전각 도장 세트전통 숄전통 수공예품전통오르골전통 의상전통 핸드백 2전통공예 화보집전통모직물전통모직물 가방전통모직물 카페트전통장신구접시 4족자종이공예죽간에 쓴 손자병법중국화집업 티셔츠찻잔 세트 2책자 2청자 도자기초상화초상화 카펫취임 축하문구 족자칭와대모형카펫 2,큐브크리스털 그릇과 뚜껑세트크리스털 기념패크리스털 꽃병크리스털 잔 세트크리스털 전구크리스털 제품크리스털 조각품토큰파키스탄 전통 의상, 판화 액자 2평화봉사단 사진집프라운호퍼얼굴상(부조), 프란치스코 성인상프레지던츠컵 트로피페루전통목각 인형세트핸드백 2헨델음반(CD), 헬무트 콜 기념우표화병 3화보집 2환영서


이 정보의 문제점을 찾았는가? 이 자료를 보면 국가 및 기관명의 순서가 ㄱㄴㄷ 순으로 정렬되어있고, 또 선물목록 역시 별도로 ㄱㄴㄷ 순으로 정렬되어 있다. 그 결과로 자료를 받아 보는 사람은 어느 나라에서 어떤 선물을 대통령에게 주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청와대 직원이 공개를 하면서 굳이 각각 두 번의 <텍스트 내림차순 정렬>이라는 수고를 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청구 하는 국민이랑 썸타는 것도 아니고. 공개지만 공개가 아닌. 이런 쓸데없는 행위를 청와대는 왜 하는 걸까. 

게다가 이런 식의 처리는 이전 정부보다도 한참 후퇴한 모습이다. 구구절절 글로 쓸 필요도 없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모두 설명된다. 

아래 사진은 이명박대통령 당시 청와대에 정보공개청구 해서 받은 대통령 선물 목록이다. 어느나라의 누구한테, 언제, 얼만한 크기의 어떤 선물을 왜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청와대는 원래 이정도 수준으로는 정보공개를 해왔던 그런 곳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은 선물 목록 중 일부>

#3 대답 회피. 동문서답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의 2013년 정보공개처리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13년 대통령비서실 정보공개처리현황>

청구건수

전부공개

부분공개

비공개

취하

타기관

이송

민원이첩

정보

부존재

501

50

12

23

20

335

40

21


500여건의 정보공개처리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결정통지 처리를 한 것은 100건도 되지 않는다. 청와대는 상당수를 정보공개청구를 다른기관으로 넘기고(타기관 이송)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결정통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답변을 잘 하지 않는다. 

정보공개센터는 청와대에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현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한 적이 있다. 언제 열리고 누가 참석한 몇회차 국무회의에 대해 속기록을 작성하고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그 청구에 대해 청와대는 아주 간단하게 답변을 했다. <작성하고 있습니다.> 라고. 

분명히 청구서에는 몇가지 항목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두루뭉술 동문서답 형으로 대답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게 통지는 <전부공개>. 저 50건의 전부공개에는 이런식의 공개가 얼마나 더 있을까. 

<청와대의 국무회의 속기록 작성현황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공개답변 결정통지서>

나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에 기대를 했었다. 정치에 대한 신뢰 보다는 ‘정보공개를 잘 하겠다’는 약속(공약)을 예상치도 않게 그녀의 입으로 들은데서 오는 놀라움이나 반가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공약들을 들으며 말을 내뱉었으니, 당연히 지키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3.0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이 유독 청와대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사실 상당수의 많은 기관들은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건 사항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정말 약속이나 한 듯이 유독 청와대만 피해가고 있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언제나 책임의 자리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는 공약에서도 유체이탈해 정보공개의 책임에서도 혼자 빠져나오고 있다. 

문득 궁금하다. 이렇게 많이 유체이탈을 하고 있는데. 몸이 제대로 있기는 할까?


* 이 글은 <인권오름>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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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세상에서 가장 경쾌했던 저항의 기록 <파티51>

2014.12.12

철거되는 두리반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받(사진: 51+필름)

영화는 칼국수 집 두리반이 있던 건물이 철거되며 시작된다. 마지막 남았던 건물 한 채가 푸석푸석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세 음악가가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한받은 기타를 치며 “아~ 두리반~ 두리반~”을 연거푸 부르짖고 박다함은 먹먹한 마음에 철거현장 주변을 서성인다. 하헌진은 “오늘은 있었는데 내일은 없잖아요”라고 내뱉고는 이내 울먹인다. 이 탄식 한 마디에 재개발이라는 말의 기만과 폭력성이 명확해진다. ‘토지나 자원을 다시금 유용(有用)하게’ 한다는 의미의 재개발은 현재 존재하는 것의 소멸이 전제가 된다. 무용(無用)한 것이 소멸되고 유용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유용과 무용의 기준은 뭘까? 누가 유용과 무용을 결정할까? 그러면 그들은 유용한가? 또 우리는 무용한가?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경찰이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사진: 오마이뉴스 권우성)

<파티 51>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잠시 2009년의 상황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재개발에 저항하기 위해 전기마저 끊긴 채로 반 폐허가 된 건물을 점거해 농성하는 것은 결코 보편적인 경험이 아니다. 재개발은 오랜(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사회적인 문제였지만 저항은 주로 철거민 당사자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009년은 무거운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2009년을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로 시작했다. 그리고 용산참사는 극단적인 경우에 저항의 결말이 어느 정도까지 끔찍한 지경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용산참사로 인해 재개발의 모순과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시 환기되고 보편화 된 것이다.

용산의 슬픔과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았던 2009년 연말. 홍대 앞 두리반에서는 용산과 전혀 다른 방식의 철거 저항이 홍대 앞에서 시작 되었다. 두리반은 당시에 홍대입구역에서 동교동 삼거리 방향(현재 홍대입구역 4번출구 앞 대로변)에 위치한 칼국수 집이었다. 사장인 안종려와 그녀의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이 전재산 8500 만원 가량과 대출금 2500 만원 가량을 합쳐 겨우 임대해 마련한 공간 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생계의 터전이 마련된 지 2년 만에 홍대입구역에 공항철도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두리반은 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공사를 맡은 GS건설과 철거 시행사 남전디앤씨가 그들 부부에게 내민 보상금은 이사비용 300 만원 가량이 전부였다.

터무니없는 보상금과 강제철거라는 벼랑 끝에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던 안종려 유채림 부부는 결국 두리반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용산 남일당 건물과 같은 처절한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를 두리반. 이런 두리반에 어느 날 한받, 밤섬해적단, 박다함, 회기동 단편선, 하헌진 등의 음악가들이 찾아온다. 이들 음악가와 밴드들이 두리반 농성에 합류하면서 두리반은 처절함과 비장한 저항이 아닌 경쾌한 저항의 장이 된다. 정용택 감독은 이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두리반에 모여든 음악가와 주인 부부, 그들의 경쾌한 저항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밤섬해적단의 두리반 공연.  풍자와 조롱이 가득한 밤섬해적단의 공연은 두리반을 찾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사진: 51+필름)

두리반에 모인 음악가와 밴드들은 강제철거 위기 속에서 두리반에서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다. 두리반의 공연들이 곧 점거였고 농성수단은 음악이었다. 주말을 중심으로 매주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급기야 폭염 속에서 단전까지 되는 악조건에서도 공연은 멈추지 않았다. 두리반은 재개발이라는 보편적인 사회문제 외에도 자립음악가들이 펼치는 실험적이고 재치와 조롱이 가득한 공연들을 펼쳤고 이런 두리반만의 매력은 온 사회의 기대와 관심을 집중시켰다. 급기야 이들 음악가들은 2010년 5월 1일 노동절 120주년을 맞아 두리반에서 60 밴드가 넘게 공연한 ‘뉴타운컬쳐파티 51+’를 개최하고 여기에는 공식적으로 25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1년 반에 이르는 531일 간의 농성기간 동안 50회가 넘는 공연과 두 번의 ‘뉴타운컬쳐파티 51+’이 개최되었고 <파티 51>은 이 공연 현장의 열기와 두리반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이 펼치는 무대 위에서의 재치와 광기를 고스란히 2014년의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영화 <파티 51>은 두리반을 지키기 위한 경쾌한 저항의 기록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사진: 51+필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두리반의 저항은 이런 노력들로 인해 큰 성과를 거뒀다. 결국 두리반은 오랜 농성 끝에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금을 받았으며 홍대 주변을 떠나지 않고 저항의 공간에서 칼국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재개발 농성장에 음악가들이 결합한 두리반은 무척이나 독특한 상황이었다. 만약 <파티 51>이 두리반을 통해 재개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승리를 기념하는데 머물었다면 이 영화는 무척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한데 <파티 51>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파티51>은 생활 영역들을 재배치하고 변질시키는 자본주의의 도시학 속의 홍대, 즉 이제는 음악만으로 음악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홍대 앞과 마주한 음악가들의 삶과 두리반을 포개어 보여준다. 실제로 음악가들은 자신들과 두리반의 동질감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두리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음악가 중 한 명인 한받은 “홍대 앞에서 밀려나는 음악가의 처지와 철거민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오랜 동안 인디음악의 창조적 활동의 장이었던 ‘홍대 앞’이라는 영역의 변질에 대한 증언이다. 실제로 두리반에 모인 음악가들은 두리반의 저항과정에서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방식대로의 연대하고 분업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성장하게 된다. 급기야 이들은 변질된 홍대 앞이 음악가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인디’라는 수식어 보다 훨씬 급진적인 ‘자립음악가’로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자신들만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파티51>에는 이러한 과정들 역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파티51>이 단순히 재개발 투쟁을 다루는 영상운동으로서 다큐멘터리가 아닌 두리반이라는 상황이 연결된 일종의 성장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끝으로 <파티 51>에 대해 반드시 알려져야 할 부분이 또 있다. 지금은 보다 널리 시도되고 있는 ‘사회적 제작’ 방식을 <파티 51>이 가장 최초로 실험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제작은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개인 및 단체들이 소액후원을 통해 영화제작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강정마을에 관한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과 삼성 반도체 노동자 故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제작한 <또 하나의 약속>도 이와 비슷한 ‘제작두레’를 통해 제작되었다.

또한 <파티 51>은 영화의 저작권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 개봉 후 3년 뒤(저작권법은 영상 저작물에 대해 공표 후 70년의 보호기간을 두고 있다)에 영리 및 수정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누구든 <파티 51>을 소장하고 공유할 수 있다. 일부 영화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 종료되며 대중들과의 접촉면은 사라진 채 저작권을 통해 재산으로써 보호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 한다면 <파티 51>은 실효성 없는 저작권의 보호를 스스로 해체함으로 대중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공익으로써의 영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들 역시 현 저작권 체제에 대한 경쾌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간사



* 이 칼럼은 [오마이스타], [민중언론 참세상]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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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출판과 더불어 다시 고민해야 할 것들

2014.12.01

[열려라 참깨] 핵없는 초록세상을 위해 꼭 알아야 할 탈핵이야기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출판과 더불어 다시 고민해야 할 것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강언주 

노골적으로 <탈바꿈>을 홍보하려고 한다.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명으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책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리기 위해서, 핵발전과 관련한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말하고자 쓴다. 

정보공개센터가 탈바꿈(탈핵으로 바꾸는 꿈)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문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2011년이 아니라 앞으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사건. 어떤 사회학자는 역사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도 했다. 그런 전대미문의 사건이 정보공개센터에 미친 영향이 크다. 핵발전소나 방사능, 에너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활동을 해본 적도 없는 시민단체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문화재단 등에 정보공개청구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수입되는 수산물의 방사능 검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안전의 문제가 없는지, 경주핵폐기장은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인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서 이런저런 정보공개청구를 닥치는 대로 하면서 느낀 것은 세 가지다. 청구 대상기관들이 대부분 폐쇄적이라는 것, 관련 정보의 내용이 매우 어렵다는 것,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하다못해 정보공개청구를 하려고 해도 정보를 미리 검색해보고 알아야 하는데) 어렵다는 것.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핵발전이나 방사능에 대해 관심 있어 하는 시민들이 많아졌고 핵마피아의 비리문제나 발전소의 사고고장 등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많은 토론회를 쫓아다니고 기사를 검색하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나에게도‘핵’이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주제다. 더군다나 ‘탈핵’을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구체적인 이유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2011, 2012년에 주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밝혀내는 위주의 사업을 했다면 2013년에는 시민들에게 이 정보를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에 집중했다. 아무리 정보가 쌓여도 시민들과 공유하기 어려운 정보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온라인 사이트 ‘방사능와치’를 개설해서 관련 정보들을 아카이빙했고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정보를 시각화하는 인포그래픽작업을 진행했다. 



핵발전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민들, 청소년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를 걱정하기 시작한 주부들에게 핵발전의 문제를 삶의 주제로 연결시켜 주기 위해서는 정보의 격차를 해소하고 쉽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속적인 정보공개청구도 함께. 이런 고민의 결과물로 2014년 1월에 자료집 <누크노크>를 제작했다. 인쇄물은 함께 모여서 읽고, 읽은 후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확장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탈핵운동을 하는 단체, 안전하고 바른 먹거리 운동을 하는 생활협동조합, 일반시민들이 <누크노크>에 좋은 반응을 보여 주셨고 이 자료집으로 스터디 모임을 하는 그룹들도 생겨났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으니 다시 고민을 하게 됐다. 조금 더 보완해서 정말 ‘탈핵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어떨까. 더 많은 시민들에게 탈핵이 왜 중요한지, 탈핵을 이뤄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는 책을 기획해보자고. 

그런 고민으로 2014년 11월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오마이북> 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탈핵운동을 고민하고 연구해왔던 환경활동가와 연구원, 정보공개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의학전문가, 에너지협동조합의 활동가, 후쿠시마 피해지역의 주민, 탈핵을 선언한 독일에서 에너지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연구원, 교사와 청소년 등 다양한 영역의 필자들이 참여했다. 후쿠시마사고당시와 현재의 이야기, 우리나라 핵발전소 안전과 경주핵폐기장의 문제,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는 방법, 독일의 탈핵선언과정과 대안에너지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필자들의 글로 녹여져 있고 함께 읽고 보아야 할 자료들의 소개와 관련 용어들의 풀이를 부록으로 묶었다. 책의 구성을 이렇게 기획한데에는 책표지에 쓰여 있듯이 ‘핵 없는 초록세상을 위해 꼭 알아야 할 탈핵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관련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되는 날 지인도 탈핵관련 서적을 출판하게 되었다며 연락을 주었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핵발전의 실체에 대해서 소개하고 탈핵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장하는 책들이 많이 쓰여 진다는 것은 시민들에 정보를 전달하는 의미에서 좋은 일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 그런 책들이 쓰여 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발생한 사고 이다. 다시 2011년 3월 11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후쿠시마로부터 배워야 하고, 현재 핵발전 중심의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고, 에너지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이 책은 전환의 시대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핵발전을 둘러싼 이야기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들만 소개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시민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핵발전 신화에 둘러싸여 이런 기초적인 부분들도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많다. 이 책에서 충분히 담지 못했던 핵발전 노동자의 이야기들, 핵마피아의 카르텔 구조, 세계 핵발전 정책의 흐름 등은 앞으로 우리가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단번에 탈핵을 이루기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탈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더 많은 시민들이 핵발전과 방사능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야 한다. 핵없는 세상을 위해 많이 읽고, 제대로 알고, 열심히 실천해 주시길 감히 부탁드리며 이 책에 청소년의 입장에서 필자로 참여한 공혜원님의 글로 마무리한다. 

“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위험해지고 가까이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무섭기도 했습니다. 파괴되어가는 생태계도, 아무 죄 없이 아파하는 생명들도, 무엇보다 이 아픔이 10만년 넘게 계속된다는 사실도 너무 슬픈 일입니다. 돈을 위해, 전기를 위해 핵발전소를 짓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금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핵발전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인 저부터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작은 변화와 실천이 탈핵시대를 조금씩 앞당기리라고 믿습니다. 이 팩을 읽는 여러분도 함께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인권오름 417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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