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정보공개 청구를 처리한 건수는 88만 건 가량이다. 정보공개 청구가 처음 시행되던 1998년 정보공개 처리 건수가 2만5천 건이었던 것에 비해 25년 간 35배나 이상 증가한 셈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보공개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고 이에 따른 다양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공개제도 개선 토론회 ‘우리의 알권리가 위험하다’에서는 법원 판결을 무시한 고의적 비공개와 공공기관의 비밀주의 관행에 대한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이미 공개에 관한 사법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임대아파트의 분양 원가를 비공개로 일관하는 LH공사와 보통의 공공기관이라면 당연히 공개될 정보들을 비공개하는 대통령실이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었다.
현재 정보공개제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청구인의 알권리 침해뿐만 아니라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많은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정보공개 청구 건의 38%에 해당하는 695,387건이 단 73명에게서 청구되고 있다. 이들 1인 평균 청구 건수가 9,526건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공공기관들은 정보공개 청구가 기관을 괴롭히거나 민원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단순하게 정보공개청구권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정보공개를 원하는 시민과 일부의 사례로 알권리를 제한하려는 공공기관의 인식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정보공개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해 정보공개제도 정책 전반을 조정하고 심의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가 있다. 바로 국무총리 산하 정보공개위원회이다. 정보공개위원회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관련된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 등의 외부위원과 관련 부서 공무원들이 맡는 내부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 맞도록 우리나라 정보공개 정책을 수립·운영하는 기구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정보공개위원회의 운영부터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게 현 정부의 실정이다.
지난 9월 7일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위원회 회의 운영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에 정보공개위원회 회의록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공정한 업무수행 지장 등의 이유’로 비공개 통지를 해왔다. 회의록상 정보공개 종합 평가 계획 및 결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공개될 경우 위원회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의견 청취, 토론 과정에서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견 교환의 저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고, 장래 동종의 평가를 진행할 때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개 사유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미 행정안전부는 정보공개제도 2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백서에 정보공개위원회가 운영된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총 33회의 회의록을 모두 첨부하여 공개한 바가 있다. 과거에는 13년 치를 한 번에 공개했던 회의록을 이제는 공개하지 못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또한 정보공개위원회 회의록에서 정보공개 종합 평가계획과 결과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미 평가가 종료된 사안이다. 평가기준과 결과도 매년 국민에게 공개·발표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비공개를 유지하는 것 역시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정보공개위원회의 회의록이 속기록 수준으로 발언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작성되어 있어 장래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면 발언자 성명을 가리고 공개해 최소한의 청구인과 국민들의 알권리를 존중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안전부는 그러지 않았다. 다른 어떤 공공기관보다 정보공개 여부에 대해 신중하고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야 할 국가기관이 너무 쉽게 국민들의 알권리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공개위원회의 회의록 비공개는 단순히 한 위원회의 회의록이 비공개되었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보공개 정책 전반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정보공개위원회조차 투명성을 담보하지 않는데 어떤 공공기관이 정보공개위원회의 결정이나 권고를 존중할 리가 만무하다.
정보공개위원회는 정보공개에 관한 정책 수립 및 제도 개선에 관한 사항, 정보공개에 관한 기준 수립에 관한 사항,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운영 실태 평가 및 그 결과 처리에 관한 사항을 심의 조정한다. 또한 2020년 정보공개법 개정에는 각 공공기관에 설치된 정보공개심의회의 심의 결과 조사와 분석 및 심의 기준 개선 관련 의견제시에 관한 사항, 정보공개와 관련된 불합리한 제도 법령 및 그 운영에 대한 조사 및 개선 권고에 관한 사항이 역할에 추가 되었다. 기존의 정보공개 정책 전반에 대한 논의에 더해 각 공공기관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개선 권고를 하는 기능을 추가한 것이다. 다른 공공기관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어야 할 정보공개위원회인데 회의록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역할과 권위가 초라하다.
또한 행정안전부는 정보공개제도 운영에 있어 다른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보다 더욱 투명성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들까지 발견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당연히 공개되어야 할 각 공공기관에 설치된 정보공개심의위원회 명단도 비공개 했다가 이의신청을 한 뒤에나 공개로 전환했다. 일단 무조건 비공개하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어야 공개로 전환하는 태도는 폐쇄적인 기관이 취하는 행태의 전형이다.
이미 많은 공공기관에서는 정보공개 청구가 없더라도 각종 위원회 관련된 위원명단과 회의록 등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정보공개 관련 조례와 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해서 각종 위원회의 명단공개, 회의록 작성 및 공개 의무를 두고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을 대표한 외부위원이 포함된 위원회의 경우 누가, 어떤 의사결정을 통해 정책 등이 결정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그 전문성과 대표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중점 관리 대상 사업 중 하나로 ‘사전적·능동적 정보공개’를 통해 정부 운영의 투명성 제고하는 정책사업으로 상정했다. 이 정책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정안전부 본인 스스로 사전적이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공개하여 다른 공공기관의 모범이 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정보공개 정책 전반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정보공개위원회 역시 이런 행정안전부 행태를 지적하고 스스로 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 정보공개위원회라고 볼 수 있는 정보자유법 자문위원회(FOIA Advisory Commitee) 회의가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공개하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위원회 회의부터 적극적인 방식으로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다른 공공기관들의 위원회 운영과 회의록 공개에도 좋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