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2023.10.31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은평시민신문에 연재하는 정보공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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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항상 의문을 갖는 주제가 있습니다. 매년 산재로 인해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데, 왜 정작 언론 보도가 되는 케이스는 몇 건 없을까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슈가 된 이후 산업재해에 대한 언론보도가 많아졌다지만, 대다수의 보도는 사고 소식을 알리는 짤막한 단신에 그칠 뿐입니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산업재해가 발생했는지, 재해의 원인과 내용을 밝히는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0월 13일 새벽 배송 중 쓰러져 사망한 쿠팡 하청업체 택배노동자에 대한 기사를 닷새 간 모니터링해보니 지상파3사와 종편4사 방송 뉴스,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 기사를 통틀어 14건의 보도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경제지들은 노동자의 산재 사망 소식 대신 쿠팡에 대한 홍보성 기사를 내기도 했답니다.[링크]

 

 

▲ 10월13일부터 17일까지 방송뉴스와 10월14일부터 18일까지 신문지면 '쿠팡 노동자 사망 사고' 관련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0월13일부터 17일까지 방송뉴스와 10월14일부터 18일까지 신문지면 ‘쿠팡 노동자 사망 사고’ 관련 보도건수. 표=민주언론시민연합

 

2022년 한 해 동안 222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고, 해당 기간 동안 다치거나 병든 재해자가 무려 13만 명에 달합니다. 산업재해가 우리의 일상에 침투한 심각한 보건 위협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산업재해에 대한 언론보도는 아직 미진할까요? 언론사들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까요? 기자들이 산업재해에 대한 취재를 게을리 하기 때문일까요?

 

최근 기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의문에 답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한겨레신문 신다은 기자의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입니다. 노동 담당 기자로 오랜 기간 동안 산재 사고의 현장을 취재한 신 기자는 기사를 통해 미처 담지 못했던 고민들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습니다.

 

평택항에서 돌아가신 고 이선호 씨의 아버지와 나눈 대화로 시작하는 이 책은 먼저 가족의 증언,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고의 풍경, 재해조사의견서와 판결문 등을 통해 부족한 소통과 위험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관행, 형식적인 안전관리와 설비의 노후화가 어떻게 사고로 이어졌는지 비극의 구조를 밝힙니다.

 

안전 수칙보다 작업량을 강조하는 현장의 분위기, 하청 노동자들에게 위험 요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원청 기업, 안전에 투자하기 않는 비용 구조 등이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사고를 재해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기업의 논리에 말려들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시민들이 산업재해에 대해 제대로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지 기업과 정부, 노동조합과 언론이라는 주요 행위자들로 나누어 사회적 소통의 부재를 지적합니다. 평소 노동자의 알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공개가 미진한 것이 사고의 재발을 막지 못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온 입장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사회적 소통의 부재’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신다은 기자는 왜 산재 사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기사가 적은지, 그러한 기사를 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도 설명합니다. 기자들 역시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청이 간략한 정보를 담아 소식을 알리지만, 그 내용이 매우 제한적이라 기사로 써내기 어렵습니다.

 

하루 종일 취재를 하고 자세한 기사를 쓰려고 해도 원고지 3매를 넘기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언론사의 현장 취재를 제한하고, 근로감독관들 역시 정보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기업 역시 말을 아끼며 취재를 거부하고, 설사 입을 열더라도 노동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연락처를 구하기 어려울 뿐더러 회사의 입단속이 선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쓸 내용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단신 보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도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취재도 어려우니 산업재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현장에 독립적인 노동조합이 있거나 시민사회단체가 연관되어 있는 경우 유족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론을 만날 때에나 제대로 된 보도가 가능합니다.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시민들의 애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동력으로 이어졌던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경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가 사고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김용균씨 동료들이 용기를 내 기자회견을 열면서 많은 보도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빵을 만들다 사고를 당한 SPL 공장 노동자 박선빈 씨의 경우도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SPL지회장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작업 현장의 이야기를 폭로하면서 ‘재해자의 실수’라는 회사의 주장이 가진 문제가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평택항에서 돌아가신 고 이선호 씨 역시 함께 평택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현장을 잘 알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노조 조직률이 14%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중소 사업장에는 노동조합을 찾아보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매일 산업재해가 일어나도 언론 기사를 찾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면서 정작 정보를 달라는 요청에는 쉬쉬하는 정부, 그리고 시민의 눈을 가리고 노동자들의 입을 막는 기업이 오늘 날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소통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산재 사고에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숫자로만 남은, 때로는 그 숫자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수많은 사고와 죽음들에 ‘왜’와 ‘어떻게’를 더해, 스쳐 지나기 쉬운 ‘사고 소식’을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시켜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익명의 사고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게 닥친 실체 있는 비극으로 알려지고 기록되어야 산업재해를 막아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이 모이고, 반복되는 사고를 멈추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가 되고, 기업이 이윤 보다 안전을 우선하도록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by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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