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감의 최대 쟁점은 정부부처의 자료제출 거부가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국감장에서 각 부처의 자료제출 거부에 대한 국회의원의 문제제기가 한참을 이어진다. 질의에 써도 부족한 시간이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쓰이는 것이다. 행안부와 국토교통부는 대통령 관저 증축 계약 관련 자료를, 인사혁신처는 마약수사 외압 징계 자료를, 산업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자료를, 금감원은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위 국감장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소속기관에게 국감 자료를 제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회의원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받지 못하니 충실한 질의가 이어지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다.
정부의 국회 자료제출 거부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2022년에도 대통령실 청사 및 관저 공사 특혜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는 조달청에 수의계약 입찰제안서 등의 자료제출을 요구했으나 조달청은 이를 거부했다. 이전에는 으레 제출했던 것을 갑자기 거부하기도 한다. 15년 넘게 국회에 제출해왔던 산재사고 기업명단 정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2023년부터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제출 거부로 노동조합과 노동자건강권단체들이 2006년부터 해온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2023년에는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을 하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지 못하게 만든 윤석열 정부에게 ‘2023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을 수여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산재기업을 숨기고 있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중대재해 기업명단 정보공개소송을 진행하는 중이기도 하다.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한이다. 헌법 61조 1항에 따르면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대한 견제ㆍ감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헌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자료제출 거부와 정보은폐는 더 노골화 되고 있다. 22대 국회 초선의원인 모경종 의원은 10월 7일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자료를 부실하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을 거부하는 탓에 제대로 된 조사를 하는 것이 어렵다며 “국정감사를 못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료제출 거부를 막기 위한 법까지 발의되었다. 8월 30일 김병기 의원은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관련해 서류제출 요구가 있을 때 정보공개법을 이유로 자료제출 거부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한 ‘국회증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의 국회증감법에서도 정보공개법을 근거로 자료제출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상식이 지켜지지 않으니 명확히 하기 위해 구구절절 법문에 포함하려는 것이다.
주요 자료, 공개하던 정보까지 공개 거부하는 정부
정보공개법을 자료제출 거부 근거로 악용
국회의원 입에서 “국감 못하겠다” 소리까지
정부가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대표적 근거가 바로 정보공개법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보공개법 9조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안보, 개인정보, 영업비밀 등과 같은 비공개조항들이다. 하지만 정보공개법은 법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정보공개 의무를 천명하고 있는 제도다. 이 법에 따르면 모든 정보는 원칙적으로 공개이고, 일부 사유들에 한정해 예외적으로 비공개할 수 있을 뿐이다. 비공개도 국민의 정보공개청구에 한해 적용된다. 이 법을 국회의원에게 적용할 순 없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의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보통의 국민들보다 정보접근의 권한이 더 넓다. 그런 이유로 국회의원의 정부에 대한 자료요구와 제출 절차는 국회법, 국감국조법, 국회증감법 등을 근거로 한다. 정보공개와 자료제출 요구는 법적 근거도, 제도의 성격도, 비공개의 범위도 모두 다르다.
국회의원에 대한 정보은폐가 이 정도니 국민에게 정보공개를 잘할 리 만무하다. 지금 정부는 알권리를 포함한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정보공개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라는 모호한 기준을 도입해 시민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공공기관이 자의적으로 청구를 종결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국민과 국회의원에게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정보공개법이 마치 정보공개거부법이 된 것만 같다. 정보공개법을 자료제출 거부의 방패로 삼는 게 근거에도, 절차에도 맞지 않는다는 걸 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회의 감시·견제를 무력화하기 위해 버티는 것이다. 언론장악으로 입을 틀어막은 정부가 이제는 정보은폐로 국회와 시민의 귀와 눈을 틀어막는 모양새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자료제출 거부와 정보공개법 개정은 단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국회의원의 국정감사를 방해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권력감시와 부패방지 기능을 약화시키고, 정보접근성을 훼손해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민주주의 가치가 저하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