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가 탈주술 정치·행정의 시작이다
일부러 보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선 후보 시절 왼쪽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그려 넣은 손바닥이 TV 토론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을 때부터 일어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무속 논란은 여태껏 한 번도 말끔하게 해소된 적이 없었다. 건진이니 천공이니 생경한 무속의 이름들이 언론과 정치인들의 입에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다.
그러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서 지난 24년 8월경 역술인이 대통령실에 채용되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대통령실에 채용되었던 역술인 김씨는 시민사회수석실에서 4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행정관으로 일하며 신흥종교나 소수종교 단체 등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신흥·소수 종교도 종교이고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부이니 이를 전담하는 행정관의 존재 자체는 아예 이해하지 못할 차원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충격을 주는 것은 역술인 행정관 김씨가 맡았던 ‘부가적인 업무’이다. 김씨는 윤 대통령 내외와 새로 채용되는 대통령실 직원의 ‘궁합’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국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대통령실 직원을 뽑으며 능력과 자질을 매의 눈으로 살펴도 모자란 마당에 무속과 운으로 사람을 대강 솎아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사주팔자로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을 가려 주요 정치일정을 정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마도 주된 업무는 공식적 업무보다 이 ‘부가적인 업무’가 아니었을까. 김씨는 최근에야 대통령실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헛웃음과 함께 설마 했던 시민들의 마음은 점점 불길하고 싸한 느낌으로, 싸한 느낌은 어느새 황망한 현실이 되어 끝내 대통령의 내란으로 무너진 민심 위에 뒤늦게 드러난 대통령실의 역술인 채용 사실은 답답한 한숨을 더 한다. 아니 어쩌면 대통령이 이 지경으로 국정운영을 운에 맡겨 왔음에도 더 큰 파국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역술인 행정관이 수행한 ‘부가업무’
다른 공공기관 공개하는 직원명단 공개 거부한 대통령실
오컬트 영화 같은 국정, 구마와 탈주술의 방법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끝끝내 숨겨왔던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윤 정부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2022년 5월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의 친구 아들과 6촌 친인척을 행정관으로 채용한 것을 시작으로 유명 극우 유튜버의 친누나, 김건희씨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의 직원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사적채용’ 의혹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의혹을 밝히기 위해 정보공개센터는 2022년 6월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 명단을 정보공개청구 했고,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직원 명단이 공개되면 로비나 청탁 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공공기관들이 모두 공개하고 있는 직원 명단을 비공개했다.
아니 그럼 다른 공공기관들은 로비나 청탁 위험이 없어서 직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로비나 청탁을 받으면서도 직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는 말인가. 결국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의 공개 여부는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대통령비서실이 이처럼 부실한 논리로 공개되어야 할 공공정보를 위법하게 비공개 하다보니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직원 명단 정보공개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까지 연달아 패소했다. 이쯤 되면 그냥 직원 명단을 그냥 공개할 법도 한데 윤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은 정보은폐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2일 대통령비서실은 법률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최지우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자유를 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의 최종적 판단이 대법원으로 옮겨 가는 동안 지난 12월 3일 윤 대통령은 명분도 절차도 없이 비상계엄으로 정치적 자살을 자행하고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 정지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직원 명단 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더 빠를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판결이 빠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설령 대법원의 직원 명단 공개 판결이 나오더라도 대통령비서실이 더 이상 정보공개를 수행할 수 있는 행정기관으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마당에 문득 의미 없는 가정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 윤 정부 대통령비서실이 직원 명단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을 만큼 사적인 관계와 무속에 의지하지 않고 능력과 공직자의 자질로 직원 인사를 했다면, 즉 편한 사람들과 ‘궁합’이 맞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지 않고 분별력 있고 고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남겼다면 지금과 같이 윤 정부가 파국을 맞이했을까. 어쩌면 당장의 그때그때 작은 불편함을 감수했다면 지금과 같은 완전한 몰락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오컬트(occult) 영화들 중 악마가 빙의한 사람을 구원하는 구마(驅魔)의식을 다루는 영화들이 제법 있다. ‘엑소시스트’ 시리즈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한국의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들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구마의식에는 빙의된 악마에게 이름을 묻고 그럼으로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대목이 빈번하게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표현된다. 그것은 아마도 이름이 존재의 본질이고 그것을 명명백백 드러냄으로 부패한 것, 악한 것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내려진 ‘주술정치’, 김건희 씨의 ‘빙의정치’라는 평가는 이제 반박도 궁색할 듯하다.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을 돌이켜보면 한 편의 오컬트 영화 같았다. 이번 정권에서와 같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되겠지만 반면교사 삼아 따져보자. 국정운영에서 구마와 탈주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별반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공적 정보들을 법률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명명백백 드러내는 것이 곧 구마이고 탈주술화 된 합리적 정치와 행정 아니겠는가.
*이 글은 민중의 소리 <공개사유> 칼럼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