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재해조사의견서 공개 법안 발의 및 통과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가 재해에 이르게 된 경위와 이유를 규명하기 위한 ‘중대재해 원인 조사’를 실시하게 되어 있는데, 통상적으로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의 전문가가 함께 조사를 진행합니다. 이때 안전보건공단 전문가가 작성하는 것이 바로 ‘재해조사 의견서’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따지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문서입니다. 현장조사가 끝나면 작업을 재개하기 위해 청소나 정리를 진행하기에, 현장의 상황이 어떠한지 전문가가 확인하여 기록한 거의 유일한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재해조사의견서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자료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의견서가 사업주의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법 위반에 대해 수사하고 기소할 때 쓰이는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재해자 유가족들에게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해조사 의견서는 동종·유사사고의 예방과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작성되는 ‘공공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과 판검사들, 매우 한정된 전문가들에게만 공유되는 자료인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개별 사건에 대한 조사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신뢰성을 담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재해 사례가 예방을 위한 사회적 지식과 교훈으로 축적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 되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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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입니다.
매년 2,0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같은 죽음이 반복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우선 일하는 당사자들에게 정보가 차단 되고, 은폐 되는 현실의 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산업재해로 누군가 죽었다면, 왜, 어떤 이유로, 산재가 발생했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이러한 정보들이 노동자들에게, 시민들에게 알려져야 동일한 사고, 유사한 재해를 방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내용들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지난 해, 지지난 해 어떤 사고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것이 오늘 날 노동자 알권리의 현실입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심지어 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재해자와 유가족, 노동조합에 재해조사 과정에서 생산된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재해와 관련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들도 알려지지 않고 쉬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고용노동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정보공개센터는 어느 기업에서 어떤 중대재해가 발생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알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수사 및 재판에 관한 정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다행히 법원이 해당 정보를 공개해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고용노동부는 이에 항소하면서 여전히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해외의 노동안전보건 기관들과 대비 되는 것입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안전보건 규정을 크게 위반하거나,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언제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고 기업에 어떤 처벌이 이뤄졌는지 홈페이지 데이터베이스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영국 보건안전청 역시 어느 업종의 어느 기업이 어떤 안전규정을 위반했는지,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사건 기록들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산업재해에 대해 더 많이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이 가장 비용은 적게 들이면서, 예방 효과는 높은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노동자들은 일터의 위험을 인식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기업 역시 과거의 사고를 타산지석 삼아, 더욱 효과적인 예방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것이 누구나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인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방향에서 지난 수년 동안 재해조사의견서 공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논의되어 왔고, 고용노동부도 역시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공개 방법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채 또 시간을 끌며 몇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재해조사의견서를 6개월 이내에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유가족이 요청할 경우 3개월 이내에 교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재해자와 유가족의 ‘알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동종·유사 재해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일하다 죽지않는 사회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언론과 국회의 많은 관심을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