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30분 일찍 지나간 그 길에서
명일동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지난 3월 24일, 내가 처음 소식을 접한 곳은 가족 채팅방이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바로 동생이 사는 동네였다. 동생은 사고 30분 전인 오후 6시에 차를 몰고 싱크홀이 발생한 장소 바로 위를 지나갔다고 했다.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날, 지름 20미터, 깊이 15미터 규모의 거대한 구멍이 5차선 도로를 집어삼켰다.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던 30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불과 7개월 전, 연희동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기에 서울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사고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KBS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집값에 영향 끼칠까… 땅 꺼짐 ‘안전 지도’ 만들고도 ‘비공개'”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서울시가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만들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사고 지역이 서울시가 가장 위험이 높은 ‘5등급’으로 분류했던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기사를 본 동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걸 공개 안 하는 게 말이 되나?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우리 동네 도로가 안전한지 아닌지 당연히 알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연한 권리, 당연한 의무
당연한 지적이다. 정보공개법은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정보의 사전 공개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정보공개 운영 안내서에서도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 관련 정보’와 ‘교통 등 일상생활 관련 정보’를 공개대상 정보로 분류해 놓았다. 재난안전법 역시 지방자치단체가 안전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누구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는 정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다. 지반침하 사고와 직결되는 ‘지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이나 도로 안전에 대한 내용을 규정한 ‘도로법’에는 구체적인 정보공개 의무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 점을 이용해 공개를 회피한 것이다.
사고가 나야 법이 생기는 악순환
그렇다면 왜 지하안전법과 도로법에는 정보공개 의무 조항이 없을까?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사항을 규정한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시설물안전법)’과 비교해 보자.
1995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유지 관리 의무를 규정한 시설물안전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제정 25년이 지난 2020년이 되어서야, 시설물의 안전등급이나 중대 결함에 대해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생겼다. 2018년 용산에서 안전점검이 미비했던 상가 건물이 무너지고, 2019년 광주에서 나이트클럽이 붕괴되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었다.
도로의 건설과 유지 보수에 관해 규정한 도로법은 도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고를 ‘교통사고’에 한정하여 인식하고 있다. 차량 충돌, 보행자 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한 과속 방지 시설 등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도로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한 법률이 아니다.
2016년 정부는 지하안전법을 제정했지만, 이 법에서도 시민들에게 도로에 대한 지반침하 안전점검 결과를 공개하거나, 지하 공동 발생 이력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은 빠져 있다. 결국 사고가 나야 법이 생기고, 또 다른 사고로 희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정보공개를 의무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도로 위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다
사고 일주일 후인 4월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공공운수노조, 정보공개센터, 서울와치가 함께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즉각 공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사고 당시 9호선 연장공사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탈출했다. 현장노동자들이 위험을 인지하면 피할 수 있는 권리,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사례”라며 “도로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려면 도로 위험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지부장 역시 도로가 일터인 택시 노동자들에게 지반침하 위험 정보는 생명과 직결된 것이라 말했다. “도로가 안전하지 않으면 그것을 이용하는 노동자, 시민이 위험하다. 그들은 남이 아니고 나와 나의 가족이나 친구일 수 있다”는 김종현 지부장의 말은 마치 나와 내 동생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도로 위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이동하고, 배달 노동자, 택시 기사, 버스 운전사, 도로공사 노동자들이 매일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도로는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생계를 이어가는 일터이자, 안전이 보장되어야 할 노동 현장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에게는 도로 위험에 대한 알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서울시의 황당한 답변
정보공개센터는 사고 직후 서울시에 지반침하 안전지도 공개를 요구했다. 나는 동생에게도 지역주민으로서 정보공개 청구를 해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두 건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모두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가 제시한 비공개 사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결국 ‘서울특별시 공간정보 보안업무 처리규칙’에 따라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정보공개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정보공개법으로 보장된 시민의 알 권리는 다른 법령이나 조례에 따라 비공개로 정한 정보가 아닌 이상에야, 서울특별시 규칙만으로 제한할 수 없다.
정보공개센터가 추가로 요청한 안전영향평가 보고서와 지하철공사 착공 후 지하안전조사 월간보고서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조사업무에 지장을 준다”며 모조리 비공개했다. 이런 정보들이 감춰지면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 건가?
3개월 만에 내놓은 반쪽짜리 정보
하지만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요구는 헛되지 않았다. 사고 후 3개월이 지난 6월 중순, 서울시는 결국 일부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GPR 레이더로 지하 공동을 점검한 결과를 지도 형태로 공개하고, 점검에서 공동을 발견한 이력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공개한 지도를 살펴보니 중요한 내용들이 빠져 있었다. 어느 도로를 언제 점검했는지, 어느 크기의 지하 공동이 발견되었는지를 지도로 표시해 놨을 뿐, 이 내용을 데이터 형태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시민들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지반침하가 자주 일어나는 지점과, 발생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 복구가 진행 중인 곳은 어디인지 등의 정보일 텐데, 이런 내용들은 없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경우 지질학적으로 싱크홀이 발생하기 쉬운 지역의 위험 단계를 표시하고, 40년간 싱크홀이 발생했던 장소와 사고 내용을 볼 수 있는 지도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 도쿄시 건설공사국은 하수도 시설의 노후화가 싱크홀로 이어진다고 보고, 공공도로 하수도관 매설 상황을 공개하는 한편, 지반침하 사고조사 보고서와 관련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싱크홀 발생 지역의 지반 조건이나, 지하매설물의 현황이 어떠한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을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마지못해 응답했지만, 핵심적인 정보는 여전히 감춘 채 ‘생색내기’로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도로는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안전 문제의 최종 책임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고 이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오세훈 시장은 “시민들께 면목이 없다”는 말을 남겼을 뿐, 진심 어린 사과도 없고,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 한마디 남긴 적이 없다. 명백히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사고가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싱크홀과 관련해 몇 개월 동안이나 정보공개를 회피하는 서울시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사고가 일어나고, 안전에 관련한 법을 만들고, 여기에 아무리 정보공개 조항을 만들어봐도, 재난과 사고는 형태를 바꾸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다.
1998년에 시행된 정보공개법은 30년 가까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그 결과, 정보의 공개/비공개 여부를 다루는 핵심 조항인 정보공개법 제9조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악용되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이, 차로 이동하고 있는 도로가 정말 안전한지, 그 점검 결과에 대해 알 권리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임에도 지금은 매번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야만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정보공개법이 바뀌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정보들은 어떤 사유로도 비공개할 수 없도록 공개 의무 대상으로 명시해야 한다. 명백히 공개해야 할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를 쓰며 공개하지 않는 공공기관과 공무원들이 제대로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부동산 투기 우려”, “시민 불안감 조성”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끄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동생이 30분 일찍 지나간 그 길에서 일어난 일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정말로 바꿔야 한다. 모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생명과 안전에 대한 정보공개를 의무화하는 것, 그것이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