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사유] 산재 줄이겠다는 강한 의지, 정보공개로 실현하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지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대해 내놓은 강력한 표현이다. “포스코이앤씨에서 올해 들어 5번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분노를 드러낸 대통령은 “산업재해가 거듭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은 회생이 어려울 만큼 강한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는 “산업재해가 안 줄어들면 직을 걸라”고 직접 지시했고, 모든 산재 사망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라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숨겨진 정보, 반복되는 참사
벌써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3년 반이 지났지만, 정보공개 분야의 변화는 아직 미진하다. 2024년 12월,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공표한 내용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산재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런데 언론에서 집계하기로는 롯데건설(5명), 한화 / 현대건설(4명) 등 여러 기업에서 복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제로 산재 사망 사고가 벌어진 기업들이 있지만, 아직 재판이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공표가 보류된 것이다.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이 어디인지 확인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정부의 공식 자료가 없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명단을 적극적으로 숨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국회의원들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공개하기라도 했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는 이마저도 ‘피의사실 공표가 될 수 있다’, ‘기업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거부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마저도 어떤 기업에서, 얼마나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 몇 년째 이어졌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얼마나 산재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었다. 2024년에만 무려 7명이 사망한 한화오션의 경우, 노동조합이 조선소 원하청 기업의 산재 현황 공개를 요구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산재 피해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재해자 유가족들에게도 정보를 꽁꽁 숨겼다. 공사장에서 미장 작업을 하다 추락한 건설노동자 문유식 씨의 딸 문혜연 씨도, 역시 공사장에서 판넬에 맞아 사망한 건설노동자 강대규 씨의 딸 강효진 씨도 노동청에, 경찰에 사고 경위와 원인을 물어보았지만 ‘조사 중’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정보공개가 예방책이다
‘모든 산재 사고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디서, 왜 산재가 발생했는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재해자의 유가족들이, 노동조합이, 연구자들이, 동종 업계의 사업장들이, 언론이, 그리고 시민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산재에 대한 정보를 보다 널리 공유해야, 예방을 위한 교훈이 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압력이 되며,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는 이미 적극적인 정보공개가 산재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OSHA는 ‘수치심을 통한 규제(regulation by shaming)’ 정책을 펼쳤다. 안전보건 법령을 위반한 기업명과 내용을 즉시 언론에 공개하고, ‘심각한 위반’, ‘고의적 위반’ 등의 표현으로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기업 망신 주기’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듀크대 공공정책대학원에 재직 중인 매튜 존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기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보도자료가 나갈 때마다 주변 5km 이내에 위치한 동종 사업장의 안전 법규 위반 건수를 73%나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실제 사고 조사 건수 역시 줄어들어, 25km 반경 내에서 22%의 감소 효과를 보였다. OSHA의 보도자료로 인해 언론보도가 나오는 것이, OSHA의 직접 점검 210건과 유사한 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렇게 상세한 정보공개가 들이는 예산에 비해 매우 효율적인 정책 수단임이 입증되자, 바이든 행정부는 2024년부터 1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상세한 사고 데이터를 전자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OSHA의 ‘수치심을 통한 규제’ 정책 역시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정책의 효과성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변화 때문이다. 기업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정책을 중단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예산을 삭감하고 직원을 구조조정하며 아예 OSHA 자체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치적 변동에 휘둘린다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안
미국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정치적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명확한 의지를 보이는 지금이 바로 그 시스템을 만들어갈 기회다.
1. 통합 정보시스템 구축
무엇보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를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들은 직종별·업종별·사고 유형별로 다수 기관에 복잡하게 분산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통합적으로 관리되거나, 상호연계 되어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건을 최초 조사하는 산업안전감독관들도 정작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어떻게 결론 내렸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사건마다 고유 코드번호를 매기고, 소방청의 구급출동일지,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결과, 안전보건공단의 기술 분석 결과, 수사기관의 수사 자료, 법원의 판결문 등 관련 정보를 추적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개인정보와 수사에 지장을 주는 핵심 내용을 제외하고는 연구자, 기업 안전관리담당자, 노동조합 등 민간에서도 이를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2. 실시간 중대재해 공개시스템
동시에 언제, 어디서,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졌는지 등 중대재해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누구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중대재해 사이렌’ 등 사고 속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어느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재해자의 고용 형태가 어떠한지, 무엇이 사고의 원인인지 등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시민들에게 사고 소식을 알려야 할 기자들도 해당 기업에서 최근 몇 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지 알 방법이 없어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구체적으로는 사고 접수 후 48시간 이내에 ①사고 발생 일시와 장소 ②해당 기업명과 원청업체 정보 ③사고 유형과 재해자 수 ④예상 원인(1차 조사 결과) ⑤과거 해당 사업장의 유사 사고 이력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3. 노동조합 참여권 확대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노동조합이야말로 안전 정보를 공유하고,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안전관리의 주체다. 위험성 평가와 사고 조사 과정에 노동조합의 참여권을 확대하고, 해당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의 이력과 조사 내용을 노동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단순히 사후 대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의 핵심 주체가 되기 위해선 동종 업종 내 다른 사업장의 사고 사례를 분석해 예방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4. 유가족 지원체계 강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재해자 유가족에게는 앞으로의 조사 과정과 수사 절차에 대해 안내하고, 사고의 경위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상담과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조사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하며 유가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고 발생 즉시 전담 직원을 안내해 조사 진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공유하고, 유가족이나 대리인의 조사 과정 참관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최종 조사 결과는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해 유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5. 법적 근거 마련
이러한 정보공개 체계가 정치적 변화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법적 근거가 견고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구체적인 정보공개 의무 조항을 신설하고, 정보공개·통계·데이터 전담 부서를 신설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보공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알권리는 살 권리다
정보공개는 단순한 알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살 권리의 문제다.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한 사회적 감시와 압력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체계적인 정보공개가 출발점이 되어 노동조합의 예방 활동, 기업의 안전 관리,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더 효율적인 안전관리에 나설 수 있고, 노동자들은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대비할 수 있으며, 연구자들 역시 효과적인 예방 대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통령이 보인 강력한 의지가 지속 가능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공개의 힘을 믿어야 한다. 숨기는 것이 기업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낡은 관념을 버리고, 정보 공유야말로 모든 이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는 새로운 철학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정보를 모으고, 체계화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