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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보가 알고싶다] 매번 반복해서 터지는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2025.09.03
한 광역시의회 본회의 장면 (해당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오마이뉴스 장재완

2024년 12월 16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전국 243개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점검 결과는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던 ‘혈세 외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사 결과 915건의 출장에서 약 355억 원이 지출됐으며, 이 중 상당수가 각종 법규를 위반하고 공적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권익위원회 보도자료 – 지방의회 국외출장, 항공료 조작에 외유성 논란까지…)

해외연수 비리, 항공료 조작이 가장 심각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항공료 조작이다. 전체 출장 중 405건(44.2%)에서 항공권을 위변조해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예산으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한 부정 지급 규모만 18억 원에 달한다. 비즈니스 등급 항공권을 발권하여 예산을 청구하고, 실제로는 항공권을 취소한 후 이코노미 항공권으로 새로 발권 받아 차액을 남기거나, 아예 항공권의 항공료 부분을 직접 위조해 실제 금액과 다른 금액을 기재하는 수법이다.

공무 출장 중 술과 안주는 물론, 숙취해소제나 영양제, 해장국 등에 예산을 집행한 사례도 178건(19.5%)에 달했다. 출장 목적으로 라면과 김치 등을 200만 원 넘게 구입하거나, 심지어 예비성 경비 명목으로 150만 원을 현금 지급하여, 이 돈으로 주류나 핸드크림을 구입한 사례도 있었다.

대다수 지방의회가 특정 20개 국가에 집중하여 방문했는데, 특히 방문 건수가 94건이나 되는 싱가포르의 경우 가든스바이더베이(74회), URA시티갤러리(73회) 등 관광 방문에 일정이 편중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4박 6일 호주 방문에서 블루마운틴 국립공원, 오페라하우스 등 전부 관광지만 방문한 사례나, 스페인 방문을 예정하면서 출장자가 직접 “사실 스페인과 맞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발언했음에도 해외연수를 강행한 사례도 밝혀졌다.

의원 의전을 위해 과도하게 많은 의회 직원이 출장에 동원되고, 이들의 부담금을 지방의원이 대신 납부하는 사례(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의원이 출장을 취소했음에도 다른 의원들의 경비에 보태쓴다는 이유로 여비를 환불받지 않은 사례 등도 밝혀졌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심사과에서 각 지방자치단체 감사 부서에 해외연수 실태점검 후속조치를 요청하는 공문 발송 목록세금도둑잡아라

전국 지방의회 97%가 문제 있지만, 명단은 비공개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단순한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문제가 드러난 지방의회 명단과 위반 내용 등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와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가 국민권익위원회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그 현황이 드러났다. 전국 243개 지방의회 중 97%에 달하는 236개 지방의회가 감사 대상에 올랐고, 국민권익위원회가 명백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경찰에 수사의뢰한 광역 및 지방의회가 최소 87곳에 달했다. (세금도둑잡아라 – [보도자료] 국민권익위원회, 지방의회 국외출장 예산 부정집행 고발 의뢰 현황 등 공개)

두 단체는 “이미 언론을 통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보도되는 상황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어느 지방의회와 어떤 의원이 수사 의뢰됐는지 비공개하는 것은 국민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비공개의 실효성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방의회 해외연수를 두고 전국적인 비리가 일어났음이 밝혀졌는데도, 국민권익위가 그 명단이나 위반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다 보니 주민들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권익위가 23개 경찰서에 수사의뢰를 하였으니 상당수 자치구 기초의회가 수사 대상인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의회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으니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견제와 감시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침묵하는 지방의회들

권익위의 ‘깜깜이 발표’ 이후 대부분의 지방의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의회만이 뒤늦게 해외연수를 취소하거나 예산을 반납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전북 익산시의회는 최근 공무국외연수를 전면 취소하고 예산 1억여 원을 지역경제 회복 재원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전북 군산시의회 역시 하반기 해외연수를 취소했다. 하지만 의회 안팎에서는 “경찰 수사 압박이 취소 결정의 진짜 배경”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해외연수를 강행하는 의회들이다. 최근 인천 계양구의회는 인천시의회와 기초의회 10곳 모두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도 9월에 호주 출장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해외연수로 수사를 받는 중에 또 다시 해외연수를 떠나겠다는 것도 문제지만, 지방의원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연수를 가겠다는 것 자체가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 수 있으니까 가는’ 구조가 문제다

이렇게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말 해외연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가 있는 의원들도 있지만, 그냥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가겠다는 의원들이 이들과 ‘의원단’으로 묶여서 출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배우고 싶은 사례가 있어서 연수를 가는 것이 아니라, 연수 예산이 있으니까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가고,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으니까 정해진 예산을 소화할 수 있는 관광지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는 것이다.

2019년 1월 24일,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를 취재하는 KBS 기자와 뉴질랜드 로토루아 시의회 마크 굴드 의원 인터뷰KBS 유튜브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 로토루아 시의회를 들 수 있다. 로토루아는 화산, 온천, 마오리족 문화로 유명한 관광지로, 로토루아 시의회 방문은 호주·뉴질랜드 해외연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일정이다. 2019년, KBS뉴스에서 로토루아 시의회 의원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한국 지방의원들을 1년에 30번씩 만난다”며 “(한국 지방의회 의원들이) 우리 의회가 건강이나 복지 문제에 관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는 전혀 안 합니다. 실업, 질병, 연금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데 우리는 그런 부분은 담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해당 지역의 실제 현황을 모른 채,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기관 방문 일정을 더하다 보니 이런 우스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획서에는 ‘관계자 면담’ 등의 일정을 기재해 두고, 실제로는 관계자와의 만남 없이 보고서 작성을 위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사를 받을 때도 관계자 면담으로만 적어놓고,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겠다는지는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해외연수 추진 과정에서 여행사와의 유착 문제도 심각하다. 공개입찰을 해야 하지만 의원들이 알고 있는 인맥들을 통해 수의계약을 맺는 사례가 많다. 출장 이후 제출된 보고서의 부실함도 심각한 문제다. 인터넷 글을 짜깁기하거나 심지어 이전 보고서를 그대로 옮겨붙인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의원이 아닌 동행한 직원들이 보고서를 대필하거나, 출장을 담당한 여행사가 비용을 받고 작성해주는 관행도 존재한다. 여행사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원들이 각자 소감을 한 페이지 정도 작성하고, 직원들이 전체 보고서를 편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문제 모두 해외연수가 ‘단체 여행’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의원과 직원들까지 십수 명이 함께 움직이는 단체여행이니 여행사를 끼게 되고, 여행사의 이윤을 남겨야 하니 예산을 짜고 집행할 때 허위 청구를 불사하게 되고, 정말 의욕이 있는 의원은 가고 싶은 곳을 방문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

이런 외유성 출장을 걸러내야 할 공무국외출장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다. 지방의회마다 심사위원회가 있지만, 심사위원회 회의에서 계획의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출장 자체는 의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권익위 발표에 따르면 의원이 심사위에 참여해 동료 의원의 출장을 심사하거나, 심지어 자기 출장을 자신이 심사한 경우도 79건이나 된다고 한다.

실제로 한 기초의회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여행 바로 한 달 전에 회의를 잡고, 자료를 주면서 검토를 요청하면, 관광 일정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지적을 하더라도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해서 일정을 바꾸기 어렵다, 다음번에는 더 잘하겠다고 답변하며 그때그때 모면하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연수 자체를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있어도, 세부 일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긴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위원회 내에서도 의견을 정리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문제적인 것은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며칠 전, 해당 의회에서 10월에 공무국외여행을 갈 예정이니 심사위원회를 열겠다고 연락이 왔다. 권익위 실태점검 결과 경찰서에 수사 의뢰가 된 의회임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위원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위원들이 지방의회에서 제출하는 자료를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보더라도 제대로 심사를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의회 단체연수 폐지하고, 공모제로 전환해야

2022년 6월 7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직원들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의회 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연합뉴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갈 수 있으니까 가는 해외연수가 아니라, 정말 가고 싶어 하고, 배움의 의지가 있는 의원들에게 지원하는 해외연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연수 제도가 본래 목적인 정책 학습과 역량 강화의 기회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제는 기존의 의회 단위 단체연수를 폐지하고,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다른 기구가 주관하는 공모제 연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 지방의회별로 따로 운영하는 방식은 중복과 낭비, 외유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전국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연수 계획 공모를 실시하고,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의원들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연수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때 테마별, 전문분야 별 그룹을 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사실 같은 지역의 의원들끼리만 연수를 가야할 이유는 없다. 환경 정책에 관심이 있는 의원들, 복지정책 전문가들, 도시계획 관련 상임위 위원들끼리 각각 그룹을 이뤄 연수를 가거나, 유사한 인문지리 환경을 공유하는 권역의 의원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신뢰 회복 위해 해외연수 문제 해결해야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는 단순한 예산 낭비를 넘어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가뜩이나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대다수 의회에서 외유성 관광도 모자라 항공료를 조작해 예산을 부풀리고, 부정 집행했다는 것은 지방의회 30년의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일이나 다름 없다. 이제는 정말로 제도의 존폐 자체를 논해야 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수사 의뢰 대상과 감사 대상 의회, 구체적인 위반 내역과 관련 의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지방의회들 역시 계속 감추고, 미루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잘못을 드러내고, 오남용한 예산을 자진 반납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눈치 보고 시간을 끌면서 버틸 수록, 지방의회에 대한 시민의 불신도 더욱 커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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