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주민들은 나중에야 알았다”…밀실에서 추진되는 농촌 난개발

2025.10.14

충남 예산군 신암면 주민들과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2024년 7월 13일 신암면 조곡리 조곡 산업단지(폐지물매립장) 건설 예정지 앞에서 ‘산단 불승인’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이재환)


전국 농촌 곳곳에서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산, 폐기물처리시설, SRF(고형연료) 소각장, 생수 공장, 골프장 등 문제가 되는 시설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민들의 증언은 하나로 모아진다. “나중에야 알았다.”

2021년 충남 예산 조곡에서는 SK에코플랜트가 산업단지건설을 추진했다. 산업단지 안에는 지하 35m, 지상 15m 규모의 산업폐기물처리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업체는 주민들에게 “자원순환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이름이었다. 주민들은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시설이라고 믿었지만, 실제 내용은 석유와 페인트, 시너 등의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매립장이었다. 동네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전북 정읍시 옹동면은 토석채취업체와 폐기물처리장으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1997년부터 채석 사업장 5곳이 들어섰고, 주민들은 27년간 소음·진동·먼지 피해를 겪었다. 마을 중심에 있던 폐기물처리업체는 원래 가축분뇨를 처리하던 시설이었지만 주민들 모르게 폐기물처리업으로 업종이 변경됐다. 폐기물처리장의 악취로 바로 옆의 학교는 창문조차 열 수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채석 업체들은 소규모로 시작해 환경영향평가를 피한 뒤 점차 규모를 늘리는 수법을 반복했고, 2025년 까지 운영을 끝내기로 했던 한 업체는 32년까지 7년 더 운영을 확장 하면서 마을 주민에게는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결국 2022년 주민들은 대한민국 최초 면 단위 환경단체 ‘옹동면환경연대’를 결성해 4년간 석산 7건, 폐기물업체 5건 등 총 12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기업과 지자체가 비공개했던 자료들이 재판 과정에 가서야 공개되었고, 주민들은 ‘보조참가인’ 제도를 활용해 직접 정보를 모았다.

김천에서는 2017년 플라스틱 등을 태워 에너지원을 만드는 SRF(고형연료) 소각시설 허가가 났지만,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2019년, 한 주민이 일상적인 용무로 김천시청을 방문했다가 면사무소 앞에 걸린 현수막을 발견했다. 현수막에는 “SRF 소각시설 생기면 김천 시민 다 죽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삶의 터전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시설에 대해 2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주민들은, 우연히 내걸린 현수막을 보고 비로소 SRF 소각시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반대 운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왜 주민들은 뒤늦게 알 수밖에 없을까? 이는 개발 절차에서 법과 제도가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과 관련한 법들은 사업자가 행정의 허가를 받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안에 주민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이 시작될 때 주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지자체와 행정이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주민들

지난 9월 26일, 2025지리산포럼 <지역사회 난개발, 주민들이 막을 수 있으려면> 세션에서 정보공개센터 김유승 대표가 회의공개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기업이 산업단지, 소각장, 폐기물 매립장 등을 건설하려면 우선 지자체에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주민에게는 정보가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 어떤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지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관계 기관, 부처와의 협의 절차 등이 모두 진행된 뒤에야 고시가 시작된다. 주민들의 대응은 늦을 수밖에 없다.

고시, 공고의 실효성 역시 큰 문제다. 사업계획이 수립되면 지자체는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 공보에 고시하고, 이를 통해 ‘주민에게 알렸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농촌 지역의 현실은 다르다.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는 주민들은 대부분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공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보에 올라오는 내용은 대부분 법률적 용어와 어려운 단어로 빼곡하게 작성되어 있어, 주민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알렸다’고 처리되더라도, 주민이 정보를 제대로 접하고 대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일부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사업에서 진행하는 주민설명회 역시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뿐더러, 주민 의견이 실제 인허가 과정에 반영될 의무는 없어 형식적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각종 심의위원회는 더욱 폐쇄적이다. 업체 관계자는 회의장에 들어와 직접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회의가 언제 있는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록조차 이미 끝난 뒤에야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이 철저히 차단된 사이, 기업은 사업으로 큰 이익을 챙기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갈등은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되며 주민들의 삶을 지치게 만든다. 밀실에서 추진되는 난개발을 막고 주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주민 참여 보장하는 제도 개선 필요

당진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청한 주민들에게 갈등유발시설 계획이 제출될 때 문자로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몇몇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갈등유발시설 사전고지 조례’를 확대하고,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가 지자체에 인허가 신청을 하면 주민에게 반드시 통지하도록 하는 제도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2025년 6월 기준 전국 35개 지자체가 사전고지 조례를 마련했으며, 고지 대상은 폐기물처리시설, 가스 저장소, 도축장, 발전소, 장례 시설 등 최대 11종에 이른다. 대부분은 게시판이나 공문으로만 알리지만, 양주·파주·평택·김해·당진·서산 등은 문자로 안내한다. 주민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방식이다. 일부 지자체는 주민 의견 수렴 절차도 두고 있지만 여전히 반영 여부는 행정 재량에 달려 있어 한계가 크다. 그럼에도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제도로서 전국 확대가 필요하다.

또 개발사업 추진 시 마을 단위로 충분히 협의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지자체가 투자협약을 맺거나 사업계획서·인허가 신청서를 접수할 때, 해당 마을과 인근 마을 주민에게 이를 공개하고 공식적으로 협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의 과정은 이장이나 대표 몇 명의 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총회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이를 공식 문서로 제출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주민들의 생활권과 건강권이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각종 심의·위원회 과정을 전면 공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현재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도시군관리계획위원회, 산지관리위원회 등은 대부분 밀실에서 진행된다. 일정도 주민에게 고지되지 않고, 회의록은 수개월이 지난 뒤 공개되며, 주민은 방청이나 발언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앞으로는 회의 일정과 안건을 사전에 공개하고, 주민 방청과 의견 발표를 보장하며, 회의록을 즉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설치된 위원회 회의 공개 조례를 강화하고 법령 수준에서 ‘회의공개법’ 제정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주민들의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다. 예를 들어 1일 100톤 미만의 소각장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법정 기준을 절반으로 낮추거나, 지자체 조례로 보완해 더 많은 시설이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17개 시·도 중 12곳이 조례를 제정해 ‘1일 50톤 이상 소각장’도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시켰다. 조례를 통해 대상이 확대되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주민설명회, 공청회 절차가 의무화돼 주민들의 알 권리와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아직까지 조례가 없는 지역은 서둘러 이를 마련해야 하고, 이미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평가 결과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주민 참여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뒤늦게 알았다”는 주민들의 절규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제때 정보를 접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고지 의무화, 마을 단위 협의, 심의위원회 전면 공개, 환경영향평가 실질화 같은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밀실 속에서 추진되던 난개발은 멈추고, 주민들의 삶과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싶다> 연재 기사에도 실립니다.

by
    김조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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