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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7년 뒤 기업명 공개? 법원이 2번 지적하자 노동부 반응

2025.10.30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유성호)

 

 

매년 수백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지만, 어느 기업에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산업재해에 관심 있는 시민들도 SPC 계열사나 고 김용균씨의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난 포스코이앤씨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아직까지도 SPC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이 산재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보 부족이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산재를 취재하는 기자들조차 어느 기업에서 얼마나 산재가 발생했는지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확대,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 정기 공개, 상장회사 중대재해 공시 의무화, 500인 이상 사업장 안전보건공시제 도입 등을 예고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 2일, 서울고등법원이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명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원하청 기업 명단 공개 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한 것이다. 더 나아가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상고 의향을 묻는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질의에 “노동부 입장에서는 상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과도한 비공개, 실효성 없는 공표제도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정보를 지나치게 감춰왔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는 국회의원에게조차 자료 제출을 꺼렸다. 고용노동부의 정보 차단으로 인해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이 17년간 계속 발표했던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은 2024년에 7명이 사망한 한화오션의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조사표 현황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2025년 10월 15일 기후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용우 의원이 지적한 중대재해 기업 명단 공표제도의 문제점(대한민국국회)

그렇다면 고용노동부는 왜 이렇게 정보를 감췄을까? 과도한 비공개에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기업 명단을 공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표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졌다. 형이 확정된 이후에나 명단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3년이 지난 후에야 명단 한구석에 이름이 올라오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가치도 떨어졌고, 시민들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지적이 나왔듯이, 지난해 무려 23명의 사망자를 낸 아리셀조차 올해 고용노동부의 공표 명단에는 빠져 있다. 이런 제도로는 재해 예방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법원이 공개를 명령한 이유

법원이 두 번이나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이런 과도한 비공개 관행을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다. 판결의 핵심 논리는 두 가지였다.

첫째,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 이름은 고용노동부 주장처럼 수사기밀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불과하다. 특히 재판부는 “이미 공표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을 기각했다. 정부가 어떻게 중대재해 정보에 대해 공표 제도를 운영하든, 시민의 정보공개 청구에 비공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수사 중 정보 공개가 무죄추정 원칙을 침해한다는 우려도 ‘지극히 추상적’이라고 판단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운운하며 중대재해 발생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겠다는 것이 그동안 고용노동부의 입장이었는데, 이를 기각한 것이다.

사실 중대재해 정보공개가 필요한 이유는 법적 당위성에만 있지 않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2009년부터 안전보건 법령을 위반한 기업의 위반 사실을 공개하고, 해당 사업장의 문제를 보도자료로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정보공개 정책을 펼쳤다. 듀크대 매튜 존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보도자료가 나올 때마다 주변 반경 5km 내 동종 사업장의 법규 위반이 73%나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적극적인 정보공개가 실제로 일터의 안전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안전보건공단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노동안전 종합대책 ‘알권리’ 핵심과제(안전보건공단)

이제 실행만 남았다

“고용노동부 입장에서는 상고할 필요가 없다”는 김영훈 장관의 답변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단순한 입장 표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용노동부는 즉각 상고를 포기하고, 법원 판결에 따라 2022년 중대재해 기업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약속한 대로 올 하반기 중에 그동안의 중대재해 발생 정보, 그리고 앞으로의 중대재해 관련 정보들을 공개해야 한다.

법원은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고, 장관은 긍정적 의지를 보였다. 이용우 의원의 지적처럼 “산재 예방의 핵심 장치는 재해정보 공개와 알권리”다. 노동자의 생명이 걸린 문제에서 더 이상의 지체는 있을 수 없다. 약속을 행동으로 옮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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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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