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서울시립미술관은 왜 ‘미혼남녀’ 중매에 차출되었나

2025.11.13
서울시립미술관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홍보글. 공식 홈페이지에는 등록하지 않은 ‘미혼남녀’ 표현이 눈에 띈다.

“작품을 감상하고 티 블렌딩 체험을 통해 다감각적 확장과 교감을 나누어 보세요. 참가자들은 테이블에 놓인 티 블렌딩 재료를 함께 소분하며 찻잎과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얼그레이 티로 마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육 프로그램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의 설명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전시 중인 작품을 감상한 뒤, 다양한 재료로 차를 만들며 “참여자 간의 감상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대화형 전시해설’ 워크숍”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수정된 안내문으로 원래 문구는 이랬다.

“본 프로그램은 이성 참여자 간의 감상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대화형 전시해설’ 워크숍입니다.”

참여자 앞에 ‘이성’이라는 단어가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신청 양식 페이지에 접속하면 이런 문항도 있다.

“신청자 분은 미혼이신가요? 본 프로그램은 미혼 성인이 참여하는 워크숍입니다.”

24시간 후 자동으로 사라지는 ‘스토리’ 기능을 활용해 인스타그램에 잠시 올린 홍보글에는 “미혼남녀 프로그램”, “미혼 남성, 미혼 여성 모집중!”이라는 노골적인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 자격이 있는 것은 아무 성인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였던 것이다.

지자체의 구애대상, ‘미혼남녀’

지자체가 추진하는 ‘미혼남녀 만남 사업’ 홍보 포스터들

‘미혼남녀’는 최근 몇 년간 지자체 사업명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단어다. 이성간 연애나 결혼을 원하는 청년층에게 ‘건전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미혼남녀 만남 사업’은 올해만 전국 30곳이 넘는 시에서 추진되었다.

지자체가 이러한 사업을 통해 ‘미혼남녀’, 즉 결혼하지 않은 지역 청년 인구 집단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사업 담당 부서명에서 드러난다. 올해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진행하는 지자체 33곳의 공고문을 살펴본 결과 담당부서는 인구정책 관련 부서가 14곳, 가족이나 청년정책 관련 부서 각각 6곳, 저출생대책 부서가 2곳, 지역소멸대응 부서가 1곳이었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확산하고 미혼인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 청년 인구 감소·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고자”(‘안산 시그널’ 보도자료) 같은 설명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지자체는 지역 내 인구 문제, 즉 저출생·고령화 및 지역소멸이라는 문제 해결을 청년 인구 간 만남 장려에서 꾀하고 있다. 지자체가 ‘미혼남녀’를 부를 때, 청년들을 서로 만나게 하면 혼인-출산-정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가 너도나도 미혼남녀 만남 사업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저출생 대책으로서 미혼남녀 만남 사업이란 성사된 커플이 지역 인구를 늘려줄 요행을 바라는 일에 불과하지만, 선발 시의 높은 ‘경쟁률’이나 ‘성사된 커플 수’ 등의 수치는 이 사업이 주민의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성과로 여겨진다.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마련된 이 사업이 성사된 커플 수는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수혜자로 여겨지는 청년 집단 전반이 누릴 수 있는 정책인가는 보여줄 수 없다. 예컨대 이 사업은 이성애자 청년만을 대상으로 삼는바 동성 연인을 찾는 청년은 참가할 수 없다. 이혼한 청년도 참가하기 어렵다. 이 사업 대다수는 혼인관계증명서를 요구하면서까지 초혼자만을 가려 받기 때문이다.

미혼남녀 만남을 서울문화재단의 업무로?

서울시도 2023년 ‘서울팅’이라는 이름의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저출생 대책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려 하다 이러한 문제 제기 앞에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카드, 신한카드, 한화손해보험 등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우회하여 여성가족실 주최 하에 올해 4회의 만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 문화본부가 담당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어쩌다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일까? 그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팅’ 추진을 철회한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23년 10월 23일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원회 소관인 서울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재단의 역할 중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이라는 문구를 ‘청소년·청년·미혼남녀·장애인·노인 등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그가 작성한 제안설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서울시 혼인 건수가 “2012년부터 11년째 매년 감소 중”이기에 “서울문화재단의 수행 업무 중 시민의 문화향수 증진 대상에 미혼남녀를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미혼남녀에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10월 18일 언론보도에서는 “고액의 가입비 및 성혼비 없이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해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였고, 11월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미혼 당사자로서 조례를 발의하였다고 밝히며, 결혼정보업체를 대신해 금전적 부담 없이, 철저한 신원 관리를 통해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주고자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용이나 신원 확인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지만, 미혼남녀 만남을 지원하기 위해 개정하고 있다는 얼개는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이유가 조례안에서는 “청소년, 청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및 미혼남녀가 문화향유에 있어 소외되지 않도록 구체화하려는 것”으로 바뀌어 적혀 있다. 제안설명이나 그의 인터뷰 등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던 ‘사회적 약자’들이 추가됐고, 핵심적으로 이야기하던 ‘미혼남녀 만남 지원’은 사라졌다.

좌: 일부개정조례안 제안설명서, 우: 일부개정조례안 원안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문화재단의 수행 업무를 고치는 것도 의아한 일이지만, 문화향수 증진 대상에 미혼남녀를 기재하는 것으로 선회하는 것은 더욱 아리송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와 달리,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들이 문화향유에 있어 어떤 식으로 소외되는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 대해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검토보고를 제출했다. ‘시민’의 대상 범주가 이미 ‘청소년·청년·미혼남녀·장애인·노인’을 포괄하고 있으며,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문화향수의 대상을 오히려 열거한 대상들로 한정할 우려가 있고, ‘청년’과 ‘미혼남녀’는 서로 중첩되는 범주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려를 표하는 것은 수석전문위원만이 아니었다. 12월 19일, 개정안을 상정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문화본부장은 “이미 소외계층 및 대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어 조례 개정의 효율성이 낮은 바 조례 개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라고 집행부 의견을 밝혔다. 이에 이 의원은 질의한 내용은 이러했다. “시장님 뜻은 아닌 거죠, 이게?”

2023년 12월 19일 제321회 제6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시장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 의원은 “내부적으로 이걸 존경하는 위원님들께서 일단 원안 가결을 하기로 합의는 봤는데 잘 검토해 주세요. 잘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며 통과를 종용하였다.

이 개정안이 정책이 집중할 대상과 방향에 대해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문화본부장이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를 몇 차례 더 설명하였고,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역시 다른 범주와 달리 ‘미혼남녀’는 부담이 있다며 동의하였지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개정안은 원안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어 12월 22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63명 중 찬성 59명, 반대 2명, 기권 2명으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미혼남녀를 위한 조례가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상정 당시 이 의원은 “미혼남녀를 여기에 넣었다고 해서 제가 미혼남녀를 특별히 우대하거나 지원을 미혼남녀에 집중한다거나 그렇게 한 것도 없고 여러 예시 중의 하나인 것”, “이거는 미혼남녀를 위한 조례가 아닙니다”(제321회 제6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라고 말했지만, 이듬해부터 이 의원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끈질기게 미혼남녀 만남 행사를 요구했다.

2024년 6월 14일 제325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2025년 4월 22일 제330회 제1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2025년 9월 1일 제332회 제1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잘 해보려고 너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싶어요.”

4월 22일, 미혼남녀 만남 행사가 없다고 질책받은 서울시립미술관장의 한 마디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미술아카데미 사업 중 ‘도슨트 토크토크’라는 명칭으로 마련된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는 2월에 수립된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데미 운영계획’에도, 3월에 결재된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운영계획’에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4월에 결재된 ‘2025 미술아카데미 SeMA 도슨트 토크토크 운영계획’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추진 방향은 “직원, 1인가구 시민을 대상으로 현대미술 작품 감상 및 체험 기회를 제공”이었는데, 이후에는 이렇게 수정된다. “미혼남녀 1인가구 참가자를 대상으로 교류 및 현대미술 감상의 장을 제공”. 이 계획은 10월 17일에 결재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만남행사 참가자 모집 시작일과 같다. 시의원의 압박에 급조된 프로그램이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2025 미술아카데미 SeMA 도슨트 토크토크 운영 계획(좌: 4월 2일자, 우: 10월 17일자)

시의회가 부르는 시민은 누구인가

이런 촌극을 부른 것은 시의회가 제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례안을 개정해야 하는 논리가 부실하고, 취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위원회는 이를 재논의하지 않고 원안을 가결하였다. 혼인율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문화 향유 소외를 막기 위한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법안을 통과시킨 결과, ‘문화재단이 이성간 만남을 지원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방기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번 프로그램은 시의원들이 시민, 공공기관, 그리고 그들을 정의하고 지원하는 조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시민에게 필요한 ‘문화향수’의 형식과 내용은 다양하다. 1인 가구, 비이성애자와 성소수자, 한부모 가족과 조손 가족, 비혼·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2024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한다.

“미술관에 ‘왜 1인도 가구인데 가족 대상으로 봐주지 않냐’ 이런 요청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거를 그냥 ‘아, 이상하다’, 이렇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분들도 대상으로 해서 매칭시키는 그런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서울시의 1인 가구는 166만여 명으로 전체 가구의 약 40%에 육박한다. 다양한 시민을 대변하는 시의원이라면 이같은 사례에서 ‘미혼남녀’로 갈음되는 시민들이 문화 향유에서 어떤 식으로 소외를 느끼는가, 이들을 위해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들은 시의원의 첫 마디는 이랬다.

“이게 그래서 어떤 행사라든지 사업이나 목적이 명확해야 되는데 계속 강조를 하지만 다자녀가구에 방점을 찍어야 돼요, 다자녀가구에.”

그에게 있어 이들을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는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적인 과제에 우리가 기여한다는 측면 목적 그런 차원”이었다. 지자체가 시민을 ‘늘려야 할 인구’로만 조망할 때, 그리고 시민을 위한 정책을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성과주의적으로만 고안할 때, 특정 계층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쉽다.

시의회는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의회는 다양한 시민과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이 누구인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자체의 사업이 특정 집단만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번 조례 개정 과정에서 시의회는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면, 다양한 개인, 가족, 그리고 사랑의 형태들이 존중받는 환경, 예컨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집과 일터, 서로가 서로를 넉넉히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법을 만들고 예산을 써야 한다. 미술관에 이성간 만남 주선 프로그램을 닦달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연재 기사에도 실립니다.

by
    이리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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