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12.3 비상계엄 1년, 국가기록관리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2025.12.03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소속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국군방첩사령부 친위쿠테타 관련 기록물 무단폐기’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상계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불법으로 동원된 행정권력이 입법권력 및 시민권력과 대립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공공영역에서는 과연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록관리의 일차적인 목적은 공적 업무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기록을 생산, 관리, 보존, 서비스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은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었으나 현직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정치, 경제는 물론 전 국민의 삶의 지형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이었다. 국민은 그 진상을 알권리가 있으며, 국가기록관리체제에서는 진상규명에 필요한 기록의 생산과 관리, 폐기를 통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으로 남기기 위한 다층적 기록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실효성 낮은 폐기금지제도

그렇다면 지난 1년간 국가기록관리체제에서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과연 어떤 기록을 확인하고 확보했을까? 국가기록원은 2025년 1월 15일, 12·3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에 대한 폐기 금지 결정을 약 20개 기관에 통보했다. 이들 기관이 비상계엄 관련 문서·영상·전자기록 등을 마음대로 폐기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나아가 2024년 12월 12일 이후 국가기록원은 대통령실, 국방부, 경찰 등 관련 기관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마 국가기록원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폐기금지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기록관리기관(national archives)이 공공기관의 폐기를 통제하거나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한 평가 도구(예를 들어 미국의 Records Schedules)가 운용되는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록이 폐기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국가기록원도, 각 공공기관도 명확하게 확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폐기금지제도는 상징적 의미만 존재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의 큰 구멍, 기록생산 및 보존 통제

또한 공공기록물법에서는 업무과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모든 형태와 유형의 정보를 모두 기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결재문서 외의 수많은 통신 기록, 등록하지 않은 업무 보고 자료 등이 ‘관행상’ 기록으로 관리되지 않으며, 따라서 공공기록물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등록하지 않으면 아예 기록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폐기금지 대상에서 빠지고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의 경우 불법적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인하여 수많은 기록이 고의로 누락되거나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직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들을 찾기 위해서는 기록의 범위를 넓게 펼쳐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은 대통령 비화폰 통화기록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JTBC, 2025. 6. 26). 대통령이나 보좌기관 등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한 정보라면 형식이나 유형을 불문하고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12·3 계엄 이전에는 대부분 대통령실의 비화폰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이렇게 기관 내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수많은 형식의 업무 정보들을 기록관리 체제에서 규율할 수 있거나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법적 근거라도 갖추고 있어야 국가기록관리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시작은 기록평가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기록관리제도의 가장 큰 공백은 공공기록의 생산을 규율하고, 필요한 기간만큼 보존하도록 통제하는 정책이 극히 취약한 데에서 온다. 공공기관의 업무에는 반드시 기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행정의 기본이다. 하지만 국가가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공공기관이 국가기록화의 목표에 맞게 기록을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록평가정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국가기록원은 이제 더 이상 기록평가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좁은 범위의 결재문서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칠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증거의 공백, 기억의 사라짐, 비공개 상태의 고착화라는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기록화 전략이 시급하다.


기록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진실은 전복된다

1년이 지났지만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도 재판도 아직 진행 중이다. 앞으로 오랜 기간 진실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공공영역의 기록화 작업이 지금처럼 느슨해서는 곤란하다. 12.3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라진 기록은 불법적 권력 남용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릴 수 없는 상태, 심지어 또 다른 불법적 계엄을 막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과 주장으로만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5.18 민주항쟁의 진상이나 심지어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진실은 전복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좌절과 극복을 알리는 ‘세계기록유산’

이와 함께 범국가적으로 추진할 또 하나의 과제는 다양한 시민기록을 공적 영역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공적 기록이 부족할수록 시민들의 영상·사진·SNS 기록, 기자들의 취재 메모와 비공개 자료, 예술가의 기록행위 등이 대체적·보완적 근거가 된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 시기와 여러 국가의 민주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된 방식이다. 또한 사건 당일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 기자의 비공개 취재 기록, 예술적 관찰 기록 등은 공공기록의 빈틈을 메우는 귀중한 2차 자료다. 이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분류해 공적 아카이브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공공기록의 결락을 메우는 것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역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시민들이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겠다는 행위만은 아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아가겠다는 의지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겪은 충격, 고통, 저항을 숫자나 통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 공간의 흔적, 일상의 기록이다.

미디어와 예술계에서도 그날을 기록하고 되돌아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남길 수 있다. 개념미술가 성능경은 ‘신문읽기 12.3’이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당시의 공포와 혼란, 그리고 저항의 감각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출판계와 영화계에서도 12.3 비상계엄을 다루는 작품들이 발표되며 기록을 토대로 해석과 성찰, 기억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공적 기록, 예술/문화 기록, 시민의 기억이 결합되고 연결될 때, 12.3이라는 사건은 풍부하고 다층적인 사회적 기억, 더 나아가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by
    설문원 정책위원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