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5년간 한국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 이후 11월 말부터 12월초에 걸친 재협상(외통부의 주장에 따르면 추가협상)이 체결된 후, 여야는 한미 FTA 비준에 대해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은 익히 알고 계시다시피 국가 경제 전반과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재협상결과가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정보공개센터가 한미 FTA 재협상 절차에 관해 정보공개청구를 해봤습니다.
2006년 7월 12일 서울시청 앞에 7만 여명이 모였던 한미 FTA 저지 2차 범국민대회(사진출처: 기자협회)
정보공개청구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한미 FTA의 중요한 흐름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2006년 당시, 참여정부에서는 한미 FTA를 추진하며 4대 선결조건(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배출가스 2009년까지 철폐, 스크린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제도 철폐)을 일방적으로 내어주었습니다. 또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밀실협상의 양상으로 한미 FTA를 추진했고 대규모 반대집회가 잇달아 열렸습니다. 작년 G20 정상회의 이후 지난 11월 말부터 12월초에 걸친 재협상(외통부의 주장에 따르면 추가협상)이 체결된 후, 여야는 한미 FTA 비준에 대해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참담한 재협상 결과들
이와 같이 한미 FTA이 비준 여부를 두고 대립이 더욱 커진 이유는 재협상의 결과가 참담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2007년 당시 정부가 내세운 가장 큰 성과가 주력 수출품인 3,000cc 이하 자동차 관세의 즉시철폐였으나 이를 고스란히 되돌려 4년간 관세가 유지되게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이 이미 대규모 상용화 직전에 돌입한 전기자동차의 관세를 8%에서 4%로 내렸습니다. 반면에 정부는 이미 미국이 차후 FTA에 포함시키지 않을 소지가 큰 허가-특허연계조항을 3년 유예하고 돼지고기 관세철폐를 2년 연장한데 그쳤습니다. 이런 협상실패로 각 전문가들과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쇠고기 분야는 최종합의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관련 서류를 양손에 들고 취재진을 향해 잠시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사진출처: 오마이뉴스)
한미 FTA 재협상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 12월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외교통상부에 한미 FTA 재협상 합의요지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외교통상부는 이를 양국의 신뢰와 국익을 근거로 합의요지는 대외비에 속한다며 정보공개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천박한 인식과 폐쇄성이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협상전 준비 절차와 전략, 있기는 있었나?
정보공개센터는 다시 한 번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해 조금 다른 내용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해봤습니다. 외교통상부는 FTA체결에 있어서 “자유무역협정체결절차규정”을 대통령 훈령을 정해두고 있는데요, 대통령 훈령은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되지는 않지만 외교통상부에서 내규와 같은 지위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체결절차규정에 의하면 FTA의 협상 전, 그리고 협상과정에서 추진위원회의 실무추진회의에서 협상전략 등을 검토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협상 중과 협상 후에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 결과를 보고하게 되어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정보공개를 청구한 것은 바로 이 추진위원회의 회의 문건과 대외경제장관회의 보고문건 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외교통상부로부터 민변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우선 추진위원회에 관한 회의가 개최되지 않아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추진위원회와 관련된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외경제장관회의 보고문건은 작년 민변의 사례와 같이 대외비를 이유로 비공개처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외교통상부는 외부에 공개가 가능한 현안보고문건 두 개(재협상 전 현안보고와 재협상 후 현안보고)를 덧 붙여 보내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정보공개청구는 존재하지 않는 자료정보를 청구했고, 원하는 정보가 결국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두 가지 의미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외교통상부가 보내온 비공개 사유
정보의 부존재와 비공개, 더욱 명확히 드러난 졸속성
우선은 외교통상부와 정부가 FTA를 추진하면서 치밀하게 전략을 구상하지 않았으며 체결 전 절차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략을 검토하는 추진위원회의와 실무추진회의는 개최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외교통상부가 보내온 재협상 전과 후의 현안보고를 비교하면 이러한 졸속성이 더욱 확실해 집니다. 재협상 전의 현안보고에서 한국은 어떠한 요구사항이나 전략이 존재하지 않으며 “양국 경제·통상관계의 중요성, 한·미 FTA의 경제적·전략적 혜택 등을 감안하여, 상호 수용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미측과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협상의 내용이 아니라 FTA 체결자체만 쫓는 그 동안의 모습을 잘 대변해 주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재협상 후 현안보고에는 “관세환급 제한 삭제, 세이프가드의 심각한 피해(serious damage) 발동요건 삭제, 돼지고기 관세철폐 일정 연장내용 개선, 허가·특허 연계 3년 이행 유예, 우리 기업 미국 주재원 비자 기간 연장”이 협상단의 주장이라는 대목이 갑자기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전략을 세우긴 하고 협상에 임했던 것인지, 혹은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던져준 조건들을 그냥 받아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 결론은 외교통상부가 정보공개에 대해 보이는 특유의 폐쇄성입니다. 외교관계는 왜 꼭 대외비가 되어야만 할까요. 특히 안보가 아닌 경제 부분의 사안들까지 모두 비공개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국익을 이유로 관련 정보를 비공개하며 가져온 협상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폐쇄성을 없애고 전문가들의 견해와 충고 그리고 반대측의 논리까지 귀담아 듣고 반영했다면 재협상의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실패한 재협상이 추가된 한미 FTA 비준에 대해 근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FTA가 담고 있는 내용과 사회적인 효과이지 체결여부에만 급급해서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외교통상부가 첨부한 재협상 전 현안보고와 재협상 후 현안보고 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