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소장
부패정도를 나타내는 지수에서 보츠와나 같은 국가에 뒤질 정도로 후진적인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보츠와나(Botswana)라는 국가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편에 속하고, 정치도 안정된 모범국가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보츠와나와 비교한다면 자존심 상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츠와나는 경제발전의 수준에서 대한민국에 못 미친다. 1인당 명목 GDP가 7000달러 수준이다. 물론 이 정도면 아프리카에서는 ‘부국’에 속한다. 그렇지만 인구의 3분의 1이 에이즈에 걸려 있고, 빈부격차도 심해서 삶의 질은 많이 떨어지는 나라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보츠와나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사소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에서 떨어진다. 바로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에서 대한민국은 보츠와나보다 뒤에 있다. 2010년에 발표한 순위에서 보츠와나는 178개국 중에서 33위를 했다. 대한민국은 39위였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부패정도를 나타내는 지수에서 보츠와나 같은 국가에 뒤질 정도로 후진적인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모델이자 우상으로 생각하는 미국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미국은 22위였다. 미국도 그렇게 부패 없는 국가는 아닌 셈이다.
부패와 관련해서 국제 비교를 하면 늘 최상위 수준을 보여주는 국가들이 있다. 바로 스웨덴, 핀란드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다. 2010년 발표에서 스웨덴과 핀란드는 공동 4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패 없는 국가들인 셈이다. 물론 빈부격차도 적고, 최고 수준의 복지정책으로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국가이기도 하다.
복지국가를 얘기하면 ‘세금폭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부가 이 정도로 투명하고 깨끗하다면 세금폭탄을 맞는 것도 고민해볼 만할 것 같다. 물론 이런 정부를 가진 나라들은 많지 않다.
요즘 ‘복지’가 화두다. 한나라당 박근혜씨부터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복지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고 있다. 이런 논쟁을 보면서 뭔가 부족한 점을 느낀다. 야당 쪽의 얘기를 들어봐도 답답한 점들이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복지’와 ‘증세’라는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 국가나 사회에 대한 좀 더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복지정책뿐만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이나 반부패정책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을 달성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행정정보 공개제도를 도입한 곳도 이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옴부즈만 제도를 통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행정에 반영하는 곳도 이들이다. 이런 정도의 투명성과 청렴성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세금을 부담하면서도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세금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보츠와나보다 못한 수준의 청렴도를 보이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의 부패사건들이 끊임없이 언론을 장식하는 나라, 시민이 정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거부하면 그만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예산은 ‘눈먼 돈’인 나라, 세금을 정직하게 내면 ‘바보’가 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 국가에서 어떤 정부 정책이든 온전하게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앞으로 예산낭비를 줄이겠다는 정치인들의 얘기를 믿을 수 있을까? 어떤 국가 비전이든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래서 ‘복지’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부패와 불투명·무책임 정부를 바꿀 수 있는 비전을 갖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은 스웨덴이 될 수 없다.
<변호사·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