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발생했던 포이동 화재(사진: 진보신당)
지난 6월 12일 포이동 재건마을에 대형 화재가 있었습니다. 전체 96가구 중 72가구가 전소했습니다. 불과 1시간 13분 만에 벌어진 참극입니다. 마을은 대부분이 불에 타버려 아무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집들이 1시간 만에 72채가 전소될 정도로 빨리 타냐고요? 포이동 재건마을은 합판과 스티로폼들로 지어진 판자집들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판자촌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6월 12일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에 대한 화재발생종합보고서를 청구해 봤습니다. 보고서 상 화재 원인은 이미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한 어린이의 불장난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재건마을의 역사가 드러내는 사회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사연이 있습니다. 1981년 당시 정부가 도시빈민들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포이동 재건마을에 정착시켰습니다. 자활근로대가 모인마을이라 이름도 ‘재건마을’로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고 소위 강남권이 개발되기 시작할 무렵인 1988년, 재건마을에는 개포동 1266번지라는 새로운 주소가 생깁니다. 그런데 단순히 새로운 주소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와 동시에 재건마을 주민등록도 말소되었고 순식간에 자활근로대는 공유지 불법점유자가 되었습니다.
재건마을 오랜 기간 동안 주민들은 강남구에 주민등록 등재와 주민번호 복원을 요청했지만 강남구는 주민들이 81년부터 강제 이주된 증거가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대법원 판결로 재건마을 주민들은 강남주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재건마을 주민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공유지를 불법 점유한 것에 대한 벌금이 매겨진 것입니다. 최소 3000만원부터 1억원 가량까지, 도시 빈민인 포이동 주민들에게는 벌금을 낸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벌금 때문에 재산을 모을 수도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그런데 강남구는 계속 재건마을을 비우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용역들을 고용해 강제로 건물을 파손시키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12일 화재까지 발생한 것입니다. 주민들은 주민등록 복원과 함께 주거환경 개선 또한 줄기차게 요구했었습니다. 하지만 강남구 측의 관점에 재건마을 주민들은 공유지를 불법으로 점유하고 넝마주이를 업으로 하는 부랑자, 이방인, 즉 눈엣가시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거환경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판자촌은 그저 치워야할 쓰레기 더미였을 것입니다.
화재발생종합보고서를 보면 재건마을을 태운 불은 무척 거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시간 남짓 만에 90가구가 넘는 마을 대부분을 태워버렸으니까요.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화재의 원인은 어린아이의 불장난이라고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입은 피해와 절망의 원인은 포이동 재건마을 외에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하고 방치한 강남구, 서울시, 대한민국에게 있습니다.
포이동 재건마을과 개포동 타워팰리스(사진: 프로메테우스)
게토(ghetto)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빈민구역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게토들에대해서는 당연히 사회적인 차별이 존재하며 게토의 주민들은 경제적인 궁핍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포이동 재건마을은 한국에 존재하는 게토 중 하나입니다. 국가는 개인과 국민을 보호하고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하며 공동체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입니다. 그런데 실은 국가는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는 그런 안락하고 든든한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1981년 이래로 재건마을 주민들에게는 국가는 폭력이지 않았던 날이 없습니다. 포이동 재건마을과 바로 인접해 재건마을을 내려 보고 있는 타워팰리스의 풍경이 사뭇 다르듯이 말입니다.
6월 12일 강남소방서가 공개한 포이동 화재발생종합보고서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