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의 기관지 <걷고싶은도시> 2023년 봄 호에 실린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의 글입니다. <걷고싶은도시> 봄 호에는 ‘시민단체의 생존법 ‘을 주제로 정보공개센터를 비롯하여 인천녹색연합, 참여연대, 문화연대 등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어떻게 단체를 꾸려 가고 있는지 경험을 나눈 글들이 실렸습니다. 함께 읽어주세요! (링크)
‘시민사회 생존법’을 주제로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생존의 노하우’를 논할 만큼 우리 단체가 잘 살아남고 있을까? 그냥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것 아닐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아, 마찬가지로 시민단체 활동가인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돌아왔습니다. “아니, 너가 생존의 노하우를 알고 있으면 시민사회 총대장 해야 하는거 아님?”
맞습니다. 그런 노하우를 알고 있다면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시민사회 총대장을 하고 있을텐데…
그래도 이런 주제로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제가 일하는 정보공개센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살아 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확실히,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 상황은 아니니까요. ‘생존 노하우’까지는 몰라도, 단체 활동가 입장에서 정보공개센터라는 조직에 대한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밝은 눈을 가진 누군가는 참조점을 찾을 수 있겠죠.
정보공개센터는 올해로 창립 15주년을 맞았습니다. 2008년 국내 최초의 정보공개 전문 단체로 설립된 후, 계속해서 정보공개를 통해 시민의 알권리를 확대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활동을 지속해왔습니다. 정부 지원 0%를 원칙으로 삼아 회원들의 정기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간헐적으로 민간 재단의 지원 사업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두 명의 상근 활동가로 시작한 단체가 지금은 다섯 명까지 늘어났으니, 조직 확대에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매년 적자로 고생하고 있고, 후원 행사나 기금 모금으로 이를 메우고 있는 형편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당장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은 아니니까, 잘 버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중요한 재정 문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 정보공개센터는 정부 지원 0%라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센터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회원들의 정기 후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정보공개센터 회원 구성의 특징은, 10년 이상 후원을 이어나가고 있는 장기 회원이 절반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창립 부터 지금까지 후원을 지속한 회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15년 회원이 이정도로 많냐고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장기 후원자들이 정보공개센터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 볼 수 있겠죠.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에 특화된 최초의 단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지점이 정보공개센터 회원 구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정보공개센터는 기록관리 전문가나 연구자인 회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보통 정보공개와 기록관리는 한 세트로 묶이는데, 기록관리가 잘 되어야 정보공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공개센터는 그 출발부터 많은 기록관리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이들이 지금까지도 정보공개센터의 든든한 동료이자 후원자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기록관리 전문가들 중에서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관련 업무를 하는 분도 많아서, 공무원인 회원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언론인 회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보공개센터 출범 당시, 많은 언론인들이 탐사보도를 위해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했습니다. 초창기부터 여러 언론사와 함께 협업하여 기획 보도를 하고, 정보공개와 관련해 상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많은 언론사들이 탐사보도와 더불어 데이터저널리즘을 추구하게 되면서, 정보공개센터와 협력하는 언론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센터를 후원하는 회원들도 많아졌구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회원들도 다수 있습니다. 정보공개는 활동의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에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교육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 과정에서 정보공개 운동의 중요성에 공감하여 회원이 된 분들도 많습니다.
결국 정보공개 운동 전문 단체라는 특징이 회원 구성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는데, 공무원이나 언론인들은 상대적으로 경기 상황과 상관 없이 수입이 일정한 직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장기 후원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구요, 활동가 회원들은 아무래도 서로 상황을 잘 알다보니 오래 후원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겠죠. 결국 단체의 정체성과 활동의 내용들이 정보공개센터의 기반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정기 후원만으로 단체의 모든 재정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여러 민간 재단의 공모 지원 사업 덕분에 정보공개센터가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들에 재정적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정보공개센터 활동의 특수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공공정보를 모으고, 이러한 정보를 정리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활동은 사업의 성과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에 좋은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각화를 하거나, 정보들을 모아놓는 아카이브를 만드는 활동을 많이 하는데, 이런 활동의 내용이 공모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데 잘 맞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보공개센터가 지난 15년 간 계속 활동의 영역을 넓혀 나갔기 때문입니다. 센터 설립 초창기에는 주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이런 활동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구요. 하지만 이제는 정보공개제도가 널리 알려졌고, 굳이 정보공개센터와 함께 하지 않더라도 청구를 활용하는 언론사나 시민들도 많아졌습니다. 이전에 비해 공공기관의 비공개 관행도 많이 개선된 편이구요. (물론 최근 다시 역행하는 추세가 보이긴 합니다.) 그래서 정보공개센터의 활동은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발굴하는 것 보다, 아직까지 존재하는 정보공개의 사각지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정보공개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묵살하는 대통령실,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에 주목하여,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냥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데이터 형태의 공개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정보공개센터의 활동 중에서 시민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국회의원 재산공개입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은 매년 3월 관보를 통해 공개 됩니다. 그런데, PDF 문서에 복잡한 표 형식으로 재산 내역을 공개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그 내용을 직관적으로 살펴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매년 이렇게 관보에 공개한 국회의원들의 재산 내역을 구글스프레드시트로 풀어서, 보다 활용하기 편리한 데이터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이제 정보공개를 넘어서 데이터 공개가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저기 분산되어 있는 지방의원들의 정보를 모아서, 의정감시 데이터로 가공하여 공개하는 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방향의 활동이 그동안 정보공개센터를 알지 못했던 시민들에게 센터를 알리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는 기업에 대한 정보공개입니다. 전통적으로 정보공개 운동의 대상은 정부 기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기관이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에서는 기업에 관한 정보도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공개하는데에는 굉장히 소극적이죠. 그동안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공공기관에 대한 알권리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면, 이제는 노동자나 소비자로서 시민의 또 다른 측면에 주목하여, 점차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정보공개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기업이 투자자를 위해 재무정보를 공시하긴 하지만, 소비자를 위해 상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는 소극적입니다.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기업의 안전과 조직 문화, 고용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는 더욱 드문 상황이구요. 최근 ESG 등 비재무적 요소에 대한 정보공개에 대한 흐름이 있는 만큼, 기업에 대해 시민이 알아야 할 정보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러한 정보들에 대한 공개를 의무화 하는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 주목하여 기업의 중대재해 정보를 공개하는 ‘일하다 죽지않을 직장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사업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정보공개센터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새로운 시민들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공공데이터 활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지방의회에 관심 있는 주민들을 만나보자,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만나보자, 이런 차원에서 계속해서 일을 벌려 나가고 있는 것이죠. 사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른바 86세대의 후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정보공개센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점차 이 세대가 은퇴할 연령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민들을 만나고, 조직하지 않는다면 단체들의 재정적 어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겠죠. 새로운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보공개센터의 활동이 일단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보니, 특정한 이슈에 집중하지 않고 무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활동의 범위가 늘어나고, 하고자 하는 사업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활동가들의 업무는 과중해집니다. 일이 많아지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역시 문제는 돈입니다. 결국 조직 규모에 비해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계속되다 보니,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다른 노력이 필요해집니다.
정보공개센터가 이를 위해 시행하는 있는 제도가 바로 주 4일 출근입니다. 금요일은 출근하지 않고, 활동가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입니다. 일이 없으면 쉬고, 일이 있어도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이죠. 사실 일이 많다보니 지금도 금요일에 이 원고를 쓰고 있지만… 그래도 출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여유가 생깁니다. 금요일에 출근 걱정 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주 4일 출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평일에는 함께 논의해야 하는 업무를 하고, 금요일은 혼자 원고를 쓴다던가 하는 식으로 업무가 재조직화 됩니다. 금요일을 위해서, 다른 일은 평일에 처리하는 경우도 있구요. 평일에 야근을 하더라도, 금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으니 목요일만 되면 마음에 여유와 평안이 깃든 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조직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구요.
정보공개센터 역시 다른 단체들처럼 활동가들에게 임금을 많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대신 활동가들의 외부 강의나, 외부 원고료를 대부분 활동가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체에 따라 이러한 외부 활동에 대한 수익을 단체 재정으로 환원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단체에 따라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센터 내부에서도 이 문제로 여러 번 논의가 있었지만 어쨌든 활동가들의 생계 보장을 위해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활동을 특정 활동가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저연차 활동가들과 나누어 하게 되는 효과도 있구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활동가 중심의 단체라는 점이 있습니다. 단체의 방향과 기획에 대한 활동가들의 의견을 대표단과 운영위원회가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활동 과정에서 결정과 집행이 빨라지고, 활동가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이런 구조도 활동가들의 직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작은 규모의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요.
현재 정보공개센터 상근 활동가들의 근속 연수는 평균 10년에 달합니다. 비슷한 역사를 지닌 다른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활동가들의 근속 기간이 상당히 긴 편에 속합니다. 활동가들이 큰 문제 없이 오래오래 일할 수 있는 단체라는 뜻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활동가들의 나이 차이도 그리 크지 않고, 상대적으로 젊은 조직에 속합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 활동가들이 한 조직에서 오래 함께 일해서 그런지, 일이 많아서 힘들 때는 있어도 조직 문화로 인한 갈등이나 스트레스는 별로 없습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 활동가끼리의 친밀한 관계성, 기본적으로 경쾌한 사무실 분위기가 정보공개센터 사무국의 가장 큰 특징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돌이켜 보니, 새삼 정보공개센터가 ‘일하기 좋은 조직’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물론 재정적 어려움도 있고, 가끔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막막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적어도 조직 내부의 문제로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은 그동안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보공개센터가 기본적으로 활동가를 존중하는 조직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지난 십여년 간 활동하면서 ‘운동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 멋진 기획 사업도 결국 실무를 맡은 활동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법이죠. 결국 활동가가 그만 두지 않고, 계속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조직이 지속가능한 운동 단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