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오마이뉴스]이명박 정권 ‘이메일 파동’이 잦은 이유

2009.03.06

이명박 정부는 왜 이메일로 소통할까?

 신영철 대법관이 지난해 11월 촛불 사건을 재판하던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지난 2월에는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이아무개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나라를 뒤흔들 만한 엄청난 사건이 한 달 간격으로 이메일을 통해서 터졌다.

 이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내가 볼 때는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 ‘청와대 이메일 지침은 서울경찰청 인사청문팀에 먼저 갔다’는 <오마이뉴스>의 보도와 관련,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인사청문회 준비팀 명단을 들이대며 “인사청문팀이 없었다”고 답변한 한승수 국무총리의 위증을 질타하고 있다. 
ⓒ 남소연

우선 두 이메일 사건의 공통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두 큰 파문이 일 만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라면 정권이나 정부 조직 차원에서 공식 문서나 회의를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 행정관의 이메일 사건이 터졌을 때,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청와대에서 기록물 연구사로 일했던 조영삼 정보공개센터 이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일개 행정관이 선임자인 비서관이나 수석비서관 등에게 보고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판단해 ‘연쇄살인사건 활용 방안’을 만들고 보낸 것을 믿기 어렵다고 의문을 표했다.

 그는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고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 이메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은 기록을 대단히 중시했다. 모든 업무 연락과 지시, 회의가 문서로 정리됐다. 그래서 노 정권 때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등과 관련된 문건이 자주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이런 노 정권을 가리켜 “문건 파동으로 날을 지새운다”고 비꼬았다.

 아마 이명박 정권은 전 정권의 ‘문건 파동’을 교훈(?) 삼아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메일을 적극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사안을 기록한 공식 문서는 현재도 문제지만 나중에도 문제다. 가령 성향이 다른 정권이 집권하거나 정적이 대통령이 됐을 경우 공식 문서에서 전임자의 약점을 잡아낼 수 있다. 이메일을 통한 업무 지시는 이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메일을 통한 지시나 업무 연락엔 또 다른 중요한 이점이 있다. 나중에 내용이 공개되더라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연쇄살인 사건으로 용산 참사를 덮으라는 이메일을 보냈던 이 행정관에게 청와대는 ‘개인적인 사건’이라며 구두 경고 조치하는 데 그쳤다. 이 사건에 대해 야당과 언론이 집요하게 비판했지만 청와대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피해갔다. 그리고 이 행정관은 사표를 내는 형식으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촛불 판사들에게 이메일 압력을 가한 행동을 신영철 대법관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해 그에게 적절한(?) 징계를 내리고, ‘도의적 책임’ 운운하면서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하는 형식으로 물러나면 끝이다.

 이아무개 행정관의 이메일 사건이 났을 때 조영삼 정보공개센터 이사는 “그 정도 내용의 홍보 방안을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냈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며 “최소한 부서 차원에서 논의를 거친 다음 그 결과에 따라 집행되는 것이 상식적인 업무처리 절차”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4일 신영철 대법관이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제목: 대법원장 업무보고

 오늘 아침 대법원장님께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가 있어, 야간집회 위헌제청에 관한 말씀도 드렸습니다.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1. 위헌제청을 한 판사의 소신이나 독립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2.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법원이 일사분란한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나머지 사건은 현행법에 의하여 통상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두가지 메시지였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

 신 대법관은 “대법원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할 능력도 없고, 적절치도 않지만 대체로 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으신 것으로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장도 현행법에 따라 신속한 재판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11월 6일 보낸 이메일에서는 “또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외부(대법원과 헌재 포함)의 여러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10월 14일 이메일 마지막에서 신 대법관은 이메일 마지막에 “오해의 소지가 있으시면 제가 잘못 전달한 것으로 해 주십시요”라고 적었다. 앞에서는 조직적 차원의 결정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다가 맨 뒤에서는 ‘개인적 오해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조직 전체 또는 상급자, 또는 지시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았다.

 이 행정관 이메일 사건이나 신 대법관 이메일 사건 모두 내용은 공식적·조직적 결정이지만 형식은 개인적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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