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기준과 확실한 위험
최근 정부가 입법 예고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번 개정안은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부당하거나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이 과연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을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악성민원 해결의 실효성에는 의문, 오히려 행정력 낭비의 악순환 초래
정부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부당하거나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기관 자체적으로 종결처리, 즉 공개 여부도 판단하지 않고 청구인의 청구를 거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으로 악성민원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정부의 대안은 또 다른 행정력 낭비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부당-과도한 정보공개청구를 종결하겠다는 정부의 의견에 대해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알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우려는 일찌감치 나왔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이번 개정안에서 공무원의 임의적인 판단이 적용되지 않도록 부당-과도한 요구에 대한 판단과 종결처리 결정은 각 기관에 설치된 ‘정보공개심의회’의 의결을 통하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대량의 청구가 접수될 경우, 건별로 심의회를 개최하는 데 따른 일정 조율, 회의 자료 작성, 회의 진행 등에 막대한 행정력이 소모될 것이다. 더욱이 종결 처분을 받은 청구인들이 권리 구제를 위해 각종 민원과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적인 행정력 소모도 불가피하다. 결과적으로 악성민원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민원을 양산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이는 기관과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정부의 이번 개정안은 악성민원 방지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민원을 야기하여 행정력 낭비의 악순환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법안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제한하려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정안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안을 제시한 것이다.
모호한 판단 기준으로 알권리 침해 가능성 더 커져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당하거나 과도한 요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요구로 규정하고 있다.
1)정보를 실제로 취득 또는 활용할 의사 없이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
2)정보공개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으로 청구하는 경우
3)정보를 특정하지 않고 방대한 양을 청구하여 업무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정보공개법 제11조의3 제2항 각호 : 정보공개법 개정안 행정안전부공고 제2024-1114호)
해당 규정들은 ‘정보를 취득 또는 활용할 의사 없이 부당한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 또는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 등 청구인의 의도나 목적을 판단해야 하는 주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 해석 여지가 크다. 그러나 정보공개 청구는 목적의 정당성 또는 필요성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보험 청구나 소송 준비 등 개인의 필요에 의해 정보공개 청구하는 것도, 예산낭비감시 등 공익적 목적으로 정보공개 청구하는 것도 똑같이 처리되어야 한다. 심지어 공공기관의 불만을 품고 정보공개 청구를 하더라도 청구된 정보가 비공개에 해당되지 않는 한 공개되어야 한다.
청구인의 의도나 목적을 기관 또는 담당 공무원이 파악하여 입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보를 취득 또는 활용할 의사’를 청구인이 청구한 정보를 확인하기도 전에 기관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담당자를 괴롭힐 목적’은 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어떠한 정보에 대해 1년 치 현황은 괜찮지만 10년 치 현황은 방대한 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방대한 양’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정보공개를 거부할 수 있게 되면, 복잡하고 중요한 사회 문제에 대한 정보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권은 단순한 법률상의 권리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지닌 기본권이다. 이러한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며, 제한의 목적이 정당하고 그 수단이 적절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모호한 기준으로 정보공개청구권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더욱이 공공기관의 정보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시민적 공유자산이다. 이는 정보공개가 단순히 행정의 편의나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와 관련된 문제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보공개의 원칙은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가 예외’여야 하며, 이는 정보공개법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와 민주주의 원리를 고려할 때, 개정안이 제시하는 모호한 기준과 주관적 판단 요소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를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알권리, 제한이 아닌 확대가 필요한 시점
악성민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보공개 청구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온라인 정보공개 시스템의 개선, 민원 처리 공무원에 대한 보호 강화, 그리고 민원처리법을 통한 악성민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 마련과 그에 따른 제재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정보공개 제도의 본질적 목적인 ‘알권리 보장’을 위해 선제적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주 요청되는 정보들을 미리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정보공개 청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전정보공개와 원문공개를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현행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일선 공무원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기관장의 투명한 정보공개에 관한 확고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정보공개법 개정안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알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이 크다. 정부는 이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보공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투명한 정보공개 문화 정착, 사전적·자발적 정보공개 확대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를 구축하고, 진정한 의미의 열린 정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공개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이를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