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검찰 특수활동비 40억 400만 원이 포함됐다. 기밀 수사나 정보 수집 등에 쓰도록 돼 있는 검찰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제출 의무도 없고, 사용 내역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깜깜이 예산’이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며 “검찰 특수활동비를 삭감했다고 해서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특수활동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검찰 특수활동비 부활은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다. 2017년부터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뉴스타파와 함께 끈질긴 정보공개 소송과 협업 취재로 만들어 낸 특수활동비 개혁의 흐름을 무너뜨린 명백한 퇴행이다.
시민사회는 그동안 국회와 검찰을 상대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특수활동비 집행 자료의 빗장을 열고, 내용을 분석해 오남용 사례를 밝히며, 특수활동비 폐지를 요구해 왔다. 그 결과, 2019년 국회 특수활동비 예산은 90% 삭감됐으며, 2024년 검찰 특활비 예산은 10% 감액, 올해에는 전액 삭감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기사 보기 : 부정 사용 범벅 검찰 특수활동비… 80억 원 → 0원, 2024.12.30.)
대통령실 명분을 위한 ‘끼워넣기’
더 문제는 검찰 특수활동비 부활이 명확한 필요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여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를 보여준다. “대통령실 특수활동비만 복원하면 명분이 없다 보니 검찰까지 ‘끼워넣기’로 복원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국가기관 전체 특수활동비를 늘리면서 특정 기관만 뺄 수는 없어서 검찰도 증액한 것 같다”는 여당 측 발언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번 추경안에는 대통령실(41억 원), 검찰(40억 원), 경찰(16억 원), 감사원(8억 원) 등 4대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가 묶여 총 105억 원이 복원됐다.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부활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다른 기관들도 함께 살려서 “4대 권력기관 전체 복원”이라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검찰 특수활동비는 대통령실을 위한 정치적 거래의 들러리 역할을 한 셈이다.
검증도 분석도 없는 졸속 예산 편성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무런 검증 없이 예산이 편성된 것이다. 40억 원이 넘는 검찰 특활비 예산을 배정했는데, 액수를 따져 보면 윤석열 정부 시절 요청했던 80억 1천만 원의 절반을 단순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과거 특수활동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검증도, 실제 기밀 수사를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추산도 내놓지 않았다.
예산 편성의 기본 원칙은 목적의 명확성과 규모의 적정성이다. 특수활동비처럼 증빙이 헐겁고, 공개 의무가 없는 예산일수록 더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2019년 국회가 대폭 특수활동비를 삭감하면서도, 국회의장 등의 외교적 공무라는 명확한 사용을 위해 10억 원을 남긴 것이 올바른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사례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검찰이 국회에 제대로 된 사용 내역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어떠한 해명이나 구체적 개선 방안 없이 예산만 부활시켰다. 이는 예산 편성의 합리성을 포기한 것이다.
‘기밀수사’ 명분은 허구다
검찰은 줄곧 “기밀 수사를 위해 특수활동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작 기밀 수사라는 목적을 수행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명절 떡값, 회식비, 격려금, 심지어 공기청정기 렌탈비와 휴대폰 요금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기사 보기 : 특활비 부정 사용: 검사실 공기청정기 렌탈비로 특활비 지출, 2023.9.1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경우 더 심각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석열은 역대급으로 많은 38억 6천만 원을 사용했는데, 네 차례 명절에 2억 5천만 원을 떡값으로 살포한 의혹이 제기됐다. (기사 보기 : 명절 떡값 2억 5천? 윤석열 특활비의 실체. 2023.7.23.)
또한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에는 20개월간 78억 원을 현금화하여 이른바 ‘총장 통치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샀다. (기사 보기 : 위기 때마다 ‘살포된’ 현금 특활비… 총장 윤석열의 ‘세금 사유화’ 의혹 2024.4.3.)
이렇듯 특수활동비 부정 사용 의혹과 오남용 사례들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은 제대로 된 반성이나 해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7년 돈봉투 만찬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전후로 특활비 집행 자료를 불법 폐기해 은폐를 시도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밀 수사”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검찰 개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특권 예산
게다가 검찰 특수활동비 부활은 현재 추진 중인 검찰 개혁의 근본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검찰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인 설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검찰의 특권을 해소하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행정기관으로 정상화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특수활동비야말로 검찰이 다른 행정기관과 차별화되는 대표적인 특권적 예산이다. 증빙 없이 현금으로 사용할 수 있고,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며, 국회의 감시와 통제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검찰총장들은 특수활동비를 ‘통치자금’과 ‘격려금’으로 뿌리면서 예산을 사유화하고, 자의적으로 특정 수사와 기소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검사동일체’의 신화를 강화했던 젖줄이 바로 검찰 특수활동비였다. 이런 예산을 부활시키는 것은 검찰의 특권적 지위를 온존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사 보기 : 검찰 특활비와 총장님의 현금저수지 2024.5.10.)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찰개혁 입법 완료 후 집행한다”는 부대 의견이다. 한편에서는 수사권을 분리하겠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기밀 수사에만 사용되어야 할 특수활동비를 도대체 왜 남겨두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 내부에서도 “수사 떡값을 왜 남기냐”는 비판이 나오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인 박주민 의원이 표결에 기권한 것도 이런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대통령실 특수활동비는 새 정부가 제대로 일하기 위해 복원해야 하지만, 검찰 특수활동비는 성격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한다.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은 “법사위 의견을 먼저 청취했어야 한다”고 원내지도부를 비판했다. 이런 내부 갈등이 터져 나온 것 자체가 검찰 특수활동비 부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정한 검찰 개혁은 ‘특권 예산’ 폐지부터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 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진정한 개혁의 성과를 내려면, 권력기관들의 특권적 예산부터 먼저 개혁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오남용 여지가 많은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는 모두 사라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말 불가피하게 특수활동비가 필요한 외교·안보·기밀 영역에서는 그 집행 과정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용 목적의 명확성, 규모의 적정성, 사후 검증 가능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는 특수활동비 편성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맞다.
특히 검찰의 경우 수사/기소권 분리를 통해 일반 행정기관으로 정상화하려는 개혁 방향에 맞게, 특수활동비라는 특권적 예산부터 먼저 정리해야 했다. 검찰이 기밀 수사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면, 과거 사용 내역을 철저히 분석하고 실제 필요 규모를 산정하여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특정업무경비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
국민의 세금을 권력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민주권 정부’가 보여줘야 할 진정한 개혁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