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성별임금공시제도가 성평등임금으로 이어지려면

2025.10.20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가족부로의 현판 교체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주권정부는 지난 9월 16일 5개 국정목표와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했습니다(관련 자료). 이중 여성가족부 주관의 국정과제는 “기회와 권리가 보장되는 성평등 사회”,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 및 다양한 가족 지원” 등 3대 과제였는데요.

정보공개센터가 요구했던 성별임금공시제도 역시 포함되었습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고,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여 성별 임금 실태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공개하겠다는 것입니다(97번 과제).

노동과 성평등 영역에 걸쳐 있는 고용평금임금공시제는 여성가족부를 확대·개편한 성평등가족부가 맡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동부가 맡아왔던 여성 고용 정책도 앞으로는 성평등부가 담당하게 됩니다(관련 보도자료).

문제는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 내 여성고용정책과를 폐지시켰다는 점입니다. 여성고용정책과는 성평등한 노동을 위한 정책을 기획, 수립, 집행하는 부서였습니다. 여성 노동자의 권익을 책임져온 부서가 노동 정책 을 총괄하는 부처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항의가 이어지자 노동부와 성평등부는 “고용평등과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해 서로 협업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관련 보도자료). 하지만 노동부와 달리 성평등부에게는 사업장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담당한 적 없고, 행정명령 권한도 없습니다. 예산 규모도 차원이 다릅니다. 노동부 예산은 37조가 넘는데, 성평등부 예산은 2조가 채 되지 않죠.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부가 주관하는 성별임금공시제는 말 그대로 ‘공시’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별이 발견되어도, 시정할 수 있는 길이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고용에 관한 성차별만을 국정과제로 논하지만, 여성이 일하는 데 있어 걸림돌은 고용불평등 뿐만이 아닙니다. 채용 성차별, 고용 불안정, 낮은 임금, 성희롱과 스토킹 등의 괴롭힘, 직군 분리, 유리천장, 경력 단절 등 여성들은 노동 영역 전반에서 겹겹의 문제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에 관련된 과제라는 이유로 다른 부서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노동 정책의 주무부처로써 노동부가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성별임금공시제가 성평등한 임금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업장에 대한 평가와 점검이 필수적입니다. 또 공개를 거부하는 기업이나 개선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벌칙 조항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이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노동부에 ‘협업’ 수준을 넘는 참여가 필요합니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는 노동 영역 전반에 촘촘히 펼쳐져 있는 성차별의 결과물이며,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차별을 규제하고 시정할 수 있는 노동부가 그 근본적 해소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평균 임금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형태별 성비와 임금을 모두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노동자들의 알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고, 임금 지불에 있어 성차별이 일어났을 때 그 차별 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통계적 증거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성별임금공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장려하는 다양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노동부가 시행해온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장 명단 공개가 그런 사례입니다. 지난 8월 노동부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장 명단’을 공개했는데요, 여성 노동자·관리자의 비율이 업계 평균보다 낮고 개선 노력도 부족한 41개 회사가 어디인지 밝힌 것입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어느 사업장에 여성 노동자와 관리자가 얼마나 부족한지 그래프로 정리해보았습니다(스크롤 압박 주의!).

올해 미이행 사업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업종은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인력을 공급하는 ‘사업지원 서비스업’으로, 경비업, 콜센터업, 추심대행업 등이 포함됩니다. 경비 인력 공급업체인 미래엠에스는 전체 근로자 914명 중 단 4명이 여성으로, 여성 근로자 비율이 가장 낮은 업체였습니다. 파견직을 알선하는 업체인 동호에이치알, 신용정보업체 나이스신용정보, 부동산 관리업체 엠지토탈서비스 등은 여성 근로자가 업계 평균보다 훨씬 많은데도 여성 관리자는 0명임이 드러났습니다.

그외 시내버스 등 운송업, 전자산업, 화학공업, 경공업과 중공업, 건설업, 시설관리업 등의 업종이 뒤를 이었는데요. ‘쉐보레’, ‘캐딜락’ 브랜드로 유명한 자동차 제조사 한국GM, 스마트폰 화면 등에 쓰이는 편광필름 생산업체이자 해고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니토옵티칼, SK하이닉스의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 전자제품 쇼핑몰 컴퓨존과 게임 개발사 넷마블넥서스, 그리고 공공기관 충북개발공사 등이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2020년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명단 공표 후 사업장의 약 59%가 여성 고용 및 관리자 비율 상승을 보였다고 합니다(『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입법영향분석』). 이는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선의 의무와 벌칙을 부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크게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사업장으로 하여금 남녀 근로자 현황을 제출케 하여 평가하고, 이듬해에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시행계획서를 제출케 하여 평가합니다. 그 이듬해에는 이 계획 이행 여부를 평가하여, 미이행 사업장을 공개하고 우수조달물품 지정 심사에 불이익을 주는 등의 패널티를 부과합니다. 공시를 통해 조성되는 내·외부적 압박이 노동 환경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성별임금공시제가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의 사례에서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평가와 점검, 그리고 실효성 있는 벌칙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여성이 직장에서 마주하는 불평등은 임금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채용부터 승진, 고용 안정성에 이르기까지 일터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성별임금공시제가 이러한 일터를 바꾸는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성평등부뿐 아니라 노동부도 정책 설계와 집행을 주도해야 합니다. 투명한 공개가 압박을 만들고, 그 압박이 개선을 낳고, 개선 실패에는 제재가 따를 때, 우리는 임금뿐 아니라 일터 곳곳에 박힌 차별을 실질적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25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미이행 사업장 명단 보도자료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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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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