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곳곳의 농촌 지역은 산업폐기물처리장, 소각장, 화학공장, 토석채취장 등 각종 개발사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들이 대부분 지자체의 인허가 절차를 거쳐 조용히 추진되지만, 정작 지역 주민들은 사업의 존재조차 뒤늦게 알게 된다는 점이다. 행정은 “법적 절차를 준수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절차의 대부분은 주민의 눈과 귀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정보공개센터가 최근 전국 각지의 환경오염시설 반대대책위 주민과 활동가를 인터뷰한 결과에서도, 주민이 사업 추진 사실을 ‘우연히’, 혹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증언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우리 집 바로 뒤에 사시는 원주민 분이 2023년 설명회 하기 전날 공문을 가지고 오셨어요. 2차 설명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우리는 2년이 지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잖아요.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이게 2021년이었는데 2023년 12월에 알았으니까.”
“주민들은 석산개발이 다 25년도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얘네들이 25년도에 안 끝내고 32년까지 7년은 더 확장 연장하려고 했거든요… 설명회 사진을 보니까 그 동네 주민이 두세 명밖에 없는 거예요. 안 알린 거예요. 아예. 저희가 설문지를 만들었어요. ‘이게 확장된다는 걸 언제 알았냐?’ 근데 다 저희 환경연대를 통해서 알았다고 이렇게 얘기를 한 거죠.”
시설 인허가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주민이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전국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자체는 사업자가 제출한 계획서와 각종 서류를 검토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되거나 접수된 정보, 위원회의 회의 일정과 논의 내용은 적시에 공개되지 않는다. 결국 주민은 ‘이미 정해진 결정’을 사후적으로 추적할 뿐이며,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행정과 기업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뒤늦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환경오염과 생활권 침해의 부담은 지역공동체가 떠안는다. 개발의 피해는 주민에게 돌아가지만,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결정권은 행정과 기업이 독점하고, 부담은 지역이 짊어지는 구조 속에서 주민들의 자치권은 침해되고 공동체 내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선언에 머문 회의공개 조례
주민들이 개발사업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되는 이유는 단순한 정보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간, 즉 행정의 회의실이 처음부터 닫혀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개발사업은 대부분 도시계획위원회,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산지관리위원회 등 인허가 관련 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이들 회의는 지역의 공간 구조와 환경, 주민의 건강권과 생활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리지만, 실제로 그 문은 철저히 행정과 사업자, 전문가들에게만 열려 있다. 주민이 그 논의 과정을 지켜보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절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지방자치단체들이 ‘회의공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지자체가 “위원회의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을 담은 조례를 제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원칙이 ‘선언’에 그치고,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의공개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비공개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고 있으며, 회의 일시나 안건을 주민에게 알리는 절차조차 규정되어 있지 않다.
정보공개센터는 최근 「지방자치단체 위원회 시민참여 보장을 위한 회의공개조례 개선방안 연구」를 진행했다. 전국의 회의공개 관련 조례 206개(기초 188개, 광역 18개) 가운데 기초자치단체 147개, 광역자치단체 13개 조례가 회의공개 원칙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주민 방청을 허용하는 곳은 기초 7곳, 광역 2곳에 불과했다. 회의 사전 고지 조항이 있더라도 기초 142개, 광역 17개 조례가 위원에게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주민은 회의가 언제, 어떤 안건으로 열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또한 회의록 공개 규정을 둔 기초지자체 118개 조례 중 45개는 공개 시기를 명시하지 않아, 자의적으로 공개를 미루거나 사실상 비공개할 수 있었다. ‘회의 종료 후 30일 이내’ 등 과도하게 긴 공개 기간을 두거나, 시민의 정보공개청구보다 늦게 공개되는 경우도 있었다. 위원 명단을 공개하는 조례 역시 기초 36개, 광역 4개에 불과해, 의사결정의 책임 주체조차 주민이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회의공개는 선언에 머물고, 주민이 실제로 참여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구조는 여전히 닫혀 있는 것이다.
회의공개는 행정의 시혜가 아니라 주민의 권리
행정의 결정은 서류 몇 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원회 회의장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논리, 질의와 응답, 판단의 근거가 오가는 공간이다.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행정의 자의성을 줄이고, 어떤 논의와 판단을 거쳐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주민이 직접 검증할 수 있다.
공식적인 논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정보 제공’의 차원을 넘어, 정책 형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절차의 핵심이다. 이 점에서 회의공개는 자치를 가능하게 하는 주민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사후 반대’가 아니라 ‘사전 협의’와 조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기반이다.
미국의 「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1976)은 이러한 원칙을 법으로 명문화한 대표적 사례다. 이 법은 ▲연방정부의 모든 합의제 기관 회의를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회의 시각·장소·안건을 사전에 공지해야 하며, ▲비공개할 경우 구체적 사유를 제시하고 표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위법하게 비공개된 회의의 결정은 법적 효력이 없으며, ▲시민은 위법한 비공개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갖는다.
한국의 지방정부 역시 주민주권 시대에 걸맞게 회의공개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개발 문제의 근원에는 ‘결정의 밀실화’가 있다. 회의공개는 행정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아니라, 정책 결정의 신뢰를 높이고 갈등을 예방하는 길이다.
주민이 의사결정 과정을 직접 지켜보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도 책임 있게 사업을 운영하게 되고, 행정 또한 사후 관리 실패나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다. “뒤늦게 알았다”는 말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행정의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회의실의 문을 여는 일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 글은 민중의 소리 <공개사유> 칼럼으로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