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한국 사회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게임 재화를 구매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직장 상사의 ‘뒷담화’를 하며, 모바일 앱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은행 업무도, 공공서비스 신청도, 친구와의 대화도 모두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진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공간도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사이버범죄 건수는 40만 건을 넘어서며 해마다 증가 중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버사기, 해킹, 디지털 성범죄, 인공지능(AI)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가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고, 대출 한도를 정하며, 복지 수급 자격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불투명하고, 차별과 권리 침해가 발생해도 이를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이 같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디지털 표현의 자유는 없고, 통신의 비밀은 보장하지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명시되지 않았다. 정보접근권도, 알고리즘 설명요구권도 헌법에는 없다. 87년 헌법은 오프라인 중심의 권리 규정에 머물러 있다.
물론 법률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위치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 시대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개정한다.
하지만 이런 법들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첫째, 이슈 중심이다. 문제가 터진 후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응한다. 둘째, 산업 육성과 지원 중심이다. 정보기술 관련 법률은 주로 산업 진흥과 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규제가 포함되더라도 시민의 권리 보장은 부차적이거나 명확하지 않다. 셋째, 법률은 국회 과반수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취약하다.
왜 헌법 개정이 필요한가
헌법은 법률과 다르다. 헌법은 기본권의 카탈로그이자 국가권력의 한계와 의무를 정한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는 법률로 쉽게 제한할 수 없고 사법부도 엄격하게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헌법은 미래를 대비하는 규범이다.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만 법률로 규율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법 개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시민의 권리는 침해당한다. 하지만 헌법에 정보기본권의 원칙과 체계를 담아두면,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기술과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기준점이 생긴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는 1791년 채택되었지만,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한다. 왜냐하면 헌법이 ‘출판의 자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보기본권을 헌법에 담으면,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 기술에도 대응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정보접근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멕시코,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핀란드 등 다수 국가가 헌법에 정보권을 명문화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헌법에 정보접근권을 보장해 왔으며, 유엔 인권이사회는 “정보접근권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며 각국에 헌법적 보장을 권고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헌법 조항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는 2008년 “정보사회에 참여할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고, 포르투갈은 1982년부터 이미 컴퓨터 파일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을 헌법에 담았다. 에콰도르는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과 함께 “보편적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인 개인이나 사회집단”을 위한 국가 보장 의무를 명시하며 디지털 포용권의 선례를 만들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은 1983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했고, 유럽연합은 개인정보보호법(GDPR)과 기본권 헌장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독자적 권리로 명확히 했다. 2017년 유럽연합이 선포한 유럽 사회권 원칙은 디지털 통신을 ‘필수적인 서비스’로 규정했으며, 2019년 유럽접근성법은 모든 사람의 디지털 접근성을 법제화했다.
더 주목할 점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권리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024년 유엔은 인공지능에 관한 최초의 결의안을 통해 AI 시스템의 투명성과 이해 가능성을 촉진할 것을 회원국에 독려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AI 알고리즘이 기존 사회의 편견과 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자동화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차별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국제인권규범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와 사회권규약 제15조는 문화생활 참여권과 과학의 진보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이러한 권리가 단순히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접근, 참가, 기여의 권리를 포함한다고 명확히 선언했다.
헌법에 담아야 할 정보기본권

그렇다면 우리 헌법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아야 할까?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헌법 개정안은 ‘국민의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정보 독점 및 격차에 대한 예방 의무’를 포함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7년이 지난 지금, 2018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1. 정보접근권
모든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권리. 단순히 “알 권리”라는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공공 정보에 접근하고, 취득하고, 공유할 구체적 권리로 명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외국인도,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도 정보접근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2.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처리에 관하여 통제할 권리. 단순히 동의권을 넘어,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이용·가공되는지 알 권리와 이를 통제할 권리를 포함한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인공지능 시대의 권력 구조에 맞서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적 권리로 격상되어야 한다. 거대 빅테크 기업의 정보 남용과 잇따른 개인정보 침해 및 유출에 대항할 수 있는 헌법적 무기가 필요하다.
3. 알고리즘 설명 및 이의제기권
AI와 알고리즘이 채용을 결정하고, 신용등급을 매기고, 복지 수급자를 선별하는 시대다. 앞으로 공공행정에서 AI 활용 확대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불투명하고, 이로 인해 어떤 권리의 침해가 발생하는지 조사하기조차 어렵다.
시민은 자동화된 결정의 과정과 근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부당하다면 이의를 제기하고 인간의 개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알고리즘 차별금지가 명시되어야 한다. 데이터 편향으로 인한 성별·인종·연령·장애 등에 따른 차별이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은밀하게 확산되고 강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공 부문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투명성과 설명 책임성을 갖춰야 하며, 민간 부문 역시 차별적 알고리즘 사용에 대한 헌법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와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4. 디지털 표현·창작의 자유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견 표명과 정보 공유의 자유. 기존 표현의 자유 조항이 디지털 공간에도 적용되지만, 플랫폼 기업의 검열, 정부의 인터넷 규제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면 디지털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5. 정보격차 해소, 디지털 포용권 및 정보문화향유권
기술 발전에서 소외된 계층(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정보접근 및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지원 의무.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모든 사람은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과학의 진보와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정보문화향유권은 단순히 소비하는 권리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문화를 창작하고 공유하며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 온라인 도서관, 디지털 박물관, 공공 데이터베이스 등 디지털 문화 공공재에 대한 구체적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저작권 보호나 개인정보보호법의 남용으로 정보와 문화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6. 국가의 적극적 의무 명시
시민의 정보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 역시 명시되어야 한다.
첫째, 정보를 생산·기록·보존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행정의 설명책임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 정책 근거, 예산 집행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시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참여할 수 있다. 둘째, 더 나아가 공공 부문에서 사용되는 AI 알고리즘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할 국가의 의무가 규정되어야 한다. 셋째, 거대 플랫폼 기업의 정보 수집과 알고리즘 사용을 감독해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의 정보권력 집중을 견제하고, 시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헌법에 명시해야 국가가 기술 변화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정보기본권’ 헌법이 만들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

“법률과 제도는 인간 정신의 진보와 함께 가야 한다.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진리가 밝혀지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관습과 의견이 바뀌면, 제도 또한 진보하고 시대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19년마다 헌법의 유효 기간을 만료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각 세대가 자신의 시대에 걸맞은 헌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8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의 삶은 디지털로 옮겨갔고, AI는 일상이 되었으며, 사이버공간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헌법은 여전히 1987년에 머물러 있다.
정보기본권의 헌법적 보장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이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시대에, 헌법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다시 세울 것인가의 근본적 질문이다. 정보기본권은 고립된 권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평등권, 참정권 등 다른 기본권과 결합되어 21세기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든다.
시민이 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한 민주주의, 알고리즘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인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 발전이 모두의 권리 확장으로 이어지는 포용적 민주주의. 이것이 ‘정보기본권’ 헌법이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