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21조넷 성명] 독일의 공영방송 ARD와 ZDF는 한국 시민들에게 사과하라

2025.03.06

독일의 공영방송 ARD와 ZDF는
한국 시민들에게 사과하라
[The Whole World Is Watching]

2월 25일 독일의 공영방송 ARD와 ZDF가 운영하는 전문편성 TV채널 Poenix의 웹사이트에 <인사이드 코리아- 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INSIDE SÜDKOREA – STAATSKRISE IM SCHATTEN VON CHINA UND NORDKOREA)>라는 약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3월 6일 ARD와 ZDF에서 방송될 예정이라 한다.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은 이 다큐멘터리가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더욱 위태롭게 할 극도로 편향되고 왜곡된 방송이라 판단한다. 우리는 한국의 중요한 사태를 보도한 외국 언론사의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아왔지만 이토록 허위정보에 가까운 콘텐츠는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가 유럽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두 방송사에서 취재, 제작, 편성했다는 사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한 국가의 중요한 사태에 대한 외국 언론의 보도는 3자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보지 못한 문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3자의 시선을 벗어나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오래된 냉전 체제의 관점으로 확대하고 왜곡하였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조차 저버렸다. 대립하는 두 주장이 있을 때 언론은 사실이 아니며 근거가 없는 한 쪽의 주장은 다른 쪽의 주장과 동등하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국민 다수가 허위 사실이며 망상으로 판단하는 일부 극우 세력의 주장을 압도적인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국민 다수가 납득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자기 변명, 이를 그대로 반복하는 극우 지지자들의 발언, 이들 발언의 근거로 제시하는 신뢰도 낮은 전문가들의 인터뷰, 그리고 이들의 주장을 토대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풀리는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주요 취재원 또한 극우 인사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계엄령의 문제점을 지적한 취재원은 단 한 명 뿐이었다. 다른 다섯 명의 취재원은 극단적인 대통령 지지자, 부정선거 음모론의 확산자, 실체도 없는 공산주의 카르텔을 주장하는 교수들이었다. 무엇보다 몇 개월 전까지 보수 정치인들조차 외면하고 종교계에서도 멀리했던 전광훈을 우익 포퓰리스트로 소개했다. 그의 발언과 행태는 우익이 아니라 파시스트에 가깝다.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이 냉전 시대에 가졌던 동아시아에 대한 선입견을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재 한국의 사태를 “중국-북한-극좌 야당의 은밀한 정치적 동맹”과 “미국-일본-여당”이라는 이분법적 냉전 구도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틀짓기는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을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한국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으로 시청자들을 보게 만든다. 이런 프레임은 중국-한국-북한 간 긴장관계를 왜곡하여 선거 뿐 아니라 한국 입법부와 사법부의 정당성까지 의문에 부친다.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유럽의 시청자들은 한국을 일본 식민지 해방 직후의 부실한 민주주의 후진국으로 여기게 만들 것이다.

ARD와 ZDF는 이 다큐멘터리가 현재 한국의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극우 세력의 폭력에 국제사회가 정당성을 부여할 선전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이러한 효과로 독일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20세기 나치즘이 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 제작진 뿐 아니라 두 공영방송사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1980년 ARD 특파원이었던 힌츠페터는 광주민주화 항쟁을 최초로 취재한 외신 기자였다.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 세계에 알렸던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ARD가 부정하고 있다. 2017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국 시민들에게 에버트 인권상)을 수여했다. 두 방송사는 그 때의 한국인들을 이 다큐멘터리로 모욕하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말한다. 이토록 편향되고 왜곡된 다큐멘터리를 독일의 공영방송이 방송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보고 있다.

2025년 3월 6일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

공권력감시대응팀, 문화연대, 블랙리스트 이후, 사단법인 오픈넷,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한국장애포럼(가나다순)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은 언론,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16개 인권, 언론단체의 연대체입니다.
** 이 성명은 3월 6일 중 외신기자들에게 영문으로 배포될 예정입니다.

————————————————————————————————————–

[Press Release] German broadcasters ARD and ZDF should apologize to Korea and the Korean people

“The Whole World Is Watching” 


On February 25, a documentary about 30 minutes long titled ‘Inside Korea – State Crisis in the Shadow of China and North Korea (INSIDE SÜDKOREA – STAATSKRISE IM SCHATTEN VON CHINA UND NORDKOREA)’ was released on the website of Phoenix, a specialized TV channel operated by German public broadcasters ARD and ZDF. It is reported that this documentary is scheduled to be broadcast on ARD and ZDF on March 6.

The ‘Network for Freedom of Expression Against Hatred and Censorship (abbreviated as Article 21 Net)’ considers this documentary to be an extremely biased and distorted broadcast that will further endanger the current crisis of Korean democracy. We have seen many news reports and documentaries from foreign media covering important situations in Korea, but we have never seen content that is so close to misinformation. Above all, we express deep regret that this documentary was researched, produced, and scheduled by two of Europe’s leading public broadcasters.

Foreign media coverage plays an important role in providing a third-party perspective to the  people. However, this documentary has gone beyond a third-party perspective. It has expanded and distorted the claims of the far-rights threatening Korean democracy from an outdated perspective of the Cold War system.

Above all, this documentary has abandoned even the basic principles of journalism. The media should not treat groundless and false claims equally with the opposite claims when covering a controversy. However, this documentary predominantly features claims by few far-right groups that the majority of Korean people consider to be false and delusional. It repeatedly presents narratives that inflate the crisis of Korean democracy based on the President’s unacceptable self-justifications, statements from far-right supporters that echo the President, interviews with unreliable experts presented to support these statements, and narratives that exaggerate the political conflict as a crisis of Korean democracy.

The majority of key sources were also from far-right groups. There was only one respondent who pointed out the unlawfulness of martial law. The other five respondents were extreme supporters of the President, election fraud conspiracists, and professors making groundless claims about a communist cartel in South Korea. Above all, the documentary introduced Jeon Kwang-hoon simply as a right-wing populist. Jeon was shunned even by conservative politicians and religious communities until a few months ago. His statements and behavior are closer to that of a fascist than a conservative. 

The biggest problem with the documentary is that it revived Europe’s Cold War-era prejudices on East Asia. The documentary views the current situation in Korea through a dichotomous Cold War framework of “secret political alliance between China, North Korea, and the far-lefts of South Korea” versus “alliance of US, Japan, and the ruling party.” This narrative framework presents the viewers conspiracy theory as a plausible communist threat. It falsely depicts the tensions between China, Korea, and North Korea, and questions not only the election system, but also the legitimacy of Korea’s legislative and judicial branches. From the documentary’s perspective, European viewers would consider Korea as an underdeveloped democracy similar to the period right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zation.

ARD and ZDF have not considered what impact this documentary will have on the current situation in Korea. This documentary will be used as propaganda to legitimize the violence of far-right groups that undermine the foundations of Korean democracy. Through this propaganda, the 20th century Nazism might revive in 21st century Korea.

We demand an official apology not only from the documentary production team but also from the two public broadcasters. Jürgen Hinzpeter, an ARD correspondent in 1980, was the first foreign journalist to cover the Gwangju Democratic Uprising. ARD is now denying the history of the Korean democratic struggle that he risked his life to report to the world. In 2017, Germany’s Friedrich Ebert Foundation awarded the Ebert Human Rights Award to Korean citizens who led the impeach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The two broadcasters insulted them with this documentary.

We clearly state: The whole world is watching that such a biased and distorted documentary is being broadcast by German public broadcasters.

March 6, 2025

Network for Freedom of Expression Against Hatred and Censorship 

(abbreviated as Article 21 Net)

Activists group for Human Rights BARAM
Center for media responsibility & human rights
Cultural Action
Disability Discrimination Act of Solidarity in Korea
Human Rights Movement Space ‘Hwal’
Korean Disability Forum
Korean Progressive Network Jinbonet
National Union of Media Workers
Open Net Korea
People’s Coalition for Media Reform
Post BlackList
Seoul Disability Rights Film Festival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Solidarity Against Disability Discrimination
South Korean NGOs Coalition for Law Enforcement Watch
The Center for Freedom of Information

* The ‘Network for Freedom of Expression Against Hatred and Censorship (abbreviated as Article 21 Net)’ is a coalition of 16 human rights and media organizations in Korea working to promote freedom of the press and expression.

Contact: Open Net Korea +82 2 581 1643, master@opennet.or.kr 

by
  •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긴급성명] 학내 성폭력 문제해결과 지혜복 교사 부당전보 및 해임철회를 위해 투쟁하다 연행된 23명을 전원 석방하라.

2025.02.28
[긴급성명] 학내 성폭력 문제해결과 지혜복 교사 부당전보 및 해임철회를 위해 투쟁하다 연행된 23명을 전원 석방하라.

2025년 2월 28일 오늘 오전, 경찰은 지혜복 교사의 부당전보 및 해임철회와 정근식 교육감의 사과를 요구하는 ‘A학교 성폭력 사안,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와 지혜복 교사를 포함한 시민 23명을 연행했다.

지혜복 교사는 2023년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을 위해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공익신고자인 지혜복 교사를 보호하고 학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지혜복 교사를 부당전보하고 이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해임했으며, 서울시교육청 산하 중부교육지원청은 해당 교사에 대해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하였다. 이는 학생과 교사의 안전한 교육환경과 노동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는 교육청으로서 의무 방기이며, 성평등한 학내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교사에 대한 명백한 탄압이자 보복이다.

이에 공대위와 시민들은 지혜복 교사의 복직과 서울시교육감의 사과를 요구하며 2025년 2월 26일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희망텐트 농성투쟁을 진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공공기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농성 참여자의 화장실 사용을 통제하는 등의 인권침해를 저질렀고, 경찰은 이에 항의하는 농성 참여자를 퇴거불능을 이유로 강제 연행했다. 다리골절 부상자가 발생해 병원에 이송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겪으며 시민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고, 성평등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과잉진압하는 경찰은 시민을 지킬 수 없으며,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 중인 교사를 탄압하는 정근식 교육감은 ‘진보교육감’일 수 없다.

이에, 학내 성폭력 문제해결과 지혜복 교사 부당전보 및 해임 철회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경찰은 공대위와 지혜복 교사를 포함한 시민 23명을 즉시 석방하고 과잉진압 사과하라!

하나, 정근식 교육감은 학내 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싸워온 지혜복 교사에 대한 부당전보 및 해임을 철회하고,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교육감으로서 책임을 다하라!

2025.2.28.

67개 시민사회단체  및 724명 개인 일동

by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대법원,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확정

2025.02.14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하자마자 대통령비서실에 친구 자녀와 김건희 씨의 코바나컨텐츠 직원 채용, 극우 유튜버 가족 채용 등 대통령실 직원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아 대통령실에 직원 명단을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물론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이 개인정보이고 공개되면 청탁 위험이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고,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 했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정보공개센터가 승소했음에도 대통령실은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2월 13일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원심이 확정되었습니다.

대법원 결정이 난 만큼 대통령비서실은 즉시 직원 명단을 공개해야 합니다. 대통령비서실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 밖에 존재할 수 없으며, 이번 판결은 국정운영의 투명성이라는 공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대통령비서실 인사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판결로, 앞으로 공직자 인사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판결 다음 날인 오늘(2월 14일), 대통령비서실에 법원 판결을 근거로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했습니다. 청구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인 2022년 5월 10일부터 현재까지 대통령비서실 소속 전체 공무원의 성명, 부서, 직급(직위)에 대한 명단입니다. 대통령비서실의 조속한 정보공개를 요구합니다.

대법원 판결문 (대법원 2024두61049)

원심 판결문(서울고등법원 2024. 10. 23. 선고 2023누61525)

by
  •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논평] 내란범죄 증거의 봉인을 막아야 한다

2025.02.13

윤석열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끝을 향해가고 있다. 무장한 계엄군 수백명이 헬기를 타고 국회 본관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수천만 국민들이 있음에도,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는 법적 절차는 고되기 그지없다. 윤석열과 내란세력은 민주주의 회복의 열망을 끈질기게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의 터널이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과 중요임무종사자들의 죄를 낱낱이 밝혀, 진상을 규명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내란범죄의 중요 증거가 될 대통령기록이 다시 봉인될 위험에 처해 있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대통령지정기록으로 지정될 경우, 최장 15년 간,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경우 30년 간 봉인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세월호 관련 기록 등 20만여 건의 기록을 대통령지정기록으로 봉인한 전례가 있다. 악몽같은 전례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로 구속된 초유의 상황에서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통령기록이 법적 보호라는 명목으로 봉인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드러난 법률적 미비 사항을 보완하고자 신설된 조항인 <대통령기록물법> 제20조의2는 대통령 궐위 시 차기 대통령 임기 개시 전까지 모든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 완료하도록 규정하고, 대통령기록관장으로 하여금 대통령기록의 이동, 재분류 등의 금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신설 조항에도 불구하고, 탄핵심판으로 인한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에 권한대행의 대통령기록 지정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대통령 궐위 시 지정권을 누가 행사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대통령기록을 지정하는 행위에 대한 위헌확인 심판청구(2017헌마359)에서도 대통령 궐위 시 권한대행의 지정권 행사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실체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권한대행의 지정행위에 대한 청구인의 기본권 침해 여부, 즉 헌법소원 청구 적격성 문제만을 다루었을 뿐, 권한대행의 지정행위 자체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이 와중에 온갖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는 최상목 권한대행은 전례를 핑계대며, 지정권한을 행사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권한대행이 당연히 대통령기록의 지정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현실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내란 우두머리 및 중요 임무 종사자들과 동조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권한대행이 대통령기록 지정권 행사를 통해 핵심 증거를 봉인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기록의 지정권한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한 <대통령기록물법>의 긴급한 개정이 필요하다.

첫째, 위헌적 비상계엄 등 헌정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기록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정기록으로 분류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17조 신설)

둘째,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의 기록에 대한 지정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의적으로 기록을 봉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의 기록에 대한 지정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17조 2항 개정)

셋째,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은 폐기를 포함한 대통령기록의 일상적 처분일정을 즉각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어길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20조2 개정)

넷째, 대통령 궐위 시, 특별위원회에 지정권한을 부여하여야 한다. 내란 우두머리 및 중요 임무 종사자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로부터 임명된 대통령기록관장이나 전문위원회가 아닌 특별위원회에 지정권한을 부여하여 대통령 지정기록의 지정행위에 대한 공정성, 객관성, 전문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특별위원회는 국회, 대법원,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전문가로 구성하여야 하며, 특별위원회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규정하여야 한다. (20조2 3항 신설)

위헌적 계엄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핵심 증거인 대통령기록은 남김없이 보존되어야 한다. 대통령지정기록제도가 대통령의 범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의 4가지 개정사항은 윤석열의 내란 행위에 대한 증거보전과 진상규명을 위한 필수적 조치다.

by
  •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한 직업안정법 개정안 발의

2025.02.13


산재 등 기업의 안전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산재 예방 및 노동자의 안전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산재정보제공 의무화법’이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와 민주당 김태선 국회의원(울산 동구)은 2월 12일 수요일 구직자에게 제공되는 구인정보에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는 ‘직업안정법’을 발의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현재 구인정보에 임금체불 여부는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산재 정보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구직자에게 사업장의 산재정보제공을 의무화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1. 구직자는 지원하려는 사업장에서 최근 3년 이내에 산업재해가 발생했는지 사전에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2. 직업소개소와 취업정보 제공 사이트도 산업재해 발생 정보를 구직자에게 알릴 의무를 갖게 됩니다.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오늘 사람이 죽은 기업에서, 내일 다시 사람을 뽑고,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사업장 안전이 개선되지 않은 채 연달아 사고가 터지는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구직자들에게는 안전한 직장을 찾을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들에게는 채용을 위해서라도 산재 예방에 힘을 쏟도록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표발의한 김태선 의원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과 같은 사후 조치뿐 아니라 정보 공개를 통한 사전 예방 조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노동자의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산업재해 예방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지지 발언에 나선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어떤 기업이 위험한지 노동자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산재 사고 정보 공개는 구직자가 미리 위험을 인지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하다”면서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회가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 발언문

오늘 사람이 죽은 기업에서 내일 다시 사람을 뽑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사실은 위험한 일이라고, 사고가 날 수 있고, 유독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고, 그래서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이는 없습니다.

구인사이트에 들어가 여러 채용공고를 찾아봅니다. 구인공고에는 업무시간과 급여액, 복리후생 등 기본 정보밖에 없습니다. 맡게 될 일들도 간락하게 적혀있지만, 어렵지 않은 일 이라는 설명이 붙기도 합니다. 채용공고를 본 구직자들은 그 말을 믿고 지원을 하고, 채용이 되고, 일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어제 누군가 일하다 죽은 자리일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사망사고로 빈 자리를 구직자들은 알 수 없습니다. 채용정보를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업무의 위험성과 사망사고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고, 벌써 시행 3년이 되었지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일하다 죽지않고 퇴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외침 역시 여전합니다.
변한 것도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산재기업 명단 은폐는 더 노골화 되었습니다. “수사 관련 정보다”, “기업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정보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국회의원들에게는 제출하던 중대재해 발생 기업 명단을 지난해에는 국회의 자료제출요구에 못이겨 중대재해 기업의 이름을 현땡땡땡땡 이라고 가려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기업의 눈치를 보며 눈가리고 아웅 식의 얕은 수를 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구직자와 시민들에게 산재기업현황이 제대로 공개될리 만무합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2년 전 고용노동부에 산재기업명단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청구했지만 아직도 공개를 받지 못해 소송중에 있습니다. 재판부도 정보 공개로 인한 기업의 사회적 낙인 우려는 비공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고용노동부는 항소까지 해 정보은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시민들이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직장을 찾는 구직자들에게는, 일하다가 죽지 않을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정보공개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정부가 산재발생기업명단을 포함한 산재사고사망데이터를 시의성 있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의 경우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주요한 사고 사례에 대해 언제, 어느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고 사업주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합니다.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반경 5km 내 동일한 업종의 비슷한 시설에서 안전관리 위반사례가 무려 73%가 감소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번에 발의된 직업안정법이 개정되면 구직자가 워크넷, 잡코리아, 사람인 등 채용정보 플랫폼에 구인공고를 확인할 때 기업의 중대재해 발생 여부를 확인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구직자들에게는 안전한 직장을 찾을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들에게는 채용을 위해서라도 산재 예방에 힘을 쏟도록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산재기업의 명단을 공개할 수록, 위험정보를 공개할 수록 더 안전할 수 있게 됩니다. 알권리는 안전하게 살 권리 입니다.

정보공개센터도 앞으로도 더 안전한 일터, 더 투명한 사회, 노동자와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활동해 나가겠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 노동자 구직자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회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 지지 발언문

오늘 이 법을 위해 국회의원 17명이나 발의에 참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국회의원이 합류하여 산재사망을 줄이는데 아낌없는 노력으로 법안이 꼭 통과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미력하나마 저에게도 힘 보탤 수 있도록 여지를 열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저의 아들이 직장을 구할 때 제가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어떤 회사가 위험한 일자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답답했습니다. 제가 이직할 때도 직접 현장에 들어가 봐야만 어느 정도 위험 인지가 가능했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 공업용 알코올을 장갑 낀 손으로 만질 때 손은 보호될 수 있는지, 지급된 방진복과 면 마스크만으로 입으로 물질이 흡입 되도 정말 괜찮은 것인지, 같은 현장 안에 제품 간지로 사용한 에폭시를 기계에 넣고 고온 소독할 때 지독했던 냄새는 우리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 이밖에도 회사마다 다른 현장의 위험을 관리자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안전 교육을 한 번도 시행한적 없이 개별 사인만 받아가니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화재로부터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몰라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더더군다나 산재사망 공개 청구는 아예 엄두조차 어렵습니다. 제가 살면서 이직한 여러 회사들은 모두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아들 용균이는 사회 첫 직장인 서부발전 하청에 입사했고 3개월만 산재사망을 당했습니다.
입사하기 전 회사를 검색하니 국가기밀시설이라 위험을 인지할 수 없었으므로 부모로서 마음 편히 보낼 수 없었습니다. 사고 이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아들에게 적절한 안전교육도 없었고 안전 장비도 지급받지 못한 체 위험한 현장에 회사가 혼자 떠민 것을 특조위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이처럼 산재사망사고는 거의 대부분이 취약한 비정규직에게 발생합니다.
비정규직이라 모진 갑질을 감내해야 되고 체불임금과 생사를 거는 위험한 현장이지만 쉬운 해고로 생계위험이 더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 왜 어떤 정부든 묵인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우리나라 성인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각종 비정규직들을 대신해서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 관료들에게 해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로 인해 우리의 몸과 정신은 망가진 채로 병원을 전전해 다시 고쳐 쓰면서 노인이 되어도 일할 수밖에 없는 삶에 현장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가 따로 없어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그동안 산업발전에만 치중하여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사람 한명 한명의 목숨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해왔는지 해마다 수천 명 중대 산업재해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나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이나 아들 김용균 산재사망으로부터 사회의 심각성이 드러났고 다시는 일하다 죽는 사람 없도록 우리는 동조하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행된 지 3년차가 되었지만 산재사망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현실이 개탄스럽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오늘 발의하는 직업안정법은 기업에 의해 발생하는 산재사망을 줄이고 구직자들이 직장 구할 때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산재사망 정보공개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권리를 제공받는 중요한 법입니다. 함께 애써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고 다시한번 더 이 법을 꼭 통과 될 때까지 의원들이 노력을 아끼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노동자들이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매진해 주길 바랍니다.

by
  •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중대재해 정보공개 거부한 고용노동부… 사고는 계속된다

2025.02.05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

지난 1월 2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의 제목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바꿔 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주년을 맞아 민주노총과 중대재해감시센터, 중대재해전문가넷, 국회 생명안전포럼 등이 주최한 토론회중대재해감시센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에는 874명, 2023년에는 81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했으나, 이 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일부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중대재해 사건으로 수사한 사건은 모두 866건이다. 이 중에서 160건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고, 그 중에서도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74건에 불과했다.

최소 18건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나머지 사건들의 처리 현황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월부터 2024년 9월까지 중대재해 사건의 기소 현황. 토론회 자료집 내용 재구성중대재해감시센터

어느 기업에서 어떤 중대재해가 발생했는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무엇인지, 기소·불기소 현황과 재판 결과는 어떠한지 등 공식적인 발표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자료 역시 발제자인 홍준표 기자(매일노동뉴스)가 개별 사건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추적하여 확인한 내용들이었다.

대기업은 면책? 알 수 없는 법 적용 기준

기소 내용을 살펴보면 특히 대기업에 대한 ‘선별적 면책’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친 2022년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의 경우 지하주차장에 폐지를 방치하고, 화재감지기 경보시설을 꺼놓은 등의 관리부실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건이었다. 소방시설을 담당한 하청업체는 현대아울렛의 지시에 의해 화재감지기를 꺼놓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원청이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했다고 판단하여 대표이사를 기소하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에쓰오일 공장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고들중대재해감시센터

2022년 5월 울산 에쓰오일 공장 폭발 사고(1명 사망, 9명 중상)에서도 대표이사와 CSO는 ‘관리책임 없음’, ‘안전보건 의무 이행’을 이유로 불기소됐다. 그러나 에쓰오일 공장에서는 이후에도 2023년 3월 폭발 사고로 2명이 부상당하고, 각종 화재 사고가 빈발하는 등 정말로 안전보건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의심스러운 사고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기소 이후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35건의 판결 중 원청 경영책임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건은 5건에 불과하고,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인에 대한 벌금도 대부분 법정 최고액(50억원)의 2% 수준인 1억 원 이하에 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판결 35건 중 원청 책임자에 대한 형량 분포 현황. 토론회 자료집 내용 재구성.중대재해감시센터

더욱 심각한 것은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위반해 벌금형 전력이 있는 11개 사업장 중 8곳이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18차례나 위반했던 상운건설(2023년 5월 창원 오피스텔 신축 현장 추락 사고)의 경우 대표이사와 현장소장 모두 동종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다혜 변호사(법무법인 고른)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한 기소와 판결에 대해 “검찰의 불기소 사유나 법원의 양형 이유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일관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 과실’이나 ‘회사의 사후조치’를 감경요소로 언급하고 있는데, 동일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거나, 다수의 법 위반 실태가 확인되었다는 점은 과연 양형에 충분히 고려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위험을 알 권리마저 ‘영업비밀’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기업의 책임을 처벌하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규정한 법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일터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관리 대책과 안전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기업뿐 아니라 안전보건 전문가나 노동자들 역시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위험에 대한 알권리와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들이 제대로 공개된다면 노동조합이 기업에 예방 대책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정보 접근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2024년 2월, 중대재해가 빈발한 한화오션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연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금속노조 거통고지회

2024년 들어 5명이 사망한 한화오션이 대표적인 사례다. 거제노동안전보건활동가모임은 매년 한화오션의 원하청 통합 산업재해조사표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하여, 얼마나 사고와 질병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지만,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하청 산재 현황이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를 비공개하고 있다. 이렇게 정보가 차단될 때마다 노동자는 위험 요인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수밖에 없고, 죽음은 반복된다.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 역시 “이제는 제발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라며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명단도 공개를 안하고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예방효과를 낼 수 있느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전의 시작, 정보공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는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 아닌 기업의 조직적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을 이뤄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에 대한 정보공개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 언제, 어느 기업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가 일어난 원인과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재발방지 대책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공개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오픈채팅방을 통해 배포하는 중대재해 사이렌.고용노동부

지금도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사이렌 오픈채팅방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10여 개의 사례를 재구성해 중대재해 사고 백서를 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업종별로 다양한 양상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모두 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개별 사건마다 왜 사고가 발생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현재 ‘수사 자료’임을 이유로 비공개되고 있는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사업장의 산업재해 현황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하거나, 사고 조사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를 제한하는 관행도 개선되어야 한다. 정보 접근과 참여가 제한될 때마다 노동자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와 노동자 참여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첫걸음이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by
    김예찬 활동가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정보공개심의회 회의록, ‘숨기고 비우고 칠하고’

2025.02.03

국민은 누구나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 공공기관이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정보 중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은 이런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하지만, 비공개 결정이 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이의를 제기하면 해당 정보의 공개 여부를 다시 심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보공개심의회’가 하는 일이다.

정보공개심의회는 공공기관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하고 소속 공무원, 임직원, 외부 전문가 등이 심의위원이 될 수 있다. 심의회에서 위원들은 안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청구된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토의해 결정한다. 회의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말이다.

행정 각부, 처, 청을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에서 정보공개심의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22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의 정보공개심의회 운영현황에 관한 정보를 59개 중앙행정기관에 청구했다. 이의신청 처리대장, 심의회 안건 목록, 회의록 등의 자료를 통해 정보공개 청구인들의 이의신청이 각 부처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심의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숨기고 보는 회의록

청구한 정보를 모두 공개한 기관은 총 19곳으로, 전체 기관의 약 32%에 불과했다. 재청구나 이의신청을 거치지 않고도, 최초 청구시부터 모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한 곳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산림청, 소방청, 재외동포청, 통계청, 해양경찰청 총 6곳에 불과했으며, 행정 각부는 한 군데도 포함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기관은 무엇보다 회의록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비공개 사유에 저촉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일률적으로 비공개 대응을 하고 보는 것이다.

감사원이 공개(?)한 정보공개심의회 심의의견서. 모든 란을 지우고 보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회의록. 의사결정과정이 모두 지워져 있다.

비공개 사유로 가장 많이 내미는 것은 일명 ‘5호’이다. 회의록이 정보공개법 9조 1항 5호에서 규정하는 비공개 가능 정보, 즉 “감사·감독·검사·시험·규제·입찰계약·기술개발·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정보공개를 심의하는 업무가 비공개되어야만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아이러니하다. 회의록을 확인할 수 없으면 심의 과정이 공정히 수행되었더라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의사결정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적극 공개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들은 회의록을 일단 비공개하고 볼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공개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회의 아닌 회의 남발

회의에 관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기관에서 진행되는 회의 방식이 ‘서면회의’라는 점도 문제가 있다. 서면회의란 안건을 각 의원이 제출한 글로써 의결하는 회의 방식이다. 본래 회의를 소집할 시간이 없거나 안건의 내용이 경미한 경우에 한해 진행되는 임시방편이다. 그런데 이번 청구 결과 최소 26개 이상의 기관이 대면회의 없이 서면회의만으로 정보공개심의회를 운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면회의는 회의 아닌 회의다. 토의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서면회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담당 공무원이 안건지와 의견지를 각 심의위원에게 전달한다. 심의위원은 안건지를 읽고 의견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이렇게 제출된 기각(비공개 유지), 인용(공개), 부분인용 등의 의견 중 다수의견이 심의 결과로 채택된다. 참가자 간에 안건에 관하여 질의하는 과정,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 이견을 합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모두 생략되는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정보공개심의회 심의의견서(2024년 제1회). 의견란이 비워져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정보공개심의회 심의의견서(2022년 1차). 심의의견란에 ‘동의’라고 적혀 있다.

과정이 허술하면 결과도 허술하게 마련이다. 졸속으로 작성된 심의의견서도 발견되었다. ‘동의’라든가 ‘비공개’라고만 적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비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내용 부실 문제야말로 회의록 공개를 염두에 둘 때 해결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내용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될 수는 있겠지만, ‘업무의 공정한 수행’을 위해서라면 심의위원들이 더욱 신중히 의견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정보공개 원칙에 걸맞은 중앙행정기관이 되길

모든 기관이 불성실한 것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산림청, 소방청, 통계청은 대면회의를 진행하며, 회의록을 투명히 공개하였다. 정보공개의 원칙에 걸맞은 대응에 감사의 인사와 박수를 보낸다.

한편, 정보공개 업무를 태만히 하는 기관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대검찰청은 심의의견서를 생산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올해부터는 생산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봐야 할 것이다), 비공개 결정을 내린 국가안보실은 작년에 제기한 이의신청을 여전히 접수하지 않고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구 정보를 몽땅 비공개한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을 제외하고 모든 중앙행정기관들이 이의신청 처리대장만은 공개하였다(결정에 대한 이유 칸은 삭제한 경우도 많았지만). 기관들이 이의신청 처리대장만큼은 통일된 양식으로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정보는 정보공개시스템에서 바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보공개를 위해서는 시스템 차원의 노력 또한 필요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정보공개심의회의 핵심은 회의에 있다. 심의회 회의는 헌법적 가치인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보공개의 공익 및 타당성을 숙의하는 장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정보공개법의 입법목적과 취지를 아울러 고려해 볼 때, 정보공개심의회의 전반적인 운영 현황은 투명히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올해는 정보공개 원칙에 좀더 걸맞은 중앙기관들이 될 것인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2-2024 중앙행정기관 정보공개심의회 운영현황 자료 공유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2JXEUt2t_jW2ySU24zGFks07jzCgLob_?usp=sharing

by
    이리예 활동가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 토론회 후기

2025.01.22

토론회 자료집 다운로드 링크

2025년 1월 22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 무엇이 법을 멈추는가?” 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민주노총, 중대재해감시센터, 중대재해전문가넷, 국회 생명안전포럼 및 여러 국회의원실이 함께한 이 날의 토론회에서는 세 시간 동안 중대재해처벌법의 성과와 한계, 개선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중대재해감시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 역시 토론회 준비에 함께 했습니다.

매일노동뉴스 홍준표 기자는 법 시행 3년간의 수사·기소·재판 현황을 분석했습니다. 총 866건이 수사되었으나 실제 기소는 74건에 그쳤고, 35건의 선고 중 실형은 5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이 집행유예로 마무리되고 법인 벌금도 법정 상한선의 2% 수준에 그치는 등 처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제시되었습니다.

서울사이버대 강태선 교수는 예방감독 행정의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이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머무르는 현실을 지적하며, 영국·독일·일본 등의 자율안전관리 사례를 참고해 위험성평가 중심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업종별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이해관계자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한 장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동연구원 이승우 연구위원과 서울대 박현아 연구원은 6개 산업분야 노사 안전보건 담당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법 시행 이후 경영진의 안전의식은 높아졌으나, 노동자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법 집행이 당초 입법 취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다혜 변호사는 양형 기준이 불분명한 문제를, 민주노총 최명선 실장은 대기업 봐주기 수사와 감독행정 후퇴를 비판했습니다.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짚은 개선방안으로는 △양형기준 재검토 △위험성평가 실효성 강화 △노동자/노동조합의 실질적 참여 보장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정합성 제고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참석자들은 중대재해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어느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어느 기업에 어떤 행정처분이 내려졌는지 알 수 없으니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202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사망했지만, 이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여 기소했는지 여부 역시 언론을 통해 사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 역시 불기소 처분 사유를 알려주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일관성과 투명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 이호준 사무관이 피의사실공표 등의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하자, 기업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이제 시행 3년을 맞이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예방체계 구축과 노동자 참여 보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알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향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by
    김예찬 활동가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공개사유] ‘직원명단 절대 비공개’ 대통령실, 무속인 행정관 때문?

2025.01.21

정보공개가 탈주술 정치·행정의 시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시절 정책 토론회에 출연해 손바닥을 펼치며 상대 후보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손바닥에는 임금 왕(王) 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사진: 방송토론회 캡춰)


일부러 보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선 후보 시절 왼쪽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그려 넣은 손바닥이 TV 토론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을 때부터 일어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무속 논란은 여태껏 한 번도 말끔하게 해소된 적이 없었다. 건진이니 천공이니 생경한 무속의 이름들이 언론과 정치인들의 입에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다.

그러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서 지난 24년 8월경 역술인이 대통령실에 채용되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대통령실에 채용되었던 역술인 김씨는 시민사회수석실에서 4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행정관으로 일하며 신흥종교나 소수종교 단체 등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신흥·소수 종교도 종교이고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부이니 이를 전담하는 행정관의 존재 자체는 아예 이해하지 못할 차원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충격을 주는 것은 역술인 행정관 김씨가 맡았던 ‘부가적인 업무’이다. 김씨는 윤 대통령 내외와 새로 채용되는 대통령실 직원의 ‘궁합’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국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대통령실 직원을 뽑으며 능력과 자질을 매의 눈으로 살펴도 모자란 마당에 무속과 운으로 사람을 대강 솎아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의 사주팔자로 좋은 날과 안 좋은 날을 가려 주요 정치일정을 정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마도 주된 업무는 공식적 업무보다 이 ‘부가적인 업무’가 아니었을까. 김씨는 최근에야 대통령실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헛웃음과 함께 설마 했던 시민들의 마음은 점점 불길하고 싸한 느낌으로, 싸한 느낌은 어느새 황망한 현실이 되어 끝내 대통령의 내란으로 무너진 민심 위에 뒤늦게 드러난 대통령실의 역술인 채용 사실은 답답한 한숨을 더 한다. 아니 어쩌면 대통령이 이 지경으로 국정운영을 운에 맡겨 왔음에도 더 큰 파국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역술인 행정관이 수행한 ‘부가업무’
다른 공공기관 공개하는 직원명단 공개 거부한 대통령실
오컬트 영화 같은 국정, 구마와 탈주술의 방법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끝끝내 숨겨왔던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윤 정부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2022년 5월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의 친구 아들과 6촌 친인척을 행정관으로 채용한 것을 시작으로 유명 극우 유튜버의 친누나, 김건희씨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의 직원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사적채용’ 의혹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의혹을 밝히기 위해 정보공개센터는 2022년 6월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 명단을 정보공개청구 했고,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직원 명단이 공개되면 로비나 청탁 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공공기관들이 모두 공개하고 있는 직원 명단을 비공개했다.

아니 그럼 다른 공공기관들은 로비나 청탁 위험이 없어서 직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로비나 청탁을 받으면서도 직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는 말인가. 결국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의 공개 여부는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대통령비서실이 이처럼 부실한 논리로 공개되어야 할 공공정보를 위법하게 비공개 하다보니 2022년 9월부터 시작된 직원 명단 정보공개 소송에서 1심과 항소심까지 연달아 패소했다. 이쯤 되면 그냥 직원 명단을 그냥 공개할 법도 한데 윤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은 정보은폐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2일 대통령비서실은 법률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최지우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자유를 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의 최종적 판단이 대법원으로 옮겨 가는 동안 지난 12월 3일 윤 대통령은 명분도 절차도 없이 비상계엄으로 정치적 자살을 자행하고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 정지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직원 명단 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더 빠를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판결이 빠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설령 대법원의 직원 명단 공개 판결이 나오더라도 대통령비서실이 더 이상 정보공개를 수행할 수 있는 행정기관으로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지난 2022년 12월 23일 자립준비청년과 보호아동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했다. (사진: 대통령실)


이런 마당에 문득 의미 없는 가정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 윤 정부 대통령비서실이 직원 명단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을 만큼 사적인 관계와 무속에 의지하지 않고 능력과 공직자의 자질로 직원 인사를 했다면, 즉 편한 사람들과 ‘궁합’이 맞는 사람들로 주변을 채우지 않고 분별력 있고 고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남겼다면 지금과 같이 윤 정부가 파국을 맞이했을까. 어쩌면 당장의 그때그때 작은 불편함을 감수했다면 지금과 같은 완전한 몰락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인 오컬트(occult) 영화들 중 악마가 빙의한 사람을 구원하는 구마(驅魔)의식을 다루는 영화들이 제법 있다. ‘엑소시스트’ 시리즈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한국의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영화들에서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구마의식에는 빙의된 악마에게 이름을 묻고 그럼으로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대목이 빈번하게 그리고 매우 중요하게 표현된다. 그것은 아마도 이름이 존재의 본질이고 그것을 명명백백 드러냄으로 부패한 것, 악한 것을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두고 내려진 ‘주술정치’, 김건희 씨의 ‘빙의정치’라는 평가는 이제 반박도 궁색할 듯하다. 윤석열 정권의 국정운영을 돌이켜보면 한 편의 오컬트 영화 같았다. 이번 정권에서와 같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되겠지만 반면교사 삼아 따져보자. 국정운영에서 구마와 탈주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별반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공적 정보들을 법률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명명백백 드러내는 것이 곧 구마이고 탈주술화 된 합리적 정치와 행정 아니겠는가.

*이 글은 민중의 소리 <공개사유> 칼럼에 게시되었습니다.

by
    강성국 활동가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
활동소식

[기록관리단체협의회 논평] 국가기록원의 폐기 금지 조치는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2025.01.20

국가기록원의 폐기 금지 조치는 끝이 아닌 시작이어야 한다.

국가기록원이 지난 1월 15일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의 폐기 금지 고시’(국가기록원 고시 2025-2호)를 하였다. 그간 시민사회 단체와 기록공동체는 12.3 비상계엄 직후 지속적으로 폐기 금지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가 사건 발생 40여 일이 지나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국가기록원이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이 폐기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비서실, 국방부 등 20개 기관에 대한 폐기 금지가 결정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이번 국가기록원의 폐기 금지 조치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보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폐기 금지 조치 불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바꾼 경과를 국가기록원은 설명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그 동안 각계의 폐기 금지 조치 요구에 대하여 “폐기 금지 조치는 보존기간 만료 도래 기록물에 대하여 취하는 조치이며, 12.3 계엄 관련 기록물의 최초 보존기간 만료 시기는 2026년 1월 1일부터이므로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언론에 밝혀왔다. 그렇다면 금번 폐기 금지의 조치는 기존 입장의 변경인지, 아니면 불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고시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면 잘못된 입장 표명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 헌법기관 기록물관리기관과의 협의 때문에 지연됐다는 핑계가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폐기 금지 조치는 하루라도 빨리 합법적 폐기조차도 중지하게 하려는 제도이다. 한시가 급한 조치를 협의 때문에 지연했다는 설명은 소극 행정의 전형이고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협의 시간이 필요한 기관은 2차로 조치하고, 협의 불필요 대상에게 우선 신속히 조치했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이번 선례를 참고하여 폐기 금지 조치가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재점검하여 다시는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면 안 된다.

셋째, 폐기 금지 조치는 12.3.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에 대한 조치의 시작임을 명심하고 국가기록원은 후속 조치에 신속히 임해야 한다.

폐기 금지 조치 이후 국가기록원은 “폐기 금지 조치 및 관리 실태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폐기 금지 대상) 기관에 대한 기록물관리 현황조사 또는 점검 등을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시정 조치를 할 수 있다.”(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3 제3항) 그동안 국가기록원은 결재문서만을 폐기 금지 대상인 것처럼 해석하고 실태점검을 해왔다. 하지만 공공기록물법에서 기록물로 정의하는 모든 기록정보자료와 행정박물이 점검 대상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ㆍ국무총리 및 중앙행정기관의 장 등 주요 직위자의 업무관련 메모”(시행령 제21조 제1항 제1호)도 대상이고, 다양한 행정정보시스템에서 생산되는 행정정보데이터세트와 시청각물도 점검 대상이다. 국가기록원은 정확하게 법률을 해석하고 조사 및 점검을 해야 한다.

넷째, 2020년 시행 이후 제도의 보완과 시행 여부 등에서 문제 제기가 많았던 폐기 금지 제도에 대하여 국가기록원은 법령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0년 신설 직후 당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공공기록물법에 따른 폐기 금지 조치 시행을 국가기록원에 요청했으나 국가기록원은 끝내 조치하지 않았다. 2024. 12. 13.의 故 채수근 상병 수사 관련 기록물의 폐기 금지 고시와 10·29이태원참사 관련 기록물의 폐기 금지 고시도 최초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지연된 고시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폐기 금지 실효성 제고를 위한 법령 정비 필요성도 확실해졌다. 국가기록원은 실효성과 적시성을 제고할 수 있는 법령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지금까지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늦은 감이 있지만 비상계엄 관련 기관들의 철저한 기록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는 국가기록관리의 신뢰 회복을 위해 국가기록원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25년 1월 20일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사)한국기록전문가협회
문화융복합아카이빙연구소
한국 기록과 정보·문화학회

by
  •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센터는 정부지원 0%, 시민의 후원으로 활동합니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