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90%에 달하는 산업폐기물을 처리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 전국의 농어촌 곳곳에 매립장, 소각장, 유해재활용시설들을 짓고 있습니다. 그 이익은 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반면, 무분별한 사업추진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건강 피해는 지역주민과 지역사회가 떠안고 있지요. 이를 막기 위해 각 지역 농어촌에서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대응을 하고 있지만 이미 행정부처에서 인허가가 완료된 뒤인 경우가 많다보니 이를 막는데 어려움이 많은 상황입니다.
개발사업에 대한 검토와 승인 등에 지자체장의 재량권한이 확대돼 난개발과 환경파괴를 야기하는 사업이 더욱 무분별하게 시행될 우려도 높아진 상황에서 지역사회에서 환경오염시설을 막거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행정절차에 주민들이 개입하고, 당사자인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난개발과 환경파괴에 대항하기 위해 주민들의 알권리와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전국 곳곳의 환경파괴현장의 사례와, 주민들이 이에 대항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나눠봤습니다.
2025년 9월 26일 남원 산내면의 실상사 한켠인 선재집에서 전국에서 모인 시민 40여명이 <지역사회 난개발, 주민들이 막을 수 있으려면>이라는 주제로 함께 고민들을 나눴습니다. 이 행사는 재단법인 바보의나눔 지원으로 꾸렸습니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가 진행을 맡은 이 자리에는 지역의 난개발과 환경파괴에 대한 실태를 발표하기 위해 전북 정읍, 경북 김천, 경남 산청 지역에서 대책위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저 전북 정읍 옹동의 난개발사안에 대해 발표한 옹동면환경연대 엄성자 기획실장은 옹동면에서 주민들은 배제한 채 벌어지고 있는 석산개발과 폐기물처리 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맞서 싸워온 사례를 전했습니다. 김천 SRF소각시설반대 범시민연대 최현정 집행위원장은 김천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SRF 소각장 문제들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발표한 민영권 산청 난개발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산청과 지리산 지역의 케이블카와 골프장 추진 문제, 생수공장에 맞선 지하수 보존 문제 등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세 발표의 공통점은 개발로 인한 영향을 제일 직접적으로 받게 되는 지역주민들이 정작 개발에 대한 정보는 제일 늦게 알게 된다는 점 이었습니다. 정보의 불균형이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기업과 행정에 대항해 싸우는 과정의 어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해나가고 있는 점 역시 닮아 있었습니다.
환경파괴와 난개발 사례 다음으로는 왜 이런일이 벌어지는 지에 대한 구조적 문제와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김형수 정책팀장은 지역의 난개발 사안에 대해 왜 주민들은 미리 손을 쓸 수가 없는지에 대해 법과 정책의 한계와 사례를 함께 연결해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김유승 대표는 지역사회 난개발의 문제중 하나인 주민을 배제한 밀실결정을 부수기 위한 회의공개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발표자들 외에 현장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욌는데요. 현재 난개발사업이 추진중인 지역의 주민들이 대응하기 위한 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질문들, 주민들의 활동을 확산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함께 이야기 되었습니다. 준비한 2시간으로는 모자라 2시간 30분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는데요. 3시간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난개발과 환경파괴 주민알권리 침해가 많은 이들이 겪는 문제라는 말 이겠죠.
그날 발표자들의 발표문을 통해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난개발과 환경파괴 사안에 대한 주민 알권리 보장을 위한 대안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한 달 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조곡산단 반대 주민대책위 주민 세 분을 만났다. 2021년 SK에코플랜트는 이곳에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산업단지 안에는 자원순환시설이 포함됐다. 하지만 언뜻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이 시설의 실상은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다. 지하 35미터, 지상 15미터 규모에 석유, 페인트, 시너와 같은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매립장이었다. 이들은 자기가 살고 일하는 지역에 환경오염 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을 한참 뒤늦게야 알았다.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뒤늦게 사안에 대응하기 위해 군청에 찾아갔다. ‘왜 주민에게 알려주지 않았냐’고 묻자, 담당 공무원은 ‘홈페이지에 고시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살면서 지자체 고시 공고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났던 주민은 “칠십, 팔십 먹은 노인네들이 홈페이지를 어떻게 보냐는 소리를 못 하고 그냥 벙쪄서 있었어요. 지금도 억울해요”라며 요식행위에 그친 군청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조곡리뿐 아니다. 전국 농촌 곳곳에 환경오염 시설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난개발 추진 지역도, 문제가 되는 시설의 종류도 제각각이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문제가 있다. 주민들은 이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는 점이다. 땅 주인이 아니라서, 어떤 시설이 들어오려는 건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서, 군청 홈페이지에 찾아보기도 어렵게 형식적으로 고시해 놓아서…. 이유는 다양하다.
왜 주민들은 뒤늦게 알 수밖에 없을까?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자료인 환경영향평가서의 공개는 한참이나 늦어지고, 사업을 승인하는 회의들은 주민들에게 비공개되기 일쑤다. 기업은 회의장에 들어와 직접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참관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지역에 어떤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지와 같은 기본정보조차 모든 협의가 종료된 이후에 고시될 뿐이다.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야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그 고시 공고로 말이다. 환경오염 시설이 지역에 설립되는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지만, 그것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건강과 삶터가 망가지기 일쑤다. 밀실에서 추진되는 난개발을 막고 주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환경오염 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려고 할 때는, 땅 주인이건 주민 대표자건 상관없이 해당 지역 주민 모두에게 문자로 통지할 필요가 있다. 하루에 몇 통씩 재난 문자도 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정부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환경오염 시설 추진은 엄연히 정부-기업-주민 모두에게 영향이 있는 일이다. 그 과정에 주민의 목소리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자는 군청, 도청에서 무슨 일들이 결정되고 있는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이들 중 하나다. 특히 지역 언론은 주민들이 몰랐던 개발 계획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그것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군청 홈페이지 구석에 묻혀 있는 고시 공고를 일일이 찾아볼 수 없는 주민들에게, 언론의 보도는 가장 효과적인 정보 전달 통로가 된다. 더 나아가 언론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누가 어떤 회의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주민 의견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추적하고 보도함으로써 행정의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 환경영향평가서가 제때 공개되지 않는다면, 왜 공개하지 않는지 묻고 보도해야 한다. 어쩌면 공공기관은 지금껏 누구에게도 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온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주민의 삶터에서 벌어지는 환경파괴 사안을 주민들이 가장 늦게 안다. 난개발 결정 과정에서 주민 배제와 정보 불평등의 벽은 단단하고, 이를 대하는 공무원들은 주민보다는 기업의 편에 서기 일쑤다. 난개발을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선 주민들의 삶을 위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까지 그 간극을 잘 메워야 한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않는 고령의 주민들에게 군청 홈페이지에 고시했으니 보라고 하는 무성의한 행정의 관행 앞에 언론은 중요한 전달자가 될 수 있다. 주민들이 가장 늦게 알게 되는 구조를 바꾸는 일에 분명 언론도 역할을 할 수 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주민들과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 2024년 7월 13일 신암면 조곡리 조곡 산업단지(폐지물매립장) 건설 예정지 앞에서 ‘산단 불승인’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이재환)
전국 농촌 곳곳에서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산, 폐기물처리시설, SRF(고형연료) 소각장, 생수 공장, 골프장 등 문제가 되는 시설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민들의 증언은 하나로 모아진다. “나중에야 알았다.”
2021년 충남 예산 조곡에서는 SK에코플랜트가 산업단지건설을 추진했다. 산업단지 안에는 지하 35m, 지상 15m 규모의 산업폐기물처리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업체는 주민들에게 “자원순환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이름이었다. 주민들은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시설이라고 믿었지만, 실제 내용은 석유와 페인트, 시너 등의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매립장이었다. 동네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전북 정읍시 옹동면은 토석채취업체와 폐기물처리장으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1997년부터 채석 사업장 5곳이 들어섰고, 주민들은 27년간 소음·진동·먼지 피해를 겪었다. 마을 중심에 있던 폐기물처리업체는 원래 가축분뇨를 처리하던 시설이었지만 주민들 모르게 폐기물처리업으로 업종이 변경됐다. 폐기물처리장의 악취로 바로 옆의 학교는 창문조차 열 수 없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채석 업체들은 소규모로 시작해 환경영향평가를 피한 뒤 점차 규모를 늘리는 수법을 반복했고, 2025년 까지 운영을 끝내기로 했던 한 업체는 32년까지 7년 더 운영을 확장 하면서 마을 주민에게는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결국 2022년 주민들은 대한민국 최초 면 단위 환경단체 ‘옹동면환경연대’를 결성해 4년간 석산 7건, 폐기물업체 5건 등 총 12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기업과 지자체가 비공개했던 자료들이 재판 과정에 가서야 공개되었고, 주민들은 ‘보조참가인’ 제도를 활용해 직접 정보를 모았다.
김천에서는 2017년 플라스틱 등을 태워 에너지원을 만드는 SRF(고형연료) 소각시설 허가가 났지만,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2019년, 한 주민이 일상적인 용무로 김천시청을 방문했다가 면사무소 앞에 걸린 현수막을 발견했다. 현수막에는 “SRF 소각시설 생기면 김천 시민 다 죽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삶의 터전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시설에 대해 2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주민들은, 우연히 내걸린 현수막을 보고 비로소 SRF 소각시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반대 운동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왜 주민들은 뒤늦게 알 수밖에 없을까? 이는 개발 절차에서 법과 제도가 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과 관련한 법들은 사업자가 행정의 허가를 받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안에 주민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사업이 시작될 때 주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지자체와 행정이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는 주민들
▲지난 9월 26일, 2025지리산포럼 <지역사회 난개발, 주민들이 막을 수 있으려면> 세션에서 정보공개센터 김유승 대표가 회의공개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기업이 산업단지, 소각장, 폐기물 매립장 등을 건설하려면 우선 지자체에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주민에게는 정보가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 어떤 시설을 지으려고 하는지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관계 기관, 부처와의 협의 절차 등이 모두 진행된 뒤에야 고시가 시작된다. 주민들의 대응은 늦을 수밖에 없다.
고시, 공고의 실효성 역시 큰 문제다. 사업계획이 수립되면 지자체는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 공보에 고시하고, 이를 통해 ‘주민에게 알렸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농촌 지역의 현실은 다르다.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는 주민들은 대부분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공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보에 올라오는 내용은 대부분 법률적 용어와 어려운 단어로 빼곡하게 작성되어 있어, 주민들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 결과 법적으로는 ‘알렸다’고 처리되더라도, 주민이 정보를 제대로 접하고 대응할 기회는 거의 없다. 일부 환경영향평가를 받는 사업에서 진행하는 주민설명회 역시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뿐더러, 주민 의견이 실제 인허가 과정에 반영될 의무는 없어 형식적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각종 심의위원회는 더욱 폐쇄적이다. 업체 관계자는 회의장에 들어와 직접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회의가 언제 있는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록조차 이미 끝난 뒤에야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이 철저히 차단된 사이, 기업은 사업으로 큰 이익을 챙기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는다. 갈등은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 지속되며 주민들의 삶을 지치게 만든다. 밀실에서 추진되는 난개발을 막고 주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주민 참여 보장하는 제도 개선 필요
▲당진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청한 주민들에게 갈등유발시설 계획이 제출될 때 문자로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몇몇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갈등유발시설 사전고지 조례’를 확대하고,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업자가 지자체에 인허가 신청을 하면 주민에게 반드시 통지하도록 하는 제도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2025년 6월 기준 전국 35개 지자체가 사전고지 조례를 마련했으며, 고지 대상은 폐기물처리시설, 가스 저장소, 도축장, 발전소, 장례 시설 등 최대 11종에 이른다. 대부분은 게시판이나 공문으로만 알리지만, 양주·파주·평택·김해·당진·서산 등은 문자로 안내한다. 주민 접근성이 월등히 높은 방식이다. 일부 지자체는 주민 의견 수렴 절차도 두고 있지만 여전히 반영 여부는 행정 재량에 달려 있어 한계가 크다. 그럼에도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제도로서 전국 확대가 필요하다.
또 개발사업 추진 시 마을 단위로 충분히 협의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지자체가 투자협약을 맺거나 사업계획서·인허가 신청서를 접수할 때, 해당 마을과 인근 마을 주민에게 이를 공개하고 공식적으로 협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의 과정은 이장이나 대표 몇 명의 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총회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이를 공식 문서로 제출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만 주민들의 생활권과 건강권이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각종 심의·위원회 과정을 전면 공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현재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도시군관리계획위원회, 산지관리위원회 등은 대부분 밀실에서 진행된다. 일정도 주민에게 고지되지 않고, 회의록은 수개월이 지난 뒤 공개되며, 주민은 방청이나 발언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앞으로는 회의 일정과 안건을 사전에 공개하고, 주민 방청과 의견 발표를 보장하며, 회의록을 즉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설치된 위원회 회의 공개 조례를 강화하고 법령 수준에서 ‘회의공개법’ 제정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고, 주민들의 참여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현행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다. 예를 들어 1일 100톤 미만의 소각장은 평가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법정 기준을 절반으로 낮추거나, 지자체 조례로 보완해 더 많은 시설이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17개 시·도 중 12곳이 조례를 제정해 ‘1일 50톤 이상 소각장’도 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포함시켰다. 조례를 통해 대상이 확대되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주민설명회, 공청회 절차가 의무화돼 주민들의 알 권리와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된다. 아직까지 조례가 없는 지역은 서둘러 이를 마련해야 하고, 이미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평가 결과가 형식적 절차에 그치지 않도록 주민 참여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뒤늦게 알았다”는 주민들의 절규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제때 정보를 접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고지 의무화, 마을 단위 협의, 심의위원회 전면 공개, 환경영향평가 실질화 같은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밀실 속에서 추진되던 난개발은 멈추고, 주민들의 삶과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
정년퇴직한 후 서울로 이주하면 뭘 하며 지낼까 고민하던 중에 정공센 활동을 제안받고 비교적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저의 관심사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공센의 활동이 그런 지향과 맞닿아있고, 저의 노력을 보탤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는 정공센 사람들입니다.
공익이라는 가치를 위해 일하면서도 생기 있고, 밝고 씩씩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모여있다니!
사무실은 대체로 시끌벅적하다가 각자의 작업에 급히 몰입하고, 무엇보다도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입니다.
작은 성과에 크게 기뻐하고 한 번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무엇보다도 소소한 행복의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입니다. (이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면 정공센으로 오세요.)
정공센 상근 활동에 대해 걱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능한 젊은 활동가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이미 ‘오올드’하지 않을까? 하지만 당분간은 내 방식대로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 기록학을 가르쳤고, 관련 책과 논문에서 기록관리제도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한국의 기록관리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좋은 지렛대가 되려면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제도적 기록관리라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신뢰 사회’의 문턱에서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이나 학술 영역에서 주장해 왔던 기록관리 정책과 제도 개선을 위하여 시민사회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정공센 활동가 및 회원들을 믿고, 한 걸음, 한 삽이라도 보탠다는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관심과 격려 부탁합니다.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개입 의혹 관련 긴급현안 청문회’에 조 대법원장과 다른 증인들이 불출석했다. 2025.09.30(사진: 민중의소리)
12.3 내란이 가져온 해악과 혼란을 빠짐없이 열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지금 국가 체제 자체를 가장 흔들리게 만들고 있는 것을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아무 고민 없이 ‘사법 불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사법 불신은 법원 스스로가 자처했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반성적 태도가 없다는 점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참담한 심경이 든 지 오래다. 내란과 같은 상황에서 국가를 지탱하는 마지막 기둥이 되어야 했던 사법부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지난 5월 1일 불과 대선을 1달 앞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자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말 그대로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그간 판례 경향을 뒤집은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 자체도 놀라웠지만,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판결에 이르는 절차의 속도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건이 접수되자마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순식간에 판결을 내렸는데 사건 접수 기준으로는 34일 만에, 재판부 사건 배부 기준으로는 9일 만에 판결이 이뤄진 것이다. 당연히 이재명 대통령의 상고심은 법원 역사상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판결해버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피고가 누구든 절차에 의문이 들기 마련인데 하물며 피고가 유력한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유무죄 판결 여부와 관계 없이 판결에 걸린 시간과 판결의 시점 만으로도 어느 한쪽으로부터 사법부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이처럼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과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했고 이는 지귀연 판사가 자신만의 괴상한 논리로 윤석열을 구속취소했던 사건과 함께 한국 사회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의 사법 불신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정보공개센터는 이처럼 사법 불신의 발단이 된 이재명 상고심과 관련해서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행정심판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대법원 재판부가 심리와 합의를 할 때 재판연구관 보고서가 제공되는데, 이 보고서가 대법관들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보공개센터는 이재명 대통령 사건의 재판연구관 보고서가 언제 작성되었는지, 언제 대법관들에게 배부되었는지, 그 분량은 얼마나 되는지를 법원행정처에 정보공개 청구했다. 이 정보들이 공개되면 재판부가 적절한 시간을 두고 숙고해 합의를 진행했는지 여부를 국민들이 보다 면밀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내용의 법원조직법 제65조를 근거로 ‘재판연구관 보고서에 대한 이런 기초정보들이 공개되면 불필요한 논란이 일게 되어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며 비공개 결정을 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법원행정처가 법원조직법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적용하고 있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재판에 대한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로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사진: 뉴스1)
그런데 법원이 국민의 알권리의 제한을 주장하며 강변하는 이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말이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희대 대법원장과 법원은 판결에 신뢰가 가기 힘들 정도로 합의에 이르는 절차가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져 국민들로 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 것인데, 이런 비판을 불필요한 논란으로 치부하고 재판과 관련된 단순한 행정정보마저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법원이 국민과 여론의 비판 자체를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법원의 인식은 다분히 권위주의적이며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말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는 차원에 머문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법원이 주장하고 있는 재판의 독립성은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적 가치, 국민의 감시와 참여라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재판의 독립성의 본질은 국민주권과 국민의 감시와 참여를 성립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국민주권과 국민의 감시와 참여와 같은 가치 보다 중요하거나 그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즉 진실한 의미의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부당한 권력의 압력과 영향으로부터 법관들과 사법부 구성원들이 견고한 양심과 윤리로써 지키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관심이 지대한 재판에 대한 모든 정보를 국민의 감시로부터 감춘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설령 이런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민들의 의견이나 비판이 형성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되려 장기간 해결되지 않는 의혹과 책임 문제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더욱 장기화할 뿐이다.
[보도협조요청] 서울고등법원,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단 공개하라” 정보공개센터 2심도 승소
2025.10.02
수 신
언론사/방송사 사회부·법조팀 담당
발 신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문 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 (02-2039-8361)cfoi@opengirok.or.kr
제 목
[보도협조요청] 서울고등법원,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단 공개하라” 정보공개센터 2심도 승소
시 행
2025.10.02
고용노동부, 불필요한 상고 중단하고 즉각 정보 공개해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담 임자운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서울고법 2024누68158)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2일 밝혔다.
2025년 10월 2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동일하게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명단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비공개 처분을 취소했다. 이로써 어느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시민의 알 권리가 두 차례 연속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법원-정부 정책 방향 일치…상고할 명분 사라져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 발생 기업 명단을 공개해도 고용노동부가 주장한대로 수사 직무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고용노동부가 최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중대재해 발생 기업명 정기적 공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나왔다. 고용노동부 스스로 정책을 통해 중대재해 정보 공개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법원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할 명분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정보공개센터는 고용노동부가 불필요한 상고 절차를 중단하고, 법원의 거듭된 판결과 종합대책의 취지에 따라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 명단을 즉각 공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공개 지연은 곧 시민의 알권리 외면”…상고 말아야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는 “법원이 이미 두 번이나 정보공개의 정당성을 확인했고, 고용노동부 스스로 정기적으로 중대재해 발생 기업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상고를 통해 정보공개를 지연시킨다면,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내용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시민의 알권리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보공개센터는 고용노동부가 명단을 공개하는대로, 해당 정보를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찾기’(www.nosanjae.kr) 웹사이트를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산업재해 정보공개 확대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소송 개요
사건명: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 명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사건번호: 서울고등법원 2024누68158 원고: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담 임자운 변호사) 피고: 고용노동부 판결일자: 2025년 10월 2일
지난 해 김조은 활동가기 Rights Con에서 만난 대만 의회 모니터링 단체 Citizen Congress Watch(CCW)에서 초청해준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름하야 국회 투명성을 위한 아시아 연대(Asian Alliance for Parlianmentary Openness)(가칭)!
투명한 국회를 만들기 위해 대만, 말레이시아, 몽골, 스리랑카, 일본,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태평양 각지에서 의회 감시 활동을 벌이는 단체들이 모였습니다.
연대체의 첫번째 목표는 “국회 투명성 평가조사”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평가를 위해서는, 지표들이 필요하겠죠? 그 지표를 만들기 위해, 이번 9월 18일부터 19일 이틀간 도쿄에 총 26인의 활동가들이 뭉쳤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활동가들과 함께, 우리들의 의회가 얼마나 책임 있는 자세로, 정보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며, 시민 참여를 얼마나 보장하는지, 이를 위한 법과 제도는 얼마나 잘 갖추어져 있는지 측정하는 질문들을 만들었습니다.
알록달록 포스트잇이 보이시나요? 평가 지표에 대한 수정과 건의사항들입니다. 하루 8시간씩, 더 날카로운 지표를 만들기 위해 맹렬한 토론이 이어졌답니다🔥토론하고 있는 김조은 활동가와 의견 포스트잇을 부착하고 있는 이리예 활동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번 지표는 아래와 같이 크게 4개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투명성: 의회가 조직, 인사, 입법 활동, 의사결정 과정 정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공개하는가?
책임성: 의원과 의회가 재정·이해관계 행위 및 행정부 견제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지는가?
시민 참여: 시민들이 의회 활동에 얼마나 의미 있게 참여하고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가?
법·제도 장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한 명확하고 집행 가능한 절차적 보호 장치가 존재하는가?
맨 처음 지표는 주로 ‘무엇을 얼마나’만을 물었습니다. 의원과 직원, 의안과 회의록, 투표결과, 예산과 결산의 정보를 말이지요. 그러나 다양한 정치·행정·법·제도의 지형 속에서 활동한 경험을 나누며, 우리는 더 많은 의문사를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표가 묻는 것은 ‘얼마나 신속하게’, ‘얼마나 꾸준하게’, ‘얼마나 접근·활용하기 쉬운 형태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투명성 지표뿐 아니라 법·제도 장치에서도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요. 이에 대해 참가자들과 논의하며 정보공개를 위한 법적 체계, 비공개 결정의 법적 근거, 불복구제절차 등을 측정하는 지표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표를 세세하게 만들어나가는 와중, 한 참가자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완전히 망했어, 그치?” 그 말에 담긴 페이소스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그때, 다른 참가자가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치만 그게 우리가 원하는 거잖아.” “우리 정부가 이 결과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보고 싶네.” 우리들에게 투명성 측정이라는 것은 요식행위가 아니라, 반성과 성찰,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질적인 액션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시간 이어진 회의에서도 의지와 열정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찰칵! 대인원이 길을 잃지 않도록 우산 깃대를 만들어 인솔했어요 ㅋㅋ
이번 지표들은 전문가들의 학술적 검토를 거쳐 올해 말 최종판을 만들고, 내년 3-5월에 실제 평가조사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AAPO의 소식, 종종 전하겠습니다!
이번에 참여한 단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아-태평양의 의회감시 단체들을 탐험해보세요!
15억 보조금 지원하는데 행사명까지 ‘종교 갈등 우려’ 때문에 비공개? 서울시 종교단체 지원사업, 그것이 궁금하다!
2025.09.29
서울시는 2019년부터 ‘종교단체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3년부터는 ‘종교계 주최 시민참여 행사 지원사업’으로, 2025년에는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 지원사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한 이 사업, 정확히 무슨 행사를 지원하는 걸까요? 공고문에 따르면 ‘서울시의 주요 정책 목표 홍보’에 기여할 수 있는 행사나, ‘계승·발전이 필요한 종교계 문화예술 행사’를 지원하는 행사인데요. 뉴스를 찾아보니 올해도 봉은사에서 주최하는 ‘불교 차 문화 축제’나 CCM교회에서 주최하는 ‘다문화 공동체와 함께하는 가을밤 콘서트: 사랑의 하모니’ 같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간 어떤 단체에서 어떤 행사들이 진행되었나 궁금해져 2019년부터 2024년까지의 공고문, 심사결과 보고서, 결과보고서를 서울시에 정보공개청구하였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받아본 문서들, 공고문만큼은 원본 그대로였지만, 심사결과 보고서와 결과보고서는 군데군데 내용이 홀연히 사라진 채였습니다.
서울시는 심사위원 및 심사관련 정보는 ‘추후 심사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 그리고 사업비와 정산내역은 ‘단체 생산기술상의 노하우, 경영·영업상의 정보로 공개될 경우 단체의 정당한 이익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보공개법 9조 1항 5호에 따라 의사결정과 내부검토 과정 중에 있는 사항은 비공개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이 끝나면 적용되지 않습니다. 청구한 정보들은 이미 의사결정과 내부검토가 종료된 사안인데다, 사업비에는 서울시 예산이 포함되는 바 예산 운용의 투명성과 시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마땅히 공개해야할 내용이죠. 이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비공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선정 결과가 공개되면 종교 갈등 유발?
올해 2월달에 청구한 행정심판은 일정이 계속 미루어져 8월이 되어서야 재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결과는? 어이없게도 ‘일부인용’. 결과보고서의 사업비 및 정산내역에 대한 부분만 공개해도 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어떤 단체가 선정되었는지, 어떤 행사를 했는지는 비공개해도 된다는 판단을 내린 건데요, 대체 그 이유가 뭘까요? 선정 결과가 공개되면, 종교단체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고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정보공개센터의 행정심판청구에 서울특별시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하였습니다.
공모사업 선정 결과의 경우, (중략) 보조금 교부에 관한 정보공개로 인해 종교별, 종교간 지원단체 및 지원금액의 차등규모 등으로 인하여 장래 보조금 심사사무 등에 현저한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고 종교 간 갈등 우려에 따라 비공개 결정하였습니다.
상기 우려로 인하여 보조사업 공고 당시에도 심사결과는 개별통보하도록 사전 공지하였는 바, 지원단체들도 단체명이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지하고 있기에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처리하였습니다.
이에 종교단체들의 접수 현황 및 종교단체들의 선정 결과 등은 종교단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공개 시 발생할 수 있는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 및 갈등의 심화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헌법 제20조 제1항, 제2항,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의해 비공개 결정하였습니다.
말인즉슨, 선정된 단체가 어디어디인지, 지원해준 금액이 얼마씩이었는지 알려지면 선정 결과가 편향적이라며 종교단체들 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고, 그러면 앞으로의 지원사업 진행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심판위원회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알권리 보장보다 지원 선정 단체 비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심사결과 중 종교별, 단체별 지원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공개될 경우 종교단체 사이의 갈등 유발 및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향후 피청구인의 종교단체 재원사업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 심사결과 중 종교별, 단체별 지원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공개에 따른 청구인의 알권리 보장 및 권익구제 등의 이익이 비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피청구인의 종교단체 지원사업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의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중략) 등을 종합하면 위 정보가 정보공개법 제9조제1항제5호의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피청구인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행정심판 재결 중 일부〉
이렇게 받게 된 결과보고서 사업내용에는 주관 단체명도, 행사 일시와 장소도, 하물며 행사명도 없이 “국악공연, 영산재, 명상 교실, 다문화 장기자랑, 대중음악 공연 등”과 “기획전시, 문화 프로그램, 클래식 공연, 그림그리기대회, 무용경연 등”으로 뭉뚱그려져 있었습니다.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던 사업비 정산 항목은 어땠을까요? 행사별 구분, 인건비, 행사운영비, 홍보비 등 예산항목 구분도 없이 ‘지원금, 집행액, 집행잔액’이 전부였습니다. 종교별 차등지원을 우려하는 것치고 표를 구성한 방식도 이상한데요, 각 행사별로 사업비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종교별로 구분해두었습니다.
편의상 A, B, C, D교로 구분하자면 A교는 평균적으로 약 2,085만 원, B교는 약 2,821만 원, C교는 약 2,256만 원, D교는 약 2,900만 원을 보조금으로 지원받았네요. D교와 A교 평균 보조금 사이에는 815만 원의 차이가 있는 걸 이 표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164개 보조사업자 모두 공개하는데, 종교 단체만 비공개?
이번엔 서울시 결산공시를 찾아보았습니다. 지자체들은 지방보조금 집행내역을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3년 집행내역을 확인해보니, 보조금을 지원받는 보조사업자는 ‘신일교회 외 64건’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명단을 확인해보기 위해 다시 한번, 지방보조금이 집행된 민간행사 보조사업자 명단을 정보공개청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공개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소관부서들로부터 보조사업자 명단을 취합하였는데, 문화정책과에서 종교 관련 지원 사업은 보조사업자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27개 사업의 164개 보조사업자가 모두 공개되는 와중에도, 종교 관련 사업 5개의 지원을 받은 총 82개 보조사업자는 이렇게 숨겨졌습니다.
공모 공고문을 보면 이 지원사업은 시민 문화 향유를 확대하고, 서울시의 주요 정책 목표를 홍보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민으로서는 지금까지 어느 단체의, 무엇을 하는 행사가 열렸던 건지, 그 행사들에 시비가 얼마나 쓰였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지원 단체의 이름을 숨기는 것이 얼마나 실익이 있는지, 형평성이 있는지도 아리송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신문사, 신일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한국교회총연합은 알려져도 분란이 없을 단체라 대표로 공개되어 있는 걸까요? 인터넷에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 지원사업’을 검색해보면 각종 홍보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취합하면 지원 단체들을 알 수 있겠지요. 기사를 뒤질 것도 없이, 서울정보소통광장의 결재문서의 수신자들만 모아보아도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업무 지장이 생길까봐 선정 결과도 공표할 수 없는 공모라면, 대외적인 홍보도 막아야하지 않을까요? 결재문서를 보고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안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반면에 사업의 시작과 끝을 투명히 공개할 이유는 뚜렷합니다. 널리 공개해 모집하는 ‘공모’ 방식으로 지원 단체를 선정하는 사업이니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행사니까, 시민들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행사니까, 보조금을 받아 행사를 치른 다른 모든 단체는 공개되니까 말이죠.
행정심판, 시민 알권리에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주길
작년 11월, 서울 시청 광장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전기세가 얼마나 들까?’하는 사소한 궁금증을 발단으로 알게 된 종교계 지원사업(※트리는 ‘대한민국 성탄축제’ 사업 소관). 8월말이 되어서야 간신히 개략적인 사업비 항목만 공개받을 수 있었는데요. 간편하고 신속한 권리구제 제도라는 행정심판, 재결을 받는 데만 5개월이 걸렸습니다🥵 3개월 뒤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게 될 걸 생각하니, 정말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공개받지 못했다는 것도 답답한 부분입니다. 버젓이 찾아볼 수 있는 이름들, 종교 갈등 ‘우려’만으로 감추어 득을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7년째 어떤 곳이, 언제 어디서 어떤 행사를, 얼마만큼의 예산을 들여 치르고 있는지,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시민들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지자체 문화행사에 종교 단체가 정체를 감추고 참여하고 있다는 뉴스가 화제를 불렀죠. 겉으로는 공연, 문화체험 등의 행사를 진행하지만, 실상 포교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를 본 뒤로는, 지자체 행사를 어디서 주최·주관하는지 더 자세하게 살피게 되었는데요. ‘종교계와 함께하는 문화행사’도 시민들이 안심하고 유익하게 즐길 수 있도록, 진행 단체가 어디인지, 행사명은 무엇인지, 예산이 얼마나 들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겠습니다.
지난 9월 23일, 대통령실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 예산 집행 내역을 “역대 정부 최초”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동시에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자료도 메일로 보내왔다.
이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대통령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인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특수활동비를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겠다”고 약속하며, “그간의 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국민의 귀중한 세금을 올바르게 집행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집행정보 공개를 결정한 것은 이전 정부들과는 확연히 다른 투명성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은 그동안 독립언론 뉴스타파와 함께 국회, 검찰, 대통령실, 감사원 등 권력기관 예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특히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등 예산에 대해서 2022년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3년여의 법정 싸움 끝에 올해 6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승소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정부의 자발적 정보공개는 더욱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그간의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공개된 정보는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여전히 미달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수활동비 관련 쟁점
법원은 특수활동비와 관련하여 대통령실에서 보관·관리하고 있는 ‘현금수령증(영수증 및 집행내용확인서)’에 기재된 정보 중 “(현금) 수령일, (수령) 금액, 집행내용”은 모두 공개 대상이고, “확인자(수령자)” 정보만 비공개 대상이라고 명확히 판시하였다.
특히 법원은 특수활동비 집행내용이 “단순히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항이 기재되어 있을 뿐”이므로, 이를 공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의 직원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어떠한 목적으로 접촉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어서” 국가기밀의 유출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부분공개 사유로 “집행명목 중 일부는 개별적·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어 대외 공개 시 기밀을 요하는 사안들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법원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보고 국가기밀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는데, 대통령실이 “개별적·구체적”이라는 막연한 기준으로 가린다면, 법원 판결의 취지와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법원은 지출증빙서류를 공개 대상이라 판결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에 회신하며 ‘업무수행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지출증빙서류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 관련 쟁점
법원은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에 대해서도 “집행일자, 집행명목, 집행장소(상호 및 주소 포함), 집행금액”과 같은 집행내역과 신용카드 영수증 등 지출증빙자료를 공개하라고 판시하였다. 다만 50만원 이상 집행 시 기재되는 “외부참석자의 소속기관 및 부서, 직, 성명”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비공개 대상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자료에는, 법원이 공개대상으로 판단한 집행장소 등의 집행 정보가 대부분 가려져 있고, 신용카드 영수증 등 지출증빙서류 역시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의 요구
우리는 대통령실이 보여준 투명성 의지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법원 판결 기준에 부합하는 완전한 정보공개를 실시해야 한다.
– 특수활동비: ‘현금수령증, 영수증 및 집행내용확인서’ 등 실질적 지출증빙서류 공개 및 과도한 마스킹 해제
– 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 집행장소 등 구체적 집행 정보의 추가공개와 신용카드 영수증 등 지출증빙자료 공개
둘째, 대통령실이 스스로 약속한 “관련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개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 분기별 또는 반기별 정례 공개를 통한 투명성 제도화
대통령실의 이번 정보공개는 분명 투명성을 향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 법원이 제시한 공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 정부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신이 천명한 원칙에 부합하는 정보공개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특수활동비를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겠다”는 약속이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 투명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지속적인 감시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