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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보가 알고 싶다] 시민의 알권리 보장하는 정보공개 개혁, 이렇게 하자

2025.12.04

 

윤석열 정부 3년은 정보공개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 출발부터 문제였다. 대통령 취임식 극우 유튜버 초청 논란이 불거지자 초청자 명단을 파기했다가, 다시 대통령기록관 이관 중이라 말을 바꿨다. 대통령집무실 리모델링 수의계약 논란에는 아예 계약정보를 시스템에서 숨겼다. 대통령실은 공공기관이라면 당연히 공개해야 할 직원 명단, 업무추진비, 업무규정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정보은폐는 전 정부로 확산됐다. 한국석유공사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논란 후 계약정보를 비공개로 돌렸고, 행정안전부는 이태원 참사 관련 정보공개 청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법원의 거듭된 공개 명령에도 특수활동비 제출을 미뤘고,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기업 명단을 국회의원에게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정부 전반에 정보공개 원칙이 무너지고, 시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2023년 4월 1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당시 ‘재난통신망’ 교신 내역을 행정안전부가 폐기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정보공개센터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정보공개는 알권리를 보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차단하는 장벽으로 악용됐다. 다행히 이재명 정부는 ‘정보공개 기준과 절차의 합리적 개편으로 정보공개 확대’를 국정과제로 천명했다. 이제 정보공개 제도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따져보고,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정보공개제도의 구조적 결함

먼저 현행 정보공개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1998년 법 시행 이후 26년간 청구 건수는 88배 증가했고, 평균 정보공개율은 94%를 넘어섰다. 놀라운 양적 성장이다. 하지만 정작 ‘이슈’가 될 만한 정보들은 숨기고, 감추는 현실을 들여봐야 한다.

정보공개법의 원칙은 명확하다. 공공기관의 모든 정보는 공개 대상이며, 예외적으로 8가지 비공개 사유에 해당할 때만 제한적으로 비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비공개 사유를 과도하게 해석해 일단 비공개하고 본다. 심지어 법원 판결로 공개 대상이 분명한 정보도 비공개한다. 대통령실·검찰·감사원의 특수활동비가 대표적이다. 이미 법원이 공개 범위를 구체화했음에도 거부해 왔다. 비공개 사유 설명도 부실하다. 법조항만 제시할 뿐 구체적 근거를 밝히지 않아, 청구인은 왜 비공개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책임 없는 시스템이다. 판결을 무시해도, 자의적 비공개를 내려도 담당 공무원에게 아무런 페널티가 없다. 고의로 정보공개를 지연시키거나 청구 취소를 회유해도, 의도적으로 심의회를 개최하지 않아도 제재 방법이 없다. 특히 대통령실·국정원·검찰 등 권력기관은 기록관리부터 제대로 감독받지 않아, 있는 정보를 없다고 해도 검증할 방법이 없다.

불투명한 심의와 형식적 목록

정보공개법은 비공개 결정을 받은 청구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보공개심의회를 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비공개를 결정한 담당 공무원은 여기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하지만, 청구인이 참석할 수 있는 길은 막혀 있다. 코로나19 이후 서면심의가 확대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법에는 분명 대면 회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중앙부처 대다수는 회의를 열기 어렵다는 이유로 서면심의를 남발하고 있다. 이메일로 진행하는 서면심의에서는 위원들이 의견을 교환할 기회도, 담당 공무원에게 질의할 기회도 없어 기관의 입장에 기울게 된다.

또한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목록’ 공개를 규정하지만, 이는 결재문서에만 한정되어 실제 행정정보의 상당 부분이 누락된다. 업무관리시스템과 행정정보시스템이 전면 도입되고 데이터 기반 업무가 증가하는데도, 정보목록은 여전히 공문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접수된 정보공개청구의 49%가 정보부존재 및 민원·취하·종결·이송 등으로 처리됐다. 실제로 없는 정보를 청구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있는 정보를 없다고 통지한 경우도 확인된다. 정보부존재 통지를 받으면 청구인은 당장 불복할 방법이 없다. 정보공개법이 정보부존재에 대한 불복절차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보부존재가 실제 부존재뿐 아니라 “전자화된 파일이 없어서”, “청구한 형태로 줄 수 없어서”라는 이유로도 남발된다는 점이다.

지난 4월 1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세월호 참사 및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한덕수 당시 권한대행에게 윤석열 대통령 기록의 대통령기록물 지정에 반대하는 청원을 전달했다.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 개선을 위한 국회의원들의 제안

다행히 국회에는 알권리 강화를 위한 의미 있는 정보공개법 개정안들이 여럿 발의되어 있다.

투명성 확보: 이광희(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정보공개심의회가 위원 명단, 회의 일시·장소를 사전 통지하고 청구인의 출석 절차를 신설하도록 했다. 블랙박스처럼 운영되던 심의 과정에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공개 원칙 강화: 허영(더불어민주당)의원안은 비공개 대상 정보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국가안전보장 관련 비공개 정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했다. 민형배(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공공기관이 당사자인 확정 소송 정보를 비공개 예외로 규정했다. 박정현(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통일·외교 관련 비공개 정보를 명확히 규정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 관련 정보, 감사 및 연구용역 결과, 각종 위원회 관련 정보 등을 사전공개 대상으로 확대했다.

책임성 강화: 이에 더해 박정현 의원안은 거짓 정보 공개, 공개 거부, 고의적 처리 지연 등에 대한 징계 및 벌칙 규정을 신설했다. 비공개 정보가 포함된 경우에도 최소 범위로 분리해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동시에 정보공개 담당자를 폭언·폭행으로부터 보호하는 의무를 신설하되, 폭언·욕설·비방·협박을 수반한 청구에 한정하여 심의회를 거쳐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안이 광범위하고 추상적으로 종결처리 대상을 정한 것과 달리 합리적 범위로 한정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황운하(조국혁신당) 의원안은 정보공개 담당자의 금지행위를 신설하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감독 강화: 백혜련(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하는 정보공개 운영 보고서에 비공개 대상 정보의 범위에 관한 세부 기준 점검 결과를 포함하도록 했다.

정부가 ‘정보공개 확대’라는 국정과제의 실현 방향을 잡기 위해 꼭 참고해야 할 법안들이다.

정보공개 개혁을 위한 당면 과제들

2023년 10월 5일,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인 등이 국회에 모여 윤석열 정부의 알권리 침해 사례들을 증언하는 토론회를 열었다.정보공개센터

이에 더하여 정보공개 개혁을 위해 꼭 시행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1. 정부 개악안 폐기

윤석열 정부가 발의한 ‘부당하거나 사회통념상 과도한 정보공개 청구’를 종결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해 자의적 집행이 가능하고, 청구인의 내면적 의도를 심사하게 하는 것은 2004년 ‘청구사유’ 기재를 삭제한 법 취지를 정면으로 역행한다. 알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므로 이를 제한하는 법률은 위헌 소지가 크다.

2. 회의 공개 확대

현재 사전공개제도는 형식적 공개에 그친다. 각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위원회의 위원 명단, 회의 결과, 회의록은 사전공개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이미 조례로 각종 위원회 회의결과 및 회의록을 사전공개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공공기관 회의공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위원회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최저임금이나 중위소득 결정 회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설 관련 회의 등 시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회의는 방청을 보장해야 한다.

3. 비공개 기준 세분화

비공개할 수 있는 사유를 규정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의 모호성이 자의적 비공개의 근본 원인이다. “다른 법률에서 위임한 명령”은 “다른 법률이 공공기관의 장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규정한 정보”로 축소해야 한다.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의 사유는 너무 포괄적이므로 각각 다른 호로 분리하고 비공개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의사결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 조항이다. 과정 종료 시 청구인에게 통지하도록 단서가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의사결정의 과정이 어디까지인지, 무엇까지 내부검토로 볼 것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비공개할 논리를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특히 시민 참여가 필수적인 정책수립 과정에도 이 사유가 적용되어, 시민들의 참여를 막는 것은 잘못이다. 꼭 삭제되어야 한다.

“경영상·영업상 비밀”도 자주 남용되는 비공개 조항이다. 금융감독원은 업무추진비로 밥 먹은 식당 이름이 공개되면 식당 매출이 외부에 알려질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영업비밀 개념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비공개할 수 있도록 구체화가 필요하다.

4. 실효적 제재 수단 마련

처벌 내지는 징계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기록을 악의적으로 멸실·훼손·폐기했을 때 형사처벌 조항이 있다. 정보가 있는데 없다고 거짓말하거나, 고의로 부존재라고 속이는 경우, 법원 판결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처벌 대상은 최대한 좁혀 형사처벌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독립적 감독·구제 기구

현재 행정안전부 소속 정보공개위원회는 독자적 예산과 사무기구가 없어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이 불가능하다. 대통령 직속 독립위원회로 격상하고, 정보공개 의무위반에 대한 조사 및 징계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정보공개심의회는 대면심의를 기본으로 하고, 대면이 어려우면 온라인 화상회의라도 활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정보공개에 관한 행정심판을 전담하는 독립적 정보공개심판원 신설이 필요하다. 정보공개 행정심판 인용률은 14%에 불과한 반면, 행정소송 인용률은 45%에 달한다. 정보공개심판원을 신설해 신속하고 전문적인 권리구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6. 시스템 개선으로 남용 방지

2022년 전체 청구의 38%인 69만여 건이 단 73명에 의해 청구됐다. 1인 평균 9,526건이다. 이렇게 정보공개 청구가 남용될 수 있는 이유는 ‘전자 청구’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정보공개포털은 한 번에 수백 개 기관에 똑같은 내용을 청구할 수 있고, 하루에도 수백 건씩 다른 내용으로 청구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현재 모든 기관에 한 번에 다중청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교육청 등 그룹별로만 청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한 번 청구를 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청구 가능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도배성 청구를 막고 시스템 과부하를 막기 위한 방법이다.

청구 과정에서 욕설을 하거나 도배성 청구를 반복하는 청구인에 대해서는 정보공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보공개포털 시스템 이용약관 위반으로 제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전자적 방식의 청구만 제한하더라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투명성이 민주주의다

12.3 불법 계엄 이후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윤석열 탄핵심판과 대통령 선거, 특검 수사와 대미 관세 협상 등 ‘뜨거운’ 뉴스들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제는 윤석열 3년 동안 후퇴한 알권리를 되돌리고, 12.3 비상계엄으로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할 시간이다.

정보공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시민이 국정운영에 대해 더 많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여론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정보공개는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를 보장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인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선 정보은폐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21년간 멈춰 있었던 정보공개법의 전부 개정이야말로 장벽을 허물고,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길이 될 것이다.

by
    김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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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1년, 국가기록관리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2025.12.03
기록관리단체협의회 소속회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국군방첩사령부 친위쿠테타 관련 기록물 무단폐기’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상계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불법으로 동원된 행정권력이 입법권력 및 시민권력과 대립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공공영역에서는 과연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록관리의 일차적인 목적은 공적 업무에 대한 책임성과 투명성을 뒷받침할 기록을 생산, 관리, 보존, 서비스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은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었으나 현직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정치, 경제는 물론 전 국민의 삶의 지형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이었다. 국민은 그 진상을 알권리가 있으며, 국가기록관리체제에서는 진상규명에 필요한 기록의 생산과 관리, 폐기를 통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사건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으로 남기기 위한 다층적 기록화 작업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실효성 낮은 폐기금지제도

그렇다면 지난 1년간 국가기록관리체제에서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과연 어떤 기록을 확인하고 확보했을까? 국가기록원은 2025년 1월 15일, 12·3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에 대한 폐기 금지 결정을 약 20개 기관에 통보했다. 이들 기관이 비상계엄 관련 문서·영상·전자기록 등을 마음대로 폐기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나아가 2024년 12월 12일 이후 국가기록원은 대통령실, 국방부, 경찰 등 관련 기관에 대해 현장 점검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마 국가기록원조차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폐기금지제도는 기본적으로 국가기록관리기관(national archives)이 공공기관의 폐기를 통제하거나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한 평가 도구(예를 들어 미국의 Records Schedules)가 운용되는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록이 폐기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국가기록원도, 각 공공기관도 명확하게 확정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폐기금지제도는 상징적 의미만 존재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현행 제도의 큰 구멍, 기록생산 및 보존 통제

또한 공공기록물법에서는 업무과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접수한 모든 형태와 유형의 정보를 모두 기록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결재문서 외의 수많은 통신 기록, 등록하지 않은 업무 보고 자료 등이 ‘관행상’ 기록으로 관리되지 않으며, 따라서 공공기록물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등록하지 않으면 아예 기록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폐기금지 대상에서 빠지고 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의 경우 불법적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인하여 수많은 기록이 고의로 누락되거나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직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들을 찾기 위해서는 기록의 범위를 넓게 펼쳐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은 대통령 비화폰 통화기록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JTBC, 2025. 6. 26). 대통령이나 보좌기관 등이 업무와 관련하여 생산한 정보라면 형식이나 유형을 불문하고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12·3 계엄 이전에는 대부분 대통령실의 비화폰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이렇게 기관 내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수많은 형식의 업무 정보들을 기록관리 체제에서 규율할 수 있거나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법적 근거라도 갖추고 있어야 국가기록관리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시작은 기록평가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기록관리제도의 가장 큰 공백은 공공기록의 생산을 규율하고, 필요한 기간만큼 보존하도록 통제하는 정책이 극히 취약한 데에서 온다. 공공기관의 업무에는 반드시 기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행정의 기본이다. 하지만 국가가 어떤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공공기관이 국가기록화의 목표에 맞게 기록을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록평가정책은 여전히 ‘부재’하다. 국가기록원은 이제 더 이상 기록평가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언제까지 좁은 범위의 결재문서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펼칠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증거의 공백, 기억의 사라짐, 비공개 상태의 고착화라는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국가기록화 전략이 시급하다.


기록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진실은 전복된다

1년이 지났지만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도 재판도 아직 진행 중이다. 앞으로 오랜 기간 진실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진상규명에 필요한 공공영역의 기록화 작업이 지금처럼 느슨해서는 곤란하다. 12.3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라진 기록은 불법적 권력 남용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릴 수 없는 상태, 심지어 또 다른 불법적 계엄을 막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과 주장으로만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5.18 민주항쟁의 진상이나 심지어 홀로코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진실은 전복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좌절과 극복을 알리는 ‘세계기록유산’

이와 함께 범국가적으로 추진할 또 하나의 과제는 다양한 시민기록을 공적 영역으로 편입하는 것이다. 공적 기록이 부족할수록 시민들의 영상·사진·SNS 기록, 기자들의 취재 메모와 비공개 자료, 예술가의 기록행위 등이 대체적·보완적 근거가 된다. 이는 과거 군사정권 시기와 여러 국가의 민주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입증된 방식이다. 또한 사건 당일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 기자의 비공개 취재 기록, 예술적 관찰 기록 등은 공공기록의 빈틈을 메우는 귀중한 2차 자료다. 이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분류해 공적 아카이브에 편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공공기록의 결락을 메우는 것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역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시민들이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겠다는 행위만은 아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나아가겠다는 의지이자 사회적 약속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겪은 충격, 고통, 저항을 숫자나 통계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 공간의 흔적, 일상의 기록이다.

미디어와 예술계에서도 그날을 기록하고 되돌아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남길 수 있다. 개념미술가 성능경은 ‘신문읽기 12.3’이라는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당시의 공포와 혼란, 그리고 저항의 감각을 기록으로 남겼다. 또한 출판계와 영화계에서도 12.3 비상계엄을 다루는 작품들이 발표되며 기록을 토대로 해석과 성찰, 기억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공적 기록, 예술/문화 기록, 시민의 기억이 결합되고 연결될 때, 12.3이라는 사건은 풍부하고 다층적인 사회적 기억, 더 나아가 세계의 기록유산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by
    설문원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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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개발사업 및 환경오염시설에 대한 주민 알권리 실현방안 토론회 후기

2025.11.27


정보공개센터는 2025년 11월 18일 충북연구원에서 <개발사업 및 환경오염시설에 대한 주민 알권리 실현방안>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산업단지, 폐기물 처리 시설, 유해 화학공장 등 난개발 시설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알 권리 침해 실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김형수 정책팀장은 난개발 사업 관련 법률 자체가 주민 참여를 배제하고 있고, 환경영향평가 등의 참여 절차 역시 매우 형식적이어서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팀장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난개발 시설 인허가 관련 개별법(산업단지법, 폐기물관리법 등)을 개정해 주민 의견 반영이 가능하도록 하고, 특히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등 위원회 회의에 주민 발언권을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대상 기준을 규모가 아닌 사업 종류별로 규정해 사각지대를 없애고, 사업자가 대상 규모를 피하기 위한 꼼수를 막기 위해 광역자치단체가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사전고지 조례’ 제정과 강화 등으로 사업 추진 시 주민에게 사전에 정보를 고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김조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행정의 비공개 관행이 난개발과 지역 갈등을 반복시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요 인허가 관련 행정위원회가 사후 회의록 공개 수준에 머물러 주민이 의사결정 과정을 확인하거나 참여할 수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 활동가는 전국 지자체 회의공개 조례 분석 결과를 소개하며, 다수의 조례가 ‘회의 공개’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실효성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회의 절차·일정 사전공개, 방청 및 발언 절차 마련, 회의록 상시 공개 등 주민의 정책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례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충청북도의 관련 조례 및 회의록 정보공개 청구 사례에서 ‘비공개 원칙’ 남용으로 전면 비공개가 이어지고 있음을 비판하며 실질적 회의 공개 제도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박종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2025년 10월 충북 음성군 진양에너지 지하 저장탱크 비닐아세테이트 누출 사고 사례를 언급하며, 인근 주민들이 어떤 화학물질이 취급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최초 사고 발생 후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재난 문자를 받았던 정보 부재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지자체와 기업이 주민 반대를 우려해 사전고지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주민의 ‘거부권’을 빼앗는 행위이며, 행정이 사업자와 주민 사이에서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사무처장은 충북도와 11개 시·군이 환경영향평가 조례, 사전고지 의무 조례 제정 과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난개발 시설 인허가 절차가 헌법적 기본권 관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최 국장은 충청북도의 「산업단지 개발 지원 조례」가 회의와 회의록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주요 위원회 회의록을 전면 비공개한 것은 주민 감시와 통제를 벗어난 밀실 행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회의 공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선샤인 법(Sunshine Act)’을 참고해 공개 의무 위반 시 의결 효력을 무효화하는 등의 강력한 제재 규정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김남균 충북인뉴스 편집국장은 보은군 제3산업단지 조성 사례를 공유하며, 폭발 사고 이력이 있는 특수가스 제조 기업(티이엠씨)과 투자협약을 체결했음에도 보은군이 주민에게 위험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장밋빛 개발 청사진’만 제시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인허가 과정뿐 아니라 산단·공장 입지 후 ‘위험 정보’에 대한 알 권리가 중요하다며, 충북 주민들이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도 고지나 시스템 정보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행정이 이해 가능한 형태의 정보 제공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해야 하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면으로 토론에 참여한 배명순 충북연구원 기획경영실장은 충북이 경제적 낙후 해소를 위해 산업단지 유치에 집중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환경 훼손과 환경오염 시설 주변 주민의 건강 피해가 발생했지만 소수 주민이라는 이유로 보호받기 어려웠다고 진단했습니다. 2017년 충북도의회 주최 환경영향평가 조례 제정 토론회가 열렸음에도 아직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며, 지역에서 여전히 개발 중심 시각이 우세해 전문가·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끝으로 좌장을 맡은 손은성 충북참여연대 공동대표는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개발주의와 폐쇄적 행정 문화를 바꾸고, 주민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는 ‘자치’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번 토론회가 주민에게 필요한 조례들이 지역 정치 의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토론회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충북시민재단, 충북연구원, 공익법률센터 농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함께 공동주최하였으며,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후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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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인공지능 시대인데 1987년에 멈춘 헌법… 시대에 걸맞은 ‘정보기본권’ 헌법 필요

2025.11.26
정보공개센터가 참여하고 있는 ‘시민주도 헌법개정 전국 네트워크’의 연재 기획 ‘2026 개헌로드맵’에 정보공개센터 김예찬 활동가가 기고한 칼럼입니다.

6월 26일 무상의료운동본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 위원회,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안전장치 없는 AI 질주, 위험하다. 이재명 정부 AI정책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6가지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정민

2025년 한국 사회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모바일게임 재화를 구매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직장 상사의 ‘뒷담화’를 하며, 모바일 앱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은행 업무도, 공공서비스 신청도, 친구와의 대화도 모두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진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공간도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사이버범죄 건수는 40만 건을 넘어서며 해마다 증가 중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버사기, 해킹, 디지털 성범죄, 인공지능(AI) 딥페이크로 인한 피해가 연일 기사화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고, 대출 한도를 정하며, 복지 수급 자격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불투명하고, 차별과 권리 침해가 발생해도 이를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이 같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는 있지만 디지털 표현의 자유는 없고, 통신의 비밀은 보장하지만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명시되지 않았다. 정보접근권도, 알고리즘 설명요구권도 헌법에는 없다. 87년 헌법은 오프라인 중심의 권리 규정에 머물러 있다.

물론 법률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위치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 시대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기존 법을 개정한다.

하지만 이런 법들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첫째, 이슈 중심이다. 문제가 터진 후 사후약방문식으로 대응한다. 둘째, 산업 육성과 지원 중심이다. 정보기술 관련 법률은 주로 산업 진흥과 기업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규제가 포함되더라도 시민의 권리 보장은 부차적이거나 명확하지 않다. 셋째, 법률은 국회 과반수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 취약하다.

왜 헌법 개정이 필요한가

헌법은 법률과 다르다. 헌법은 기본권의 카탈로그이자 국가권력의 한계와 의무를 정한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는 법률로 쉽게 제한할 수 없고 사법부도 엄격하게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헌법은 미래를 대비하는 규범이다.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만 법률로 규율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법 개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시민의 권리는 침해당한다. 하지만 헌법에 정보기본권의 원칙과 체계를 담아두면,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기술과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기준점이 생긴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는 1791년 채택되었지만, 인터넷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한다. 왜냐하면 헌법이 ‘출판의 자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보기본권을 헌법에 담으면,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미래 기술에도 대응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정보접근권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이미 국제적 추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독일, 멕시코, 스웨덴, 스페인,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핀란드 등 다수 국가가 헌법에 정보권을 명문화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헌법에 정보접근권을 보장해 왔으며, 유엔 인권이사회는 “정보접근권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며 각국에 헌법적 보장을 권고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헌법 조항도 등장하고 있다. 그리스는 2008년 “정보사회에 참여할 권리”를 헌법에 명시했고, 포르투갈은 1982년부터 이미 컴퓨터 파일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을 헌법에 담았다. 에콰도르는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과 함께 “보편적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제한적인 개인이나 사회집단”을 위한 국가 보장 의무를 명시하며 디지털 포용권의 선례를 만들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은 1983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했고, 유럽연합은 개인정보보호법(GDPR)과 기본권 헌장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를 독자적 권리로 명확히 했다. 2017년 유럽연합이 선포한 유럽 사회권 원칙은 디지털 통신을 ‘필수적인 서비스’로 규정했으며, 2019년 유럽접근성법은 모든 사람의 디지털 접근성을 법제화했다.

더 주목할 점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권리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024년 유엔은 인공지능에 관한 최초의 결의안을 통해 AI 시스템의 투명성과 이해 가능성을 촉진할 것을 회원국에 독려했다. 유엔 사무총장은 AI 알고리즘이 기존 사회의 편견과 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자동화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차별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국제인권규범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와 사회권규약 제15조는 문화생활 참여권과 과학의 진보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한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이러한 권리가 단순히 소비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접근, 참가, 기여의 권리를 포함한다고 명확히 선언했다.

헌법에 담아야 할 정보기본권

2018년 3월 26일 김외숙 법제처장이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기 위해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에게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맨 오른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공동취재사진

그렇다면 우리 헌법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아야 할까?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헌법 개정안은 ‘국민의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정보 독점 및 격차에 대한 예방 의무’를 포함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7년이 지난 지금, 2018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1. 정보접근권
모든 사람이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권리. 단순히 “알 권리”라는 추상적 표현이 아니라, 공공 정보에 접근하고, 취득하고, 공유할 구체적 권리로 명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외국인도,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도 정보접근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2.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고 그 처리에 관하여 통제할 권리. 단순히 동의권을 넘어,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수집·이용·가공되는지 알 권리와 이를 통제할 권리를 포함한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인공지능 시대의 권력 구조에 맞서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적 권리로 격상되어야 한다. 거대 빅테크 기업의 정보 남용과 잇따른 개인정보 침해 및 유출에 대항할 수 있는 헌법적 무기가 필요하다.

3. 알고리즘 설명 및 이의제기권
AI와 알고리즘이 채용을 결정하고, 신용등급을 매기고, 복지 수급자를 선별하는 시대다. 앞으로 공공행정에서 AI 활용 확대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불투명하고, 이로 인해 어떤 권리의 침해가 발생하는지 조사하기조차 어렵다.

시민은 자동화된 결정의 과정과 근거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부당하다면 이의를 제기하고 인간의 개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알고리즘 차별금지가 명시되어야 한다. 데이터 편향으로 인한 성별·인종·연령·장애 등에 따른 차별이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은밀하게 확산되고 강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공공 부문에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투명성과 설명 책임성을 갖춰야 하며, 민간 부문 역시 차별적 알고리즘 사용에 대한 헌법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통제와 인간 존엄성의 문제다.

4. 디지털 표현·창작의 자유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견 표명과 정보 공유의 자유. 기존 표현의 자유 조항이 디지털 공간에도 적용되지만, 플랫폼 기업의 검열, 정부의 인터넷 규제 등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면 디지털 영역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5. 정보격차 해소, 디지털 포용권 및 정보문화향유권
기술 발전에서 소외된 계층(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정보접근 및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지원 의무. 디지털 전환이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모든 사람은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과학의 진보와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정보문화향유권은 단순히 소비하는 권리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문화를 창작하고 공유하며 참여할 권리를 포함한다. 온라인 도서관, 디지털 박물관, 공공 데이터베이스 등 디지털 문화 공공재에 대한 구체적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과도한 저작권 보호나 개인정보보호법의 남용으로 정보와 문화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6. 국가의 적극적 의무 명시
시민의 정보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 역시 명시되어야 한다.

첫째, 정보를 생산·기록·보존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행정의 설명책임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 정책 근거, 예산 집행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시민이 정부를 감시하고 참여할 수 있다. 둘째, 더 나아가 공공 부문에서 사용되는 AI 알고리즘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할 국가의 의무가 규정되어야 한다. 셋째, 거대 플랫폼 기업의 정보 수집과 알고리즘 사용을 감독해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의 정보권력 집중을 견제하고, 시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런 의무를 헌법에 명시해야 국가가 기술 변화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정보기본권’ 헌법이 만들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

2025년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시대 정보기본권 보장을 위한 시민주도 헌법개정 토론회시민개헌넷

“법률과 제도는 인간 정신의 진보와 함께 가야 한다.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진리가 밝혀지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관습과 의견이 바뀌면, 제도 또한 진보하고 시대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19년마다 헌법의 유효 기간을 만료하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각 세대가 자신의 시대에 걸맞은 헌법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8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의 삶은 디지털로 옮겨갔고, AI는 일상이 되었으며, 사이버공간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헌법은 여전히 1987년에 머물러 있다.

정보기본권의 헌법적 보장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인간이 기술에 의해 통제되는 시대에, 헌법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다시 세울 것인가의 근본적 질문이다. 정보기본권은 고립된 권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 평등권, 참정권 등 다른 기본권과 결합되어 21세기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든다.

시민이 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한 민주주의, 알고리즘이 아니라 시민이 주인인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 발전이 모두의 권리 확장으로 이어지는 포용적 민주주의. 이것이 ‘정보기본권’ 헌법이 만들어갈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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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가 비공개한 문제적 기업들, 처음으로 공개합니다

2025.11.25


[그 정보가 알고 싶다] 3년 치 중대재해 기업명,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 소송으로 첫 공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모두 887건이다. 이 사고로 943명이 숨지고 152명이 다쳤다. 그러나 이 사고들이 어떤 기업에서, 어떤 원·하청 구조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는지는 지금까지 누구도 확인할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원청·하청 기업명을 비공개해 왔기 때문이다.

그 관행이 최근 법원 판결로 깨졌다. 정보공개센터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기업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따라 처음으로 원청·하청 실명이 포함된 전체 자료를 공개했다. 중대재해가 어느 기업에서 반복되고 있었는지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료를 살펴보면, 먼저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2024년 중대재해는 436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211건, 2023년 240건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증가했지만 이 수치를 단순 비교해 “중대재해가 폭증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024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모든 기업으로 확대되면서, 그동안 통계에 잡히지 않던 중소·영세 사업장의 사고가 새롭게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도별 총량 비교만으로 산업현장의 위험이 악화됐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중대재해, 같은 기업에서 반복된다


▲최근 3년간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원청기업 현황2024년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청기업은 403개였는데, 이 가운데 37개 기업은 2022년 또는 2023년에도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이었다(고용노동부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함)정보공개센터

법의 적용 대상이 확대되어 더 많은 산재가 발견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번 공개 자료를 통해 드러난 심각한 문제는 사고가 매번 같은 기업들에서 반복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887건의 사고는 730개의 원청에서 발생했지만, 그 가운데 상위 10%에 해당하는 73개 기업이 전체 사고의 25% 이상(226건)을 차지했다. 사고는 산업 전반에서 무작위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일부 기업에서 집중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주목할 점은 2024년 사고기업 중 ‘반복 기업’의 규모다. 2024년 중대재해가 발생한 원청기업은 403개였는데, 이 가운데 37개 기업은 2022년 또는 2023년에도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이었다. 법 적용 범위가 달랐던 지난 3년 동안에도, 이들 기업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는 물론, 한국전력공사, 산림청, 포항시청 등 공공기관도 포함된다.

이 가운데 3년 연속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은 11곳이나 된다. 대우건설은 3년 동안 11건의 사고로 12명이 사망했고, 현대건설과 롯데건설도 각각 9명이 사망했다. 사고는 대부분 위험 공정에 투입된 하청 노동자에게서 발생했으며, 추락 사고 비중이 매우 높았다.

원청·하청별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황(2022~2024) (고용노동부 정보공개자료 분석)정보공개센터

사고 건수를 원하청 구분 별로 살펴보면, 전체 887건 중 552건(62.2%)이 하청에서 발생했고, 사망자 역시 602명(63.8%)이 하청 노동자였다. 원청의 포괄적 안전의무를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여전히 하청에 집중돼 있었다. 반복 기업의 사고 대부분이 하청 사업장에서 일어난 것은, 원청의 안전관리 체계가 하청 작업환경까지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울산 화력발전소 사고 기업도 중대재해 명단에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해체 공사를 하도급 받아 진행한 코리아카코 석철기 공동대표 등이 15일 사고 현장 앞에서 사과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6일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에선 보일러 타워 해체 공사 중 타워가 붕괴해 작업자 7명이 매몰됐으며 모두 시신으로 수습됐다.연합뉴스

공개 자료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최근 울산에서 발생한 실제 사고에서도 확인되었다. 지난 6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로 7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원청인 ㈜에이치제이중공업, 하청인 코리아카코,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 등이 조사 대상이다. 정보공개를 통해 확보한 명단에는 원하청 두 기업 모두 이미 과거에 중대재해를 일으킨 이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에이치제이중공업은 2023년과 2024년에 연달아 사망 사고가 있었으며, 하청인 코리아카코 역시 2023년 롯데건설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공개된 기업명 안에서 반복되는 이름, 그리고 2025년의 대형 사고에서도 다시 등장하는 이름. 중대재해가 특정 기업을 중심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의 사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동안 비공개로 가려져 있던 기업명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사고의 구조적 반복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취지는 원청의 실질적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지만, 이번 공개는 그 책임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2024년 늘어난 통계는 법 적용 확대의 영향이 컸지만, 반복해서 사고를 내는 기업의 존재는 법의 적용 범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 공개는 중대재해를 기업별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 첫 출발점이다.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의 이름이 드러난 이상, 이제는 그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안전 의무가 실패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꿀 것인지 더 깊이 질문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기사에 포함된 기업명 및 사고 정보는 고용노동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한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황’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개된 정보는 사고 발생 사실에 관한 공적 자료이며, 이 기사는 공익적 분석 및 산업안전 정책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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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사법부는 판결문 공개에 대한 무책임하고 시대착오적 태도를 철회하라

2025.11.17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6월 13일 김정희원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 박지환 변호사, 송민섭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와 함께 판결문 공개 확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현행 판결문 열람 제도가 판결문 접근에 신분과 서열을 두고 장애인 접근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알권리를 위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취지의 헌법소원에 대해 법원도서관과 법원행정처는 지난 9월 말 각각 54쪽, 33쪽 분량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판결문 공개를 주관하는 해당 기관들은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판결문 속에 포함된 민감한 개인정보들의 유출 위험을 강조하며 판결문 열람 및 공개 확대는 불가능하며 현행 판결문 공개 제도를 통해서도 국민들의 알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고 있으므로 이 헌법소원이 기각되어야 한다는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도서관과 법원행정처의 관점은 판결문 접근의 차별과 국민의 알 권리의 침해를 정당화 하고 있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공개’에 국민 개별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발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법원의 태도는 시대착오적이고 게으르다. 개인정보의 유출에 대한 우려를 거의 유일한 핑계로 판결문의 선별적으로 공개, 제한적 공개를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재의 기술력과 판결문 생산 과정의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러한 가능성들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일부 개인정보 유출 사례를 근거로 국민들에게 ‘알권리’라는 기본권의 침해와 축소를 아무렇지 않게 그저 받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법원도서관과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사법부 전체에 요구한다. 사법부는 현재 판결문 공개 확대를 지연하고 가로막고 있는 폐쇄적 태도를 철회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더욱 넓고 평등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판결문 공개 정책을 수립하라. 민감한 개인정보 등의 보호는 판결문의 ‘공개를 축소’하는 방향이 아닌 적절한 기술을 도입해 ‘보호를 현실화 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하라. 그리고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시민들이 요구하게 하지 마라. 자괴감 든다.

끝.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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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보도자료] 고용노동부, 법원 판결 따라 중대산업재해 기업 명단 공개

2025.11.17

정보공개센터, 2년 소송 끝에 원청·하청 실명 포함 전체 자료 확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2025년 11월 14일, 고용노동부로부터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현황을 전면 공개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공개는 법원의 1·2심 승소 판결에 따른 것으로, 정부가 원청·하청 기업명을 모두 포함한 중대재해 자료를 공개한 최초의 사례다.

2년간의 소송, 법원 “기업명 공개해야”

정보공개센터는 2023년 3월 22일 고용노동부에 ‘2022년 중대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고용노동부가 ‘수사 및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원청·하청 기업명을 비공개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2023년 10월 16일 서울행정법원에 비공개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10월 17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고용노동부가 항소했으나 서울고등법원 역시 2025년 10월 2일 정보공개센터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두 차례에 걸친 판결을 통해 중대재해 발생 기업 명단을 공개해도 고용노동부 주장대로 수사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보공개센터는 항고 마감기한인 11월 4일 고용노동부에 2022년부터 2024년 3년간의 중대산업재해 현황 자료 공개를 청구했고, 고용노동부는 11월 14일 원청·하청 이름이 포함된 전체 자료를 공개했다.

 

3년간 887건, 943명 사망… 반복 기업의 실체 드러나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약 3년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총 887건이며, 이로 인해 943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부상했다. 이 중 552건(62.2%)이 하청에서 발생했고, 사망자의 63.8%(602명)가 하청노동자였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사고가 일부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사고의 25% 이상(226건)이 사고 건수 상위 10% 기업(73개사)에서 발생했으며, 대우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포함해 한국전력공사, 산림청 등 공공기관에서도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한 일터 선택할 권리, 정보공개로 보장돼야”

정보공개센터 김예찬활동가는 “이번 자료 공개로 중대재해가 특정 기업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구직자가 안전한 일터를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중대재해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보공개센터는 공개받은 자료를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찾기'(www.nosanjae.kr) 웹사이트를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채용정보 플랫폼에서 구인 기업의 산업재해 발생 여부를 공개하도록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2월 12일 김태선 국회의원(민주당, 울산 동구)과 함께 구인 기업의 산재 발생 여부를 알리도록 하는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으며, 앞으로도 중대재해 정보공개 확대를 위해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소송 경과]

2023년 3월 22일고용노동부에 2022년 중대산업재해 기업명 정보공개 청구

2023년 10월 16일서울행정법원에 비공개처분 취소소송 제기 (2023구합81534)

2024년 10월 17일서울행정법원 원고 승소 판결

2025년 10월 2일서울고등법원 원고 승소 판결 (2024누68158, 고용노동부 항소 기각)

2025년 11월 4일 고용노동부에 2022-2024년 중대산업재해 기업명 정보공개 청구

2025년 11월 14일고용노동부, 3년간 중대산업재해 전체 자료 공개


※ 공개자료는 고용노동부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한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황’ 이며, 정보공개센터는 해당 정보를 공익적 분석 및 산업안전 정책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공유합니다.

청구 내용 : 2022년 1월 1일 ~ 2024년 12월 31일 기간 동안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2항) 발생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합니다.

다음과 같은 정보를 포함하여 공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각 재해별로 담당 지방관서, 지방청, 사업장의 업종, 재해발생일, 재해발생접수일, 원청 기업명, 하청기업명, 사고발생 현장 주소, 사망자(명), 부상자(명), 사고 발생형태 등’

고용노동부 공개 자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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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서울시립미술관은 왜 ‘미혼남녀’ 중매에 차출되었나

2025.11.13
서울시립미술관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홍보글. 공식 홈페이지에는 등록하지 않은 ‘미혼남녀’ 표현이 눈에 띈다.

“작품을 감상하고 티 블렌딩 체험을 통해 다감각적 확장과 교감을 나누어 보세요. 참가자들은 테이블에 놓인 티 블렌딩 재료를 함께 소분하며 찻잎과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얼그레이 티로 마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육 프로그램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의 설명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전시 중인 작품을 감상한 뒤, 다양한 재료로 차를 만들며 “참여자 간의 감상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대화형 전시해설’ 워크숍”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수정된 안내문으로 원래 문구는 이랬다.

“본 프로그램은 이성 참여자 간의 감상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대화형 전시해설’ 워크숍입니다.”

참여자 앞에 ‘이성’이라는 단어가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신청 양식 페이지에 접속하면 이런 문항도 있다.

“신청자 분은 미혼이신가요? 본 프로그램은 미혼 성인이 참여하는 워크숍입니다.”

24시간 후 자동으로 사라지는 ‘스토리’ 기능을 활용해 인스타그램에 잠시 올린 홍보글에는 “미혼남녀 프로그램”, “미혼 남성, 미혼 여성 모집중!”이라는 노골적인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 자격이 있는 것은 아무 성인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녀’였던 것이다.

지자체의 구애대상, ‘미혼남녀’

지자체가 추진하는 ‘미혼남녀 만남 사업’ 홍보 포스터들

‘미혼남녀’는 최근 몇 년간 지자체 사업명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단어다. 이성간 연애나 결혼을 원하는 청년층에게 ‘건전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미혼남녀 만남 사업’은 올해만 전국 30곳이 넘는 시에서 추진되었다.

지자체가 이러한 사업을 통해 ‘미혼남녀’, 즉 결혼하지 않은 지역 청년 인구 집단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사업 담당 부서명에서 드러난다. 올해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진행하는 지자체 33곳의 공고문을 살펴본 결과 담당부서는 인구정책 관련 부서가 14곳, 가족이나 청년정책 관련 부서 각각 6곳, 저출생대책 부서가 2곳, 지역소멸대응 부서가 1곳이었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확산하고 미혼인 청년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해 청년 인구 감소·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고자”(‘안산 시그널’ 보도자료) 같은 설명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지자체는 지역 내 인구 문제, 즉 저출생·고령화 및 지역소멸이라는 문제 해결을 청년 인구 간 만남 장려에서 꾀하고 있다. 지자체가 ‘미혼남녀’를 부를 때, 청년들을 서로 만나게 하면 혼인-출산-정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가 너도나도 미혼남녀 만남 사업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저출생 대책으로서 미혼남녀 만남 사업이란 성사된 커플이 지역 인구를 늘려줄 요행을 바라는 일에 불과하지만, 선발 시의 높은 ‘경쟁률’이나 ‘성사된 커플 수’ 등의 수치는 이 사업이 주민의 호응 속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성과로 여겨진다.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마련된 이 사업이 성사된 커플 수는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수혜자로 여겨지는 청년 집단 전반이 누릴 수 있는 정책인가는 보여줄 수 없다. 예컨대 이 사업은 이성애자 청년만을 대상으로 삼는바 동성 연인을 찾는 청년은 참가할 수 없다. 이혼한 청년도 참가하기 어렵다. 이 사업 대다수는 혼인관계증명서를 요구하면서까지 초혼자만을 가려 받기 때문이다.

미혼남녀 만남을 서울문화재단의 업무로?

서울시도 2023년 ‘서울팅’이라는 이름의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저출생 대책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려 하다 이러한 문제 제기 앞에 입장을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카드, 신한카드, 한화손해보험 등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우회하여 여성가족실 주최 하에 올해 4회의 만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시 문화본부가 담당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어쩌다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일까? 그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팅’ 추진을 철회한 20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23년 10월 23일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원회 소관인 서울문화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재단의 역할 중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이라는 문구를 ‘청소년·청년·미혼남녀·장애인·노인 등 시민의 문화향수 및 창의력 증진’으로 바꾸는 내용이었다.

그가 작성한 제안설명에 따르면, 그 이유는 서울시 혼인 건수가 “2012년부터 11년째 매년 감소 중”이기에 “서울문화재단의 수행 업무 중 시민의 문화향수 증진 대상에 미혼남녀를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미혼남녀에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10월 18일 언론보도에서는 “고액의 가입비 및 성혼비 없이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해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였고, 11월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미혼 당사자로서 조례를 발의하였다고 밝히며, 결혼정보업체를 대신해 금전적 부담 없이, 철저한 신원 관리를 통해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주고자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용이나 신원 확인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지만, 미혼남녀 만남을 지원하기 위해 개정하고 있다는 얼개는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제안이유가 조례안에서는 “청소년, 청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및 미혼남녀가 문화향유에 있어 소외되지 않도록 구체화하려는 것”으로 바뀌어 적혀 있다. 제안설명이나 그의 인터뷰 등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던 ‘사회적 약자’들이 추가됐고, 핵심적으로 이야기하던 ‘미혼남녀 만남 지원’은 사라졌다.

좌: 일부개정조례안 제안설명서, 우: 일부개정조례안 원안

미혼남녀 만남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문화재단의 수행 업무를 고치는 것도 의아한 일이지만, 문화향수 증진 대상에 미혼남녀를 기재하는 것으로 선회하는 것은 더욱 아리송한 일이다. 사회적 약자와 달리,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들이 문화향유에 있어 어떤 식으로 소외되는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 대해 수석전문위원은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검토보고를 제출했다. ‘시민’의 대상 범주가 이미 ‘청소년·청년·미혼남녀·장애인·노인’을 포괄하고 있으며,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문화향수의 대상을 오히려 열거한 대상들로 한정할 우려가 있고, ‘청년’과 ‘미혼남녀’는 서로 중첩되는 범주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려를 표하는 것은 수석전문위원만이 아니었다. 12월 19일, 개정안을 상정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문화본부장은 “이미 소외계층 및 대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시민으로 규정하고 있어 조례 개정의 효율성이 낮은 바 조례 개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사료됩니다”라고 집행부 의견을 밝혔다. 이에 이 의원은 질의한 내용은 이러했다. “시장님 뜻은 아닌 거죠, 이게?”

2023년 12월 19일 제321회 제6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시장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 의원은 “내부적으로 이걸 존경하는 위원님들께서 일단 원안 가결을 하기로 합의는 봤는데 잘 검토해 주세요. 잘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며 통과를 종용하였다.

이 개정안이 정책이 집중할 대상과 방향에 대해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문화본부장이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를 몇 차례 더 설명하였고,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역시 다른 범주와 달리 ‘미혼남녀’는 부담이 있다며 동의하였지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개정안은 원안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어 12월 22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63명 중 찬성 59명, 반대 2명, 기권 2명으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미혼남녀를 위한 조례가 아닙니다”라고 했지만

상정 당시 이 의원은 “미혼남녀를 여기에 넣었다고 해서 제가 미혼남녀를 특별히 우대하거나 지원을 미혼남녀에 집중한다거나 그렇게 한 것도 없고 여러 예시 중의 하나인 것”, “이거는 미혼남녀를 위한 조례가 아닙니다”(제321회 제6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라고 말했지만, 이듬해부터 이 의원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끈질기게 미혼남녀 만남 행사를 요구했다.

2024년 6월 14일 제325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2025년 4월 22일 제330회 제1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2025년 9월 1일 제332회 제1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 발췌

“잘 해보려고 너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싶어요.”

4월 22일, 미혼남녀 만남 행사가 없다고 질책받은 서울시립미술관장의 한 마디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미술아카데미 사업 중 ‘도슨트 토크토크’라는 명칭으로 마련된 “영원히 교차하는 춤 얼그레이 만들기”는 2월에 수립된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데미 운영계획’에도, 3월에 결재된 ‘2025년 서울시립미술관 도슨트 운영계획’에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4월에 결재된 ‘2025 미술아카데미 SeMA 도슨트 토크토크 운영계획’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추진 방향은 “직원, 1인가구 시민을 대상으로 현대미술 작품 감상 및 체험 기회를 제공”이었는데, 이후에는 이렇게 수정된다. “미혼남녀 1인가구 참가자를 대상으로 교류 및 현대미술 감상의 장을 제공”. 이 계획은 10월 17일에 결재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만남행사 참가자 모집 시작일과 같다. 시의원의 압박에 급조된 프로그램이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다.

2025 미술아카데미 SeMA 도슨트 토크토크 운영 계획(좌: 4월 2일자, 우: 10월 17일자)

시의회가 부르는 시민은 누구인가

이런 촌극을 부른 것은 시의회가 제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례안을 개정해야 하는 논리가 부실하고, 취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위원회는 이를 재논의하지 않고 원안을 가결하였다. 혼인율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문화 향유 소외를 막기 위한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법안을 통과시킨 결과, ‘문화재단이 이성간 만남을 지원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방기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번 프로그램은 시의원들이 시민, 공공기관, 그리고 그들을 정의하고 지원하는 조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시민에게 필요한 ‘문화향수’의 형식과 내용은 다양하다. 1인 가구, 비이성애자와 성소수자, 한부모 가족과 조손 가족, 비혼·비혈연 가구 등 다양한 형태로 살아가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2024년도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립미술관장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한다.

“미술관에 ‘왜 1인도 가구인데 가족 대상으로 봐주지 않냐’ 이런 요청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그거를 그냥 ‘아, 이상하다’, 이렇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분들도 대상으로 해서 매칭시키는 그런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서울시의 1인 가구는 166만여 명으로 전체 가구의 약 40%에 육박한다. 다양한 시민을 대변하는 시의원이라면 이같은 사례에서 ‘미혼남녀’로 갈음되는 시민들이 문화 향유에서 어떤 식으로 소외를 느끼는가, 이들을 위해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들은 시의원의 첫 마디는 이랬다.

“이게 그래서 어떤 행사라든지 사업이나 목적이 명확해야 되는데 계속 강조를 하지만 다자녀가구에 방점을 찍어야 돼요, 다자녀가구에.”

그에게 있어 이들을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는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적인 과제에 우리가 기여한다는 측면 목적 그런 차원”이었다. 지자체가 시민을 ‘늘려야 할 인구’로만 조망할 때, 그리고 시민을 위한 정책을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성과주의적으로만 고안할 때, 특정 계층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쉽다.

시의회는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의회는 다양한 시민과 약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이 누구인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자체의 사업이 특정 집단만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지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번 조례 개정 과정에서 시의회는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면, 다양한 개인, 가족, 그리고 사랑의 형태들이 존중받는 환경, 예컨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집과 일터, 서로가 서로를 넉넉히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법을 만들고 예산을 써야 한다. 미술관에 이성간 만남 주선 프로그램을 닦달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그 정보가 알고 싶다〉 연재 기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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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예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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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성명] 존재 의미가 없는 검찰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이 유일한 답이다

2025.11.12

[성명] 존재 의미가 없는 검찰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이 유일한 답이다

2025년 11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가 정부가 제출한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 72억원 중 20억원을 삭감하여 52억원으로 조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회 법사위 예결소위는 ‘민생수사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검사들은 특수활동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부대의견을 달아 법사위 전체회의에 회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20억원 삭감은 불충분한 타협안에 불과하다. 검찰 특수활동비는 전액삭감되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 6월 추경을 통해 40억원의 특수활동비를 부활시키더니, 이번에도 검찰특수활동비를 보장하겠다는 것은 개혁 의지가 후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뉴스타파의 “먹칠없는 검찰 특수활동비 검증결과” 보도로 그동안 시민단체가 문제제기했던 셀프수령, 명절시기의 떡값 사용 등의 세금 오남용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특히 심우정 당시 서울동부지검장의 경우, 1년 동안 서울동부지검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의 15%를 셀프수령하고, 검찰 내 비수사부서장에게도 명절 시기 특수활동비를 배부했다. 당초 목적인 기밀 수사와 무관하게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것이다.

법사위 예결소위의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생 수사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데 공감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생수사를 위한 필요성’이라는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 민생수사에 필요한 예산은 투명성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감사, 예산, 조사 등의 특정업무수행에 소요되는 경비 예산인 특정업무경비로 대체 가능하다.

‘정치적 중립성 위반 검사의 특수활동비 사용 금지’라는 부대의견 역시 ‘검찰 길들이기’ 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 위반의 기준이 매우 모호할 뿐더러, 특정 검사의 특수활동비 사용을 어떤 방식으로 금지할 수 있을지 실효성 있는 방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회의 예산심사는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고, 불요불급한 예산의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법사위의 예산심의는 검찰 특수활동비가 불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예산 유지의 합리적 사유는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그동안 지적되어 온 검찰 특수활동비 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제도적 개선책 역시 마련하지 못했다.

검찰에게 수사를 위한 예산이 필요하다면, 과거 사용 내역을 철저히 분석하고 실제 필요 규모를 산정하여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특정업무경비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 국민의 세금을 권력자들의 ‘쌈짓돈’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검찰 개혁의 모습이다.

2025년 11월 12일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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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비상계엄 알고도 침묵한 조태용 전 국정원장, 구속 당연하다

2025.11.12

비상계엄 알고도 침묵한 조태용 전 국정원장, 구속 당연하다
–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정보기관으로 다시금 거듭나야 –

  1. 1.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오늘(11월 12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오늘 새벽, 내란특검이 지난 7일 조 전 원장을 상대로 정치 관여 금지 위반(국정원법 위반),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발부했다.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고도 이를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침묵한 행위는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직무를 유기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구속은 당연하다. 이번 구속을 계기로 국정원이 본연의 직무는 저버린 채 정치에 개입하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행태를 바로 잡고,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2. 2. 국가정보원(약칭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및 보안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설립된 비밀정보기관이다(정부조직법 제17조 제1항, 국정원법 제1조). 국정원 설립의 기본 목적은 ‘국가안전보장’이고, 여기서의 ‘국가’는 주권자의 결단으로 세워진 현행의 헌법체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국가안전보장 최일선의 업무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의 비밀정보기관인 국정원은 윤석열과 그 동조 세력이 상당한 기간 동안 준비해 온 친위쿠데타, 즉 내란행위에 대해 어떠한 사전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한 12·3 불법계엄이 실행되어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국정원법 제15조 제1항에 따른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

  3. 3. 오히려 조태용 전 원장은 홍장원 전 제1차장의 불법계엄 관련 문제제기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국민의힘에만 홍 전 차장의 동선이 담긴 국정원 내부 CCTV 영상을 제공하는 한편,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여 사실과 다른 허위의 답변을 하였으며, 비화폰 서버기록을 삭제까지 하였다. 특히 최근 내란특검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을 야기하여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상태를 일부러 조장하는 등의 일반이적혐의로 윤석열 등을 기소하였는데, 다양한 정보원을 확보해서 북한 관련 정보를 가장 잘 확인하고 있다는 국정원이 이러한 사실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을리 없다.

  4. 4.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이라 지칭하고,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한다”고  발언 한 바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간첩법 개정과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조태용 전 원장 또한 “현재 수사권이 하나도 없어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국정원 대공수사단장을 했다는 국정원 전직 직원은 실명과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며 국정원에 수사권이 부여되어야만 간첩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5. 5. 그런데 국정원이 간첩이나 국가보안법위반 행위자들을 직접 검거하지 못함으로 인해 국가안보에 엄청난 위험이 초래되고 있다는 이러한 주장들은, 현직 대통령이 직접 주도한 내란으로부터 국가공동체를 지켜낸 최근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낱 철지난 투정이다. 12·3 내란의 밤 당시 시민들이 확인한 것은 헌법체제를 파괴하는 반국가세력이 다름 아닌 내란수괴 윤석열과 이에 동조한 조태용 전 원장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반국가세력’을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상 기본원리인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자체를 압살해버리겠다는 반국가적 의지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6. 6. 이제 국정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의 전직 원장들(원세훈·남재준·이병기·이병호)에 이어 윤석열 정권 시기의 조태용 전 원장까지 구속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모든 국가기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설립·운영되듯이 비밀정보기관 또한 그 조직과 활동이 헌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정부 출범 후 국정원에서 내부감찰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이번 상황을 계기로 다시금 지난 정권에서의 불법행위는 없었는지, 내란행위와 일반이적행위의 모의·예비·준비·실행 단계에서 국정원 역량이 조력하거나 투여된 것은 없었는지, 내국인에 대한 위법한 사찰행위는 없었는지, 국정원 전직 임직원들이 재직 중 정보나 지위를 활용한 정치개입이나 선동은 없었는지 등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와 조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민주공화국 헌법체계가 다시는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미명하에 위협받는 일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 7. 이에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과거 참여정부때 국정원 내에 설치한”국정원과거사발전위원회”의 선례에 따라 시민단체등 외부위원과 조사관을 한시적으로 위촉하여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12·3 내란불법행위 관여 여부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조사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국민주권정부의 국정원은 완전한 내란종식과 심판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쇄신의 차원에서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를 바란다. 끝.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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